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4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39)
우웅, 찰캉.
위로 뻗은 손목에서 금색 사슬이 흘러내렸다.
시커먼 살갗은 희미한 햇살 아래에서 그저 잿빛 그림자처럼 보였다.
휘이잉, 시이잉.
오러 몽거의 손짓이 바람을 움켜쥐고 흔들어 쥐어짜 내는 듯한 소리가 흘렀다.
위로 높이 뚫린, 이 빈터에 닿는 동굴의 구조를 생각하면 대충 벽난로의 굴뚝이 아닐까 싶은 구멍이 그 소리로 꽉 채워졌고 짧은 비명과 함께 날개 달린 임프 한 마리가 떨어져 내렸다.
오러 몽거의 손짓이 격렬해졌고, 바람소리도 사나워졌다.
임프의 날개가 멋대로 꺾였고, 비명소리를 길게 흘리는 채로 오러 몽거의 손에 잡혔다.
우득, 우득.
으적으적.
“하하핫.”
우물거리는 사이에 오러 몽거를 향해 웃음이 메아리쳐왔다.
오러 몽거는 흉폭한 성정(性情)을 폭발시키듯 웃음의 근원을 향해 몸을 날리려 했다. 반사적이면서도 당연한 그 행동은 곧바로 금색 사슬이 제지했다. 느슨하게 찰캉거리던 사슬이 오러 몽거가 그 자리에서 서 있는 것조차 방해하겠다는 듯이 당겨지며 뛰려 하는 동작을 그대로 봉쇄한 것.
요란한 쇳소리 사이로 오러 몽거의 분노한 손짓이 느릿느릿 이뤄졌다.
거의 제자리에서 가볍게 움직이는 것은 괜찮으나 사납게 어디로든 벗어나려 하는 것은 완전히 막아내는 사슬의 구속이었다.
몸을 뛰지 못하고 주먹질을 하지 못하더라도 메아리 저편을 할퀴기라도 하겠다는 강렬하면서도 난폭한 성격을 드러내는 셈이고 이를 방해하는 금색 사슬의 견고함과 엄격함 또한 고스란히 밝혀진 광경.
―물러서!
웃는 투란의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한마디였다.
동시에 투란은 윌 라이트의 마력이 아주 힘겹게 앞을 가로막는 것을 느꼈다.
화아앙.
볼을 스쳐가는 기묘한 바람줄기, 바람이 억지로 어떤 힘의 압박에 밀려나며 스쳐간다는 것을 느끼며 투란은 어리둥절했지만 일단 드라고니아의 심상찮은 경고와 억눌린 마력의 괴현상을 존중하는 것처럼 재빨리 뒤로 서너 걸음 물러섰다.
휘잉.
투란이 서 있던 자리에서 억센 돌개바람이 피어났다가 바로 사라졌다.
그리 위험한 것은 아니었지만 멀쩡한 사람 팔다리를 이리저리 억지로 휘돌릴 정도는 되는 강렬한 바람이었다.
‘뭐야?’
인과 관계를 따지자면 순전히 저 앙상하게 말라비틀어진, 체격이나 남아 있는 살집만으로는 순전히 잘 다듬어진 근육질처럼 보이지만 오러 몽거에 대해서 아는 입장으로 보면 바싹 마른 꼴에 불과한데 그 힘 빠진 간단한 손짓이 저런 돌개바람을 만들어냈다는 것인가?
투란이 설마 하며 다시 오러 몽거를, 그 주변을 살피려 하니 드라고니아가 빠르게 말한다.
―가볍게 여기지 마라! 카엘의 봉인 사슬이야! 오러 몽거를 감금하고 묶어두는 목적이기는 하다만, 대지(大地)의 맥동(脈動)을 흡수해서 기능을 발휘는 중이라고! 덕분에 이 주변의 마력…… 아니, 정령의 힘까지도 억누르는 특별한 역장(力場)을 형성하고 있어. 몬스터 로드라고 여유 부릴 때가 아냐. 저건 위험하다.
격렬한 말투였고, 극단적으로 경계하는 마음가짐이 고스란히 담겨 짙게 전해지는 이야기였다.
그 때문에 투란은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오러 몽거가 아니고, 저 황금 사슬이 위험하다고?’
―그래, 저건 가까이 다가가면…… 응?
긴장을 늦추지 않고 대꾸하던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기분을 느낀 듯, 동시에 투란이 묻는 말의 의미를 깨달은 듯이 멈칫했다.
그 틈을 타듯 투란이 바로 되풀이하듯 묻는다.
‘금색의 마도사, 아겔페스의 은신처라고. 그런데 지키는 오러 몽거가 아니라 그걸 묶어둔 대마도사 카엘의 사슬이 더 위험하다고 이야기하는 거야? 맞아?’
―그런 상황인데?
‘미친 소리 같은데?’
살짝 당황하면서도 드라고니아는 이 상황에 대한 판단이 잘못되지 않았다 했고, 투란은 그게 말이 되느냐고 한번 더 짚어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좀 더 물러나. 저기 감기고도 힘의 여파만으로 사냥을 하는 난폭한 놈이다. 지금 들이쉬는 입김에 빨려들어는 꼴사나운 짓을 당하지 않으려면 일단 물러서.
‘입김?’
갸웃하던 투란은 오러 몽거가 내뿜는 거친 숨소리를 들었다.
찰캉거리는 사슬이 조금 더 강하게 오러 몽거를 조이는 듯했고, 그 때문에 숨이 거칠어진 것처럼 내쉬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쉬는 숨결과 함께 가슴과 배를 가득 조이는 꼴이 전력으로 들이쉴 태도였다.
그리고 그 조짐 그대로 오러 몽거가 숨을 들이쉬었다.
‘저런 미친!’
―빨리 뒤로 빠지라고!
동굴의 빈터 바닥을 쓸어가는 맹렬한 바람의 격류, 밖으로부터 투란이 밟고 들어온 통로가 거대한 숨구멍이라도 된 것처럼 오러 몽거를 향해 사나운 돌개바람의 줄기를 뻗어내고 있었다.
제정신으로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투란은 두 발에 힘을 줘야 했고, 윌 라이트의 마력을 끌어내 바람을 막는 장벽 마법까지 쓰며 물러서야 했다. 드라고니아 역시 이를 보조했기에 일단 통로의 한 굽이를 돌아서기는 했지만 웬만한 사람 하나를 그대로 실어나를 듯한 격렬한 흡인력을 지닌 바람은 구부러진 통로 한쪽에 등을 붙여야 나머지를 완전히 피해낼 수 있었다.
‘왜? 어떻게?’
투란은 장벽 마법이 반쯤 형성되다가 흩어지는 것까지 담아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러 몽거가 강력하기는 하지만, 지금 드러낸 저 기괴한 숨결은 전혀 들은 적도 없고 예상하지도 못한 것.
옛날에 도시 성벽을 꿰뚫으며 날뛴 오러 몽거에게 저런 숨결을 다루는 능력이 있었다면 알려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 너무 거창하게 날뛰었고 온갖 수단으로 대적해서 밝혀낸 것이 몰상식한 괴력과 튼튼한 몸이 전부였고, 그것만으로 도시의 기사단과 몬스터 헌터 파티를 모두 으깨놨다고 했다.
설마 소문이 전해지다가 축소돼버린 것인가?
―오러 몽거에게 저런 능력을 키워준 것은 카엘의 사슬이 아닐까 싶다.
‘뭐?’
불쑥 나온 말은 투란을 한층 더 당황시켰다.
저 사슬에 대해 처음 말 꺼냈을 때 분명히 봉인이 어쩌구 하지 않았던가?
―꼼짝도 못 하게 묶어놨으니 다른 수단을 찾아낸 거지.
‘썩을.’
이어진 드라고니아의 말은 한숨 같았고 겨우 그 의미를 깨달은 투란은 욕이 저절로 떠오르는 기분을 어쩔 수가 없었다.
대마도사의 아티팩트에 묶이고 이런 곳에 감금된 오러 몽거, 할 수 있는 것이 숨 쉬는 것뿐이니까 그 숨쉬기를 이용해서 새로운 능력을 터득한 것이다. 엄격하게 따지면 능력이 아닌 기술이라 해야겠지만, 그 기술의 바탕이 오러 몽거의 몰상식한 괴력이다 보니 이런 웃기지 않는 결과가 된 것.
게다가…….
‘나는 왜 약해진 거지?’
투란에게는 한 가지 더 짚어야 할 것이 있었다.
단순한 기분, 이 동굴의 분위기에 위축된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윌 라이트의 마력은 억눌려서 마법은 제대로 된 효과를 낳지 못했고 버티고 선 투란의 팔다리는 바람결에 흔들리며 자칫했으면 오러 몽거 앞으로 빨려 들어갈 뻔했다.
투란은 아무런 대비 없이 거의 맨몸으로, 괴력의 손아귀에 잡힐 뻔한 것!
그렇게 되었다면 투란이 들어오자마자 봤던 임프의 파편, 살조각과 핏자국으로 그 흔적이 오러 몽거의 입가에 남겨진 녀석처럼 되었을 터.
―말했잖아, 카엘의 봉인 사슬 때문에 억눌린다고.
‘아, 이 망할 대마도사…… 잠깐, 그런데 왜 대마도사의 미친 아티팩트가 여기 있는 거래?’
울컥하다가 투란은 돌연 냉정하게 따지듯 의문을 꺼냈다.
몬스터 세란드가 알려준 것은 금색의 마도사 은신처인데 왜 전설적인 대마도사의 마도구가…… 분위기 봐서 장난 아니게 유명한 듯한 마도구가 오러 몽거까지 낀 채로 버티고 있는가?
‘젠장.’
문득 투란은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생각하다 보니 오러 몽거가 아닌 황금 사슬을 이곳의 우두머리로 여기게 되는 상황이라니, 어딘가 많이 잘못돼버린 뒤틀림이 느껴지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이잖은가.
―전에 말했잖아. 금색의 마도사는 카엘에게 미래의 대마도사라고 인정받았다고 말이야. 그게 그냥 말로만 인정해준 것이 아니고, 미래의 대마도사를 미리 축복한다면서 카엘이 몇 가지 아티팩트도 건네줬었어. 그중에서 밝혀진 것이 저 봉인의 금쇄(金鎖)야. 보다시피…… 생각 없이 괴력의 본능만 가득한 오러 몽거를 저 자리에 묶어두고 새로운 능력을 계발(啓發)시킬 정도지. 폭염(爆焰)의 드레이크를 상대할 때 사용해서 유명해졌다만…… 거둬서 오러 몽거에게 사용한 줄은 몰랐네.
벅벅.
머리를 두 손으로 세게 긁적이고 숨을 고른 다음, 투란이 다시 묻는다.
‘금쇄, 저게 지금 어떤 힘이든 다 억누르고 있는 거 맞지? 저 사슬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말해봐. 몇 가닥이 어떻게 꼬여 있는가부터 말이야.’
―몇 가닥이 아니야. 한 가닥이다. 한쪽 끝에는 세모꼴 사면체의 추(錘)가 달렸고, 다른 한쪽 끝에는 둥근 고리가 달렸지. 고리 쪽은 아까 오러 몽거의 왼발에서 보였어. 추는 땅속에 파고든 채일 거다. 그렇게 한쪽을 땅에 묻고 들락거리는 형태로 몬스터를 잡아 묶고 그 힘을 억제하지. 기본적으로는 몬스터가 발생시키는 힘을 흡수해서 기능한다만, 지금처럼 땅에 추 쪽을 묻은 상태라면 대지의 맥동을 포착하고 그로부터 이끌어낸 힘을 바탕으로 강대한 역장을 형성시키지. 그 역장을 기반으로 몬스터의 힘을 더욱 강하게 흡수하고 포박한 채로 사슬의 강도(强度)까지 끝없이 상승한다. 그 때문에 그 난폭하고 끔찍했다던 폭염의 드레이크가 계곡 깊은 곳에 묶여 꼼짝 못 한 채로 말라 죽어간다 했다만…….
‘뭐가 마음에 걸려? 왜?’
한참 이야기하다가 흐려지는 말투에 투란이 바로 짚었다.
사소한 부분이라도 소중한 단서가 될 수 있으니까.
―그 드레이크 때문에 금쇄도 수백 년간 봉인된 거나 마찬가지라 했거든. 한자리에 몬스터를 묶어둔다는 거는 아티팩트 또한 거기 묶이는 꼴이니까. 대마도사에게 받은 아티팩트를 그렇게 소모했기 때문에 금색의 마도사가 한층 더 유명해졌었지. 한데 저 오러 몽거, 저거 폭염의 드레이크랑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날뛰던 놈이야.
‘뭐? 그게 무슨…….’
―브로큰 킹덤에 칠왕국이 다시 자리 잡기 전 시절일 거야. 여러 도시에서 왕국 재건을 위해 움직일 때, 새로운 왕국의 수도가 될 거라고 거의 확실했던 도시를 저놈이 깨부쉈다고. 네가 아는 오러 몽거의 유명한 이야기도 그때 시작된 것이지. 아, 저게 바로크 왕국까지 쳐들어갔으니까 그쪽 이야기일 수도 있겠군.
‘아니, 쟤가 그놈인가 아닌가 어떻게 아냐고.’
투란이 다시 툴툴거리듯 하는 말에 드라고니아는 뭘 묻는가 알아차렸다.
투란 자신이 삼킨 오러 몽거, 그쪽이 전설을 낳은 놈일 수도 있지 않냐는 물음.
애초에 희귀한 몬스터라는 것이 한 마리 보기 힘든 탓에 실제로 두 마리가 있어 다른 곳에서 날뛰었다고 해도 한 마리 출현했다 여겨지는 것이 보통이기도 했다.
―이빨 모양. 목격한 바를 바탕으로 인간 화가가 오러 몽거를 그려놓은 것이 있는데, 오른쪽 볼 쪽으로 아래쪽 송곳니와 어금니가 삐죽하게 돌출된 모양이잖아. 왼쪽으로는 위쪽 송곳니와 어금니가 돌출되었고 말이지. 네가 삼킨 녀석은 위아래가 골고루 돌출돼서 균형을 갖춘 형상이잖아?
‘그렇네.’
―산맥 깊은 곳에서 나오다가 세상 구경도 못 해보고 죽어 자빠진 경우였겠지. 나름대로 흔한 일이야. 저기 묶인 놈 보기 전에는 나도 네가 삼킨 녀석이 옛날 난동부린 놈이라고 생각했어. 워낙 희귀한 놈이니까. 아무튼 아겔페스가 봉인의 금쇄를 저놈에게 썼다면…… 대체 폭염의 드레이크는 어떻게 처리했나 모르겠다.
‘야, 그게 지금 중요한 일은 아니잖아? 몇 백 년 전이라며? 드레이크 말라 죽고 나중에 회수해서 따로 만난 오러 몽거에게 썼을 수도 있잖아.’
동굴을 울리는 듯한 깊은 숨결, 그 끝자락이 계속해서 굽은 통로 안을 굽이치는 분위기를 느끼며 투란이 툴툴거렸다.
드라고니아는 쓴웃음을 섞은 말투로 대답한다.
―수백 년이 지나더라도 죽을 리가 없는 몬스터였으니까 그렇지. 봉인의 금쇄에서 해방되었다면…… 다시 온몸을 인페르노로 불태우는 채로 난동부리며 나타날 놈이란 말이다, 폭염의 드레이크란 놈은 말이야.
‘인페르노?’
―인페르노의 재앙에서 불타 죽지 않고 살아 버티는 대신에 온몸이 그 불꽃에 감염되어 불길을 뿜어내는 몰골로 변한 녀석이다. 그 녀석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본래 모습과 성질이 다 뒤틀리고 망가진 비참한 꼴이니 나름 불쌍하다만, 인페르노의 불꽃을 휘감고 사방을 들쑤시는 탓에 불쌍하게 여길 겨를이 없게 했지.
‘그 얘기는?’
―사슬이 풀렸다면, 숨지도 못할 놈이야. 근데 몇 백 년 동안 그런 얘기 없었잖아. 오러 몽거는 산맥 싶은 곳으로 사라졌다 하더니 여기 이 꼴이고.
‘엉망진창인 얘기로구만.’
투덜거리는 채로 투란은 동굴 벽에 어깨를 들이밀며 안쪽을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