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3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27)
‘크고 우람한…… 뼈다귀?’
물컹하고 꿀렁거리는 체액 깊은 곳에서 둥실거리는 미노타우루스, 그 심상치 않은 몰골을 바라보던 투란은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뿔, 이마 양쪽에서 비스듬히 돋아나서 구불텅한 형태는 거의 카프리곤의 뿔과 닮았다. 단지 산양의 뿔과 다르게 매끈한 표면과 체액 속에 있는 탓인가 어딘가 불그스름한 빛깔일 뿐이었다.
그 우람한 뿔 아래에 홀쭉한 소머리는 목덜미를 휘감고 가슴으로 쏟아져 내린 듯한 턱수염 같은 긴 털뭉치가 인상적이었다.
어깨와 등골, 손등과 팔뚝, 발목과 허리를 휘감은 털가죽은 대충 만들어서 대충 꿰어 입은 털가죽 의상의 파편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체모(體毛)가 흐느적거리며 체액 속으로 길쭉하니 퍼진 꼴이라 왠지 더 커 보이는 모습…….
적게 잡아도 거의 2미터하고도 6, 70센티미터는 될 듯한 키와 거기에 어울리는 듬직한 골격(骨格), 한데 근육에 감싸 보이지 않아야 할 골격이 가죽이 들러붙은 것처럼 고스란히 드러난 채였다.
홀쭉하고 바싹 말라서 굶어 죽기 직전인 듯한…… 분명히 크고 우람하기는 한데 왜 저런 몰골인가?
먼저 봤던 고치 속의 미노타우루스랑은 너무 다른 상태였다.
―피를 모조리 빼놓은 상태라 저 모양인가 본데?
드라고니아가 불쑥 말했다.
주변에 별다른 위협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이었다.
이제 변괴(變怪)가 터진다면 투란이 구멍 뚫고 들여다보는 황금 고치 안일 뿐이라고 확신한 듯한 말투이기도 했다.
‘피 빼놨다고 근육까지 오그라들어? 말이 되냐?’
툴툴거리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보다 신중하고 진지하게 대답한다.
―아직 느끼지 못했냐? 타우루스 오리지널…… 미노타우루스는 피가 모자라면 근육조직이 녹아서 핏줄 속으로 흘러 들어가. 피와 살이 호환(互換)된다고 해야 하나? 치환(置換)된다는 말이 맞을까? 아무튼 뭘 처먹으면 금방 피가 늘어나고 근섬유가 보충되는 만큼, 모자랄 때는 근육이 빠져서 피가 되어 흘러.
‘미안, 털이 많아도 사람 살갗이라 몬스터란 걸 까먹고 사람처럼 생각해버렸다.’
투란은 반성했다.
삼키기는 했지만 아직 미노타우루스의 특성을, 그 몸이 갖춘 특징을 제대로 파악 못 한 채이기는 했다. 하지만 몬스터에게 상식을 적용하려 한 것은 분명히 성급한 판단이었고 잘못이었다. 제아무리 사람의 살갗을 본 탓에 잠깐 상식에 빠져들었다 해도, 상황이 심각하게 꼬였다면 그 틈에 무슨 일을 당했을 수도 있으니!
드라고니아는 그런 투란의 실수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몇 놈 못 봤지만, 미노타우루스 중에서도 악마 녀석들에게 꽤 특별하게 취급당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특이한 놈이라는 생각이 든다만…… 어쩔 거냐?
탐스럽게 널린 꼴인 몬스터를 어찌할 것이냐 묻고 있었다.
투란은 그 특별한 취급이 경계(警戒)라고 생각했다.
근육을 일부러 소실(消失)시켜놓은 형태, 힘을 발휘하기 위한 기반을 없애놓은 까닭은 미노타우루스를 고치에서 꺼내 체액으로 휘감아 융합하는 과정을 떠올려보면 반항하지 못하도록 수작을 부려놨다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으니까.
‘황금 바람은 이제 치밀어 오르지 않는 거 맞지?’
허공에 매달아 놓은 고치 아래 상황을 한번 더 물으며, 비치는 프로브의 정보를 통해 확인하며 투란은 마력을 확장하며 ‘천칭’에 집중했다.
―야, 왜 갑자기……?
드라고니아는 ‘천칭’이 응축되며 황금매의 문장으로 전이(轉移)하는 투란을 알아차리고 투덜거렸다.
윌 라이트의 순수한 마력이 다시 응축되며 이어진 드라고니아의 말이 투란의 귓속을 통해 청각을 미세하게 자극하며 곧바로 뇌리를 울린다.
―황금매에 굳이 미노타우루스가 필요하냐?
숨을 고르고 살짝 온몸을 찌릿찌릿 울리는 채로 황금매의 마력이 맥동하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이 대답한다.
‘세란드랑 내기했잖아. 어쨌든 여긴 이제 미궁 안은 아닌 거잖아, 그렇지?’
―뭐? 내기?
‘음? 말 안 했나? 아니, 그대로 너한테 알려둔 것 같은데?’
―대강 스쳐 넘기기는 했지. 딱히 정보랄 것도 없는 채로…… 그래서 정말로 세란드가 미궁에서 살아나오면 무슨 큰 선물이라도 할 거라 기대하는 거냐?
조금 어이없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물었다.
투란은 어깨를 으쓱하며, 두 손에 황금매의 발톱 무늬를 피워올리는 채로 꿀렁거리는 고치 안 체액에 담그며 대답한다.
‘뭐, 선물이야 어쨌든…… 죽지 않고 살아나왔으니 자랑해야지! 에헴!’
―야, 그게 무슨……?
‘문장이 둘이니까 양쪽에 그럭저럭 공평하게 배분도 해둬야지. 한쪽에 또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다른 쪽으로 거뜬히 버틸 수 있게 말이야. 한쪽에 문제 생기면 담고 있던 몬스터 에센스를 전부 옮겨 받는 것도 아니니까. 타우루스는 어쨌든 이리저리 쓸모도 많고…… 가만 보면 그랑츄보다 더 힘도 세고 날렵해 보인단 말이지.’
―그랑츄라…… 서식하는 환경과 겪은 현상에 따라 변종이 너무 많기는 하지. 확실히 타우루스가 주변 상황에 영향을 덜 받기는 하는군. 범용성은 분명히 높긴 해.
‘게다가 이 미노타우루스, 털 난 곳만 주의하면 적당히 내 손발 근육이라도 우겨볼 만도 하잖아.’
키득거리는 듯한 입꼬리를 만들면서 투란은 체액을 휘저으며 황금매의 마력을 휘둘러 우람하지만 삐쩍 마른 미노타우루스를 끌어당겼다. 이미 봤던 미노타우루스와 비교하면 확실히 강대(强大)한 느낌이 풀풀 휘날리는 것이 마치 족장이나 왕족의 분위기가 은근히 풍겨나오는 듯했다.
‘이놈, 눈알이 왜 이래?’
뿌옇게 물들어 거의 눈동자가 없는 듯했다.
소머리와 사람의 몸뚱이란 특징이 분명한 대신에 미노타우루스는 몬스터답지 않게 나름대로 눈동자가 제대로 박혀 있었잖은가. 특이하다는 것을 고려해도 이모저모로 이상한 미노타우루스인 셈이었다. 다른 타루우스 녀석들도 경계가 흐릿할지언정 눈동자는 멀뚱거리며 거기 있구나 할 정도는 돼 보였다.
―새삼스럽게 뭘 따져? 이제껏 고르곤 아이가 아닌 타우루스 눈알 놓고 아무 생각 없었잖아.
‘뭐, 그야 그렇지.’
마력을 통한 대화를 하는 채로 투란은 뿔을 잡아 체액 안에서 적당히 그 머리통을 끌어당기면서 경계했다. 체액에서 벗어나자마자 미쳐 날뛰는 경우를 대비한 것인데, 아무래도 너무 말라비틀어진 탓인지 아니면 또 다른 뭔가가 적용되어 있는지 콧김도 흔적도 내지 못하는 미노타우루스였다.
그 몰골을 확인하며 투란이 바로 두 손으로 미노타우루스의 두 눈알을 푹 찔렀다.
느닷없이, 갑작스럽게 뿔을 휙 당겨 날름 머릿골까지 파고들겠다는 듯이 찌른 탓인가 미노타우루스의 목 아래로 기묘한 경련이 퍼져나갔다. 그 경련은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이지 못하는 처지이나 갑자기 덮쳐온 눈알 깨지는 고통에 몸부림이라도 치겠다는 듯한 낌새를 담고 있었다.
―확실히 제대로 제압해뒀군. 아주 정교해.
경련을 통해 뭔가 알아낸 듯,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투란은 그 이야기를 캐묻지 않고 두 손에 더욱 세찬 황금매의 마력을, 몬스터 로드의 마력을 불어넣으며 움켜쥔 것을 가슴에 문질렀고…… 금빛 광채를 머금은 손을 다시 미노타우루스의 눈구멍에 밀어 넣었다.
순간적으로 미노타우루스의 코에서 가늘게 숨을 쉬려는 듯한 움찔거림이 드러났다.
금빛이 미노타우루스의 머리에서, 뿔과 털가닥 사이에서 일렁이며 번져나가기 시작했고, 이는 마치 금빛 핏줄이 퍼져나가는 듯했다.
황금의 광채 속에서 고치 안의 체액이 미묘하게 꿀렁거렸고, 슬금슬금 자리를 찾는 것처럼 미노타우루스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때문에 미노타우루스의 바싹 마른 몸이 서서히 부풀어가는데, 번져간 금빛이 이에 호응하며 더욱 힘을 얻었다는 듯이 짙어지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미노타우루스의 뿔에서 손발 끝자락까지 금빛이 물들여졌고, 투명한 일렁임과 함께 으스러지기 시작했다.
―응? 뿔까지? 손톱 발톱에다가 뼛조각 하나 안 남는 거냐?
드라고니아가 이제까지와 완연히 다른 완전한 해체상태를 드러내는 미노타우루스에 대해 놀랐다.
투란도 잠깐 움찔했다.
하지만 투란은 곧 황금매의 문장, 그 풍경에 마음을 기울였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격돌을 지켜봐야 했다.
‘으아?’
* * *
미노타우루스, 우람한 근육으로 몸을 감싸며 본래의 형색을 회복한 몬스터는 문장 속에서 전해오는 압박에 거칠게 반항하는 포효를 터뜨렸다.
황금매의 풍경, 그 옥좌의 앞에 도도히 머물고 있는 하피 여왕…… 로드 오브 몬스터가 이에 사나운 눈빛을 흘려냈고 그 휘하에 든 몬스터의 형상들이 일제히 미노타우루스를 노려봤다.
붉은 오우거, 마울 트롤에서 하피, 사이렌까지 아우르는 거센 몬스터 떼의 압박에도 미노타우루스는 격렬한 태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하피 여왕이 곧 어깨를 펴고 보다 도도하게 턱을 치켜올리며 그 머리 위에 있는 창공(蒼空)의 위세(威勢)를 빌리는 순간, 미노타우루스의 금빛으로 물든 형상이 휘청이다가 바닥에 엎어졌다.
등짝을 누르는 거대한 압력에 오기를 부리며 저항하듯 미노타우루스는 고개를 쳐들고 지지 않겠다는 듯이 하피 여왕을 노려봤지만, 로드 오브 몬스터의 눈길은 한층 더 고고하고 도도하게 미노타우루스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거의 그 역량의 차이가 완연히 드러난다 싶은 상황에서 미노타우루스의 흐릿했던 눈동자가 짙푸른 테를 두른 금색의 형체를 바로 드러냈다. 이는 잠깐 사이에 미노타우루스에게 힘을 주는 듯했지만, 두 팔로 몸을 지탱하며 다시 일어서려는 듯한 버둥거림은 하피 여왕이 쉬잇 하는 입모양을 만드는 순간에 끝났다.
밟힌 다음에 한번 더 사납게 밟힌 몰골로 미노타우루스는 바닥에 납작 엎드린 몰골이 되었고, 그대로 바닥에 깔린 울퉁불퉁한 깔개처럼 움찔거리는 채로 고정돼버렸다.
하피 여왕이 도도하게 날개를 접으며 다시 옥좌를 향해 돌아서는 모습은 상황이 가볍게 끝난 것을 선언하는 듯했다.
* * *
“로드 오브 몬스터에게 까불다가 짓뭉개졌네?”
―무슨 말이냐?
소리까지 내며 중얼거린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물었다.
투란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보다 먼저 미노타우루스의 몸과 융합된 듯이 황금매의 문장 안으로 스며든 체액, 거의 고치 안의 절반가량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며 나머지 절반이 갈 곳 잃은 것처럼 꾸물거리는 것부터 살폈다.
그러고 나서 투란은 황금매의 문장 속에서 자신이 겪었던 기묘한 격돌을 드라고니아에게 심상으로 전하며 물었다.
‘너, 이게 이해가 가냐?’
―꽤 자율적이구만.
‘어? 뭔 소리야?’
―내가 있는 천칭 쪽도 그렇다만, 투란 너의 심상이 이뤄내는 문장의 풍경은 몬스터에게 자율적인 의지를 부여한 것 같다고. 마치…… 또 다른 세상, 너라는 세상 안에 몬스터가 받아들여진 것처럼 말이지.
‘새삼스럽게 뭔 소리야? 그거 말고 로드 오브 몬스터, 거기 저항할 수 있는 몬스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모든 몬스터가 전부 굴복하지는 않지. 그건 당연한 일이잖아. 뭐, 마울 트롤처럼 성질 더럽다는 녀석들까지 굴복했는데 그 비슷한 수준인 미노타우루스가 저항하는 것은 좀 이상하다만…… 그 눈동자, 고르곤 아이 아니었나?
‘음, 비슷했지. 하지만 그거 박히면 변하는 거 아니었냐? 타우루스 오리지널이라고 해서 발가락만 특이한 타우루스로 말이야. 한데 이 안에 있던 녀석은 그냥 미노타우루스라고…… 퍼런 테두리 있는 것도 좀 이상하고 말이야.’
툴툴거리듯 대답하면서 투란은 고치 안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황금 고치 안에 아직 절반 남은 악마종의 체액 속으로 바로 금빛의 발톱무늬를 머금은 손이 담겼다.
세심하게 주변에서 포말, 거품모양을 한 어떤 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며 투란은 악마종의 체액을 모두 금빛으로 물들였고 황금매의 문장으로 삼켰다.
그리고 잠시 후, 투란이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드라고니아에게 심상을 전하며 소리 없이 중얼거린다.
‘진짜 이상하잖아?’
―모조리 미노타우루스의 정수에 융합…… 아니, 이건 흡수라고 해야 하나? 아, 이 고치 안에 있던 것은 이미 악마종과 완전히 융합한 것이라 그런 것은 아닐까? 융합한 걸 왜 여기 처박아 놨는가는 또 모르겠다만…….
‘수수께끼 넘어 의문만 가득이냐. 쳇, 뭐 관심 끊자고. 답이 나올 리도 없고…… 세란드한테 자랑이나 해야지. 자, 그러면…….’
투란은 다시 황금매의 풍경, 몬스터 세란드가 둘러친 우리 앞으로 마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