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3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35)
사티로스 소서러는 틈을 노렸다.
칼 들고 뛰쳐나간 사티로스 전사가 손짓 한 방에 눈알이 튀어나가는 처참한 몰골로 죽어 자빠지는 꼴을 봤으니 당연한 태도였다.
그래서 숨은 채로 멀리서 보고 있자니, 금방 기회가 왔다.
이 폐허 언저리에서 보기 힘든 인간의 모습을 한 괴이한 놈이 갑자기 등에서 날개를 뿜어내고 뒤뚱거린다 싶더니 자기 눈을 가리면서 짐승의 머리통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사티로스 소서러는 바로 몸을 숨겼던 담장 위로 뛰어올랐고, 힘들게 완성한 마법 지팡이를 치켜올리고 벼락을 불렀다. 타우루스도 한 방에 구운 고기로 만들고, 라미아의 긴 몸도 반쯤 굽고 으스러뜨리는 벼락이라면 저 이상한 놈이라도 버틸 수 없다고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확신하면서.
번쩍, 콰앙.
“아, 이 치사한 놈이!”
퍼억!
사티로스 소서러가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말과 함께, 갑자기 그 앞에 나타난 괴상한 놈…… 사자 머리를 목 위에 붙인 놈의 손톱이 사티로스 소서러의 가슴을 꿰뚫었다.
메에…… 엑!
“눈 가린 틈을 노리다니! 비겁하고 치사한 놈!”
담장 아래로 고꾸라지는 사티로스, 누더기를 걸치고 지팡이를 든 꼴이 마법사이지만 거지처럼 보이는 녀석의 뒷덜미를 잡으면서 투란이 투덜거렸다.
―털끝 하나 다친 곳 없으면서 뭔 헛소리야?
‘야, 누가 나 다친 거 따졌어? 이놈의 태도 말이야, 태도!’
―음, 태도라…… 그래, 착한 사티로스였다면 멀리서 벼락으로 한 대 칠게요, 하고 미리 말하고 벼락을 날리는 거냐?
‘에잇, 시꺼!’
이치에 닿는 지적을 외면하면서 투란은 자신의 손, 사자의 발톱이 돋아나서 굵직한 손톱 노릇을 하는 꼴이 된 손을 내려다봤다.
맨손은 아니었다.
사자의 가죽, 모피를 정성껏 다듬어 만든 듯한 장갑…… 쇠가 아닐 뿐이지 거의 건틀릿이나 마찬가지로 손목과 팔뚝으로 이어진 긴 장갑의 형태가 손을 감싸고 있기는 했으니까.
하지만 투란은 손에 뭘 끼고 있다기보다 맨손으로 느끼는 중이었다.
사자 투구, 그저 머리에만 쓸 부분만 남은 듯했던 것.
때문에 사자 가죽이란 말에 목 아래가 생살 그대로이냐고 투란이 비꼬았던 것.
하나 지금은 금빛 사자의 통가죽이 투란의 몸에 그 고고(孤高)한 형체를 새겨넣듯이 드러낸 채였다.
‘희한하네.’
손을 쥐었다 폈다 해보는 투란의 감상은 간단했다.
하지만 사자 투구, 온몸을 덮는 형체를 만들어낸 아티팩트는 간단하게 볼 수 없는 위용을 한층 더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시작은 아래턱에 들러붙은 사자의 아래턱, 목걸이보다는 목줄이 될 듯이 조이는가 싶었던 부분부터였다. 그다음에 치렁하게 늘어진 금빛 갈기가 목덜미로 흘러들었고, 털가닥이 엮이고 조이면서 그 일부가 투란의 살갗을 더듬으며 스며드는가 싶었다. 그 순간에는 투란이 흠칫했지만 실제로 살갗 아래로 스며든 것이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기에 계속 지켜봤다. 그리고 벼락을 쳐 맞는 순간, 엮이고 있던 갈기의 터럭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투란은 깨달았다.
셰이아의 마력장벽, 마력의 가닥을 꼬아 엮는 그 장벽처럼 사자 투구의 갈기는 투란의 몸 안으로 기묘한 힘의 맥동을 전했고 그 힘이 투란의 몸을 거쳐 정제되며 다시 갈기로 돌아갔다. 갈기는 계속 풍성하게 부풀며 늘어났고 내리꽂히는 벼락을 통째로 먹어치우며 성장해서 투란의 살갗에 사자의 가죽을 형성시켰다.
몬스터 로드이기에 투란에게 그 과정은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살점 하나 변한 부분이 없는데, 몸을 드나드는 힘이 완전히 새로운 몸이라고 알려오는 듯했고 실제로 몸의 외형도 변한 상태.
거기에 사자 투구의 눈가에서 흘러내려 간 단단하고 묘한 것이 손가락 끝에 맺히며 돋아난 발톱, 손바닥의 두툼한 살집과 함께 이뤄진 손톱은 부드럽고 둔한 모양과 다르게 사티로스의 가슴팍에 닿자마자 그 살을 찢고 뼈까지 쪼개며 파고들게 했다.
‘어떻게 이렇게 되는 거냐?’
궁리해봐도 알 수 없기에 바로 투란은 물었다.
―몰라.
드라고니아의 대답은 짧았다.
‘엥?’
투란은 어이없었다.
이 정도 아티팩트라면, 명공이 아들 주려고 만든 장난감보다 훨씬 더 주목받고 관찰당하며 연구되었을 것 같은데 모른다니!
키득거리는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부글거리는 투란의 기분에 기름 끼얹겠다는 듯이 말한다.
―영웅 대신에 온 탓인가, 영웅의 힘 일부가 깃들었다는 가설뿐이야. 변화를 일으키지만 동시에 그 변화를 완벽하게 원래대로 되돌리는 신비가 담긴 투구. 어지간한 마법사라면 다들 궁금해할 수밖에 없지만, 밝혀낸 것이 없다. 그리고 에아본 왕국과 함께 사라졌으니 그 뒤로는 막연한 전설과 추측만 남아버렸지.
손발을 내려다보면서, 마치 몬스터 로드가 사자 형태의 마물(魔物)을 삼켜 변해버린 것처럼 묘하게 두껍고 튼튼해진 모양과 살갗 위에 겹쳐 입은 듯이 촘촘하게 감싼 털가죽의 모양을 눈길로 더듬어 느끼면서 투란은 뭐라 할 말을 떠올리려 했지만 한 마디도 떠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가장 쉽고 편한 결론을 내려버린다.
‘마법이 다 그렇지, 뭐.’
―얌마!
‘또 다른 것 있지 않았나? 샅샅이 뒤져보라고. 황금 틈새에 섞여서, 그 벽 안에 있던 게 딱 둘이 아니었단 말이야. 이런 이상한 거 널려 있다가 이딴 괴상한 마법 부리는 사티로스 손에 넘어가 봐, 나중에 큰일 터질지 모른다고.’
시원하게 사자 투구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탓인가, 그다음부터는 매우 조리 있게 상황을 파악하고 결정하는 투란이었다.
그리고 바로 뒷덜미를 잡은 사티로스 소서러를 챙기고 투란이 껑충거리고 뛰며 멀리 튀어나온 황금의 파편과 잔해를 뒤지기 시작하니, 드라고니아도 못마땅한 낌새는 흘릴지언정 다른 말 없이 프로브를 형성하고 활성화시키며 본격적으로 주변을 탐색했다.
잠시 후,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중얼거림을 흘리는 드라고니아였다.
―정말로 또 있었네?
투란은 뒤늦게 사티로스 소서러를 먼저 패 잡은 사티로스 칼잡이 옆에 던져놓고 묻는다.
‘어디?’
―작은 거다, 저 돌 아래까지 튕겨 들어갔네. 황금 조각이랑 같이 끼어 있잖아.
말과 함께 시각에 방향을 비춰줬기에 투란은 바로 무너진 담벼락 아래로 파고든 황금 조각과 그 아래 깔린 작은 천조각을 끄집어냈다. 황금 조각은 주먹만 했지만 천조각은 손바닥 절반도 못 채우는 크기였고, 천 안에 쌓인 것은 그보다 더 작은 것이 분명했다.
‘뭐지? 이렇게 작은 뭔가에 대해 아는 거는?’
―까봐야 알지. 천이 그냥 천이 아니고 외부의 탐색을 막아주는 방호(防護) 처리가 된 거라고. 벗겨보기 전에는 뭔지 모르는 거 이미 알고 있잖아.
‘그야 뭐…….’
손바닥 안에서 이리저리 굴리면서 천을 벗겨내며 투란은 웅얼거렸다.
투란이 황금 밀실 안에 처음 들어섰을 때, 벽감 안에 놓인 천뭉치 속에 뭐가 있는가 전혀 생각하지도 않기는 했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을 쉽게 볼 수 없다는 점을 느끼고는 있었다. 드라고니아는 적극적으로 탐색을 시도했지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것이고.
‘반지?’
천 안에서 나온 것이 생각만큼 작은 것은 당연했지만 폭이 넓은 반지 하나가 달랑 나오니 저절로 갸웃하는 투란이었다.
반지는 중앙에 가로지르는 홈이 파여 있고, 그 홈에 장식을 위한 원판이 크고 작게 둘이 붙어 있는 모양이었다. 원판에 조악하게 새겨진 무늬는 해와 달을 뜻하는 듯한데…….
‘이것도 끼어봐야 하나?’
―기게이아의 반지려나?
‘아는 거냐?’
―확실하지는 않다만…… 어쩌면 네가 갖고 놀기에는 딱 좋은 것일 수도 있지. 일단 손가락에 끼워봐.
투란은 굵어진 손가락을 보다가 혀부터 찼다.
사자 투구 때문에 몸이 부풀어서 미노타우루스의 육중한 근육질이랑 비슷해져 버린 참이었다. 게다가 어지간한 반지는 사자의 손톱 끝에 걸려서 토막 날 듯 보일 지경이니 먼저 투구부터 벗어놔야 할 듯싶었다.
―그냥 끼워. 보통 반지랑 다르니까. 거인이고 소인이고 다 끼울 수 있는 반지라고.
‘소인은 또 뭐야.’
투덜거리면서도 투란은 사자 투구를 벗지 않은 채로 그냥 검지 끝을 반지 안에 밀어 넣어봤다.
반지가 슬쩍 맥동하듯 울리더니 손가락에 가볍게 채워졌다.
반지에 붙은 해와 달 무늬의 조그마한 원판 둘이 홈을 따라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다가 교차해서 한 바퀴 돌고 멈췄다. 해는 손바닥 쪽으로, 달은 손등 쪽으로 자리 잡은 채로.
“흐흠?”
잠깐 눈을 깜박이며 변화를 기다리던 투란이 결국 갸웃하고 말았다.
아무 변화가 없잖은가.
―달을 해 쪽으로 밀어. 홈을 따라 돌 거다.
드라고니아의 말에 따라 투란은 가만히 손가락 끝으로, 손톱이 튀어나오지 않게 자제하며 손등 쪽의 원판을 손바닥 쪽의 원판을 향해 밀었다. 저절로 돌 때랑 다르게 둘은 교차하지 않았고 겹쳐지면서 달칵하는 울림을 투란의 살갗에 선명하게 전해왔다.
금방 시야에 변화가 생겼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 그 중심에는 아무 변화가 없지만 시야의 상하좌우 테두리에 보이는 풍경이 길게 그어진 빛살과 함께 엉킨 것처럼 보였다.
‘뭐야? 내가 보는 풍경에 테두리치고 망가뜨리는 걸로 끝?’
다른 변화가 없기에 투란이 조금 실망해서 중얼거렸다.
―프로브가 널 어떻게 보는가를 확인해봐라.
픽, 새는 웃음이 섞인 소리로 드라고니아가 놀리듯이 말했다.
조금 어리둥절한 채로 투란은 프로브의 감각을 공유했다.
‘어라?’
프로브는 투란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 시각에 투란은 포착되지 않고 있었다.
―인비저빌리티, 불가시(不可視) 현상을 유도하는 마법 반지야. 문제는 이게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건너온 물건이라 이 세상의 마법과는 전혀 다르다는 거지. 몬스터 로드든, 신성력을 불길처럼 뿜어내는 사제든 이 반지의 불가시 현상을 방해하지 못해.
‘아…….’
투란은 감탄했다.
―하지만 방해하는 거는 오직 시각뿐이다. 소리라든가 냄새까지 전부 지워주지는 않아.
‘엥?’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마라.
‘좋다 말았잖아!’
감탄했던 순간을 홀랑 잊은 것처럼 투란이 으르렁거렸다.
키득거리듯이 드라고니아가 말을 잇는다.
―그래도 어느 정도 인지(認知) 장애는 일으켜주니까, 적당히 조심하면서 쓸 수 있어. 귀나 코가 보통보다 뛰어난 대상만 아니라면 말이지.
‘쳇. 아, 그런데 기게이아는 뭔 말이야?’
―반지의 원래 주인……이랄까? 반지의 힘을 최초로 세상에 알린 사람이랄까? 뭐, 마이두스 왕의 세상에서도 그렇게까지 유명하지는 않았달까…….
‘넌 알잖아?’
―그야 당연하지. 황금성과 함께 소환된 존재들, 황금성과 같은 세상에서 온 존재들에 대해서 이모저모로 주의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드라코눔은.
‘뭔 얘기인지 모르겠고, 그래서 지금 내 눈이 잘못된 거라 잘못 보이는 게 아니고 반지 때문에 내가 잘 안 보이게, 아니 그냥 안 보이게 된 상태이고 그 영향으로 내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저렇단 말이지? 그러면…… 반지를 빼야 원래대로 남들 눈에 보이게 되냐? 내 눈도 멀쩡하게 보게 되고?’
반지 낀 손가락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투란이 물었다.
―해를 손등 쪽으로 밀어. 그러면 저절로 분리되면서 제자리를 찾아갈 거고, 마법은 해제될 거다.
‘으흠? 흠…….’
투란은 하나처럼 겹쳐진 해와 달의 원판을 반지 홈에 따라 밀어 손등 쪽으로 옮겼다. 다시 달칵하는 울림이 손가락 살갗에 느껴졌고, 달 무늬 원판은 그 자리에 남은 채로 해무늬 원판이 손바닥 쪽으로 미끄러져 갔다.
시야의 테두리가 다시 멀쩡해진 것을 확인하면서 투란이 묻는다.
‘하루에 몇 번이나 쓸 수 있는 거야?’
메헷, 메에엥!
뒤늦게 소서러의 행방을 찾아왔다는 듯, 사티로스 몇 마리가 삼지창을 움켜쥐고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기게이아의 반지가 특별한 까닭에는 그런 제한이 없다는 것도 포함되지.
‘뭐? 진짜로?’
사티로스와의 거리를 가늠하며 투란은 바로 다시 달무늬 원판을 해무늬 쪽으로 밀어 넣었다.
달칵.
창을 내지르려던 사티로스 몇이 당황하는 것이 바로 투란에게 보였다.
‘오호? 얘네한테도 통한…….’
그중 한두 사티로스가 자신의 눈을 못 믿는다는 듯이 투란이 서 있는 자리로 삼지창을 쑤셔넣고 있었다.
쿡, 쿡.
―바보냐! 뭘 멀뚱거리고 서서 구경해!
안 보이게 되었다고 가만히 서 있다가 창끝에 찔리는 투란을 향해 드라고니아가 버럭 외쳤다. 몸에 상처는 전혀 나지 않았지만, 왠지 마음에 상처가 나는 기분을 어쩔 수가 없는 투란!
“크앙!”
투명한 그대로 괴수처럼 난폭하게 날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