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4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36)
Chapter 168. 마도사의 둥지 Ⅰ
콰앙!
격렬한 충격과 함께 원형의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나며 사방으로 밀려나갔다.
충격파를 일으킨 진원(震源)이 되는 자리는 움푹 꺼지며 가라앉았다.
가까운 벽은 무너져 흩어졌고 돌멩이는 먼지를 따르듯이 이리저리 굴렀다.
높이 날아오른 투란은 그 풍경을 발아래 둔 채로 도도한 척, 후욱 몰아 내쉬는 숨결 속에 소리 없이 중얼거린다.
‘어떠냐, 멋있어 보여?’
―황금 조각 다 챙겨 담고 잡아놓은 사티로스는 다 삼키고, 정리할 거 다 정리한 다음에 괜히 흔적 지운다고 후려치고 튀어올랐으면서 무슨 멋을 찾아? 쪼잔하기 짝이 없을 지경이구만!
드라고니아가 코웃음과 함께 냉랭하게 대꾸했다.
투란은 사자의 입안에 담긴 듯한 얼굴을 찌푸리고 입술을 삐죽였다.
‘챙길 거 챙기는 게 뭐가 쪼잔해? 다 챙긴 다음에 시원하게 뭉개고 올라온 거니까, 멋있잖아!’
―몬스터 무리를 처단하고 바로 날아올라야 멋있어 보이는 거지! 누가 와서 나머지 잔해 속에서 뭐라도 챙겨가게 남겨두는 여유도 부리면서, 보통 그래야 멋있다고 할걸!
으르렁거리는 드라고니아에게 투란은 바로 대꾸하지 못했다.
다가오는 사티로스 무리를 투명한 채로 다 패서 짓이기고 나서 바로 그 정수를 삼켜버렸다. 날개와 투구, 반지를 모두 착용한 상태에서 황금매의 문장이 제대로 그 기능을 발휘하는가를 나름대로 시험해본 셈이었다. 그리고 덤으로 데몬스 러그, 팔뚝에 열리는 고대 악마의 기술이 빗어낸 도구까지 시험했다. 주변에 흩어진 황금 밀실의 파편, 황금의 조각들을 모두 거둬 담는 것으로.
그렇게 한 다음에야 투란은 손바닥에 피어난 도톰살이 끊임없이 울어대며 토해내고 싶어 하는 힘으로 바닥을 찍었고, 거기서 피어난 격돌의 충격파를 날개의 부력(浮力)으로 삼아 날아올랐다.
호쾌하게 사티로스 무리를 물리치고 곧바로 튀어오른 것이 아닌 것.
‘너도 헝겊 챙겼잖아!’
겨우 투란이 생각해낸 투덜거림이었다.
투구와 날개, 반지를 감싸고 있던 천은 찢어진 누더기 꼴이었지만 드라고니아가 샅샅이 뒤져 챙겼다. 투란이 황금 조각과 몬스터의 정수를 챙기는 사이에.
―정령포(精靈布)일 수 있다고 했잖아! 그럴 경우에는 실올 한 가닥이라도 무지하게 귀한 거라고! 황금보다 귀하다니까!
드라고니아는 투란을 한층 더 오그라들게 하겠다는 듯, 도도하고 당당하게 머뭇거림 없이 바로 대꾸하고 있었다.
‘쳇, 아닐 수도 있는 거잖아.’
쥐어짜 낸 투덜거림이 투란이 할 수 있는 소소한 반발의 끝이었다.
드라고나아의 으르렁거리는 핀잔은 끝이 없는 듯했다.
―그러니까 가져가서 조사해봐야 한다고! 상아탑의 대마법사이면서 정령의 궁전을 열어버린 홀시딘이라면 제대로 판정할 수 있을 거다.
‘넌 정말 못해?’
―못해.
투란에게는 뭔 차이가 있는가 짐작도 할 수 없지만, 아무래도 정령의 별궁에 곱게 놓여 있었던 것은 누더기일지라도 심각하게 에아본의 정령비술과 관련이 있는 모양이었다. 프로브로 제대로 살피지도 못하고 실체를 밝혀낼 수단도 없다고 하니…… 어딘가 속이는 것 아닌가 싶기는 했지만 투란이 더 따지고 들 틈이 없었다.
펄럭.
황금의 날개를 움직이며 한 바퀴 빙 돌며 주변 풍경을 눈에 담은 투란은 멀리 보이는 춤추는 산맥의 북쪽을 확인하고 그쪽을 향해 활강(滑降)을 시작했다. 폐허의 도시, 유적을 벗어나는 비행이었고 여전히 은근하거나 소란스러운 풍경이 이곳저곳에서 엿보이고 있었다.
확실히 이 고대 유적의 주역이라 할만한 몬스터는 타우루스와 라미아, 두 종류 몬스터가 무리를 짓거나 단독으로 제각각의 영역을 확보한 채였다. 하지만 스쳐 지나가는 사티로스의 작은 무리, 여기저기 숨어 움직이는 고블린 패거리, 어디서 왔는가 의아한 잔나비의 무리, 죽은 것은 뭐든 뜯어먹겠다는 흉악한 독수리 따위가 그 영역을 드나들면서 사냥꾼과 사냥감의 역할을 주고받고 있었다.
‘내가 온 쪽으로는 뱀뿐이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
문득 미궁을 향해 나아갈 때 본 것들을 떠올리면서 투란은 툴툴거렸다.
타우루스를 주로 봤고, 라미아는 독사 몇몇처럼 먼발치에서 본 듯했는데…… 북쪽을 향해 움직일수록 짐승과 몬스터가 다양해지며 기묘하게 균형을 갖춘 야생의 포악한 풍경이 또렷해지고 있었다.
―북벽 산맥의 영향이 커진다는 뜻이겠지.
‘음? 아, 저기 담장 같은 산맥?’
투란은 슬쩍 날개를 움직였고, 활강을 뒤틀어 살짝 치솟는 채로 저편을 봤다.
북벽, 알드바인의 북쪽 성벽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었지만 그보다 더 웅장하고 거대한 산맥이 지평선을 대신해서 북쪽의 풍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브로큰 킹덤 북방을 채우는 검은 산맥도 저것의 지류(支流)에 불과하니까. 저 북벽을 경계로 산맥이 춤을 멈춘다고 하는 말, 들어봤지?
‘들은 것 같네.’
춤추는 산맥이 지닌 강력한 특성, 지형의 유동하며 빠르게 변화한다는 것.
그 자연스럽지 못한 변화가 저 북벽 산맥을 경계로 사라진다.
춤추는 산맥의 서쪽이나 남쪽의 경우에는 완만한 지형이 서서히 드러나며 그 변화의 경계가 모호하지만 북방의 산맥, 동방의 대해(大海)는 확실하게 그 경계를 드러낸다고 했었다.
어린 투란에게는 그 산맥이 어떻게 생겨먹었기에 북쪽 담장이라 하는가, 대해란 것이 얼마나 큰 물웅덩이를 뜻하는가 굉장히 난해한 이야기였다.
설마 미궁에 찾아와 정령의 자취를 쫓았다가 얻은 아티팩트를 차고 날아오른 다음에야 북벽의 의미를 알게 될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지금 투란도 왜 저 산맥이 북벽(北壁)인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알드바인의 북쪽 성벽처럼, 저 산맥은 길고 긴 담장 같은 절벽으로 춤추는 산맥의 북쪽을 둘러싸고 있는 형세였으니까.
‘세란드가 알려준 길이 이쪽 맞는 거지?’
―그래, 거리가 꽤 있다만…… 이대로 이칼루스의 날개로 날아갈 셈이냐?
‘응? 이칼루스의 날개? 만든 사람 아들? 만든 사람 이름 붙이는 거 아니었나? 디달…… 뭐라며?’
―밀랍의 날개는 제작자보다 제작동기가 되었고 실제로 사용했던 주인인 그 아들의 이름을 붙여 부른다고 했어. 마이두스 왕이 고대에 나타나서 알려준 얘기다.
‘헤에…… 반지에 붙은 기게이아도 반지를 써서 유명한 사람이라고 했지? 흐흠. 아, 그러면 이 사자 투구는? 이것도 뭔 누구 이름 붙어 있나?’
―그건 좀 경우가 달라. 영웅 모험담 중에서 한 토막을 차지하는 신성한 마수였나? 아무튼 니메아트의 재앙이었던 사자라고, 니메아트의 사자라고 부르든가 그냥 니메아트의 재앙이라고 불렀다더군. 그 소리 듣고 왕족인가 귀족인가, 고대의 명망 있는 누군가가 니메앙이라 부르자 해서 그 뒤로는 줄곧 니메앙 투구라 불렀을 거야. 저 밀실에 감춰져 사라지기 전까지는…….
‘설마, 굉장히 귀찮아서 줄인 이름이냐?’
펄럭, 서서히 활강하는 것을 느끼며 다시 날갯짓해서 높이 치솟으며 투란이 웅얼거렸다. 드라고니아가 피식 웃는 듯이 대꾸하며 말을 잇는다.
―그럴 수도 있겠지. 황금성과 함께 마이두스 왕을 불러냈을 뿐 아니라, 여러 신화 속에서 다양한 존재를 불러내면서 이 세상에 적응시키려다 보니 길고 번잡한 이름을 축약하는 경우도 많았다니까. 요르뭉간트 훙겔리프리아는 요르뭉이라고 아예 시작 음절만 잘라서 불렀다는 기록도 봤다.
‘그게 뭔데?’
―넌 알 필요 없는, 아예 몰라도 되는 대형 마수다.
‘만날 일 없는 거지?’
―산 채로 썰어서 토막 내고 살점 하나까지 처리했다고 기록되었지. 다시 보려면 고대의 비전 소환술을 복원해서 엄청난 공물(供物)을 쌓아놓고 한 삼 년간 의식을 치러야 할걸. 지금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자는…… 아마 없을 거다.
‘아마?’
―대마도사 카엘, 이럴 때 딱 걸리지.
‘아…….’
휘잉.
떠드는 사이에 낯을 스치고 가는 바람결이 거칠어졌고, 황금의 날개가 보다 팽팽하게 긴장되는 것을 투란은 느낄 수 있었다.
아래로 보이던 유적의 풍경은 이제 사라졌고 울퉁불퉁한 야생의 들판으로 지형이 바뀌는 중이었다. 아직 유적이 끝자락이란 듯 도로를 이루던 포석의 흔적이 간간이 보이기는 했지만 건축의 잔재는 완연히 사라져 있었다.
눈가 귀퉁이에서 들판을 달리던 들소를 사냥하는 데 성공한 듯한 히엔나 무리가 포식하는 광경이 슬쩍 비쳤고, 이는 투란의 허기를 살짝 자극했다.
‘잠깐 쉬고 싶은데…… 움막 짓는다고 쳐들어올 놈은 없겠지?’
프로브를 살짝 휘두르며 조금 평평하고 사방이 트인 곳을 찾는 채로 투란이 물었다. 드라고니아는 바로 한쪽의 볼록한 언덕 위를 투란의 시각에 표시해주며 대답한다.
―쳐들어오는 뭐가 있어도 금방 알 수 있는 곳이다. 세이프티 하우스를 지으면 어쨌든 주변에서 관심 갖는 녀석들이 얼씬거리겠지만, 저기라면 두어 시간 정도 한적하지 않겠어?
‘흠…… 그래, 그럼 저기로 하지.’
날개를 반쯤 접은 투란의 몸이 아주 빠르게 활강을 시작했다.
언덕 위에 훤히 열린 작은 마당을 향해.
퍽.
후드드득.
땅에 내리꽂히는 둔탁한 음향이 은근히 세게 울렸고, 그 반동처럼 땅이 몸살을 하듯 부르르 떨며 치솟았다. 처음에는 1미터 폭의 작은 더미였으나 솟구칠수록 넓게 펼쳐진 땅은 결국 거대한 버섯, 아래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8미터 높이의 기둥을 지닌 십여 미터 폭의 둥근 마당을 공중에 띄운 모양이 되었다.
―이게 집이냐?
투란의 심상에 따라 구현된 안전가옥을 놓고 드라고니아가 끔찍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세이프티 제대로 작동하는구만! 잠깐 쉴 건데 이 정도면 괜찮지!’
내려서자마자 풀썩 주저앉으면서 투란이 말했다.
공중의 널찍한 마당은 사방이 훤히 트이고 지붕도 없는 꼴이기는 했으나,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감싸인 헛(Hut)의 형태를 확실히 갖추고 있었다. 원래는 맨땅에 지어야 할 마법 움막이고 주변의 시야를 차단하며 감추는 은폐 기능이 중시되는 것이라 아주 엉뚱한 모양이 된 셈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투란의 모습이 감춰진 공간을 제대로 구현하고는 있었다.
‘자, 그러면…….’
드라고니아가 시알라 남매랑 있을 때를 되새기면서 갖은 잔소리를 하려는 찰나, 투란은 매우 중요한 일이란 듯이 슬쩍 말을 이어 막았다. 그러면서 농담하는 게 아니란 것처럼 진지하게 바로 앉은 채로 손을 움직이며 내려다보는 시늉도 했다.
우득, 우득.
부드러운 모양의 발톱은 5센티미터의 손톱이 되어 투란의 굵직하고 넓은 손의 끄트머리에서 불끈 돋아 있었다. 어딜 봐도 전혀 날카롭지 않은 손톱, 그저 손이 크니 저리 길쭉하게 돋아난 것이겠거니 하는 느낌을 주는 생김새.
하지만 이 뭉툭한 손톱은 닿는 것을 그대로 찢어발긴다.
손가락을 접으면 그 손톱을 받아주듯이 불끈거리며 돋아난 도톰살과 만나는데, 전설적인 사자의 발바닥에 돋아난 것이 맞다고 주장하듯 불끈불끈 맥동하기까지 하는 도톰살은 손톱이 둔탁한 생김새만큼 부드럽고 둔하다는 듯 전혀 흠집도 나지 않았다. 한데 이 손톱이 몸을 감싼 사자의 가죽에 닿을까 싶으면, 슬쩍 몸이 가려워서 그 손톱으로 긁겠다고 가죽에 대면 그대로 형체가 풀리며 사라졌다.
사자의 갈기가 몸에 스며들어 자아내는 가죽, 도톰살이 아닌 가죽은 모조리 찢어진다고 경고라도 하는 듯.
‘니메앙…… 니메아트의 사자가 셰이아와는 무슨 관계야?’
덤으로 투란의 마음 한구석을 계속 간지럽히는 묘한 의혹이었다.
셰이아가 황금매의 마력을 잔뜩 끌어당겨 꼬고 엮어 이뤄내는 마력장벽, 사자의 갈기가 몸에 스며들어 꼬이고 엮어 부풀려서 꾸미는 몸의 형상(形相)과 거의 비슷한 구조였다.
너무 비슷해서 의혹도 자연스럽게 투란의 뇌리에 피어날 지경이었다.
같이 밀실에 오랜 세월을 함께 있었다가 닮아 버리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사자 투구, 니메앙이 사실은 이 세상의 누군가가 만들어낸 아티팩트이고 그 누군가가 셰이아의 마력장벽을 보고 사자 갈기를 꾸민 것은 아닌가?
―굳이 흉내를 냈다면 셰이아 쪽이겠지. 정령에게 마법의 흉내를 내거나 특별한 성질을 지닌 물품의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은 정령술사라면 당연히 시도하지. 니메앙이 끼친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단순히 사자 깃발의 군단 하나를 꾸민 정도는 넘어섰을 거라 본다.
‘대체 뭔 일이 있었기에…….’
투란은 가만히 이칼루스의 날개를 벗으면서, 입은 순서와 상관없이 잘 벗겨지는가를 확인하면서 갸웃했다.
―뭐, 많은 일이 있었지. 고대 역사에 대해 제대로 교양을 갖추게 되면 황금 사자깃발의 군단 같은 경우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을 거다만, 역사 학습에 대해 관심이 있기는 하냐?
‘지금 할 때는 아닌 것 같네.’
슬그머니 발뺌하면서 투란은 느릿하게 사자 투구를 벗었다.
부푼 몸이 오그라들면서 찾아오는 느낌은 어딘가 몬스터의 형상에서 사람의 형상으로 되돌아오는 것과 닮기도 했지만, 분명히 다르기도 했다.
그 느낌을 점검하면서 투란은 북벽과 유적을, 가야 할 곳과 떠난 곳을 둘러봤다.
공중에 자리 잡은 마법의 움막이 해롭지 않은 부드러운 바람을 흘려 넣어 투란에게 전했다.
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