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3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30)
‘꽤 멀어졌네?’
메듀시아가 석화(石化)해버린 기사단이 늘어선 미궁의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지상으로 나오자마자 조금 높은 곳을 찾아 올라섰지만, 보이는 것은 미궁 최하층에서 봤던 투기장과 비슷하면서도 목적이 완연히 다른 연무장(演武場), 연무장을 감싼 관중석처럼 보이면서도 내부에 여러 가지 시설을 갖춘 특이한 병영(兵營)이었다.
황금성이 내리꽂히면서 연무장의 한복판을 찢어발기고 병영의 내부가 드러나도록 파괴한 탓에 반쯤 잔해만 남은 풍경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이곳이 어떤 역할을 위해 지어졌는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몬스터 헌터나 몬스터 로드가 채용될 때 자신들의 다양한 기량을 가장 먼저 선보이는 곳이었고, 샤오 마을에서도 비슷한 목적을 위해 흉내 내서 마련해둔 넓은 마당이 있었으니까. 진짜 연무장에 비교하면 너무 초라하다고 투덜거리던 작자들 덕분에 투란은 늘 상상했었고 알드바인과 페브라에서도 스쳐가는 와중에 살짝 눈여겨보기도 했었다.
덕분에 샤오콴 마을의 마당이 진짜 연무장에 비교하면, 그중에서 꽤 작은 편이라던 곳보다도 더 작다는 것에 쓴웃음도 지었지만…… 이렇게 거대하면서도 파괴된 흔적만 남은 연무장은 처음이었다.
―함몰로 인해 폐허가 되면서 구멍 입구가 많이 좁아졌군. 미궁의 정상적인 입구까지는 2, 3킬로 정도? 그 정도 멀어진 모양이다만…… 무슨 감상이냐? 연무장 따위에 딱히 관심 둔 적도 없었잖아?
드라고니아가 현재 위치를 가늠하다가 기억을 더듬으며 살짝 묘한 기분을 드러내는 투란에게 의아해하며 물었다.
투란도 자신의 기분에 어이없어하면서 대답한다.
‘큰 관심은 없었는데…… 이렇게 우렁차게 깨부순 꼴을 보니…… 만약 황금성이 떨어져 내릴 때 여기서 병사라든가 기사라든가, 와글거리며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으려나 하는 생각이 나서…….’
―다 피했겠지. 번쩍거리는 성채가 뚝 떨어지는데 구경만 하고 있었겠어? 그런 이상한 생각은 저리 치우고…… 뭐 느끼는 것 없냐? 정령수가 다들 팔딱거리는 것은 모르겠어?
‘얘들 그냥 오랜만에 풀어놔서 좋아 그러는 거 아니었어?’
조금 뚱하게, 투란은 한 박자 늦게 말했다.
휘드라곤은 자연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태어난 정령수, 사대속성의 정령수는 드라코눔의 비전이라는 마법을 통해 투란의 마력을 기반으로 조성(造成), 가공(加工)한 존재였다. 어찌 되었든 다른 부분이 많은 만큼 같은 부분도 많은데, 풀어놓으면 자연스럽게 주변을 헤집으며 맴돌고 장난치려는 것이 딱 갓 난 짐승이나 마찬가지란 점은 공통적이었다.
그런 녀석들을 역병의 수해에서는 잔뜩 키워놓을 생각으로 대충 풀어놓고 지냈지만 그 뒤로는 조심스럽게 부리면서 가능한 숨기고 감춘 채로 지내왔다.
하지만 이 폐허의 도시, 고대의 유적에서야 누가 보겠는가?
때문에 달빛조차 흐릿한 밤을 핑계 삼아 적당히 풀어놓고 프로브랑 함께 주변 경계를 시켰다. 그랬더니 왠지 와글와글하는 분위기를 띠는 것이 역병의 수해 때처럼 들뜬 기척을 잔뜩 풍기고 있었다.
모처럼이니 어느 정도 그럴 수도 있으려니 했는데, 드라고니아는 정령수들이 아직 어린 자아로 인해 유치하게 날뛰는 것이 아니라 짚는 셈.
어리긴 하지만 지금은 그런 장난을 치는 게 아니야. 이 폐허 속에서 과거의 잔재를 감지하고 있는 거다.
‘잔재?’
―여긴 고대 왕국의 도시였다고! 그것도 육 왕국의 하나였던 에아본, 이제는 브로큰 킹덤이라 불리며 갈가리 찢어진, 바로 그 깨진 왕국의 대도시였다. 왕가의 방계혈족이 모여서 대소환술을 완성한다고 하던 바로 그 도시가 여기야.
‘뭔 이야기야? 갑자기…….’
뭔가 힘주고 열의를 가득 품은 채 떠드는 드라고니아였기에 투란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느닷없이 이게 무슨 열변이란 말인가?
―끄응! 이 상식 없는 녀석! 미궁 안에서 만났던 환마! 그 녀석들을 벌써 잊었냐? 대소환술은 그런 녀석들을 불러내는 마법이고, 에아본 왕국의 방계혈족은 신격(神格)을 품은 존재까지 소환 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엄청난 수준에 도달할 정도로 대소환술을 완성했어. 마이두스 왕이 대체 왜 다른 세상에서 이 세상에 와 있다고 생각한 거냐? 게다가 방계라 해도 일단 에아본 왕가의 혈족이기에 정령술은 기본으로 갖추고 있는 자들이었지. 이 도시는 그 정령술의 근원이 되어 주는 정원…… 정령의 정원을 모방하면서도 독자적인 방식으로 소환술과 융합하는 시도를 하던 별궁(別宮), 정령의 별궁까지 완성했다는 전설을 흘린 곳이란 말이다.
‘그딴 거 내가 어떻게 알아! 넌 갑자기 왜 그런 전설에 혹한 미친놈처럼 꽥꽥대는 건데?’
사나운 드라고니아의 말투에 투란도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강한 말대꾸에 드라고니아가 흠칫하는 것을 투란은 바로 느꼈다.
‘뭔데, 뭘 알아냈기에 그러는 건데? 숨기지 말고 자백해!’
나름 곱게 꾸미기는 했지만, 도둑놈 붙잡아놓고 훔치지 않은 것까지 내놓으라 강요하는 말투였다.
드라고니아가 쓴웃음이 입가로 새는 듯한 낌새를 잠깐 풍기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강도질하기 전에 들킨 탓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지나가는 척하는 시늉을 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꺼낸다.
―메듀시아의 미궁에 온통 정신이 팔린 채로 온 탓에 제대로 주의하지 못했다만, 이곳이 거대한 도시의 폐허, 고대의 유적이란 것은 너도 충분히 느끼고 있지? 황금성이나 미궁을 제외하고도 말이야. 달빛도 흐린 밤이기는 하지만 이 폐허뿐인 유적 곳곳에 이런저런 몬스터가 무리 짓고 있는 것도 느끼겠지만, 정령수를 자극하는 힘도 충분히 자각할 수 있잖아. 그렇지? 그래, 홀시딘이 네 황금을 쏟아부어 만든 정령의 궁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그 느낌…… 그게 원래 이 도시의 명물(名物)이었다는 별궁의 기척이다.
‘그니까, 그 별궁이 뭔데? 정령의 궁전은 아닌 거잖아?’
―궁전은 아니지만, 궁전과 비슷한 마법의…… 신전과도 닮은 아티팩트라고도 할 수 있는 마법의 영역이다. 에아본 왕국이 한때 사대속성의 정령, 그 왕을 모두 얻었다는 전설도 바로 그 별궁에서 시작된 전설이고 말이야.
‘그런 전설 못 들어봤습니다만?’
―에아본 왕국의 정령술은 잊힌 고대 마법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이제는 드라코눔의 경계 안에서나 정령술이 활용된다는 얘기가 상식처럼 돼버린 시대니까.
‘헤에, 그러니까 너네는 여전히 그 고대 마법을 쓴다? 아, 그리고 내가 배운 정령수…… 스피릿 아티팩트도 인간들 사이에서는 홀랑 잊힌 고대 마법이란 이야기야?’
―아니야. 드라코눔의 정령술은 고대 왕국 에아본의 정령술과 전혀 다른 방식이다. 심하게 말하면 아예 다른 계통이라 할 지경이지.
벅벅, 투란은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주변에 부서져 나간 담장에 걸터앉았다.
흐린 밤, 희미한 달빛 사이로 폐허의 뒤죽박죽인 풍경이 멀리서 울려오는 메아리를 전해주면서 어둠이 깊어진 시간이지만 치열한 투쟁이 지속되는 곳이라고 으스대는 듯했다.
가까운 곳에는 몬스터라든가, 그 몬스터와 싸울 수 있는 흉악함을 간직한 마수의 낌새는 전혀 없기는 했다. 하지만 조금만 멀리 가려 한다면 바로 몬스터를 만나거나 흉악한 마수, 동물이든 식물이든 어떤 형태를 했든 간에 몬스터조차 피해가려 할 듯한 녀석들이 바로 튀어나올 분위기가 짙었다.
그런 음울하고 흉험한 곳, 그 한복판에 보다 더 암울하고 섬뜩한 구멍 속에서 튀어나와 앉은 채로 당장의 일 따위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고대의 전설을 놓고 심상 풍경 속에 자리 잡은 망령 같은 드라고니아랑 떠들고 있다니…….
투란에게는 이 상황 자체가 좀 맹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하아, 그래서 뭘 어쩌라고?’
말하는 낌새로 대강 드라고니아가 원하는 바를 짐작은 했지만, 투란은 시침 떼고 몰라라 하는 태도로 묻고 있었다.
―어쩌긴 뭘 어째! 여기까지 와서 별궁의 단서를 찾았다면 당연히 가봐야지! 별궁이 멋대로 날뛰다가 무슨 기괴한 놈이 풀려날…….
‘잠깐! 날뛰다니? 별궁이라며? 그거 성이나 궁전 같은 거 아니었냐? 그게 어떻게 날뛰냐?’
―별궁은 움직이지 않아. 하지만 거기 걸린 마법은 시간을 주면 저절로 자연의 힘을 흡수해서 정령을 낳는다. 이 폐허 속에서 아무런 통제 없이 태어난 정령이 무슨 속성을 띠고 어떤 형태로 변이할지 누가 알아? 그러니 그냥 둬서도 안 돼.
드라고니아의 말은 은근히 몬스터 로드의 의무를 강조하고 있었다.
투란은 눈을 두어 번 깜박이면서 부드럽게 주변을 휘감는 에어로, 테라트가 폐허의 땅을 헤집는 사이에 밤이슬 사이를 누비며 경주하는 듯한 휘드라곤과 아쿠아의 작은 형체, 어둠 속에서 부싯돌처럼 간간이 불티를 튕기면서 얌전한 척하며 다가오는 것은 그대로 불태워버릴 궁리를 하는 파이로를 확인했다.
정령수는 분명히 이 유적을 흐르는 기묘한 기척에 흥미로워하기는 했지만, 투란의 허락 없이는 그게 뭔가 확인하기 위한 움직임 따위는 전혀 드러낼 낌새가 없었다. 드라고니아도 들뜬 듯이 떠들고 있지만 프로브를 멀리 보내서 뭘 찾을 시늉조차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결정하는 일은 투란의 몫이라는 셈.
조금 목이 뻐근한 기분이 투란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달빛을 가리는 구름 탓에 밤은 더욱 희미한 느낌이 짙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오래 생각하지 않고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묻는다.
소리 없이, 이 폐허의 위험을 고려하는 척하면서.
‘도감에도 없는 이야기잖아. 미궁에 들어서기 전에는 아무것도 감지 된 것이 없기도 했잖아. 정령의 감각은 그때도 적당히 섞어 주변을 탐지했다고. 그러니까…… 그 별궁이란 거, 정말 갑자기 나타난 건데…… 수상하지 않아? 미궁에 들어갔다 나온 다음에 갑자기 그런 낌새를 느낀다는 거, 너무 이상하잖아?’
―수상하고 이상하기야 하지. 정령의 별궁이라든가 정령의 궁전은 드라코눔에서 우리 일족이 그 존재를 알자마자 찾으려 했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정령에 간섭하기 전에 원래 이 세상에서 정령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이루고 있나를 알려고 말이야. 그 시절에는 아직 우리 일족도 완전히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으니, 더욱 절박하게 세상의 지식을 얻으려 했었지. 정령을 이용한다면 섭리가 인정하는 자격을 획득하기 훨씬 쉬워질 테니까. 하지만 끝내 정령의 궁전도, 별궁도 찾아내지 못했다. 윌 라이트, 의지를 기반으로 한 마력으로 원래 우리가 알던 지식을 바탕으로 세계를 탐색하며 새롭게 정령과의 관계를 형성해야 했지.
‘야, 그건 여기 별궁이란 게 있으면 너네가 먼저 찾아냈을 거란 말이잖아? 한데 여태 못 찾다가 지금 그게 툭 튀어나왔다고? 위험한 냄새가 아주 짙구만!’
―그게 다 너 때문일 수가 있지.
‘헐? 나한테 누명을!’
환마가 수호하는 영역에 손을 댔고, 메듀시아의 감금을 해체했잖아. 게다가 미궁 최하층도 들쑤셔놨고, 황금성의 상태에도 변화를 줬다. 이 폐허 도시에서 유적의 핵심이라 할만한 부분은 몽땅 건드린 셈이지. 정령의 별궁이 거기에 반응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것일 수가 있어. 그러니까, 네가 책임질 일이라고.
억울해하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는 냉정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나하나 짚을 때마다 울컥하고 흠칫하면서 투란은 이를 부정하고 싶었지만, 어째서인가 드라고니아의 말이 옳은 듯해서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휘드라곤부터 시작해서, 아예 근원이 다른 사대의 정령수까지도 살살 간지럽히며 긁어달라는 듯한 묘한 기분을 자극하면서 ‘냄새’가 이끄는 곳으로 가자고 보채는 듯했다. 거기에 별궁인지 뭔지 없다 해도, 투란에게 한번 들러봐야 한다고 거기 뭔가 소중한 것이 있다고 호소하는 듯이.
‘미리 탐색해 볼 수는 없냐?’
―프로브는 정령수의 감각을 빌려 쓸 수는 있지만, 정령수처럼 활동은 못해. 이 기척을 추적해가는 거라면 정령수가 알아낸 것 이상을 당장 프로브가 알아낼 수는 없어. 별궁이 드러났다 해도, 정령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 그 문턱을 넘을 수가 없으니까.
‘그 말은…… 결국 직접 거기 들어가 봐야 한다는 말이냐?’
―그래.
‘가기 싫다.’
―어리광 부리지 말고! 자기가 저지른 짓에 대한 책임을 져라!
‘야, 그거 다 추측이잖아, 진짜 뭣 때문인가는 확실하지도 않잖아!’
투란은 뾰로통한 기분을 잔뜩 담아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소리 없이 투덜거리고 툭탁거리면서도 투란의 의지는 분명히 사대의 정령수에게, 휘드라곤에게 전해졌고 가야 할 곳이 어딘가를 본능적으로 파악해내고 있었다. 그 가는 길에 걸리적거리는 뭔가가 없다는 점에서 그나마 작은 위로를 느낄 수 있는데…….
‘정령의 별궁이라…… 아, 그냥 홀시딘을 불러보면 안 될까?’
―하지 마! 정령의 궁전에서 뭔 짓을 하는가 봤잖아. 별궁의 존재가 진짜라면, 그게 확인되자마자 네 손에 닿지 않게 할걸. 아니, 또 황금을 잔뜩 소모해서 뭔가 저지를 수도 있겠지.
살짝 묻는 말에 나오는 대답이 상당히 사납잖은가.
덕분에 투란은 문득 깨달았다.
드라고니아, 이 녀석이 드라코눔의 아칸으로서 에아본 왕국의 정령술에 대해 정말 많이 알고 싶어 한다는 것.
정령의 별궁을 상아탑의 마법사보다 먼저 탐색하고 싶어 한다는 것!
그리고 이토록 의욕적인…… 탐욕스럽기까지 한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처음 겪는다는 것 또한 분명했다.
‘일단 가보자. 근데 위험하면 너, 제대로 힘 써야 해. 알지?’
―위험은 무슨…….
뭘 믿는지,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경계심에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그리하여 투란은 홀로 유적, 고대 왕국이 남긴 도시의 폐허를 몰래 더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