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4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40)
크르륵, 캬아아앙!
찰캉, 찰캉, 텅그렁.
성난 포효 속에 짜증이 가득 담겨 있었지만 금색의 사슬은 그런 거 알 바 아니란 듯이 자신만의 차분한 소리를 낼 뿐이었다.
굽은 통로 탓에 제대로 그 풍경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 소리만으로도 투란은 오러 몽거의 짜증을 납득할 수 있었다.
먹잇감이 눈앞에서 깔깔거리며 웃는 채로 나타났는데 겨우 손짓만 할 수 있었고 숨을 들이쉬어서 냄새만 가득 삼킨 꼴이 되었으니, 보통 짐승이라도 그런 짓을 당하면 성낼 테니까.
‘나타나지 않았다는 드레이크는 됐고. 그래서 저 사슬…… 봉인의 금쇄인지 뭔지를 해제하는 방법은?’
―저 상태로는 아마 없지?
‘마도구라며? 드레이크도 잡았다 풀어놨을 거라며? 그럼 저걸 걸었다 풀었다 하는 방법이 있을 거잖아. 게다가 옛날에 엄청 유명했다면 지금은 최소한 사용법이라도 알고 있을 텐데?’
―일리가 있는 말이다만, 몬스터를 묶고 봉인한 상태에서는 외부의 조작이 전혀 듣지 않는 거라 당장 방법이 없어. 오러 몽거를 먼저 어떻게 해야 저 사슬을 어떻게 할 수 있어.
‘몬스터를 어떻게 하려면 일단 저 사슬이 저질러놓은 역장인가 뭔가를 어떻게 해결 봐야 한다는 말이지? 한데 그 사슬을 어떻게 하려면 묶인 몬스터 녀석을 먼저 어떻게 해야 하고? 장난쳐?’
투란은 조곤조곤한 말투로 드라고니아에게 깊은 생각을 하는 것처럼 으르렁거렸다.
이는 드라고니아를 웃게 했다.
―푸훗, 딱 그 말대로야. 이제 제법 생각을 할 줄 아는군?
‘웃으라고 한 말 아니거든!’
투란은 다시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더 뭐라 하기 전에 다시 저 금색의 사슬, 생긴 그대로 목적을 담아 ‘봉인(封印)의 금쇄(金鎖)’라고 부르는 아티팩트에 대해서 되새기며 정말로 깊은 생각에 잠겨드는 투란이었다.
금색의 마도사가 남긴 가디언.
그 가디언을 묶어두지만 동시에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마법의 사슬.
그 사슬에 접근하는 자를 가차 없이 씹어먹을 가디언.
둘을 동시에 어떻게 하지 않으면 어느 쪽도 손댈 수 없게 만든 상황.
‘꼴에 마법사는 마법사였나 보네.’
문득 지팡이 들고 자신에게 괴상한 소리를 지껄였던 아겔페스를 떠올리며 투란은 짜증 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손에 죽기 전에도 세란드에게 죽었던 마법사, 세상의 이치를 뒤틀어버린 악마의 비술로 수백 년을 숨어 살면서도 그 집념을 불태운 짓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해로울 뿐이었던 얼간이!
차라리 능력이 없이 공갈이나 쳐대는 놈이라면 이렇게 수백 년을 넘어 투란에게 골 아픈 문제를 남겨둘 리가 없을 텐데…….
―투란, 그럭저럭 적응하지 않았냐?
‘응? 적응?’
끙끙거리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불쑥 묻고 있었다.
살짝 느닷없는 말에 투란은 어리둥절했다.
―대지의 맥동을 끌어내 이룬 역장이 대단하기는 하지. 하지만 몬스터 엠블럼은 수백 년이 아니라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해도, 어느 시대의 마법이 이룬 정점이라도 초월하는 대마법의 결실이야. 잠깐 낯선 환경에 억눌렸다 해도 금방 그 분위기에 적응해서 본래 기능을 발휘하고 고유마력도 제대로 작용한단 말이다.
‘어라? 너, 이거 알고 있었어?’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던 투란은 바로 팔다리를 억누르고 몸을 조이는 듯했던 느낌이 사라진 것을 파악했다. 하지만 이 회복은 곧바로 투란에게 새로운 의문을 던져줄 뿐이었다.
‘사슬의 역장, 어떻게 작용하는 거야? 아까도 오러 몽거 보일 때까지 들어가는 동안에는 아무 일 없었어. 그런데 보고 나서…….’
―프로브는 이 동굴 안에 아예 들어서지 못했다. 이 동굴 길을 걸으면서 네가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은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이 저 사슬의 역장이 일으키는 파동에 직접 닿지 않으면 아무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증거지.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오러 몽거가 움직이려 하고 사슬이 역장을 강화해서 일어난 파동을 그 자리에서 뒤집어쓰면 영향을 받는 거야. 지금은 오러 몽거가 얌전해졌고 사슬 또한 잔잔해졌으니까, 영향력이 줄어들었으니 너도 바로 회복한 거지. 하지만 다시 그 앞에 선다면…… 더 사납게 오러 몽거가 날뛴다면 또 역장의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어쩔 거냐?
‘에어로로 탐색 못 하려나?’
가만히 듣던 투란은 바람의 정령수를 떠올리고 물었다.
숨결이 일으키는 바람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이라면 에어로가 충분히 산들바람이 되어 들락일 수 있을 듯하니까.
―정령수 넷이 모두 위축되어 있잖아. 윌 라이트의 마력도 압박받고 있어. 지금 나랑 너랑 하는 대화도 마법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 네 심상을 통해 직접 주고받는 중이잖아. 가볍게 보지 마라, 대마도사의 봉인 아티팩트라고.
‘가볍게 보긴…… 아주 귀찮기는 하지만 얕보지는 않는다고.’
투란은 가만히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주저앉았다.
쉽게 정리되지 않는 생각을 품은 채였기에 투란은 다시 머리를 벅벅 긁적이다가 한숨을 쉬었고…….
‘아, 근데…… 폭염의 드레이크라는 거, 화염이 특기라는 붉은 드레이크 품종인 거야? 몸이 불타는 것 때문에 원래 품종이랑 상관없이 별명이 폭염이 된 것뿐이야?’
농땡이 피우고 딴소리하듯 불쑥 묻고 있었다.
드라고니아가 살짝 쓴웃음을 얹은 말투로 대답한다.
―원래 품종과는 꽤 상관없는 별명이야. 원래는…… 불타는 모습을 보고는 상상하기 힘든 희귀한 품종이었지. 그레이웜이라고, 회색의 연기 같은 안개로 자신을 감추고 산맥 깊은 곳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드레이크였어.
‘웜? 드레이크인데 웜?’
―소리는 같지만 뜻은 많이 다른 웜이다. 아무튼 다른 드레이크와 다르게 복합속성을 드러낸 경우였고, 문명과는 상당히 거리를 두는 품종이라 잘 알려지지 않은 녀석이었다. 몸에서 뿜어내는 연기 같은 안개로 숨는 성향이 강한 탓에 드레이크인 것조차 제대로 파악 못 해서 회색의 날개 달린 대형 웜이란 뜻으로 그딴 품종명이 붙을 지경이었다니, 말 다 한 셈이지.
‘숨어 살다가 인페르노 뒤집어쓴 경우라…… 그런데 왜 타죽지 않았어?’
조금 느긋하게 기분을 바꾸려는 듯, 투란은 잔잔해진 동굴의 분위기를 살피면서 다시 묻고 있었다.
드라고니아도 잠시 여유를 갖겠다는 듯이 이야기를 잇는다.
―그레이웜이 지닌 특수한 능력 때문이었다. 페이즈 시프트, 물질의 존재위상을 변환시키는 능력, 그걸 갖췄거든. 너도 약간 할 줄 아는 엘레멘탈 시프트와 비슷한 거야. 그레이웜은 연기, 안개의 형태로 자신의 형상을 이루는 물질구성을 변환시킬 수 있는 거지. 그 변환과정을 완벽하게 제어하고, 변환된 물질의 위상계를 이용해서 여러 가지 속성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다재다능(多才多能)한…… 몬스터에게 이런 말 붙이니 이상하다만, 아무튼 다재다능한 특이품종이었다. 보통이라면 불꽃이든 서리든 간에 그 능력으로 걷어내고 완전히 무효화시켰겠다만, 인페르노는 불이면서도 불이 아닌 차원경계를 내포한 것이라 그러지 못했어. 그렇다고 완전히 삼켜졌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지. 말하자면 몸에 불이 붙었는데 완전히 끄지도 못하고 완전히 타죽지도 않는 괴상한 상태가 돼버린 거야. 게다가 그 불을 제어하기 위해 억누르다가 한 번씩 방출하는 것이 일으키는 폭발은 가벼울 때는 수십 미터를, 세다 싶을 때는 수백 미터를 뒤덮을 지경이었다. 그 짓을 반복하다가 입으로 뿜어내는 불꽃도 응축시켜서 멀리 보내 터뜨리는 재주까지 익혔고…… 이모저모로 팡팡 터져나가는 불꽃이 녀석의 존재를 확실하게 해줬기 때문에 폭염이란 별칭이 붙은 거야. 그 불길 속에서 드레이크의 형상이 뚜렷하게 드러나기도 했으니까, 그대로 폭염의 드레이크가 녀석을 가리키는 이름이 된 거지.
‘과연 그런 놈이니까 아예 역장으로 그 주변까지 다 찍어눌러야 했단 말이네. 그렇다면…… 저 아티팩트 사슬은 대마도사 카엘이 아예 그놈 잡을 생각으로 만든 거 아냐?’
가만히 듣고 있다가 납득하던 투란이 다시 묻고 있었다.
드라고니아가 살짝 흠칫하는 척하면서 답한다.
―예리한데? 하지만 살짝 빗나갔다. 대마도사 카엘이 정성껏 봉인의 금쇄를 만들게 한 진짜 몬스터는 인페르노였다고 하더군. 완성하기 전에 인페르노의 재앙이 끝나는 바람에 써보지 못했던 것을 나중에 금색의 마도사에게 넘겨준 거고.
‘응? 야, 그거 순서가 이상하잖아? 폭염의 드레이크는 어쩌고? 인페르노가 제압되었다고 해도 남은 불덩이가 있는데…….’
―인페르노에 당한 그레이웜은 인페르노가 날뛰는 동안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어. 적어도 인간의 영토에서는 말이지. 산맥 안에서 그 불을 끄려고 여기저기 들이박고 다니다가 결국 강으로, 강을 따라 바다로 튀어나왔던 거지. 그게 몇 십 년 걸렸다든가? 아무튼 시기적으로 굉장히 미묘하고 괴상하게 들리겠다만, 그 때문에 금색의 마도사가 봉인의 금쇄로 폭염의 드레이크랑 맞서게 된 거지. 옛날 일이니까 너무 따지지 말고, 그냥 그러려니 하라고. 드라코눔의 연표에는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만, 지금 그런 거 보고 싶지는 않잖아? 보고 싶어? 보여줄까?
‘넘어가고. 만약 몬스터가 묶인 상태가 아니라면, 주인이 죽은 사슬을 어떻게 거둬 사용할 수는 있는 거냐?’
―사슬의 주인은 추와 고리를 통해 마력을 각인한 자로 결정된다. 그 주인이 의지로서 간섭하지 않을 경우, 새로운 마력을 각인할 수 있지. 하지만 지금처럼 대지의 맥동에 연계시켜 놓으면 그것도 마음대로는 안 돼.
‘뭐가 또 안 돼? 오러 몽거를 어떻게 해도 아무것도 안 된다는 말이야?’
―간단히 말하자면, 아겔페스는 자신의 마력을 각인해서 사슬의 주인이 되었다만 오러 몽거를 잡아 묶는 일에 대지의 맥동을 끌어들여 그 마력을 대리하게 해놨고 그건 오러 몽거를 치워버린다고 해도 여전히 유지되는 힘이란 거지. 저 상태로 오러 몽거를 갈가리 찢고 해체한다 해도 남은 살조각, 뼛조각을 감은 채로 저 자리에 박혀 꼼짝도 않는다는 거다.
‘오러 몽거를 잡아도 사슬은 포기하란 말이냐?’
입술을 삐죽하면서 투란이 투덜거렸다.
드라고니아가 곧바로 조금 세게 답한다.
―아니! 챙길 수 있다면 챙겨야지만, 챙기기 어렵다는 말이다.
‘으흠, 그래서 생각해 본 방법은?’
적극적인 드라고니아의 낌새에 투란이 조금 느긋한 기분으로 물었다.
생각하는 것은 드라고니아의 몫이고, 그 생각을 실행하는 것은 자기 몫이지만 지금은 방법이 정해지지 않아 마음껏 늘어진다는 분위기를 잔뜩 풍기는 투란이었다.
이는 드라고니아를 살짝 유쾌하게, 살짝 어처구니없게 한 모양이었다.
바로 꺼내 드는 대답이 어딘가 투란만큼이나 뻔뻔한 드라고니아였다.
―여태 뭐 들었냐? 직접 저 역장의 파동에 휩쓸리지 말든가, 아예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으로 적응해서 오러 몽거를 잡아 죽이고 찢어서 끄집어내오라고. 봉인의 금쇄는 그다음 일이란 말이다.
‘저거 최상급 몬스터거든요? 진흙 장난감이 아니라고!’
울컥한 시늉부터 하며 대꾸하는 투란이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자세를 바로 해 앉으면서 바닥에 흘려내는 시커먼 잉크를 이미 보고 있었다.
―무슨 계획이야? 또 구경만 하라고? 미리 말해주지 않으면 내가 중간에 전혀 돕지 못하는 거 알지?
‘어차피 윌 라이트는 억눌린 채잖아. 당장은 아무것도 못 하잖아. 그러니까 대기하면서 상황파악 계속하라고. 정령수 애들 맡길 테니까, 상황 보다가 할 수 있는 일 있으면…… 바로 저지르지 말고 말부터 해라! 나 놀래면 잘 풀리던 일이 엉망진창 될 수 있어!’
―흐흠, 잘 보고 있도록 하지.
왠지 장난칠 궁리하는 악동 같은 대답에 투란의 낯 한구석이 구겨졌다.
마치 평소 투란을 흉내 내는 듯한 말투라니.
이거 어딘가 입장이 바뀐 모양이잖은가.
‘나 그런 적 없잖아!’
울컥한 말을 하면서도 투란의 몸은 계속해서 시커먼 잉크를 흘려냈고, 바닥을 덮는 잉크의 시커먼 빛깔 사이로 붉은 금이 가며 땅이 갈라지고 있었다. 동굴의 바닥을 덮는 시커먼 결정의 광채 속에서 붉은 금은 한층 더 선명해지며 뜨거움을 머금기 시작했다.
느리게, 분명하게 마그마 로드가 동굴의 통로를 채우며 깊이 파고들며 지반(地盤)을 침식(浸蝕)하고 있었다.
마치 이 암벽산 전체를 잡아먹겠다는 듯!
혹은 암벽산 아래를 용암의 호수로 만들겠다는 듯!
―야, 그대로 계속하면 여기 통째로 무너져! 범위를 줄여! 오러 몽거랑 그 주변만 장악해도 충분하잖아!
드라고니아가 가만히 구경하다가 지형변화하는 꼴은 못 보겠다는 듯이 투란에게 사납게 외쳤다.
투란은 이를 한 귀로 흘려넘기는 듯, 냉정하게 다른 것을 묻고 있었다.
‘저 아래로 프로브 보낼 수 있어? 아직 안 되나?’
―될 리가 있냐. 땅 아래쪽으로 사슬의 역장이 더 강하잖아.
조금 누그러졌지만 툴툴거리는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대답했다.
투란은 조금 더 자신의 의지를 가다듬고 다시 묻는다.
‘지금은?’
드라고니아는 그 물음과 함께 윌 라이트의 마력이 강렬해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드라코눔의 기본이면서 궁극이라는 윌 라이트, 의지를 바탕으로 삼는 비전의 마력이 거대한 의지를 품고 그 강대함을 자랑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