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3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29)
우드득.
황금 고치가 뜯겼다.
투란은 껍질만 남은 달걀을 반으로 쪼갠 모양이 된 고치를 둘러봤다.
안에 밀어 넣었던 타우루스, 라미아가 남긴 뼈와 가죽의 잔해가 고치 안쪽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뿔이나 뼈 한 조각 남기지 않았던 미노타우루스와는 다르게 뚜렷한 유골을 남긴 셈이었다.
목덜미를 살짝 주먹으로 툭툭 치면서 투란은 조금 낮은 담장처럼 변한 황금 고치의 껍질벽에 기대면서 아래를 봤다. 잔잔해지기는 했지만 황금빛 바람은 언제라도 꿈틀거리며 치솟을 준비가 되었다는 듯, 안개처럼 저 바닥에 엉긴 것처럼 보였다.
‘아직 여전한가 아닌가 봐서는 알 수 없지? 프로브 다시 밀어 넣어보면 알려나?’
―프로브는…… 저기 닿으면 그냥 구성이 파괴된다. 저 저주는 누가 뭐라 하든 말든 일단 신성한 존재를 기반으로 파생된 거니까. 신전의 항마술식(抗魔術式)이 처발린 거나 마찬가지야. 완전히 변화가 끝난 황금이라면 문제없지만 지금은 프로브로 건드리기 어려워.
‘그래…… 그러면 뭐…….’
투란은 도끼를 아래로 떨궜다.
황금 고치의 낮은 벽 너머로 타우루스가 꼭 쥐고 있던 애장품, 양손도끼는 빙빙 돌면서 추락했고 황금빛이 어린 안개 속에 꽂혔다. 그리고 금방 황금빛으로 물들며 본래 몬스터의 배 속에서 흘러나왔던 쇳물에서 생겨났다는 과거를 잊고 지워버린 듯, 황금의 자루와 날을 자랑하는 도끼가 되었다.
“음, 아직 효력이 남아 있네.”
아련하게 울리는 도끼의 메아리 속으로 투란의 목소리가 살짝 끼어들었다.
―그걸 꼭 뭘 던져놓고 알아내야겠냐!
‘보면서 궁리해도 알 수 없다며? 해로울 것도 없는데 처넣어보는 게 확실했잖아.’
으르렁거리는 핀잔에 투란은 당당하게, 하지만 소리 없이 대꾸하며 아래편의 풍경을 조금 더 자세히 둘러봤다.
황금빛 안개가 엉긴 채로 무너진 흙과 돌, 어중간한 바위가 늘어진 바닥…… 이 거대한 구멍은 마치 황금성이 하늘에서 내리꽂히며 뚫린 탓이라고 외치는 듯했다. 그리고 길고 긴 세월이 흘러서 구멍 벽에 동굴이 새로 뚫리고 몬스터가 떼로 자리 잡고, 황금성의 정상은 악마의 황금 고치가 짓눌러 버리고!
‘마이두스 왕, 죽는 거겠지? 아니면 정말로 편히 푹 자버리는 거려나?’
갸웃하면서 투란은 생각하듯 물었다.
드라고니아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궁리해도 답은 알 수 없다는 듯, 결국 한숨처럼 폭넓은 추측을 늘어놓는 드라고니아였다.
―글쎄…… 본인이 쉰다고 했으니, 최소한 죽음에 필적할 정도의 긴 잠이라도 자는 거 아닌가 싶다만. 자신의 성을 그대로 묘비 삼고 무덤 삼아서 말이야. 뭐든 가까이 오는 것은 그대로 황금으로 바꿔버릴 테니 방해도 안 받는 채로…….
‘그렇다면 저 안개 안으로 뭘 담갔다 뺐다 해서 황금을 잔뜩 챙기려 들 수도 있다는 말이네?’
―뭐? 그 무슨…… 네가 하려는 거는 아니고?
어이없어하던 드라고니아는 문득 투란의 말투가 전혀 자신과 상관없다는 듯한 것에 의아한 듯 물었다.
‘내가 왜? 여기 알려지면 이 사람 저 사람 끌고 와서 귀한 황금상 만들어 내다 팔겠다는 미친놈도 있을 수 있다는 거지.’
―어째 너 말하는 게, 비슷하게 미친놈을 본 적이라도 있는 것 같다?
‘음? 아니, 봤다기보다는…… 샤오 마을에 스쳐갔다는 말은 들었지. 뭐라더라, 무슨 귀한 꽃인데 산 사람의 몸에 심어야 싹이 트고 자란다든가? 아무튼 그 꽃이 엄청나게 귀한 거라고 사람 유인해서 땅에 심고 간신히 살아만 있게 해서 거기다 꽃 심어대는 미친년, 미친놈이 있었대. 몬스터가 툭툭 튀어나오는 곳에 안전한 농장을 만든답시고 이상한 짓 많이 하기도 했고…… 결국 추격해온 토벌대한테 박살 나기는 했지만 말이지. 너, 뭐 아는 거야?’
소리 없이 이야기하던 투란은 문득 드라고니아가 불편해하는 낌새를 느꼈고, 그 까닭을 물었다.
―벨드라고람, 살아 있는 생명체에 기생하는 마수 꽃이다. 아슬아슬하게 몬스터의 영역까지는 넘어가지 않는다만, 거의 몬스터나 다름없는 꽃 모양의 마수지. 그 꽃봉오리를 가공하면 연금술이나 마법에 상당히 귀중한 촉매나 재료를 얻을 수 있어.
‘생명체라면, 굳이 사람을 쓰지 않아도 되는 거란 말이야?’
가만히 듣다가 투란이 불쑥 물었다.
가끔 어딘가 미친 것처럼 이상해 보이는 연금술사가 조그마한 새장 안에 뭔가 잔뜩 돋아나는 병든 쥐나 새를 담고 다니는 경우가 있었다. 그 쥐나 새를 돌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몸에서 자라난 곰팡이인가 버섯인가를 채취할 목적으로.
―벨드라고람은 기생하는 대상에 따라 그 속성이나 품질이 격변하지. 사람의 몸에서 키운 벨드라고람은 거의 최상품이고 마지막 한 모금의 숨결만 남은 자도 다시 살려낼 정도의 강력한 약물을 제조해내는 것조차 쉬운 일로 만든다. 한때…… 드라코눔에 찾아왔던 춤추는 산맥의 상인이 대량의 벨드라고람이 자라는 기괴한 계곡을 찾아냈다면서 거래한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사람을 잡아 가두고 모판 삼아 키운 거였지. 춤추는 산맥에서 거래하려 들다가는 그 악랄한 출처가 들통날까 봐 드라코눔까지 먼 길을 와서 팔려고 한 거였다.
‘그거 알 때까지 꽤 거래했었구나?’
―그래, 거의 이십여 년을 거래했다더군. 춤추는 산맥의 환경이 워낙 기괴한 곳이 많으니까, 그러려니 하고 말이야.
‘어쨌든 밝혀냈네? 그래서 바로 거래를 끊었어?’
―바로 바로크 왕국에 통보했고, 바로크 왕국에서 처리했다고 하더군. 그 과정에서 벨드라고람은 상당량 확보했다고 들었어. 아무튼 출처를 확인하지 않으면 무슨 일에 엮여 공범(共犯)이 될지 모른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고, 그 뒤로는 출처까지 직접 둘러보고 확인한 다음에 그런 거래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새로 생겼어.
‘대단하네, 너네…….’
―대단히 심한 욕을 많이 먹은 일이었어! 상황을 정리한 바로크 왕국에서 지독하게 드라코눔을 탓하는 사절까지 정식으로 보냈다더군. 벨드라고람이 어디서 꽃을 피워야 그런 효과가 발생하는지 뻔히 알면서 이십여 년간 모른 척했다고 말이지.
‘에? 그랬냐.’
쓴웃음이 투란의 입가에 맴돌았다.
아마 드라코눔에서도 거래 전에 나름대로 열심히 조사는 했을 터였다.
하지만 춤추는 산맥의 사기꾼은 한 수 위였을 것이다.
언제나 몬스터가 와글거리는 탓에 상식을 따로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곳.
그런 곳에 상상도 못 한 기괴한 계곡이 생겼다고 하면, 거기서 아주 귀한 것이 나온다 하면 누가 혹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발 디딜 수 없는, 날아서 지나가며 내려다볼 수도 없는 곳에 그런 계곡이 있다고 사기 친 것이기는 했지만 거래 전에 춤추는 산맥의 어느 왕국에든 간에 물어 확인만 했어도 이십여 년 동안의 참상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한 십 년 동안 욕했다는 기록이 선명하게 남아 있지.
‘사절이 십 년 동안 머물면서 계속 욕을 했다고?’
―아니, 해마다 사절을 보내서 비꼬고 욕했다고.
‘바로크의 병신들이라더니, 딱 그 꼴이구만.’
투란은 몬스터 헌터 사이에서 악명 놓은 바로크 왕국의 소문을 떠올리며 한번 더 짙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뭐든 엮여서 심사가 꼬인 일이 생기면 두고두고 으르렁거린다는 바로크 왕국 사람들…… 설마 저 멀리 드라코눔까지 왕국이 직접 나서서 그럴 줄이야!
툭, 툭.
황금 고치 아래를 보던 투란은 문득 저 위에서 돌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딱히 뭐가 움직인 것 같지는 않았고 그저 약한 부분이 저절로 무너진 모양이었다. 그 부스러기가 저 아래로 굴러가며 황금 안개로 빠져드는 것을 가만히 내려다보니, 투박한 돌 부스러기가 반짝이는 황금 부스러기로 변하고 있었다.
“흐흠, 임금님은 저기서 지쳐서 죽은 듯이 자겠다는 생각이겠지?”
―왜?
여태 확인한 일을 새삼 입에 담아 소리 내는 투란이었기에 드라고니아가 의아함을 드러냈다.
“성은 어쨌든 튼튼하고…… 꼭대기 좀 떨어져 나간 꼴이라도 안이 다 망가질 정도까지 흘러들지도 않겠고…….”
―야, 뭐가 흘러들어?
계속해서 투란이 중얼거리는 말은 드라고니아에게 묘한 짜증을 끌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끝에 투란이 끌어모으는 마력, 마력이 엮이면서 자아내는 마법은 드라고니아의 그 짜증을 홀랑 날려버리고 깜짝 놀라게 했다.
―쇼크 블래스터! 뭘 무너뜨리려고!
앞을 가로막은 것이 바위벽일 경우, 통째로 날려버리고 길을 열라는 목적으로 전해진 마법이었다. 투란과 시알라 남매에게, 저 깊은 산맥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라고 오라버니이자 큰 형의 마음가짐을 간직했던 인간으로서의 세란드가 그리 전한 충격과 파괴의 마법이 저 아래의 몇 곳을 겨냥해서 터져나갈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그냥 좀 덮어두려는 것뿐이야. 황금성이 아니라…… 적당한 황금 무더기가 이 구멍 아래에 보이게…… 황금을 귀하게 여기는 누가 와서 보더라도 황금성은 보이지 않게 말이야.’
조용히 두 손으로 겨냥한 곳을 향해 격렬한 마법의 충격파가 뿜어져 나갔다.
허공이 가혹한 비명을 지르는 듯 처절한 음향이 퍼졌고, 황금성의 정상부 주변을 감싼 벽들이 금이 가며 무너졌다.
황금빛 안개 속으로 돌무더기가, 바윗덩어리가 거칠게 파고들었다.
소박한 암석류가 순식간에 황금빛 안개와 엮이면서 황금으로 변했다.
그야말로 황금을 탐하는 자가 알게 된다면 이곳을 황금이 샘솟는 곳이라 칭송하며 맨몸으로 뛰어들고 싶어 할 듯한 광경이었다.
투란은 황금 고치 안에 기댄 채로 내려다보며 감탄했다.
“정말 대단해. 메듀시아도 눈빛으로 돌이 아니라 황금을 만들면 참 좋았을 텐데.”
―야! 끔찍한 소리 하지 마!
드라고니아는 몸서리치듯이 으르렁거렸다.
키득거리면서도 투란은 아래편의 변화를 가만히 지켜봤다.
황금빛 안개는 원래 그리 두껍고 넓게 펼쳐져 있지 않았고, 그 위로 무너진 돌과 바위의 잔해는 완전히 안개 속을 꽉 채우고 메워버리고 있었다. 그 결과 황금 무더기가 생겨났지만, 그 무더기 위로 먼지와 티끌이 채워지며 서서히 황금의 자취가 감춰지는 중이었다.
“역시…… 범위가 정해져 있었네. 효과가 계속되는가는 확인할 수 있겠어?”
―기다려봐.
투란의 말에 드라고니아가 서서히 사라져가는 황금빛의 안쪽으로 프로브를 밀어 넣으며 정교한 탐색을 시도하려 했다.
그 결과는 투란도 금방 알 수 있었다.
‘망가졌네.’
―한정적인 범위지만 효과는 지속적이군. 파고들어 가지 않으면 안전하겠지만, 저 속으로 기어드는 것은 역시 무리다.
투란이 슬쩍 느낀 대로 프로브는 파괴되었다.
그러나 그 파괴되는 과정을 관찰하며 드라고니아가 말하고 있었다.
황금빛 바람결이 남긴 안개, 그 안에는 여전히 황금으로 대상을 변화시키는 신비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다만 확산되지 않은 채로 웅크린 채일 뿐이었다. 다른 이단의 힘이 스며들려 하면 부숴 버리면서.
투란은 고개를 끄덕이고 담담하게 말했다.
“됐어. 이 정도면 임금님도 마음에 들 거야. 폐허가 된 도시 안에 황금성을 숨겨놓은 셈이잖아. 어쩌면 그러려고 여기 황금성을 저리 꽂아둔 것일 수도 있고. 이제 내가 나가서 입만 다물면…… 폐허 속에 황금성이란 고대의 유적이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모르겠지.”
―그렇군, 그래서 입 다물 거냐?
불쑥 캐묻는 드라고니아였고, 투란은 잠깐 눈살을 찌푸렸지만 바로 대답은 못 했다.
뭔가 기묘한 아쉬움, 안타까움…… 마이두스 왕을 향한 그런 감성보다 더 짙게 아까 던져넣어 완성된 황금 도끼가 탐나고 있으니!
“내 황금 도끼가 묻혀 있다는 말 정도는 괜찮겠지. 뭐, 임금님도 손목 내주는 대신에 저걸로 만족하라고 저런 수작 부린 것 아니겠어?”
왠지 마음껏 편리하게 생각한다는 기분이었지만, 투란은 되는대로 툴툴거려봤다.
드라고니아는 피식 웃었고, 말머리를 돌린다.
―그럼, 이제 나갈 셈이냐? 이 대공동의 동굴 미로에서 몬스터 사냥은 하지 않을 거야? 포식자의 배 속은 그럭저럭 채워진 거야?
“대공동에 동굴 미로라…… 여긴 아껴두자고. 어차피 사람 찾는 곳도 아니고…… 나중에 몰래 쉴 곳으로 남겨두지 뭐. 황금 고치도 절반 정도 챙겼으니까. 이 정도로 해두고…… 야, 그런데 하늘 보이는 거 아니었냐? 지금 그냥 내 눈이 어두운 곳을 팍팍 뚫고 보는 중이었나?”
위로 눈길을 돌리며 대공동(大空洞)이니 동굴 미로(迷路)이니 하는 말과 어울리는 풍경을 다시 둘러보다가 투란이 새삼 깨달았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대공동 전체가 조금 기울어진 탓이다. 시간도 밤이니까, 햇살이 억지로 밀고 들어올 때는 아니지. 어쨌든…… 올라가면 나갈 구멍이 보일 거야. 이 황금 고치 남은 반 토막도 갖고 올라갈 거냐?
‘음? 아니, 두고 간다니까. 여긴…… 둥지처럼 생겼잖아, 둥지로 남겨둬야지.’
문장으로 삼키고 남은 몬스터의 잔해조차 그대로 놔둔 채로 투란은 정령수 에어로를 불러내 몸을 감싸 안도록 했다.
부드러운 바람결이 투란의 몸을 휘감았고, 보이지 않는 날개가 되어 대공동의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오르게 했다.
잊힌 황금성은 여전히 잊힌 채로 옅은 황금 무더기 아래 감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