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4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43)
우웅, 쿠우우웅.
거대한 울림은 투란의 생각을 멈추게 했다.
역장이 그 힘이 닿는 모든 범위를 한꺼번에 뒤흔드는 듯했고, 덕분에 귓구멍이 울린 것인지 동굴과 암벽이 통째로 진동한 탓에 소리가 난 것인지 알 수 없는 굉음이 짜릿하게 투란의 뇌리를 찔렀다.
거기에 원형의 금색 고리는 더욱 맹렬하게 막대를 회전시키며 실패가 실가닥을 휘감듯이 용암의 벽과 창살을 허물고 끌어당기며 응축시키고 있었다.
용암의 막대, 거기에 흘러가는 용암의 실가닥.
이대로라면 주변의 마그마 형상은 몽땅 고리 안에 갇힌 막대 속에 흘러 들어가 버릴 듯한 분위기였다. 막대 크기와 용암 용량의 격차를 무시한 채로!
그에 대해 투란은 반사적으로 의지를 움직였다.
용암 막대로부터 굵직한 손가락이 뻗어나오면서 고리를 움켜잡았다.
휘감기든, 빙빙 돌든, 빳빳하게 뻗었든 간에 여전히 마그마 로드의 형상은 투란의 뜻에 반응한 것이다.
그래도 막대는 계속 돌고, 고리는 막대만 돌릴 뿐인지라 손가락의 형태가 닿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이 하던 짓을 계속했다.
그래서 투란은 용암막대로부터 두 손의 형상을 보다 분명하게 끌어내서 열 손가락으로 금색 고리를 꽉 움켜쥐었다. 손목 언저리는 여전히 막대에 휘말려 빙빙 돌고 있기는 했지만 강렬한 의지를 바탕으로 이뤄진 용암 손아귀는 그 흡인력을 무시한 채로 금색 고리를 짓누르며 압력을 가하는데…….
―으엇!
‘어?’
―응? 뭐냐? 왜?
격변(激變)이 일어나고 있었다.
투란이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는 격렬한 그 변화는 ‘봉인의 금쇄’의 다른 한쪽, 추의 주변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아다만티어를 떠올릴 정도로 단단히 뭉쳐 있던 몇 미터의 영역이 한순간에 붕괴하며 마그마 뱀의 겹쳐진 머리, 입안에 으깨졌다. 그리고 마그마 뱀의 형상이 그대로 뜨거움을 잃고 굳어져버렸다.
‘투란’이 놀란 순간이었다.
동시에 투란은 저 아래에서 자신의 마력,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이 맹렬히 뭉치며 치솟는 것을 느꼈다. 몬스터의 형상을 거두고 해제하는 것이 아니라 용암의 형질을 방치한 채로 고유마력만이 따로 뭉쳐 치솟는 기괴함, 무슨 일인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낯선 상황이었다.
―망할…… 이게 이렇게 되는 건가?
‘투란’이 흐릿해지며 남긴 말을 듣고 투란은 오싹함을 느꼈다.
고유마력이 빠르게 뭉치면서 몬스터의 형상조차 강제로 벗어던지듯이 내버리고 치솟는 바람에 다중사고로 유지하던 의식조차 해체당하다니!
‘악마의 심장’을 바탕으로 형성한 의식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하기는 한데, 고유마력이 대체 어째서 투란의 의도에서 벗어나 따로 뭉쳐 치솟는가 하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기괴함에 호응하듯, 열심히 두 손 모아 짓누르고 있는 금색 고리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우득, 촤아악.
든든했던 마그마 로드의 벽이 뒤틀렸고 뜨겁게 달아오른 용암의 형상이 막대를 중심으로 격렬하게 흘러들며 강제로 사람의 형체를 꾸미기 시작했다.
‘이건 또 무슨……!’
투란은 새삼 놀랄 수밖에 없었다.
‘봉인의 금쇄’가 고유마력을 강제로 흡수해서 자신에게 사람의 형상을 강요하다니…… 이건 마치 몬스터 로드를 억제한다는 신전의 도구 같잖은가.
거기 걸려서 문장을 봉쇄당한 다음에 손발이 잘려나간 몬스터 로드는 평생 불구, 병신 몰골로 살아야 하니까 절대로 피해야 한다는 상황!
이에 대한 대책은 키린에게 확실히 배운 투란이었기에 바로 오러를 강화하며 고유마력의 방출을 제어하려는 순간…….
치잉.
금색 고리와 이어진 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짧은 소리를 냈다.
반사적으로 상황을 보기 위해 투란이 잠깐 멈칫했다.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순간, 고리를 잡은 용암의 손아귀가 흐물거리며 흘러내릴 뻔했다.
‘앗, 실수!’
다시 집중하며 손아귀를 아예 강력하고 튼튼한 검은 결정으로 변화시키면서 그 머뭇거림을 단숨에 투란이 반성하니, 드라고니아가 외쳤다.
―잘 봐! 느껴봐, 마력의 흐름을!
덕분에 투란도 사슬이 늘어져 있다가 갑자기 팽팽하게 된 것이라기보다, 사슬의 마디와 마디가 겹쳐지고 뭉쳐져서 길이가 확 줄어든 채로 땅속으로 파고드는 한 가닥만 남겨진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금색의 사슬이 마치 금빛 물방울이라서 여러 방울이 하나의 방울로 뭉치면서 부피조차 늘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서도 쇳소리를 내고 팽팽하게 당겨지는 중이니, 한층 더 괴기하잖은가.
그 사슬로부터 요동치며 흘러와 금색 고리를 채우고 투란의 손가락을 타고 다시 몸 안으로, 문장 속으로 휘몰아쳐 파고드는 마력.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이었고, 다름 아닌 투란 자신의 마력이었다.
피어오른 오러가 자연스럽게 그 마력을 인도했고, 아무 탈 없다는 것을 확인하듯 부드럽게 투란의 몸에 깃들면서 방어의 형세를 갖춰나갔다.
이렇게 오러 가드가 이뤄지거나 말거나 ‘봉인의 금쇄’는 칭칭거리고 찰랑거리면서 땅속 깊은 곳으로부터 고유마력의 뭉치를 끌어당기며 맹렬하게 압축되는 낌새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투란, 지금 역장은 너의 마력을 기반으로 하는 거야!
드라고니아가 다시 외쳤다.
‘어? 뭐? 내 마력?’
흠칫하면서도 투란은 아까와 다른 관점으로 자신의 오러에 집중했다.
‘봉인의 금쇄’에서 요동치며 뭉쳐가는 고유마력, 투란의 오러는 이를 곧바로 받아들이고 제어하는 열쇠였다. 집중력을 잃지 않으면 사슬 안에 말려 들어간 고유마력을 다시 끌어내서 몬스터의 형상을 유지할 수 있다 여긴 것인데…….
휘이.
가벼운 휘파람 같은 울림이 투란의 주변을 울렸다.
바람을 가르는 듯한 작은 흔들림, 사슬이 쇳소리를 대신해서 낸 묘한 소리였다.
그 소리와 함께 투란은 온몸을 울리며 파고드는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금색의 고리가 흘려내는 투란 자신의 고유마력이었다.
‘이게 뭐야?’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한 말을 되새겨봤지만, 역시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봉인의 금쇄’가 대체 왜 투란의 고유마력을 괄괄 쏟아내면서 살갗에 스며들게 하는가. 굳이 따지려 한다면 저 아래에서 응축되어 치솟은 마력을 고리 쪽의 사슬이 방출하며 형성한 새로운 역장, 이 역장이 투란의 오러가 이끄는 바에 따라서 다시 회수되는 것이기는 했다.
어떻게 ‘봉인의 금쇄’ 휘둘리고 왜 역장을 형성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투란 자신의 고유마력임을 분명히 드러내는 셈이었다.
한데 그렇게 투란의 오러, 그 마음가짐을 따르는 중이라면 몬스터의 형상이 사라지며 사람의 형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또 무슨 까닭인가!
전혀 자신에게 해를 끼칠 리가 없는 고유마력이었고, 실제로 몸과 마음 어디에도 아무 피해가 없기는 했다. 문제는 몬스터의 형상을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을 싹 무시한 채로 사람의 형상을 투란에게 강요한다는 것.
몬스터 로드로서 결코 좋게 받아들일 수 없는 능력의 제약이다.
―정신 차려! 집중해라!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손이 마그마 로드의 형상을 잃고 사람의 살갗을 드러내려는 것을 윌 라이트의 마력으로 짚어주면서 외쳤다. 용암의 뜨거움이 살갗을 곧바로 익혀버릴 듯한 상황이었고, 오러 가드가 조금만 허술했어도 피가 증발하고 뼈까지 바로 뜨겁게 익어버릴 뻔한 순간이었다.
‘대지의 맥동은 어디 가고 내 힘인 거야?’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의문을 정리한 다음, 집중하는 채로 투란이 물었다.
머뭇거림 없이 드라고니아가 바로 대답한다.
―딱 한 가지 경우밖에 모르겠다. 구속 대상인 오러 몽거가 사라졌고, 금쇄를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는 고리에 네 손이 닿았잖아. 그 때문에 너를 새로운 주인으로 삼으려는 것 아닌가 싶다. 원래 주인인 금색의 마도사도 없어졌으니까. 걸리적거리는 것이 전혀 없이 새 주인을 고르는 과정인가 싶어. 지금 현상은 그 과정에서 거쳐야 하는 마도구의 의례(儀禮)이고. 달리 생각나는 것은 없어. 어쨌든 방심하지 말고, 오러 방어를 철저히 하고…… 마법 방어는 내가 맡을 테니까, 최대한 정신을 집중해!
‘악마의 심장’이 사람의 형상이 도드라지면서 해체되는 중이었기에 다중사고가 방해받고 있던 참인지라 투란도 다른 선택을 고려하고 고르기가 곤란했다. 지금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고 돌발적으로 닥쳐올지 모를 위험한 상황에 대비하는 수밖에 없었다.
찰캉.
바닥에서 튀어나온 추, 사슬의 마지막 부분도 결국 완전히 융합해서 마디가 달랑 하나뿐인…… 그저 길쭉하게 늘려놓은 고리 하나만 남은 꼴이 되었다.
그런데 이 아담한 크기는 뭔가?
모양새는 일단 그대로라고 우길 수는 있었다.
세모꼴의 추, 금색의 원형 고리가 양 끝이 되고 그 중간을 길쭉한 고리 하나가 차지한 묘한 몰골, 세모꼴 추와 원형의 고리에서 흘러나온 금색의 끈이 타원형의 사슬 마디를 하나를 감고 있는 형태가 여전하긴 했으니까.
하지만 조금 전까지 수백 미터의 지저를 파고들며 수백 미터의 길이를 자랑하던 사슬, 그 사슬을 이끌고 지저 깊은 곳에 묻혀 있던 추, 구속 대상이었던 오러 몽거에게 채워져 있던 굵고 커다랗던 원형의 고리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겨우 얄팍해진 투란의 팔목에 끼워질까 말까 하는 원형 고리, 십 센티를 넘을까 말까 애매한 사슬 마디, 그보다 더 작아 보이는 세모꼴의 추라니!
‘쪼그라들어도 이렇게 쪼그라드나?’
투란은 아무리 마도구라도 이렇게 변모할 수 있는가, 도무지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어떤 면에서는 납득하기 싫다고 외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금색의 마도구, ‘봉인의 금쇄’가 지금 형성하는 역장은 투란에게 납득하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어째서인가 드라고니아도 설득하려는 듯한 말을 하고 있었다.
―음…… 몬스터 로드가 몬스터의 힘으로 남긴 잔해에서 고유마력을 이렇게 깔끔하게 거둬들일 수 있다니…… 몬스터와 무관한 형체(形體)를 남기면서 이런 결과가 나올 수도 있군. 이런 얘기 들은 적 있냐, 투란?
듣다 보니 투란에게는 어딘가 두서없이 당황하는 드라고니아의 낌새가 느껴졌다.
하지만 투란은 드라고니아를 놀릴 수가 없었다. 당황하지 말라고 으스대며 탓할 수도 없었다.
투란 스스로 이런 결과를 상상한 적도, 누군가에게 들은 적도 없으니까.
‘없어, 전혀.’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이 거둬지면, 몬스터의 형상이 해체된다.
마그마 로드의 형상은 투란의 고유마력이 ‘봉인의 금쇄’에 강제로 수확당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해체되지 못했다.
동굴을 채우고, 바닥을 뚫고 내려간 용암의 형체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한데 그 용암, 마그마는 마그마 로드가 아니었다.
마그마 로드의 특성, 자취 따위는 전혀 없이 순수한 고열(高熱)에 녹았다가 서서히 식어가는 용암일 뿐이었다. 그 와중에 길게 남겨진 사슬의 자취를 따라서 흐르는 것 같기도 했고.
고유마력의 단절, 강제적인 분리였으니 어느 정도는 순수한 몬스터의 특성을 드러내서 잠시라도 날뛰지 않을까 했었다.
그러지 않았으니 다행이라 여기는 것이 당연했지만, 투란은 전혀 잘된 일이란 기분을 느낄 수가 없었다.
이토록 깔끔하게 몬스터 로드의 능력, 몬스터의 형상을 제압하는 마도구라니…….
‘내 천칭이 이렇게 선명하게 가슴팍에 도드라진 꼴도 상상 못 했네.’
최초의 형태, 천칭의 문장이 새겨질 때의 모양과는 미묘하게 달라진 ‘천칭’의 문장을 느끼면서 투란은 툴툴거렸다. 등과 허리에도 드러난 몬스터 엠블럼, 이렇게 그 선명한 형태를 드러낸 적이 대체 얼마 만인가.
도대체 이 마도구, 대마도사가 만들어서 금색의 마도사에게 넘겨줬다는 ‘봉인의 금쇄’는 어째서 투란에게 이런 몰골을 강요하는 것인가?
의문 속에서 자신을 점검하며 투란은 찬찬히 ‘봉인의 금쇄’, 아티팩트를 살펴봤다.
전체 길이가 대략 삼십 센티 안팎으로 축소된 금색의 마도구가 금방 그런 투란의 마음을 알겠다는 듯이 품고 있는 마력을 흘려내며 역장에 묘한 파동을 일으켰다.
투란은 그 순간에 ‘알았다’.
‘마스터 코드 각인이 끝났…… 어? 이런 걸 내가 왜 아는 거지?’
드라고니아도 금방 무슨 일인가 파악했다.
―로어로구만. 새 주인이 우연히 손에 넣더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한 거야. 원래 주인을 쳐죽인 경우까지 고려했을 리는 없겠지만…….
‘젠장할! 이딴 걸 왜 만든 거야!’
알고 나니 한층 더 울컥한 기분이 된 투란이 으르렁거렸다.
‘봉인의 금쇄’는 이런 새 주인의 기분 따위는 알 바 아니란 듯, 고요하게 투란을 감싸는 고유마력의 역장을 촘촘히 다듬고 있었다. 기분과 상관없이 언제라도 이 마력의 영역을 주인이 자유롭게 쓸 수 있게 준비하는 셈이었다.
―야, 나한테도 좀 알려줘 봐. 여태껏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나도 좀 알자.
드라고니아가 로어 마법으로 전승된 ‘봉인의 금쇄’ 사용법에 대해 묻고 있었다.
왠지 이 또한 투란에게는 놀리는 것처럼 들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