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4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42)
그르르…….
오러 몽거의 목젖이 울렸다.
눈을 휘둥그렇게 뜬 맹수처럼, 사나운 몬스터답지 않게 당황한 것처럼.
늘 비좁아 보이던 통로, 그 통로를 완전히 봉해버리듯이 꽉 채우면서 몰려 들어온 시뻘건 용암의 광채는 오러 몽거의 주변을 순식간에 채우는 섬뜩한 뜨거움을 무럭무럭 뿜어냈다.
이어진 용암의 분류(奔流)는 바닥을, 벽을, 천장을 따라 거침없이 질주하며 오러 몽거의 전후(前後), 좌우(左右)에다가 상하(上下)까지 붉게 물들이며 용암의 방울을 뚝뚝 떨구거나 퐁퐁 튕겨내기도 했다.
보통 물이 흘러 아래부터 차분히 채워 위로 올라가는 것과는 완연히 다른 광경.
오러 몽거에게 한 톨의 생각이 없다 하더라도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몰아닥치는 뜨거움을 통해 알게 해주는 광경이기도 했다.
찰캉!
어떻게 평소처럼 손짓을 해서 ‘힘’을 방출해 밀려오는 붉은 광채의 용암을 밀어내려 해봤지만, 오러 몽거의 손짓에 반응한 사슬도 협력하듯 격하게 용암 위를 죽죽 긋는 파문을 일으켰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그저 첩첩이 쌓인 용암의 벽, 바닥, 천장에 오러 몽거가 사슬에 묶인 채로 덩그러니 놓인 꼴이 되었을 뿐이었다.
이를 자신을 얕보는 것이라 느꼈던 듯, 오러 몽거가 포효했다.
그르륵! 크워어어어엉!
목젖이 아니라 온몸을 울리는 듯한 격렬한 포효의 힘이 용암 위에 새로운 파문을 일으켰다. 빙글빙글 돌면서 사방을 헤집고 어디론가 밀고 나갈 구석이 없는가를 헤매는 듯했지만, 포효가 일으킨 힘은 사슬의 역장이 그랬듯이 그대로 사라지는 파문으로 끝맺을 뿐이었다.
괄괄! 촤악!
용암의 막대기가 오러 몽거의 주변을 종횡하며 뻗었다.
오러 몽거에게는 낯선, 그러나 인간에게는 다양한 형태로 낯익은 쇠창살의 형태.
용암으로 된 창살 속에서 오러 몽거가 두 팔을 휘두르고 두 발을 굴렀다.
움직일 수 있는 최대의 범위를 휘젓는 셈이었고, 오러 몽거의 이런 동작은 곧바로 사슬의 역장이 반응하게 했다.
원래 역장의 반응은 오러 몽거를 억제하는 것이나, 지금은 그 흔들림에 오러 몽거를 가두는 용암 우리, 창살까지 휘말려들 수밖에 없는 상황.
이에 드라고니아는 아낌없이 감탄했다.
―학습한 결과로군. 자신에게 반응하는 역장을 역이용해서 침입자와 싸운다니…… 이 녀석이 이런 걸 습득할 정도면 대체 얼마나 오래 여기 묶여 있었던 건지 짐작도 못 하겠군.
‘왜? 뭘 잘 못 배워?’
―본능으로 할 줄 아는 것 말고는 다른 뭐든 습득이 아예 불가능한 몬스터, 자기완결적인 습성과 완성형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오러의 결정체이니까.
‘뭔 말이야.’
―넌 왜 갑자기 한눈파는데? 빨리 이 녀석 정리하라고!
‘아, 다 끝나가…….’
콰드드득!
오러 몽거는 이를 드러내고 눈을 부릅떴다.
조금 더 밝은 부분이 눈동자를 대신하는 눈알이 이리저리 굴렀지만 이미 머리를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를 확인했을 뿐이었다. 거기에 더해 사슬에 묶였어도 어느 정도는 자유롭게 움직이던 팔다리, 손발이 완전히 봉쇄된 것을 느낀 오러 몽거가 다시 포효하려 했다.
하나 목구멍을 깊숙이 채워 들어온 뜨거운 것이 그 또한 막아버렸다.
오러 몽거의 목구멍을 채운 것은 꿀렁꿀렁하는 뜨거움이었고, 팔다리부터 손발을 꿰고 있는 것은 새카맣게 번들거리면서 빙글빙글 도는 꼬챙이였다.
어느 것이나 오러 몽거에게는 느닷없을 뿐이었고, 이런 상황이 어떻게 이뤄진 것인가를 납득하고 있을 여유도 없었다. 그저 온몸의 힘을 폭발시키듯 뿜어내며 사슬을 흔들었던 것처럼 새로 자신을 꿰고 있는 것을 흔들고 부수려 할 뿐!
본능적이기만 한 오러 몽거의 반항, 반발과 함께 묵직하게 휘둘러지는 오러의 소용돌이와 사슬의 역장이 뒤틀리며 흘려내는 막대한 압력이 거세게 용암의 창살과 벽을 두들겼지만, 그저 움푹움푹 패이며 번져가다 지워져 버리는 파문이 스쳐갈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오러 몽거의 가슴을 가르고 시커먼 꼬챙이 다발이 한가득 밀려들었다. 가죽을 가르고 배 속을 헤집으며 파고든 꼬챙이 다발은 어느 틈엔가 촉수처럼 꿈틀거렸고 뭉쳐 꼬이며 제대로 된 손아귀를 이루며 오러 몽거의 심장을 향해 움직였다.
우우웅, 콰직. 그워어엉!
와득, 콰륵.
느닷없이 오러 몽거의 목을 울리는 진동과 함께 목 줄기가 찢어졌고 포효가 재림(再臨)하듯 터졌다. 그리고 오러 몽거의 몸을 꿰고 있던 시커먼 꼬챙이, 막대가 으스러지는 듯한 소리가 세게 터져나왔다. 하지만 정작 부러지고 끊어진 것은 없었다. 그저 뒤틀리고 구부러졌을 뿐이었다. 때문에 오러 몽거는 체내의 힘을 방출한 목적을 이루지 못했고, 속으로 파고든 시커먼 손이 우악스럽게 심장을 움켜쥐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치이익.
갈라진 가슴 속에서 달궈진 쇠와 차가운 물이 만나 일으키는 음향이 흘러나왔다.
오러 몽거가 온몸을 흔들며 부들거리다가 고개를 떨구고 팔다리를 늘어뜨리면서 움직임을 잃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오러 몽거의 가슴을 파고들었던 꼬챙이 다발이 손아귀의 형상을 드러내며 빠져나왔다. 그 손에 꽉 움켜쥐어진 채로 발그레 달아오른 것은 분명한 오러 몽거의 심장!
‘좋아, 이쪽은 끝! 삼키면 돼!’
―이쪽도 끝나간다. 너무 깊었어.
투란이 스스로에게 중얼거림과 동시에 또 다른 ‘투란’의 대답이 있었다.
그 ‘투란’이 한 일은…….
‘봉인의 금쇄’는 땅에서 여러 가닥으로 튀어나와 오러 몽거를 묶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오러 몽거의 한쪽 발목에 채워진 사슬이 땅속을 들락이며 여러 가닥으로 보였을 뿐이었다.
한 가닥의 사슬이 아주 길게 늘어져 오러 몽거를 묶고 추가 달린 쪽이 땅속 깊이 파고든 상태, 그 사슬을 땅속에서 파내기 위해서는 위에서 마구 당겨 추까지 끌어올리거나 추가 박힌 곳까지 파내고 추부터 꺼내서 돌돌 말아 꺼내거나.
어느 쪽이든 간에 투란에게는 꽤 시간이 걸릴 것처럼 생각되었다.
웬만큼 깊이 박히지 않으면 대지의 맥동에 닿지도 않는다 했고, 오러 몽거의 괴력에 땅이 갈아 엎어지면서 바로 튀어나왔을 테니까.
그래도 깊어 봐야 수십 미터, 백 미터까지는 들어가지 않겠거니 생각했었다.
역장에 의해 강화된 땅이니 그 깊이가 굳이 백 미터에 닿을 필요도 없을 테고.
이런 투란의 생각을 안일하다고 비웃기라도 하는 듯, 사슬은 구불구불 땅밑을 헤매는 뱀처럼 파고들며 백 미터보다 더 아래로 잠겨든 채였다.
그 깊은 곳에서조차 역장을 가득 머금은 채로!
상황이 그쯤 되고 나니 투란도 오기가 생겨서 적당히 깊이를 확인하고 괴력으로 당겨 빼내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마그마 로드로 사슬의 추까지 파고들어 가서 꺼내려 했다.
그러기 위해 투란은 다중사고를 이용해서 ‘투란’을 움직였다.
그렇게 해서 오러 몽거를 제압하기 위해 온갖 재주를 부리는 와중에 지하 수백 미터를 파고든 사슬의 끝자락을 찾기 위한 마그마 로드의 뜨거운 여정이 시작된 것.
한데 이 오기로 인한 선택이 투란에게 꽤 색다른 경험을 누리게 해줬으니…….
처음에는 사슬을 따라서, 그 역장으로 바위처럼 강화된 지면을 용암으로 구겨 삼키면서 파고들었다. 마그마 로드의 결정질이 지닌 경도(硬度)라면 못 뚫을 리가 없을 듯해서 당연하게, 거의 본능적으로 시작한 굴착(掘鑿)인 셈이었다.
이에 대해 역장은 멀뚱거리며 버티지 않고 파고드는 마그마 로드의 결정질, 송곳처럼 날카로운 결정형상을 움켜쥐고 고정시키는 성질의 힘을 발휘해서 버텼다. 강화된 지면만으로 얼마든지 찔러보라 버틴 것과는 다른 역동적인 대응을 한 셈이었다. 마치 변화하는 상황, 덤벼오는 적에 대해 관찰하고 대책을 마련할 줄 아는 것처럼.
때문에 ‘투란’도 더욱 열심히 생각을 하며 대처를 해야 했다.
우선은 마그마 로드의 형상 속에서 스테노아의 별빛뿔을 팍팍 뿜어내서 강화된 지질(地質)을 관통하는 구멍을 내는 것부터, 그 구멍 속에 잔뜩 끓어오른 용암을 밀어 넣고 촉수처럼 뒤틀며 더 깊이 파고들게 하는 것까지.
거기에 더욱 역동적으로 힘의 성질, 방향을 변화시켜 사슬의 역장이 대응했고 ‘투란’도 한층 더 격렬하게 다양한 방식을 시도해서 굴착과 추적을 이어나갔다.
그런 과정에서 사슬이 구불거리고 깊은 지저(地底)를 헤매는 모양을 흉내 내듯, 마그마 로드도 길게 파 들어가던 형태를 보다 효율적으로 갖추려 노력하다 보니 어느 틈엔가 길고 굵직한 채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길고 긴 몸통의 모양을 갖췄다.
어떻게 봐도 마그마가 계속해서 머리를 만들고 키워 밀어 넣는 뱀의 몰골을 한 셈이었다. 그런 채로 별빛뿔도 번쩍번쩍하며 빛이 닿지 않는, 닿을 리가 없는 지질을 깨고 파고들어 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마그마의 뱀, 머리 여럿 달린 뱀이 영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부터 사슬을 추적하며 지저를 파고드는 속도가 엄청나게 상승했다.
‘투란’은 잠깐 자신이 익숙해진 것인가 여겼지만, 금방 그 뱀의 움직임이 몬스터의 본능이며 머리가 여럿이든 몸이 수십 가닥이든 일관성 있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살펴보니, 그 움직임의 근원은 메듀시아였다.
드라고니아에게 들을 때만 해도 그냥 그러려니 했던 능력, ‘메타모픽 서펜트’.
한 마리 뱀이 아니라 무리 지은 뱀의 형상을 기반으로 자유롭게 변화시키는 능력.
메듀시아의 본체가 통째로 뱀의 무리 형상이 되기까지 했던 그 능력이 마그마 로드의 형상을 바탕으로 구현(具現)되어 사슬의 역장을 갉아먹고 파고드는 속도를 압도적으로 상승시킨 것이다.
덕분에 거의 오백여 미터를 넘는 사슬이, 삼백 수십 미터를 구불거리며 파고들어 심어놓은 추에 도달하는 시간이 오러 몽거를 제압하고 심장을 뽑아낼 때보다 조금 늦는 정도에 이르렀다.
하지만 오러 몽거의 심장과 멈춰버린 몸뚱이가 몬스터 에센스를 잃고 투명하게 바스러져 사라지는 동안에도 마그마의 뱀은 추에 닿지 못했다.
‘봉인의 금쇄’ 한 끝자락인 추의 주변에 생성된 역장, 그것이 끌어모으고 움켜쥔 지질의 밀도(密度)가 극단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지간한 암석류와는 비견할 수 없는, 아다만티어를 겪어본 투란에게는 역장만으로 아다만티어가 생성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똘똘 뭉쳐 있었다.
대지의 맥동을 이용해 역장이 시작되는 부분인 탓이었을까?
그 원인이 뭔가, 어떻게 이런 상태를 이뤘는가를 따지기 전에 ‘투란’은 움직였다.
압도적인 밀도를 갖추고 추를 감싼 부분이 겨우 몇 미터의 영역이었기 때문이었다.
수십 미터라든가 수백 미터라면 어찌해볼 여지가 없어 끙끙거렸겠지만 몇 미터짜리 커다란 덩어리라면 삼백 수십 미터를 파 내려와 거대해진 마그마의 뱀에게는 그냥 한 입 거리일 뿐이었다.
게다가 마그마의 뱀머리는 한둘이 아니었고, 여러 입이 동시에 전방위에서 입을 열고 깨물며 겹쳐질 수도 있다!
쿠우우우, 콰앗!
‘으흠?’
투란은 ‘투란’이 마무리 짓는 과정을 공유하다가 ‘봉인의 사슬’의 또 다른 끝자락, 사슬의 시작이며 오러 몽거를 묶는 근본이 되었던 둥그런 원형의 금색 고리를 봐야 했다. 저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에 호응한 듯, 이 금색 고리가 조금 심상찮게 진동하는가 싶더니, 그 주변 역장이 기묘한 파동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이라면 오러 몽거의 괴력과 동반해서 마그마 로드의 창살과 벽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었을 텐데 오러 몽거가 바스러져 사라진 지금은 사슬이 멋대로 꼬이며 늘어지는 중이었고, 이와 다르게 원형의 금색 고리는 공중에 뜬 채로 파동의 중심을 드러내며 흡인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당장 용암 줄기가 출렁거리며 점점이 방울져서 끌려 들어갔고, 고리의 중심에 갇힌 막대모양을 만들면서…… 고리를 관통하는 막대모양이 되어 빙빙 맴돌고 있었다.
이 느닷없는 상황변화에 투란은 오러 몽거의 정수를 정리하거나 통찰할 겨를이 없었다. 그냥 문장의 풍경 속에서 보이드의 껍질에 심장과 몸통을 따로 나눠 돌돌 말아놓고 이 변화를 주시해야 했다.
‘이거 뭐야? 왜 이러는 거야?’
일단 이 자리에서 얻을 수 없는 정보라도 아는 것 있나 물었지만, 드라고니아도 곤혹스럽다는 듯 대꾸한다.
―봉인 대상이 사라진 다음이니 기능을 정지할 줄 알았는데…… 금색의 마도사가 다른 지령이라도 심어놓은 때문일까? 짐작할 수가 없는데? 어쨌든 방심하지 말고 조심해.
어찌 보면 들으나 마나 한 대답!
저 아래의 상황은 착착 진행되는 듯한데, 이 위에서는 짐작할 수 없는 기괴한 변화가 일어나는 중이라니.
투란은 눈살을 찌푸리고 원형의 금색고리를 노려봤다.
방울방울 모으던 용암을 이제는 길쭉하게 늘어진 실가닥처럼 끌어들여 꽉꽉 눌러 담은 막대를 더 짙고 단단한 모양을 꾸미면서 더욱 맹렬하게 빙빙 돌리는 금색 고리…… 표면의 무늬로 보면 나뭇잎을 말아 만든 것처럼 보이는 이 고리에 대체 무슨 마법이 담겨 있기에 몬스터의 형상을 끌어당기는가?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