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3)
“흠.”
키린은 투란이 실토한 말에 우선 짧게 반응했다.
이야기는 조심스럽고, 투란이 어떻게든 잘 설명하려 했지만 역시나 앞뒤가 좀 싹둑 사라진 꼴에다가 두서가 없어서 쉽게 뭔 소리인가 파악하기 어려웠다. 키린에게 본격적으로 투란에게 화술이라든가 하는 교양 학습이 필요하지 않나 싶은 생각부터 들게 할 정도였다.
그러나 키린은 지금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투란의 교양이 아니라, 투란이 겪으면서 얻어 낸 문장의 특이한 능력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두서없는 이야기를 어떻게든 맞춰 내야 했다.
—이건 대체 무슨 괴물이냐! 그런 짓이 가능하다면……!
‘아, 넌 좀 가만히 있으라고.’
틈나는 대로, 그야말로 정말 오랜만에 이성을 찾아 떠들고 싶은 것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드라코눔의 아칸’이 외치고 있었다. 그 소리를 마음 한구석 깊은 곳에 몰아넣으면서, 키린은 침착하고 신중하게 투란에게 묻는다.
“그러니까 며칠 낮밤을 유지하고 있어도 괜찮다는 거지? 졸리면 그냥 몬스터를 꺼내 놓은 채로 잠도 자고 말이야.”
“네…… 어떻게 그러는지는 잘 모르지만요.”
“그리고 몬스터를 꺼내 놓은 채로 다른 몬스터도 삼킬 수 있고? 너의 문장은 그런 식으로 변해 버렸다, 이거지?”
“네, 그건 그러니까…….”
“문장을 믿고 소원을 빌었던 것이고?”
“에, 맞아요.”
“오러의 기초는 지금 나에게 배웠고…….”
“아, 근데 오러라면서 보이드는 뭐예요?”
투란이 눈을 반짝거리면서 묻고 있었다.
키린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투란을 바라봤다.
자신이 무슨 일을 겪었는가를 기억은 하지만, 도대체 뭐가 어찌 되어 그런가에 대해서 투란은 정말 아는 바가 없었다. 그저 몸으로 겪고 마음이 시달리면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 여기에 이른 것일 뿐이다.
키린에게는 나름대로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
키린이 아는 바를 그대로 설명해 준다 해도, 투란이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을까?
‘어렵겠지. 이 녀석, 벤담 할배네 있을 때 나보다 더 심해. 그래도 내게는 글자라도 가르쳐 주는 엄마나 아저씨들이 있었는데…….’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이, 키린은 투란이 금전에 새겨진 무게를 표시한 숫자도 제대로 읽지 못할 것이란 점을 확신할 수 있었다. 입으로는 수를 세지만, 읽지는 못하는 상태였다.
키린이 자랐던 벤담 마을에서 몇 안 되는 다른 집 애들이 그랬으니까.
어디서부터 설명할까 하다가 키린은 우선 투란이 물은 것에 대해서부터 대답을 꺼낸다.
“투란, 혹시 바로크네 병신들이라는 소리를 들어 본 적 있어?”
“예? 아, 그거 바로크 왕국 출신 몬스터 로드한테 하는 말이잖아요? 맞다! 그곳 출신 몬스터 로드 중에는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하나씩 없는 사람이 많다고, 그래서 그렇게 부른다고 했어요!”
투란은 자신이 던진 물음에 대해 키린이 제대로 답하지 않은 것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을 기뻐하듯이 대답했다. 키린은 그런 투란을 향해 차분하게 물음에 이어지는 말을 꺼낸다.
“심할 때는 손목이나 발목째로 잘려 나간 경우도 있지. 왜 그런지 들어 본 적은 있니?”
“예? 아뇨, 그건…… 음…… 그냥 그렇다고 하던데…….”
갸웃거리는 투란이었다.
키린이 그 생각하려 드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말한다.
“보이드.”
“응? 아, 보이드! 아까 그게 오러라면서 왜 보이드라고……?”
“투란, 바로크네 병신들이란 말이 나오게 한 몬스터 로드의 비전, 그게 보이드라고.”
“예?”
투란이 갑작스러운 키린의 이야기에 당황한 듯이 눈을 껌벅거렸다.
키린은 그런 투란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보다 담담하게 말을 잇는다.
“몬스터 로드, 문장이 가슴에 새겨진 사람의 팔이나 다리,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자르면…… 음, 그러니까 문장을 성물(聖物) 같은 성질을 가진 것으로 억압한 다음에 강제로 몬스터 로드의 몸 일부를 절단하면, 거기서 보이드가 피어나. 몬스터 엠블럼, 우리가 새긴 문장이 잃어버린 몸의 일부를 기억하지만 채울 수가 없어서 그 자리를 비워 두거든. 그때 그 빈자리로 스며드는 힘, 오러이면서도 텅 빈 듯하고 흐리고 여린 그 힘이 바로 보이드야. 몬스터 엠블럼이 텅 비게 되면 몬스터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도 나타나지.”
“아!”
투란은 멍하니 귀를 기울이다가 깜짝 놀랐다.
키린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기억이 선명해지고, 여리다는 말과 흐리다는 말이 가슴 깊이 푹푹 박히는 듯이 명확하잖은가!
키린이 미소하며 말을 맺는다.
“네가 아까 끌어내 보여 줬던 것…… 보이드 오러, 그렇게도 부르지. 하지만 보통의 오러와는 너무 다른 거, 느껴 봤지? 그래서 그냥 알기 쉽게 보이드라고도 해.”
“그, 그렇군요.”
투란은 겨우 알아들은 낯빛이었지만, 눈빛은 보다 세차게 키린을 향해 뿜어내고 있었다. 과연 키린이니까 이 모든 것을 아는 게 당연하다는 듯도 한 모습이었다.
“이 보이드를 끌어내고 다룰 수 있게 되면…… 투란, 자신이 삼킨 몬스터의 본능을 고스란히 제어할 수가 있어. 그래서 이 보이드는 비전이고, 바로크 왕국의 몬스터 로드 사이에서 대를 이어서 전수되고 있지.”
“그럼 이 보이드는 부적보다 좋은 건가요?”
갸웃하면서 투란이 불쑥 꺼낸 소리였다.
키린의 눈매가 조금 좁혀지면서 덩달아 갸웃하는 말이 나온다.
“부적? 혹시 그, 숲의 사제가 만들어 준다는 그거?”
“그거랑 수신의 사제, 투신의 전당인가에서 만들어 주는 것도요. 음…… 또 다른 신전에서도 비슷하게 만들어 주는 게 있다는데, 아무래도 수신과 투신 그리고 숲의 사제가 만드는 것이 더 좋은 효과를 발휘한대요. 키린은 어떤 부적을 써요?”
투란이 아는 이야기에 좋아라 하면서 설명하는 듯 말했고, 물었다.
이에 키린은 보다 더 갸웃거리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난 부적 없는데?”
이번에는 투란이 어리둥절하고 갸웃거렸다.
“부적이 없다니…… 아, 잃어버렸어요?”
“아니. 난 부적을 써 본 일이 없거든.”
“엥?”
투란이 멍하고 맹한 표정을 지으면서 키린을 바라봤다.
키린은 그런 투란의 눈빛 속에서 ‘설마?’ 하는 의문을, 그 표정에서 ‘날 놀리나?’ 하는 듯이 조금 삐친 분위기를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이런 투란의 태도가 의미하는 바는 키린에게 아주 분명하게 전해졌다.
“투란, 설마 네가 아는 몬스터 로드는 다들 부적을 달고 다니는 거냐?”
“당연히 달고 있어야…… 어, 제 경우에는 부적을 뺏겼지만요. 부적이 없으면 몬스터를…… 삼킨 몬스터가 폭동을 일으키는 것을 막을 수가…… 어라?”
묻는 말에 답하며 아는 대로 떠들던 투란이 돌연 자신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멈췄다. 키린은 가만히 그런 투란을 지켜보았다.
투란은 이제까지 자신이 겪은 일을 더듬으며,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폭동이라 할 만한 상태를 생각해 봤고, 오러 몽거를 삼키다가 꼼짝도 못하게 된 상태에 대해서도 되새겨 보면서 그때에도 자신의 의지에 따르던 굵고 강인했던 덩굴줄기에 대해서 떠올렸다.
“어라?”
투란은 눈을 깜박거리며, 맹한 소리를 한 번 더 냈다.
키린이 그런 투란을 향해 넌지시 한마디 던진다.
“너, 줄곧 부적 없는 채였잖아.”
“어라?”
다시 한 번, 보다 맹하고 멍한 소리를 투란이 내고 말았다.
투란은 키린이 말하기 전에는 미처 눈치채지 못한 것을 겨우 깨닫고 있었다.
애초에 부적이 없는 몬스터 로드는, 투란이 듣기로는 무조건 폭동 상태에 돌입해서 미쳐 날뛰는 꼴이 된다고 했다. 한마디로 부적이 없으면 빠르던 느리던 곧장 몬스터에 대한 제어능력을 잃어서, 광란 상태에 빠져 위험물이 된다고!
하지만 투란은 부적이 없는 채로, 어느 정도 몬스터를 제어하고 있잖은가?
굳이 키린이 대체 어떻게 부적도 없이 버틸 수가, 하고 따질 이유가 없었다.
오러 몽거처럼 전혀 꿈쩍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그 본능에 제멋대로 날뛰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투란 스스로가 그 본능에 적응하면서 폭동 없이 몬스터를 다루고 있었다.
한데 투란이 들은 바에 따르면, 이거 부적 없이는 전혀 되는 게 아니잖던가?
“부적 없이도…… 폭동을 진정시켜서…… 부릴 수 있네요?”
멍한 중얼거림이 투란의 입에서 새 나왔다.
조용히 지켜보는 듯하던 키린이 슬쩍 다시 입을 연다.
“정말 50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흐르긴 흘렀나 보네. 내가 왕국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부적을 쓰는 몬스터 로드는 그렇게 많지 않았거든. 막 세상에 부적에 대한 이야기가 퍼지고 있었는데……. 투란, 네 주변의 몬스터 로드는 모두 부적을 쓴단 말이지?”
“……예. 부적 없는 몬스터 로드라니…… 그런 거는…… 저처럼 뺏긴 경우가 아니면 절대로 잃어버리거나 잊지 않게 잘 때도 걸고 자는 목걸이라든가 귀를 뚫고 달아 놓은 귀걸이, 손가락에서 빼지 않는 반지처럼 꼭 갖고 있는 게 보통이거든요.”
느리게, 혼란스러워하면서 흘러나오는 투란의 말은 키린을 조금 미소 짓게 했다. 신나서 떠들 때랑은 다르게 나름대로 말이 앞뒤가 갖춰진 것이 신기하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그런데 투란의 표정은 그런 정리된 말투와 함께 점점 묘하게 일그러졌다.
“아니, 잠깐만요! 키린이…… 왕자님이 부적을 쓰지 않는다면, 쓴 적도 없다면…… 괴물 왕 구엔, 그분도 안 쓴다는 소리인가요?”
“어, 안 써. 내게 보이드의 비전을 전해 줬는데, 쓸 리가 없지.”
키린은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거려 보이면서 특히나 ‘보이드의 비전’을 강조했다.
하지만 투란의 관심은 그 비전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기당했어! 으아! 나쁜 놈, 사제란 사람이 그렇게 사기를 치다니!”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앉은 채로 휘청대는 투란의 외침이었다.
키린이 이 모습에 뭔가 어리벙벙한 눈길을 던지는데, 무슨 맹수처럼 크악대는 숨결을 토하면서 투란이 두 손으로 누군가의 목을 조르는 시늉을 하며 외침을 잇는다.
“괴물 왕이 쓰는 부적만큼이나 좋은 거라고 했다고요! 값은 싸더라도, 효과는 분명히 괴물 왕의 부적만큼이나 좋다고! 그러면서 엄청 받아 처먹었다고요! 그 돈은…… 내가 대장간에서 몇 년을 도우며 샤오 할배한테 겨우 받은 돈인데! 으아아! 그 망할 놈의 사제! 부적 없는 괴물 왕인데! 괴물 왕의 부적만큼 좋다고 팔다니! 이 사기꾼!”
“그랬냐?”
키린은 분을 토하면서 훨씬 조리 있게 튀어나오는 투란의 말에 어이없어하면서도 웃음기를 실실 흘리면서 추임새를 넣듯이 한마디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약간 광분한 듯이 성질이 난 투란에게는 그런 키린의 모습을 알아차릴 겨를이 없었다.
“가만 안 둘 거야! 이 인간, 다시 만나기만 해 봐! 아니, 꼭 찾아가서 목을 졸라 버리겠어! 투신을 섬긴다면서 그렇게 사기를 치다니! 으아아!”
“흐흠, 투란…… 투신의 사제라면 삶을 전장으로 여기고, 전장에서 적을 속여 이득을 취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할 텐데.”
“헉! 다, 당연하다고요! 사기를 치고 당연한 게 어딨어요! 말도 안 돼!”
“속은 사람이 바보, 하고 히죽거리며 웃을걸.”
“크윽! 그렇게 웃기만 해 봐! 목을 부러뜨리고 말 테니!”
투란은 살살 부추기는 키린보다는, 이 자리에 없는 사제를 향해 으르렁거림을 거침없이 토해 냈다. 빼앗긴 부적에 대한 아쉬움, 그 부적을 얻기 위해 고생했던 모든 것이 전부 거짓말에 뿌리박고 있다는 현실을 부정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미묘하게 키득거리는 웃음을 띤 채로, 키린이 좀 더 보태 말한다.
“만만치 않을 거야, 투란. 다른 신전이 아니고 투신 쪽의 사제라면, 삶이 전장이라는 가르침에 따라서 어지간한 무기는 다 다룰 줄 아는 전투 사제일 테니까. 아, 투신의 사제 중에 전투법이나 무기술을 모르는 경우는 아예 없다고 하지! 그러고 보니 가끔 그 재주로 남의 것을 뺏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는 소문도 있었어.”
“헐! 사기꾼일 뿐 아니라 강도짓도 하는 건가요?”
투란은 뜨악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키린은 그런 투란에게 오히려 되묻는다.
“투신의 가르침이라고, 투란. 투신의 사제가 있는 곳이라면 그런저런 소문이 없을 리가 없는데?”
“어, 있기는 하지만…… 강도짓이라든가, 부적 팔면서 사기 친다는 말은 없었거든요.”
“흠, 과연…… 부적 장사를 할 곳이라면 강도짓은 못 하겠구나. 할 필요가 없어 보이기도 하네.”
중얼거리며 스스로 납득한 듯, 키린의 고개가 끄덕였다.
하지만 투란은 그런 납득보다는 사기당한 자신이 더 억울했다.
“히잉, 나쁜 놈! 사기 치는 주제에 싸움질도 잘하다니.”
“너도 잘하면 되지! 보이드를 다루고 그 비전을 깨치면서 오러를 더 잘 다룰 줄 알게 된다면, 투신의 사제보다 더 세질 수 있어!”
키린이 생글거리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