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4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44)
몬스터 엠블럼, ‘천칭’이 고고(孤高)한 분위기를 품은 채 앞가슴과 등 쪽의 어깨, 허리 언저리에 올망졸망한 무늬를 새까맣게 드러낸 탓인 듯 투란의 몬스터는 어떤 형상도 갖추지 못했다. 고유마력이 도도하게 몸 안팎을 드나드는 상태였으니 당장 마음먹기만 하면 바로 몬스터의 형상을 갖춰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는 셈이었다.
아직 ‘봉인의 금쇄’가 온전히 투란의 제어를 받지 않는 탓이었다.
투란이 이를 제대로 다뤄야 이 역장은 몬스터 엠블럼이 다시 그 위용을 드러내게 하겠노라고 버티는 상황.
마스터 코드의 각인을 통해 분명히 투란을 주인으로 삼았으면서도 아직 거쳐야 할 의례가 남았다고 우기는 셈이고, 남은 과정을 완전히 마치라고 강요하는 셈이었다.
그럼에도 ‘봉인의 금쇄’가 쭉쭉 들이마시고 뿜어내는 마력의 영역은 도도하게 그 역장의 형세를 과시하며 투란을 감싼 꼴이었으니, 남은 과정을 마치는 사이에 주인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는 자태를 자랑하는 짓이었다.
―이건 어떻게 할 수가 없군. 의례를 끝내는 수밖에 없어.
드라고니아가 투란으로부터 ‘봉인의 금쇄’가 전한 지식을 공유받아 검토하고는 질렸다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그 말투에 어째 이런 상황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란 낌새가 있었기에 투란은 바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야? 뭔데? 너, 이런 거 겪어본 적 있어? 직접 겪은 거야, 남이 겪는 걸 본 거야? 아무튼 있는 거지? 대체 뭔데 그렇게 깔끔하게 마저 끝내란 거야?’
―카엘의 인증술식이란 거다. 대마도사의 고집? 아집? 아무튼 괴상한 버릇이라고 생각하는 게 편해. 단순히 마력만으로 주인을 각인시키는 것이 아니고 여러 단계의 기준점을 만들고 거기에 주인의 특성을 각인시켜놓는 거야. 말하자면…… 지금 너는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으로 첫 단계를 거쳤고, 훌륭하게 봉인의 역장을 형성시켰어. 그러니까 다음 단계로, 고유마력과 무관한 너만의 특성, 개성을 알려줄 차례야. 입맞춤을 하든 이빨로 깨물든, 손으로 문지르든 말이야. 아, 그렇게 네가 더해놓은 특징적인 동작은 너도 기억해야 해.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건데?’
투란은 살짝 당황해서 다시 물어야 했다.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 같은 타입의 문장일지라도 그 마력의 특성은 사람마다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이 마력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정체를 알 수 있다고 하는 것. 이런 점에서는 몬스터 로드가 마법사보다 더 특징적이고 개성적인 마력을 지녔다고 하잖던가. 너무 개성이 지나쳐서 다른 형질의 마법을 모조리 훼방 놓고 뭉갤 지경인 것이고.
그런 고유마력으로 자신을 기억한다면, 다른 어떤 증명이 필요할 리가 없었다.
한데 ‘봉인의 금쇄’는 그딴 거 알 바 아니란 듯, 투란에게 고유마력 이외의 어떤 것으로 새로운 각인을 박으라 강요한다!
―마력을 지닌 자가 마력을 잃을 경우라도,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거지. 투란, 따지지 말고 그냥 해.
뭔가 드라고니아도 잔뜩 마땅치 않아 하는데, 그럼에도 포기하면 편하다는 듯이 권하고 있었다.
덕분에 투란은 까닭 없는 짜증이 물컹물컹 배어 나오는 것을 느끼는 채로 ‘봉인의 금쇄’를 노려봤고, 괜히 치솟는 이 울화를 바탕으로 사나워지는 오러를 한층 더 강화한 채로 추와 고리에 집중시켰다.
이 와중에도 착실하게 키린에게 배운 대로 하니, 오러는 투란의 좋지 못한 기분을 정화했고 냉정하게 가라앉힌 채로 ‘봉인의 금쇄’를 탐색하듯 더듬어갔다. 덕분에 투란은 제멋대로 삼켜져 버렸던 고유마력이 어떤 경로를 통해 ‘봉인의 금쇄’에 각인되었는가를 알 수 있었다.
추의 끝, 세 면의 세모꼴이 모여 뭉친 꼭짓점으로부터 오러를 삼키며 추 안에 새겨진 기묘한 ‘힘’의 통로를 열어 놓으니, 오러는 그 기묘한 경로…… 투란에게는 수많은 사다리를 마구잡이로 토막 낸 다음에 원래 모양을 깔끔하게 지우겠다는 듯이 다시 엉망진창으로 이어붙여 뒤죽박죽인 그물 모양을 만들고 그 선을 통로로 삼은 듯한 괴상한 경로를 따라 오러가 밀고 들어갔고, 추의 내부에 구형(球形)으로 비워진 듯한 영역 안으로 스며갔다. 그 텅빈 구형은 그렇게 뭉친 오러를 가공해서 ‘힘’의 가닥을 실처럼 엮어 추의 바닥면, 정삼각형의 중심에 삼 분의 일만 돌출시킨 듯한 구형에 뚫린 세 구멍으로 뿜어냈다.
추의 안은 비어 있지만 밖으로는 돌출된 기묘한 구형에서 흘러나온 ‘힘’의 가닥은 금빛 실처럼 결정화된 채였다. 어떻게 ‘힘’을 물질형태로 변환시켰는지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 세 가닥의 금빛 실이 다시 한 점으로 모여 꼬이면서 밧줄처럼 끈을 이뤘고 그 끈이 하나 남은 사슬 마디 한편을 감고 묶은 채였다.
그렇게 해서 오러는 사슬 마디를 넘어서 추의 반대편인 금색의 고리로 넘어가는데…… 이 고리 쪽으로 흘려 넣는 오러를 통해 투란은 고리 안이 비어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고리가 나뭇잎을 감아 만든 듯한 형태임을 깨닫고 있었다.
고리의 한쪽, 추를 향한 아래쪽이라 할 부분에서 두 장의 잎이 고리로부터 독립한 듯이 살포시 뜬 채였고 그 두 잎의 끝줄기가 엮이며 이뤄진 실가닥 밧줄이 사슬 마디를 휘감아 묶고 있었다.
텅 빈 고리 안으로 흘러간 오러는 추로부터 전해져 오는 오러를 맞이하고 뒤섞어 다시 투란에게 돌려보는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슬 쪽으로 넘겨 추의 내부로 흘려 넣는 중이었다.
추와 고리, 마디는 양방향으로 투란이 흘려내는 오러를 삼키고 순환시키는 셈이었다. 그렇게 해서 두 번째 각인이 이뤄졌는데, 끝내고 나니 이 과정에서 투란은 자신이 이렇게나 복잡한 경로로 오러를 줄곧 움직였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뭔가 오러의 운용능력이 몇 배로 상승했다는 기분이 팍팍 치솟잖는가.
하지만 그에 대한 고마움보다 먼저 투란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거 괜히 금쇄의 주인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 골탕부터 먹여보겠다고 장난친 거 아냐?’
―아니, 두 번째 인증을 오러로 하겠다고 들이댄 네 녀석이 문제인 것 같은데?
드라고니아는 냉정하게 투란을 비판했다!
마치 그냥 혀로 핥든가 손으로 쓰다듬어도 되는 것을 뭔 짓을 한 거냐고 어이없어하는 듯!
‘시꺼! 다음은 너다!’
―뭐? 내가 무슨……?
어이없어 헛웃음이라도 흘릴 듯했던 드라고니아였지만 곧바로 투란의 의지를 불태우며 윌 라이트의 마력을 끌어올려 ‘봉인의 금쇄’에 밀어 넣는 짓을 알아차리고 하던 말을 흐리고 말았다.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이든 오러이든 상관하지 않았던 ‘봉인의 금쇄’는 드라코눔의 비전의 기반이 된다는 윌 라이트의 마력 또한 거침없이 삼키고 순환시킬 뿐이었다. 그 과정을 통해 투란은 새삼 놀라야 했으니, 금쇄가 오러를 순환시킬 때와 또 다른 경로를 형성시키고 있잖은가!
―어떤 형질, 특성의 힘이든 간에 억누르고 구속해서 봉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아티팩트잖아. 힘의 특성에 따라서 다른 처리방식을 쓰는 것이 맞아. 그나저나, 이런 식이면 투란 네가 마력이라든가 오러의 힘을 봉쇄당했을 때는 인증할 수가 없을 텐데?
‘뭔 소리야? 인증해놓으면 다음에 또 같은 짓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잖아.’
―음? 어라? 이게 뭐야, 한번 열면 계속 너한테는 열린 채라고? 아니, 그럼 굳이 이런 식으로 각인시킬 까닭이 없는데?
‘얌마! 아까 내가 한 말이 그 말이잖아! 어, 근데 이건 또 뭐야?’
드라고니아가 뭔가 자신이 아는 상식에서 벗어난 마법각인의 운영방식을 뒤늦게 알고 놀라는 사이, 투란은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정도로 축소된 금쇄가 새롭게 드러내는 기묘한 역장을 느끼며 어리둥절했다.
주변을 압도하는 역장과 다른 특성의 역장은 투란의 눈동자를, 손가락을, 살갗 속에서 흐르는 피를 핥는 듯한 묘한 흐름을 드러내더니 금방 사그라들어서 뭔 짓을 한 것인가 알 수가 없었으니까.
―어? 아, 그건…… 지문(指紋), 홍채(虹彩), 혈액 타입을 검사하고 기록한 거다.
‘뭐?’
―네가 인간이니까. 인간의 지문, 홍채, 혈액 타입…… 아마 유전계보(遺傳系譜)까지 작성했을 거야. 그런 부분이 인간에게 있어서 고유성(固有性)을 띤 특징이 된다니까. 우리 같은 경우에는 비늘 무늬, 날개 혈맥상(血脈狀), 치아(齒牙) 형태…… 아, 인간도 치아를 포함한 구강(口腔) 형태를 기록한다던가? 아무튼, 오감을 극대화한다면 파악할 수 있는 특징도 따로 각인해둔다는 거야.
‘왜?’
―마력이나 오러를 활용할 수 없을 때라도 손에 잡거나 몸에 닿는 것만으로도 주인을 특정 지어서 구속, 봉인의 활용이 가능하게 하려는 거지.
‘그러니까…… 마력으로 각인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거냐!’
―그게…… 으흠, 큼! 카엘의 괴벽(怪癖)이라고 하지. 괜히 쓸모없는 이상한 조치를 많이 해두거든. 뭐, 일단 우리는 인간의 특징을 그만큼 많이 알게 되었고 우리에게도 그만한 물리적 특성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지. 나쁜 거는 아냐.
‘그래, 대마도사쯤 되면 그 정도 미칠 수도 있는 거겠지.’
투란은 포기하기로 했다.
여기 와서 이 망할 놈의 금색 사슬이랑 소모한 시간과 힘이 아깝지만, 더 얽매이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애초에 투란이 얻고자 한 것, 만나서 반가웠던 것은 대마도사 카엘의 걸작인지 아닌지 모를 아티팩트 ‘봉인의 사슬’이 아니라 심장이 멀쩡한 오러 몽거였잖은가.
포기해서 편안한 기분으로 투란은 일단 로어 마법을 통해 주입된 ‘봉인의 금쇄’ 사용법 및 특징을 마음속에서 주욱 훑어내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갑작스러운 의문에 대해 로어 마법이 대답을 의식 속으로 푹푹 찔러주기는 하지만, 그렇게 얻은 부분적인 정보는 드라고니아도 오락가락하게 할 정도로 단편적일 뿐이었다. 그러니 일단 한 번이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각인을 마친 주인으로서 통찰해 보는 셈이었다.
하나 이 착실한 선택이 투란에게 새로운 의문을 선물해줬다.
‘왜 이걸 여기 두고 다닌 거지?’
‘봉인의 금쇄’는 크게는 팔찌나 목걸이, 작게는 반지나 귀걸이 수준까지 축소시켜서 갖고 다니기 쉬운 아티팩트였다. 애초에 그렇게 간편하게 갖고 다니라고 만들어진 마도구이면서도 강력한 몬스터, 오러 몽거까지 구속해서 한자리에 묶어둘 정도.
금색의 마도사 아겔페스가 갖고 다녔다면, 이 아티팩트를 가진 채로 투란과 만났더라면 오히려 투란이 구속되고 봉인될 가능성이 컸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든 압도적인 고유마력을 발산해서 주인을 갈아치우게 할 틈을 엿볼 수도 있기는 했겠지만, 금색의 마도사라면 눈앞에서 그런 짓을 하게 두지 않을 정도의 역량은 갖춘 자.
하지만 금색의 마도사는 이 ‘봉인의 금쇄’를 여기 두었고, 투란에게 압살당하고 말았다. 목숨을 지키고 목적을 이룰 강력한 도구를 스스로 떼어놓은 결과가 최악으로 나온 셈이잖은가.
이런 투란의 의문에 대해 드라고니아가 심드렁하니 말한다.
―여벌의 생명은 악마의 비술을 통해 이미 갖춰놨잖아. 굳이 카엘의 아티팩트를 들고 다니다가 자신이란 것을 티 내고 싶지 않았겠지. 상아탑에서 노리는 현상금 걸린 마법사인 탓에 금색의 마도사가 지닌 독특한 물품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진 채일 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굳이 그런 까닭이 아니더라도 여기에 자신의 목숨만큼 소중한 뭔가를 남겨뒀다면, 그래서 가장 믿을 만한 가디언을 세우고 싶은 생각이었다면, 그런 의도를 품었는데 오러 몽거를 발견했다면 금쇄를 여기 둘 까닭이 충분하지.
‘흠…… 금색의 마도사가 여기 소중한 것을 놔둔 거라고? 그 정도 되는 마법사라면 그냥 마법배낭 만들어서 들고 다녀도 될 것 같은데? 차라리 마법배낭이랑 이 금쇄를 갖고 다니는 편이 더 안전하지 않을까?’
―그거야 쫓기지 않을 때 이야기고, 황금매랑 얽힌 일 때문에 자신의 특징을 최대한 감추고 숨길 필요가 있었을걸. 어쩌면 카엘이 추적해올까 봐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말이야. 카엘이라면 자신이 만든 마도구가 어떻게 쓰이는가 세상 반대편에서도 파악할 수 있을 테니까, 오러 몽거를 제압해서 못 박아두는 일에 쓰인다면 쫓아오지 않을 거라 여기고 말이야.
‘복잡하네. 에잇, 알 게 뭐냐! 어차피 미친 마도사였는데!’
투란은 다시 한번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대마도사이든, 금칠한 마도사이든 투란 자신처럼 ‘평범한’ 사람에게는 제정신으로 보이는 짓보다는 미친 짓을 더 많이 하는 마법사일 뿐이니까!
그래서 투란은 ‘봉인의 금쇄’에 의지를 담았고, 더욱 작게 귀에 걸기 좋게 그 크기를 줄였다. 그 와중에 사슬 마디는 살짝 셋 정도로 늘려서 금색 고리와 추 사이의 간격을 넓히고 은근히 귀걸이 모양에 맞게 바꾸기도 했다.
그다음에 반지로 삼기에는 너무 작아진 금색 고리를 귀에 대니, 바로 고리의 한편에서 나뭇잎 끝이 일어서는 듯하며 귓불로 스며들었다. 살을 찢거나 꿰뚫지 않은 채로 귓불과 고리가 겹쳐지며 걸린 것이다.
동시에 주변 몇 미터를 여전히 꽉 채운 역장이 이제까지와는 다른 파동을 일으켰고, 이를 신호로 투란은 겨우 자신의 고유마력이 다시 자기 의지를 따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꽤 낯선 느낌은 그 순간에 투란의 마음에 스며왔다.
늘 몬스터의 형상과 함께하며 형상이 이뤄지는 범위를 넘어서지 않았던 고유마력, 그 힘이 몬스터의 형상을 벗어던지고 주변을 덮는 역장의 형태가 되어 있다는 것을 투란은 뒤늦게 실감한 것이다.
그리고 이 자각(自覺)은 바로 투란에게 새로운 시도를 끌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