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4)
투란이 조금 미심쩍은 눈길로 키린을 바라봤다.
키린은 투란의 묘한 눈빛에 바로 묻는다.
“왜? 더 세질 자신이 없어?”
“아니, 사제들은…… 그거 갖고 다니잖아요. 그래서 몬스터 로드들이 까불면 바로 묶어서…….”
“그거라니? 그게 뭔데?”
키린의 의아해하는 말에 투란은 잠깐 눈을 깜박이다가 손짓을 하며 설명한다.
“그 밧줄요, 성스러운 뭐……라고 하는 거. 거기 묶이면 몬스터 로드가 힘을 못 쓰는 그거 말이에요. 게다가 투신의 사제라고 싸움까지 잘하면…… 이기기 힘들지 않을까요?”
잠시 듣고 있던 키린이 조금 기묘한 표정을 떠올렸다.
투란이 하는 말은 분명하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투란은 신전에서 오래전부터 사용해 온 것, 원래 마법사를 제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밧줄을 말하고 있었다. 그것이 몬스터 로드에게도 어느 정도 먹히고, 특별히 공을 들여 처리한 성물이라면 확실하게 몬스터 엠블럼을 억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키린이 알기로는 그렇게까지 해서 굳이 몬스터 로드를 제압할 포승을 따로 만드는 경우는 꽤 드물었는데, 투란은 사제라면 당연히 그런 것을 갖고 다닌다고 말한 것이다.
‘과연, 그렇군!’
어느 정도 키린은 짐작할 수가 있었다.
부적을 이용하는 몬스터 로드, 투란이 말하는 분위기로 봐서는 몬스터 로드라면 마치 당연히 갖고 다닐 듯한 부적이 되었다면, 신전에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몬스터 로드에 대항할 성물을 만드는 것도 그리 이상하지는 않은 일이다.
애초에 스스로를 제어하기 힘든 몬스터 로드, 하급과 중급 수준에서는 아예 사람 사는 곳을 피해 다니거나 특정한 지역이 아니면 들어오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중급을 넘어서면 마법에 대한 강한 저항력 혹은 아예 무효화하는 능력을 손에 넣는 몬스터 로드에게는 성물도 마찬가지로 먹히지 않았다.
때문에 신전에서 굳이 잘 보이지도 않는 하급, 중급 언저리의 몬스터 로드를 염두에 두고 성물을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고, 그 이상의 몬스터 로드에게는 성물을 써먹을 수가 없다!
“투란, 그 밧줄이 오러 윌더도 잡을 수 있어? 신전의 사제가 오러 윌더보다, 대부분 기사인 오러 윌더보다 더 잘 싸워?”
키린은 담담하게, 또박또박 짚으며 물었다.
투란의 눈이 껌벅였고, 고개가 잠깐 갸웃했다.
아무래도 오러 윌더인 기사와 신전의 전사를 놓고 누가 더 센가 비교하는 듯했다.
‘둘 다 보기는 봤구나.’
키린은 싱긋 웃었다.
잠깐 사이에 나름대로 기억을 되살리며 생각을 해 본 투란이 입을 연다.
“보통 사제보다는 기사가, 오러 윌더가 더 센 거 같아요. 그런데 신전에는 좀 특별한 사제가 있잖아요. 뭔가 투신의 사제는 아닌데 투신을 섬기는 사람처럼 센 사람들, 사제인가 아닌가 잘 모르겠지만, 사제들 사이에 그런 사람이 있던데…….”
생각이 딴 곳으로 새 버린 듯한 말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키린은 투란이 말하는 바를 알아들었다.
“전투 사제, 흔히 성기사라고 하는 사제들 말이구나?”
“어? 아, 그보다 좀 더 특별하고 센 사람이 있던데. 음…… 전투 사제들보다 높고 전투 사제를 끌고 다니는,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은 신전 사람이면서도 오러 윌더보다 세 보였죠. 나머지는 오러 윌더, 기사보다 약해 보였지만…….”
갸웃거리면서 투란이 더듬어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키린도 보다 분명하게 투란이 말하는 자가 누군지 깨달았다.
“너, 오러클 워리어를 본 거냐?”
“아! 맞다, 그랬어요! 오러클이라고!”
“그거 엄청 보기 힘든 사람인데?”
키린이 놀라며 묻는 말에 투란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 아, 그렇다는 말도 하기는 했는데…….”
마치 남들에게는 귀한 일이 자신에게는 좀 흔한 일이라는 듯한 태도였다.
키린은 투란의 그런 태도를 보며 바로 묻는다.
“설마, 샤오 마을에 오러클이 며칠 지내다 간 거야?”
“한 2년 있다 갔는데요.”
벅벅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투란이 대답했다.
키린은 어이없다는 낯빛을 띠었다.
“세상 돌아다니면서 한 곳에 사흘도 머무는 일이 거의 없다는 오러클이 거기 2년씩이나 머물렀다고? 왜?”
“그, 글쎄요. 맨날 몬스터 쫓아다니고 마수 사냥하고…… 그러던데요.”
투란에게 오러클이 특이한 점이라고는, 신전의 사제를 우르르 몰고 다닌다는 점뿐이었다. 그거 말고는 그냥 늘 샤오콴 마을에 들락대는 다른 이들, 몬스터 헌터, 마수 사냥꾼, 몬스터 로드 등등과 똑같아 보였다.
특별한 점을 애써 찾으라고 한다면, 신전 사람답게 자주 뭔가 웅얼거리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 그런데 그건 신전 사람이니까 당연해 보였다.
갸우뚱하면서 투란이 낑낑거리는 꼴이 되자, 키린은 쓴웃음을 지었다.
샤오 마을에 살았으니 전투 사제 정도는 봤겠거니 생각했지만, 설마 전투 사제의 정점으로 꼽히는 오러클 워리어였다니!
‘뭔가 성물을 제작하려 했던 걸까? 아니면…… 신탁?’
—성물 제작이겠지. 그 재료가 되는 성수(聖獸)라든가 신수(神獸)라든가 하는 것도 결국 이 세상에서는 이질적인 존재, 신전과 거리가 먼 이들에게는 그저 괴물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음, 그렇기는 하지.’
키린은 ‘드라코눔의 아칸’이 토해 내는 냉랭한 평가에 씁쓸하니 호응해 줬다.
가끔 몬스터 로드가 괴물을 잡고 삼키고 나니, 신전에서 우르르 몰려와 몬스터 로드를 후려잡으려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신수인지 성수인지를 잡았다고 신성모독이니 뭐니 하면서.
‘아니, 그런데 지금 그걸 궁금해할 때가 아니지!’
키린은 투란이 계속 갸우뚱거리는 꼴을 보며 자신도 호기심에 엉뚱한 쪽으로 빠져드는 것을 깨달았다. 이야기를 다시 돌려야 할 필요가 있었고, 투란을 상대로 하는 키린에게는 꽤나 쉬운 일이었다.
“오러클 워리어를 봤다면, 혹시 오러 윌더 중에서 마이스터는 못 봤어?”
툭 던지는 말에 투란의 눈동자가 선명해졌다.
기억의 한구석을 바로 자극당한 듯했다.
“말만 들었어요. 오러 윌더 중에서도 무지하게 센 사람이라고. 비슷하게 강한, 상급의 오러 윌더라고 하는 사람은 왔다 간 것 같기는 한데…… 금방 왔다 금방 가서 전 못 봤고요.”
갸웃거리면서 깊이 파묻힌 기억을 파내는 투란을 보며 키린이 싱긋 웃으며 말한다.
“투란, 기사인 오러 마이스터는 오러클보다 약하지 않아. 전투의 베테랑이니까, 오히려 더 강할걸!”
“아, 역시 그렇겠죠?”
투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뭔가 좀 부러운 듯한 표정을 한껏 지은 채였다.
키린이 이 순간을 노린 듯이 덧붙여 말한다.
“투란, 몬스터 로드는 오러를 사용하게 된 순간부터 오러 마이스터나 다름없다.”
“예?”
투란이 맹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키린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낌새가 무럭무럭 배어 나오는 표정이었다.
“오러 윌더가 어떻게 되면 오러 마이스터라고 불리는 까닭을 알아?”
“아뇨…… 그냥 훨씬 더 세서 그런 거 아닌가요?”
“아니야. 흐흠, 그 이야기를 하려면…… 투란, 오러 사인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지?”
“아! 그거, 오러 마크보다 훨씬 좋은 거요! 오러 마크는 오러 사인의 조각 같은 거라고, 그래서 오러 사인을 품은 오러 윌더가 오러 마크를 품은 오러 윌더보다 훨씬 세다고 했어요.”
키린은 주의 깊게, 투란이 쏟아 내는 말을 들었다.
몬스터 로드라면 당연히 부적을 갖고 다닌다는 말을 하는 투란이라면, 정말 50년의 시간이 흐른 뒤의 소년이라면 오러 윌더에 대해서도 다른 상황을 이야기할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 투란이 하는 말은 키린이 흔히 듣던 이야기와 대강 비슷했다. 세상에 적당히 떠도는 오러 윌더에 대한 소문들.
“그래, 보통은 오러 사인을 지닌 이가 오러 마크를 지닌 이보다 강하지. 그런데 그 이유가 뭔지 알아?”
“어? 그거야 조각이니까…….”
“아니야, 투란. 오러 마크와 오러 사인이 새겨진 거, 본 적 있지?”
“어, 봤죠. 오러 사인은 가슴팍에 몬스터 엠블럼처럼 새겨진 걸 봤고, 오러 마크는 팔뚝이나 어깨, 배에 있는 거요. 어, 그러고 보니…… 크기는 오러 마크 쪽이 더 크구나.”
조각이라고 하니까 그저 조각이라고 말했지만 투란이 다시 생각해 보니 오러 사인이 새겨진 부분보다 오러 마크가 새겨진 부분이 훨씬 크고 넓게 생긴 것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중얼거리는 투란을 보다가 키린이 말한다.
“투란, 오러 사인…… 기사가 사용하는 오러 사인을 간혹 나이트 인시그니아라고 하는데, 들어 본 적이 있냐?”
“아! 그거! 길어서 제대로 기억 못했어요!”
“그렇지, 말하기에 좀 길지. 좀 짧고 간단하게 하자면 기사(騎士)의 휘장이라고 하는데…… 들어 본 적 있어?”
“어, 쉽네요?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한데…….”
“무슨 뜻인지는 알아?”
“예? 아, 그건…… 오러 사인 안에 기사의 비전인가, 전투의 비술인가, 그런 게 있어서 그렇게 말한다고 하던데…….”
조금 자신 없는 말투로 투란이 대답했다.
투란으로서는 확실하게 아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얼핏 오러 사인을 새긴 기사는 이상한 전투 기술을 능숙하게 다룬다고 하는 소문과 함께 들은 이야기였다. 오러 사인 안에 전투의 비전인가가 있다고.
키린이 고요한 웃음을 띠었다.
“맞아, 투란. 분명히 기사에게 전승되는 오러 사인, 나이트 인시그니아에는 미리 각인된 전투 기술이 담겨 있어. 오러에 의한 전투 능력의 강화, 그게 목적인 오러 사인이니까. 기사는 오러 사인, 기사의 휘장을 전이받으면서 그 안에 담긴 전투 기술을 완전하게 발휘하기 위한 수련을 시작해. 혹은 이미 그 기술의 기초를 갈고닦은 이를 기사로 삼아 오러 사인을 전이시켜 주지.”
“우와…… 그러니까 그 기사의 휘장인가를 새기면, 갑자기 몇 배나 세지는 거군요! 그게 그 이야기였어!”
투란은 오러 사인을 가슴에 박고 돌연 몇 배나 강해지면서 기술도 훨씬 뛰어나게 변한다는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었다. 때문에 오러 사인을 새긴 자와 새기지 못한 자 사이에는 엄청난 실력 차가 생긴다고 했는데, 오러 마크를 지닌 이들에게는 없는 일이라 했다.
키린이 반짝거리는 투란의 눈동자를 보면서 말을 잇는다.
“오러 사인에 그런 전투 기술을 기억시키는 이들이 누군지 알겠어?”
“예? 그거야…… 마법사 아닌가요?”
“마법사가 전투 기술에 대해서 기사보다 잘 알까?”
“어? 어…… 기사가 익힌 전투 기술을 마법사가 쓸 줄은 몰라도 알지는 않을까요?”
“응?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오러 사인에 그 기술을 새겨 넣는 이들, 오러의 힘을 전투에 직접 응용해서 새로운 기술을 고안해 내는 이들은 마법사가 아니야. 그게 바로 오러 마이스터지. 오러 사인에 각인된 전투 기술을 완벽하게 터득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새로운 기술을 창안해 내고 자신의 오러 사인 안에 각인시킬 수 있는 이들, 그들이 오러 마이스터야. 그러니까 오러 사인을 다루는 이들 중에서는 오러 마이스터가 아주 강할 수밖에 없는 거고. 알아듣겠어?”
“어…… 대, 대충…….”
투란은 홀린 듯이 듣고 있다가 불쑥 묻는 키린의 말에 멋쩍어하며 대답했다.
그 꼴은 분명히 귀를 열심히 기울이기는 했지만, 대부분 뭔 소리인가 이해하지 못하는 소년의 모습이었다.
—아니, 왜 이 정도 이야기를 이해 못해!
‘아칸’이 기막혀할 정도로 투란의 모습은 순진하고 무지했다.
하지만 키린은 오히려 방긋 웃으면서 기뻐하고 있었다!
“투란, 기사는 말이야…… 오러 사인에 의해 기사로서의 강한 능력을 손에 넣지만, 오러 마이스터가 되지 못하면 그 안에 새겨진 전투 기술에 묶인 꼴이기도 해. 손발을 맘대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로, 오직 그 전투 기술에 따라야 할 때도 있거든.”
“에? 그런 거예요! 어? 잠깐만…… 아, 그렇다면 일단 그 오러 사인만 기사의 휘장을 새겨 넣으면 오러를 사용하면서 바로 전투 기술을 쓸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럼 훨씬 세질 수밖에 없잖아요?”
투란이 눈알을 번뜩대면서 짚은 것에 키린은 살짝 움찔했다.
보기보다는 투란의 눈치가 빠른 것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
그러나 다음에 나오는 키린의 말은 호쾌했고, 한 손으로는 투란의 머리를 쿡쿡 누르고 쓰다듬는 칭찬이었다.
“맞았어! 그러니까 오러 사인을 새긴 자와 아닌 자 사이에는 전투 능력에 큰 차이가 생기지! 그리고 오러 마이스터는 자신의 오러 사인에 새로운 전투 기술을 새길 수가 있는 자니까 얼마나 센지 알겠지?”
“아, 그렇군요.”
투란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재빠르게 키린이 말한다.
“그런데 몬스터 로드는 말이야, 오러를 일으킬 수 있게 되어도 전투 기술이 없어. 조금 아쉽지?”
“어…… 아! 하지만 몬스터가 있잖아요!”
투란은 잠깐 당황하다가 곧 몬스터 로드다운 활기찬 대답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