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3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34)
“왜지?”
투란은 잔뜩 골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가?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뜬금없는 말에 어리둥절했다.
메헤헤헤헤!
뿔 아래로 피를 괄괄 흘리면서 달려온 사티로스가 높이 치켜든 칼로 투란을 내리찍었다.
푹.
소리는 꽤 담백하게 투란의 귓가를 울렸다.
그저 허공에 꽂히는 소리 치고는 질감이 지나칠 정도로 선명한 것이 어처구니없었기에 투란이 눈알을 굴려 보니, 어깨 위에 짙고 검은 안개가 맺힌 위로 사티로스의 칼날이 찍혀 있었다.
―유형화(有形化)한 마력장벽이야. 보통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처럼 맨살 위에 번지는 색채처럼 보일 거다만, 아무래도 지금 네 기분에 맞춰서 아예 칼날이 살갗에 닿지 않도록 배려한 모양인데?
재미있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이 상황을 평가했다.
사티로스가 멈춰버린 칼날을 더 깊이 박아넣겠다는 듯, 칼자루를 두 손으로 꽉 쥐며 더욱 힘을 주며 콧김을 거세게 뿜어냈다.
그 콧김이 고스란히 얼굴에 닿았기에 투란은 썩을 듯한 표정을 지었고, 냅다 주먹을 내질러 사티로스의 볼을 후려쳤다.
퍽.
“왜! 여기! 소대가리가 아닌! 양대가리가 있냐고!”
무엇이 궁금한가를 반쯤 포효하듯 토해해는 투란 앞에서, 볼이 주먹 모양으로 움푹 파이며 눈구멍에서 눈알이 둘 다 튀어나오는 사티로스가 푹 쓰러졌다.
―응? 그게 뭐가 이상해? 아까부터 그걸 따지고 있었냐? 새삼스럽기는…… 이 근처를 주도하는 몬스터야 타우루스나 하미아가 맞기는 하다만, 고블린 팩이라든가 사티로스 팩이 없지는 않았잖아. 늑대 무리도 있고, 짐승인 히엔나 무리도 있고…… 날짐승도 꽤 다양하지. 조금 특이하다면 이 폐허의 유적 도시 안에 들어와서 대놓고 타우루스 쪽에 시비를 건다는 점이겠다만, 사티로스 무리 안에 소서러(Sorcerer)가 있다면 별로 이상하게 여길 일도…… 투란?
상황을 점검하듯 말하던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눈이 번뜩거리는 것을 알아차리고 멈췄다. 뭐가 새삼 투란의 관심을 끌고 있는가?
드라고니아가 먼저 짚은 것은 주변에 흩어진 황금의 파편이었다.
응축된 밀실이 깨지면서 그 소재가 되었던 황금이 모조리 으깨진 채로 주변에 널려 있는 상황이었다. 그 과정에서 멀리 튀어나간 황금 한 조각에 이마빡을 얻어터진 사티로스가 앞뒤 가리지 않고 칼 들고 뛰어왔다가 투란에게 한 대 맞고 죽어버린 것이고. 당장 달려드는 다른 녀석이 없으니 이제 황금 조각들을 모으기 좋은 상황이기는 했다.
투란은 이러한 드라고니아의 추측을 거부했다.
‘사티로스 소서러라는 거, 고블린 위키드랑 비슷한 거잖아! 고블린 위키드에 트릭스터가 있었으니까 사티로스도…….’
―꽤 다르지. 사티로스 소서러는 그래도 나름 체계가 있는 마법을 쓴다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블린 위키드의 괴이한 특성이 발휘되기 힘들어. 아무튼, 그래서 황금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사티로스 소서러를 찾아보려고?
‘먼저 주변 정리부터 해야지. 그러다 보면 황금도 당연히 줍는…… 야, 저건 뭐냐?’
움찔하면서도 투란은 주변에 흩어진 황금의 파편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대꾸하다가 불쑥 묻고 있었다.
―응? 저건…… 제단 뒤 벽에 담겨 있던 거잖아?
정령이 숨겨져 있던 밀실, 그 붕괴 속에서 밖으로 튀어나온 것은 투란만이 아니었다. 빛의 구슬이 놓였던 제단 뒤의 벽감, 그 안에 두엇 담겨 있던 것도 붕괴와 함께 튀어나온 채였다. 감싼 천이 산산조각 나지 않고 그저 찢긴 것이 희한하기도 했지만 안에 담긴 금빛 깃털 뭉치로 보이는 뭔가가 전혀 손상된 부분이 없어 보이는 것이 한층 더 신기했다.
투란은 냉큼 어깨를 한번 돌리고 팔다리를 접었다 폈다 하는 시늉부터 했다. 셰이아의 마력장벽이 처음처럼 견고하게 몸을 감싸지 않고 움직임을 자유롭게 풀어놓은 것을 확인해본 동작이었다. 이제는 무게가 없는 옷,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미세한 간격을 둔 채로 들러붙은 얇은 막처럼 느껴지는 마력장벽이었다. 아까처럼 위험한 폭발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렇게 활동을 방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유지될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다음에 투란은 본격적으로 깃털 뭉치를 집어 들고 남은 천을 벗겨내면서 살피기 시작했는데…….
―어라? 이거 설마―!
꽉꽉 구겨진 뭉치가 살살 풀어지며 적당히 그 형태를 드러내자 드라고니아가 묘하게 흥분한 낌새를 드러내고 있었다.
‘재킷? 백팩? 설마 갑옷은 아닐 테지?’
투란은 그 모양에 대해 몇 가지 추측을 하면서 갸웃해야 했다.
원래 금빛 천을 재단하면서 깃털 무늬를 잔뜩 박아넣은 것인가 아닌가부터 애매했다. 하지만 그 모양이 어깨에 끼우고 몸통에 끼우는 웃옷처럼 보이면서도 등 쪽으로 볼록 튀어나온 깃털 덩어리를 매단 꼴은 옷인지 배낭인지 한층 더 애매한 형태잖은가.
―투란, 아티팩트다. 황금성과 함께 건너온 옴파레온의 걸작(傑作)이라고.
‘어? 걸작? 대단한 거야?’
―입어봐라. 그러면 알 거야.
자세한 설명보다 일단 착용하러 보채는 말은 투란에게 뜻밖이었다.
‘걸쳐보면 아는 거냐?’
의아해하면서도 투란은 일단 웃통을 홀랑 까고 있는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며 엉거주춤하니 두 팔을 꿰어 넣고 불룩한 부분을 등 쪽으로 가게 몸을 끼워 넣었다. 거의 배낭과 하나인 웃옷을 입는 느낌이었다. 부드러운 금빛의 깃털이 매끈하게 몸에 들러붙는 듯한 느낌도 거북하지는 않았다.
‘음?’
그런데 착용이 끝났다 싶은 순간, 어깨와 목 부분이 살짝 조이는 느낌과 함께 투란은 자신의 감각이 깃털 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알아차렸다. 동시에 낯설지 않은 감각이 뒷골을 살살 간지럽혔기에 투란은 반사적으로 잔뜩 웅크린 날개를 펴는 기분으로 등에 힘을 줬다.
뭉쳐 있던 날개가 펼쳐졌다.
금빛의 깃털이 가득 엮인 날개는 금방 투란의 몸을 부양(浮揚)시킬 듯이 파닥거렸다. 날 생각이 없었기에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억지로 날개를 다시 접어 몸에 붙이는 사이, 투란의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놀라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우아앗! 마법이냐!”
―마법이 아니야. 미궁제작자 디달로스, 마이두스 왕이 다스리던 미노스의 전설적인 명공(名工)이 아들 이칼리스를 위해 만들어냈다는 밀랍(蜜蠟)의 날개다.
‘야, 어딜 봐서 이게 밀랍이야?’
후욱, 숨을 들이쉬면서 날개를 다시 등에 똘똘 뭉쳐 접어 넣던 투란이 이 설명에 바로 반박하고 있었다. 숨을 고르느라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강력하게 따지겠다는 의지가 넘쳐나는 이 반박에 드라고니아가 피식거리면서도 쓴웃음을 담은 대답을 한다.
―그야 마이두스 왕이 손을 댔으니까. 과거의 추억이 담긴 아티팩트가 밀랍형태라서 세월에 오래 견딜 수 없을까 걱정한 탓에 작정하고 황금으로 바꿔버린 거지. 그럼에도 이 아티팩트는 원래의 기능을 잃지 않아서 말이 많았다고 하더군. 이 세상에 오면서 아티팩트에 변화가 생긴 탓이라는 둥, 마이두스 왕이 정성을 다해 해체된 것을 다시 조립한 때문이라는 둥…….
‘해체된?’
―디달로스의 밀랍 날개는 원래 내구성(耐久性)이 그리 좋지 못했다. 어린 아들을 위한 장난감을 만들어준다는 생각으로 만든 탓에 말이지. 아들이 성장하면서 그 몸에 맞게 날개도 계속 고쳐 만드는 중이었는데, 아들이 죽었다. 밀랍의 날개가 견딜 수 없는 영역까지 날아들었다가 말이야. 그래서 디달로스는 망가진 날개를 아예 해체해서 자기 공방, 황금성의 공방에 처박아뒀는데 그게 왕과 함께 이 세상으로 건너온 것이지. 마이두스 왕은 그 날개의 부품을 정성껏 어루만져서 다시 조립했고, 그 과정에 이쪽 마법장인들이 어느 정도 개입도 했다더군. 아무튼 미궁제작자 디달로스의 걸작이란 말이야.
‘아, 저기 있다!’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투란이 한곳을 주목했기에 드라고니아는 줄줄 읊어대던 이야기를 잠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투란이 주목한 곳을 확인한 다음, 바로 으르렁거리며 핀잔하는 드라고니아였다.
―기껏 아티팩트에 대해 설명하는데 무슨!
‘저것도 아티팩트 아니야?’
뚝 자르면서 하는 투란의 말은 드라고니아를 멈칫하게 했다.
투란이 낯익으면서도 낯선 날개를 등짝에서 꿈틀꿈틀 파닥파닥하게 하며 둥실둥실하는 괴상한 발걸음으로 다가간 자리, 거기에 찢겼어도 몇 겹으로 쌓인 천에 말린 또 다른 것이 놓여 있었다. 역시 빛의 구슬이 놓였던 제단의 뒤편 벽감에 담겨 있던 물품이었다.
―그럴 수 있겠다만.
마지못해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말을 인정하는 듯한데…….
‘너도 궁금하면서 뭘! 아, 딱 둘은 아니었잖아? 또 뭐 있나 좀 둘러봐달라고.’
투란은 그 호기심을 느꼈다는 듯이 히죽하면서 바로 들어 올려 남은 천을 벗겨내고 있었다. 날개가 튀어나온 배낭보다 더 겹겹이 싸놓은 천이었지만 밀실의 붕괴로 꽤 사납게 찢긴 탓인지, 풀어내는 것보다 억지로 뜯어내는 손짓에 더 잘 흘러내렸다.
그리고 드러난 황금의 갈기가 치렁거리는 사자의 머리통…….
“어머나?”
투란이 생동감 넘치는 사자의 낯짝에 반쯤 장난으로, 반쯤 어이없어 놀란 소리를 내니 드라고니아가 바로 말한다.
―아, 이것도 여기 있었나.
‘이게 뭔데?’
―듣고 싶냐?
‘이보세요?’
아까처럼 신나게 설명하고 있었더니 딴 곳 보던 투란이니까, 이번에는 아예 확인하고 말하겠다는 드라고니아의 태도에 투란이 발끈하는 시늉을 했다. 떠들고 싶으면서 뭘 억지로 참냐고 반쯤 핀잔하는 낌새를 담은 발끈이었고, 드라고니아도 길게 따질 생각 없다는 듯이 바로 말한다.
―영웅을 소환하려 했더니 덜렁 영웅의 소지품이 날아왔다더군. 이게 그 소지품이다.
‘제대로 이야기하시라고요!’
살짝 치켜 올려주는 시늉을 하면서 투란이 한번 더 으르렁거리자, 드라고니아가 피식거리면서 이야기를 잇는다.
―헬라, 벨라, 쥬논 등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여신에게 축복과 저주를 받아 여신의 영광을 증명하기 위해 고난과 역경을 돌파해야 했다는 옴파레온의 영웅이 사투를 벌였다는 괴물 사자의 유품이야. 자신의 발톱 말고는 그 어떤 것으로도 다치거나 찢기지 않는다는 가죽을 지닌 사자였고, 그 영웅은 괴력으로 사자를 목 졸라 죽인 다음에 그 발톱으로 가죽을 벗겨 갑옷 대용으로 입었다는 이야기지.
‘그래, 그런데 왜 머리통뿐이냐? 그놈의 사자는 목 아래는 전부 가죽 벗겨진 생살을 드러내고 다녔다는 거야?’
황금의 사자머리를 이리저리 살피면서 투란이 툴툴거렸다.
드라고니아는 뭔가 어이없다는 듯한 한숨부터 쉬는 시늉을 했다.
―너, 영웅에 대해서는 전혀 궁금하지 않지?
‘딴 세상 영웅이라며? 황금 임금님처럼 이쪽에 불려오지도 않았다며?’
투란은 당당하게 대꾸했다.
여신에 대해서도, 영웅에 대해서도 무심한 태도가 가득했다.
그저 손에 쥔 황금의 사자머리에 대해 궁금할 뿐!
끙하는 소리라도 섞는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말한다.
―에아본 왕국에 황금 사자의 깃발을 지닌 군단이 창설된 까닭이 이것 때문이라 했다. 사자 투구, 마이두스 왕의 손길에 황금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 신비로운 힘을 간직한 사자 머리 형태의 투구라고. 써보면 알 거다.
‘흐흠.’
투란은 황금의 날개를 살짝 폈다 접으면서 고민했다.
입고 벗는 것이 마음대로인 듯한 날개와 이 사자 머리랑은 어딘가 다른 듯했다. 왠지 한번 쓰면…….
―무슨 저주받은 마도구냐! 멀쩡하게 벗을 수 있어! 황금 사자 군단장의 상징물이고 군단장 교체 때마다 계승되던 거야!
‘아, 그래?’
조금 민망한 채로 투란은 떨떠름하니 대꾸했다.
어딘가 심상찮아 보여서 떠올린 생각이었는데, 드라고니아는 아까의 일이 있어서 그런가 좀 심하게 으르렁거리는 듯했다. 그 옛날 그대로 될는지 어떤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었을 텐데!
그래도 투란은 금빛이 반짝이는 사자 투구를 머리에 끼워 넣고 있었다.
디달로스가 아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걸작이 주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이 사자 투구가 과연 황금이 된 채로 여전히 발휘한다는 신비로운 힘이 뭔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 호기심에 따라 사자의 위턱이 투란의 이마에 얹어진 채로 투구의 착용이 끝났다 싶은 순간, 사자의 아래턱이 투란의 턱 아래로 바싹 들러붙었다.
“우켁!”
목젖을 툭 치는 그 느낌에 투란은 바로 꽥꽥하는 시늉을 했다.
이런 투란에게 호응하듯, 저쪽 너머에서 메에엣 하는 산양의 외침이 터졌다.
투란의 머리 위로 맑은 하늘을 무시하겠다는 듯한 벼락 한줄기가 그 형체를 드러냈고, 날벼락이 무슨 뜻인가 알려주겠다는 듯이 내리꽂혔다.
사자 투구를 더듬는 채로 투란은 벼락을 맞아야 했다.
번쩍, 콰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