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4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37)
“이것 참, 신기하네.”
사자 투구, 니메앙을 만지작거리면서 투란이 중얼거렸다.
황금 날개, 먼저 착용하고 있었던 이칼루스의 날개와 어긋남 없이 잘 어울렸고 서로 얽매이는 부분도 없었다. 뭘 먼저 입고 벗든 간에 상관없이 아티팩트의 효과가 그대로 발휘되는 것, 마도구를 고를 때 꽤 중요하게 점검하는 요소였다. 효과를 상쇄시키거나 할 경우 둘 다 갖고 다니는 것조차 안 될 수도 있으니까.
―악마종의 비술과도 그냥 어울리는 꼴을 보니 짜증이 좀 나긴 한다만.
드라고니아가 살짝 투덜거리고 있었다.
그 말투가 왠지 드라코눔에서 몇 차례 뭔가 시도했다가 실패한 일을 자연스럽게 해치우는 듯해서 울컥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흐흠, 그렇다면 상아탑의 비전마법과는 어떨까?’
입술을 핥으면서 투란은 팔뚝 안에서 블랙레온을 꺼냈다.
드라고니아가 바로 움찔하면서도 호기심 왕성한 대꾸를 하는데…….
―흠? 흐흠. 정령의 가호를 받은 오우거 가죽으로 만든 마법 배낭이라…… 밀실 안에 얌전히 놓여 있었던 상황으로 봐서는 별 상관없을 것 같기는 하다만, 해보기 전에는 모르지. 거기 담아서 다시 팔뚝 안에 담을 수 있으려나?
구체적으로 궁금한 대목을 짚는 말이었다.
투란도 바로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미궁을 찾는 여행 직전에 은신처에서 잠시 머물며 투란이 실험한 것.
마법 주머니 속에 다시 마법 주머니를 넣을 수 있는가 없는가.
악마의 비술, 생체결합형 아티팩트란 것이 과연 상아탑의 마법배낭도 담을 수 있는가 없는가. 그 반대로 상아탑의 마법배낭 블랙레온은 데몬스 러그를 담을 수 있는가 없는가까지.
이모저모로 점검할 일이었기에 출발 전에 직접 해본 투란이었다.
그 결과는 아주 싱겁고 쉽게 나왔다.
어느 쪽으로도 가능하다는 것.
악마의 비술과 상아탑의 마법은 서로 간섭하지 않은 채 서로 그 특별한 기능을 적용시킬 수 있었다. 어느 쪽에 어느 쪽을 담든 상관없었다. 그야말로 서로 다른 세상에서 논다는 듯.
‘근데 이번에는 권하냐? 안 말려?’
문득 저 짓을 할 때 드라고니아가 미쳤냐고 그냥 둘 다 얌전히 써도 되는 것을 뭐하러 위험한 짓을 하려느냐고 으르렁거렸던 것을 기억하면서 투란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물었다. 그 실험을 끝내고 났을 때는 결과적으로 몇 시간 늘어져 논 거 아니냐고 놀리는 말까지 했으면서 이번에는 하라고 권하다니!
―니메앙 투구든 이칼루스의 날개든, 결국은 입고 다닐 것 아니잖아. 어차피 어디든 담아갈 생각이잖아? 미리 대비하고 실험한다는 생각으로 먼저 해보는 것이 더 안전할 테니까.
‘칫.’
드라고니아가 심드렁하니 하는 말은 투란이 낯을 구기게 했다.
확실히 몬스터 로드임에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아티팩트에는 대단한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디 가서 이런 걸 구할 수 있다 하면 기꺼이 찾아갈 기분까지 샘솟을 정도로.
그러나 그 의욕과 기분은 어디까지나 투란에게 호기심의 영역 안쪽이었다.
반드시 찾아내 갖겠다는 욕심은 전혀 가슴속에 피어나질 않았다.
니메앙 투구도 이칼루스의 날개도 몬스터 로드의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 얌전히 배낭 안에 처박아둬야 할 뿐이었다.
그러니 마법과 비술로 만들어진 배낭 안에 다른 세상에서 온 아티팩트가 얌전히 담기는가 마는가, 이제 알아볼 때였다.
사자 투구는 블랙레온의 검은 사자머리와 서로 잡아먹는 듯한 모양을 만들면서 쑥 담겼다. 연이어 이칼루스의 날개, 황금배낭 모양으로 응축된 것 또한 검은 사자머리에게 잡아먹히듯 수납되었다.
둘을 담은 다음 투란은 잠시 기게이아의 반지를 만지작거리면서 기다렸다.
누군가 보면 투란이 앉은 자리에서 사라졌다 나타났다 한다고 여길 광경이 잠깐 오락가락했고 블랙레온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투란의 다리 사이에서 멀뚱거리며 놓여 있을 뿐이었다.
‘들어가는 거는 정상. 그러면 먼저 담긴 다른 거랑 엉키지 않았나 볼까.’
투란은 블랙레온에 손을 대고 밀포와 육포를 떠올렸다.
한 줌의 밀포와 육포가 바로 투란이 움켜쥐는 손짓에 따라 블랙레온 안에서 빠져나왔다.
“정상.”
심심함을 뿌리치듯 중얼거린 투란은 블랙레온을 들어 입가에 댔다.
간단한 동작에 바로 호응하듯, 블랙레온의 한 귀퉁이에 꼭지가 나타나며 물이 흘러나왔다.
두어 모금 물을 삼키고 밀포와 육포를 겹쳐 입에 넣으면서 투란이 우물우물하는 채로 중얼거린다.
“정상…… 이 정도면 아무렇게나 넣고 다녀도 전혀 상관없는 거지?”
―그래, 밀실의 아티팩트는 일단 그렇다만. 내가 열심히 주워 모은 천도 블랙레온에 좀 담아봐라.
‘음? 왜?’
으적거리는 채로 소리 없이 투란은 되물으며 갸웃했다.
―블랙레온은 정령의 가호를 잔뜩 머금은 오우거의 가죽을 소재로 만들어졌잖아. 정령포라면 어떤 식으로 반응을 할 테니까.
‘터지는 거냐?’
―뭐? 터지다니, 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건데?
‘마도구, 잘못되면 벼락치고 불길이 치솟으면서 펑펑 터지잖아. 담긴 마력이 폭주? 암튼 폭발하는 거잖아.’
―어디서 그딴 저급한 물품을 봤던 거냐?
‘어? 뭐…… 저급한 것만 터지는 거였어?’
―마력이 새나가서 망가질 수는 있어도 터져나가는 일은 없다고! 마도구 만드는 마법사가 무슨 정신 나간 연금술사인 줄 알아?
‘그렇구나.’
―그냥 해본 소리냐!
‘아니, 정신 나간 채로 연금술과 마법에 자신 있다는 아저씨가 마을에 스쳐간 적이 있었어. 그 아저씨 만든 것들은 조금만 잘못되었다 싶으면 펑펑 터져서, 그냥 터뜨릴 목적으로 샀던 헌터들도 있었지.’
―그런 미친…….
‘자, 그러면 작은 헝겊 쪼가리부터 담아보자고. 블랙레온이 잘 받아주나 보자!’
으적으적, 꿀꺽.
추억과 함께 씹던 것을 삼키면서 투란은 팔뚝 안에서 꺼낸 손바닥 절반 정도의 크기인 천 조각을 꺼냈다. 먼저 블랙레온의 검은 사자머리에 천 조각을 살살 문대면서 어떤 반응이 있는가 살폈다.
‘아무렇지도 않네?’
블랙레온도, 수상한 천 조각도 별 반응이 없었다.
그냥 블랙레온에 묻은 티끌을 닦아내는 손짓만 한 셈이었다.
―담아봐야 알지!
드라고니아가 핀잔했다.
투란이 블랙레온에 의지를 담으며 천 조각을 밀어 넣었다.
본격적으로 마법이 작용하며 천조각을 수납하는 순간, 투란은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을 깨달았다.
드라고니아도 바로 알아차렸다.
―먹었…… 융합한 건가?
투란은 말로 뭐라 할 수 없어서 눈만 깜박였고, 다시 팔뚝에서 천 한 조각을 꺼냈다. 아까보다 조금 더 작게 천을 조각낸 다음, 투란이 다시 블랙레온에 수납하도록 밀어붙였다.
처음 생각 없이 볼 때보다 분명하게, 투란은 다시 볼 수 있었다.
블랙레온이 낯을 구기듯 검은 사자머리가 우물거리는 입모양을 만들더니 밀어 넣었던 천 조각이 블랙레온과 엮이면서 사라졌다. 수납된 것이 아니라 그대로 블랙레온의 일부로 변해버린 것!
“호, 홀시딘 부를까?”
―부르지 마! 나중에 가서 직접 보여주더라도 지금 부르지 마. 오면 너 지금 보이지 않는다고 반지부터 만져보겠다고 할 테니까.
‘어? 아, 안 보이게 한 채였나.’
투란은 바로 기게이아의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냈다.
잠깐 망설이는 표정을 짓고 투란은 반지를 팔뚝 안에 담았다.
조금 이상해진 블랙레온이 반지를 삼키고 투명해져서 못 찾게 될 거라도 걱정하는 듯한 짓이었다.
―야, 이미 담아놨던 투구랑 날개는 걱정 안 되냐?
드라고니아가 핀잔할 때, 투란은 니메앙 투구와 이칼루스의 날개를 꺼내고 있었다. 아무 탈 없이 둘이 나온 광경에 드라고니아는 혀부터 차는 시늉을 했지만 잠깐 침묵했다.
투란은 다시 투구를 써봤고, 날개를 입어봤다.
처음과 전혀 다를 바가 없이 두 아티팩트가 모두 그 힘을 투란에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 감각을 잠깐 음미하다가 투란이 갸웃거리면서 소리 없이 중얼거린다.
‘음, 역시 셰이아가 마력을 엮는 방식이랑 비슷해. 이거 내가 흉내 낼 수도 있는 거려나?’
―흉내?
‘살갗 너머로 밀려와서 마력장벽처럼 자리 잡는 거. 어딘가 악마의 심장으로 흉내 내볼 수 있을 것 같거든. 완전히 똑같을 리는 없겠지만…… 손바닥의 도톰한 살점이 부들거리면서 힘을 터뜨리는 것도 붉은 늑대…… 그림울프의 심장 터뜨리기를 이용하면 흉내 내볼 만하고. 뭐, 한번 터뜨리고 부서지기는 할 테지만…… 아예 도톰살까지 흉내 낼 수 있다면 아예 망가뜨리지 않고 힘을 뿜어낼 수도 있어 보여. 안 되려나?’
―그럴듯하다고 생각된다만.
떠들다가 살짝 지나친 생각인가 하고 주춤하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는 긍정적인 반응을 내보였다. 그저 하거나 말거나 마음대로 하라는 것도 아니고 은근히 드라고니아 역시 그 흉내의 결과가 궁금해하는 낌새가 선명했다.
투란은 그 호기심에 쓴웃음을 지으면서 투구와 날개를 다시 벗어 블랙레온에 담아 넣었다. 당장 어떤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니 그대로 사용한다는 듯.
하지만 그런 대담한 척하는 행동과 함께 투란은 바로 묻고 있었다.
‘정령포가 대체 뭐야? 정령의 가호를 받았던 오우거 가죽이랑 함께 두면 원래 뭉쳐서 하나가 되는 건가?’
―홀시딘이 제작한 마법배낭이랑 왜 결합하는 반응을 보였는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정령의 가호와 무관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아. 정령의 나뭇잎과 껍질, 저절로 떨어져 나간 가지 따위를 특별한 방식으로 가공해서 만들어 낸 것이 정령포니까. 에아본의 정령술에 대해 알아야 알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어. 그렇다고 지금 홀시딘 부를 생각하지 마! 너 어디 와 있나 아는 것만으로도 홀시딘에게는 울화가 치솟을 테니까. 여기서 뭘 했냐까지 알면 속이 뒤집어져서 널 죽이든가 자기가 죽는다고 울화통 터뜨릴 수도 있거든.
‘내가 뭘 어쨌다고!’
―고르고니아에 대해 전혀 알려놓지 않았잖아. 원래 하나 품고 있었다는 것부터, 새로 하나 더 잡아 품었다고 하면 진짜 기절할 거다.
‘뭘 기절까지…… 근데 내가 스테노아 삼킨 거 알려주지 않았나?’
―전혀! 어쩌면 스테노아는 알고 그냥 넘어가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메듀시아는 메타모픽 서펀트(Metamorphic Serpent), 그 능력만으로도 악마의 군단 하나를 하룻밤 사이에 지워버렸던 적이 있어. 마법적인 능력을 잔뜩 과시했던 녀석들을 말이야. 마법사가 그냥 듣고 넘길 리가 없다고.
‘처음 듣는 얘기네. 하지만 그런 옛날 일 갖고 이제 와서 기절을 왜 해?’
―옛날 일이 아니라, 그 옛날 전설의 몬스터를 이미 재앙인 놈이 또 훌렁 삼켰다는 상황이잖아! 몬스터 로드가 광란해서 폭동 일으키는 까닭을 생각하면 널 당장 쳐 죽이고 싶어지겠지! 근데 못 하잖아. 그놈의 로열클래스 맹약 때문에! 딴 사람에게 죽여놓으라고 알리지도 못하니, 정말 기절이 아니라 자살이 하고 싶어질걸.
투란은 입술을 삐죽였다.
하지만 드라고니아의 말을 부정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먼저 되돌아봤다.
투란 나름대로 문장에 여유가 있기에 몬스터의 정수를 거침없이 삼키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게 보통이고 흔한 상태이냐고 한다면, 하나에서 열까지 한 가지도 멀쩡하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문장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란 것, 오가면서 하나씩만 쓰고 있기는 하지만 이 두 가지 문장을 번갈아 쓴다는 점부터 기상천외(奇想天外)였고 엉망진창인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중 하나, 황금매는 노출되면 상아탑이 나서서 쳐 죽이려 하는 금단의 문장!
‘천칭’은 누가 알면 그 비전을 얻기 위해 투란을 협박하고 죽이려 할 수도 있다!
키린이 굳이 경고하면서 오러를 기반으로 하는 무투술을 강제로 주입해 몸에 담아준 것도 투란에게 그 때문이라 여겨졌다. 몬스터 로드를 무력화시키는 술수가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음…… 생각해보니까, 이 아티팩트 나한테 엄청나게 중요하구나.’
―무슨 말이냐?
곰곰이 생각하는 척하다가 느닷없이 나온 투란의 말에 드라고니아가 흠칫하며 되물었다. 방긋, 웃음과 함께 반지를 빼서 팔뚝 안에 담으며 투란이 입을 꼭 다물고 음흉한 표정을 꾸미며 소리 없이 말한다.
‘신전의 봉인술이든 뭐든 걸렸을 때, 이거 쓰고 몬스터 로드답게 날뛸 수 있잖아. 이걸 비밀로 해두고 몰래 갖고 다닐 수도 있고…… 아, 셰이아는 절대로 비밀로 해야겠다.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구해줄 거야. 하핫.’
―새삼 뭔 멍청한 소리냐. 못된 키린 녀석이 알려준 것만으로도 어지간한 수작은 전부 통하지 않을 텐데…….
‘그건 전부 계속 단련해야 하잖아! 엄청 힘들다고! 이건 반지부터 아주 쉽게 쓸 수 있는 거고! 아, 그런데 세란드가 준 지도, 이제 제대로 쓸 수 있잖아? 한 번에 망가지지 않게 써야 한다고 했지? 어떻게 좀 해봐.’
투란은 조금 진지하게 금색의 마도사가 감춰둔 뭔가가 있다는 곳에 대해 말을 꺼내고 있었다. 정령이나 아티팩트에 대해 더 떠들어도 잡담이 될 뿐이니 본론으로 넘어간다는 듯.
드라고니아가 한숨을 쉬듯 말한다.
―일단 한번 비춰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