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4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45)
‘가죽이 헝겊이 돼버렸네.’
언제나 벌거숭이 몰골을 피하기 위해서, 최소한 그랑츄도 가리는 곳은 가리자는 생각으로 반바지 형태를 꾸며놓은 가죽…… 그림모쓰와 뱀의 왕족 비늘을 섞은 검은 가죽이 지금은 아주 얄팍한 헝겊 쪼가리처럼 허리 아래 걸려 너덜거리는 것부터 투란은 확인했다.
그 주변을, 허공에 방출된 채로 맴도는 고유마력에 투란은 마음을 모았다.
손발을 움직이듯 고유마력이 움직이고 변화하며 반응했다.
곧바로 투란의 허리춤, 몇 센티 간격이었지만 몸에 닿지 않는 허공에서 시커먼 잉크빛이 맴돌며 축축하게 엉겼고 늘 챙겨놓는 반바지 형태를 칠하듯이 투란의 허리 아래에 채워 넣었다.
―응? 너, 지금 뭐 한 거야!
드라고니아가 바로 놀라 외쳤다.
그 외침을 듣는 순간, 투란은 ‘천칭’이 그 선명한 문양을 감추고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제대로 몬스터 엠블럼이 작용하고 있다는 증거를 확인한 셈이었고, 드라고니아에게 당당하게 대답할 근거로 삼을 만했다.
‘뭘 하긴, 늘 하던 대로…….’
―방출한 마력을 기반으로 허공에서 몬스터의 형상을 꾸미고 능력을 발휘한 적은 없었지! 형상을 갖춘 몬스터를 분리해서 움직이는 거랑 전혀 다른 거잖아! 순수하게 마력을 기반으로 의지를 심어 효과를 자아내는 것은…… 그건 마법사가 하는 짓이고 몬스터 로드에게는 가능하지 않은 일! 너, 방금 어떻게 한 거냐?
냉정하게, 흥분한 듯한 말투 속에서도 드라고니아는 투란에게 분명히 짚어 묻고 있었다. 투란도 이 물음의 의미를 충분히 느꼈기에 한층 더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대답을 한다.
‘역장이잖아. 이놈의 사슬이 내 고유마력으로 역장을 만들어 냈잖아. 그 꼴 겪고 난 다음에도, 각인이랑 인증술식이랑 다 끝나고 나서도 역장이 유지되니까. 이용할 수 있는가 한번 해봤는데, 되네! 음핫! 이제 역장만 펼쳐두고 바로 크고 센 주먹 만들어서 후려칠 수도 있겠어!’
―그런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짓거리 말고! 순수하게 고유마력만으로 주문술식이 작성 가능한가부터 따져봐라! 그게 가능하면, 네 천칭은 황금매의 특별한 기능을 그대로 갖춘 것이나 다름없어!
‘어? 에? 잠깐만…….’
호기심이 저절로 피어올랐기에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제안을 실행해봤다.
마법, 주문의 술식을 심상 속에 담고 틀을 짜서 거기에 ‘천칭’의 마력을 부어 넣는…….
“우켁! 크억!”
시도는 곧바로 투란의 입에서 작은 비명을 쥐어짜 냈다.
투란은 황급하게 마법술식의 그릇을 치우려 했지만 이미 공허(空虛)가 자리 잡은 마음의 틀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때문에 바로 윌 라이트의 마력을 퍼담아 틀을 채우려 했지만, 이 또한 공허 속에 흐트러지는 것을 알아야 했다. 해서 곧바로 오러의 힘을 끌어올리다가 퍼뜩득 보이드 엠블럼을 겪었던 기억을 되새겼다. 그 기억은 곧장 문장을 자극해서 ‘악마의 심장’을 불러냈고, 공허가 자리 잡은 마음의 틀을 바로 채워 넣었다.
아무 생각 없이 냉혹하게 날벼락에 맞은 상황을 겨우 넘기니, 그 섬뜩함으로 인해 등줄기와 볼을 타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투란은 가슴을 쓸어내리는 손짓까지 하며, 파르르 떨리는 낯빛으로 연약하게 으르렁거릴 수밖에 없었다.
“야, 쓸데없는 호기심 때문에 험한 꼴 봤잖아! 보이드가 튀어나왔잖아! 몬스터 에센스 없이 고유마력으로 뭘 하려면 안 되는 거라고! 어흐…… 내가 그 꼴 또 겪을 줄이야! 아, 생각하기도 싫은데! 빨리 잊자, 잊어!”
사방이 막히고 그나마 위로 뚫린 동굴 안을 메아리치는 투덜거림이었다.
드라고니아는 잠깐 침묵하는 척했지만, 금방 말문을 열고 있었다.
―역시 황금매처럼 술식을 특별하게 조절해서 짜 넣어야 하는 건가. 하지만 투란, 몬스터의 정수를 핵으로 삼았다고는 해도 너의 몸을 떠난 채로 문장의 마력이 뭔가 형성해낸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건 잊지 마.
‘그건 기억해두지.’
툴툴거리기는 했지만 투란은 인정했다.
스스로 생각해서 고유마력으로 이뤄진 역장에서 그런 일이 가능할까 궁금해서,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저질렀으니까.
드라고니아의 제안은 실패한 셈이지만, 투란 자신의 시도는 새로운 가능성을 일깨운 셈이었다.
문장의 마력은 몬스터의 형상을 이루지 않고 몸을 떠나면 오러의 특성을 짙게 드러내고 문장이 몬스터의 형상을 형성하지 못하게 억눌리면 아예 오러 마크나 오러 사인 쪽에 가까운 성향을 띤다. 하지만 막상 그런 식으로 오러를 발휘하게 되었을 때 영문을 모르고 당황해서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몬스터 로드. 그러니 문장이 오러의 힘을 드러낸다는 것을 미리 알아두고 연습해야 하는 것이라고, 투란이 키린에게서 배운 바였다.
그리고 지금 투란은 오러의 특성을 드러내지 않는 고유마력의 역장을 꾸밀 수 있게 되었고, 그 역장 속에서 몬스터의 형상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어딘가 별것 아닌 것 같기도 했고, 무슨 쓸모가 있을까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해낼 수 있게 되었고 안 되던 것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장의 마력과 오러, 둘 사이의 경계가 한층 더 미묘해지기도 했지만…….
짜악!
“잡념을 버리고!”
복잡해지려는 생각을 두 손으로 볼을 치며 저 멀리 날려버리는 시늉을 하면서 투란은 벌떡 일어섰다. 새로 끼운 귀걸이, ‘봉인의 금쇄’가 귓가에서 찰랑거렸다. 그 찰랑임이 투란에게 추와 사슬, 고리를 잇는 ‘힘’의 경로를 되새김질해줬다.
‘자아, 그러면! 보물은 어디 있지?’
후욱, 숨을 들이쉬면서 투란은 스스로에게 묻듯이 드라고니아를 보챘다.
―뭐? 보물?
‘엄청난 대마도사의 아티팩트로 엄청나게 희귀한 몬스터를 가디언 삼으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무엇! 그게 보물이 아니면 뭐겠어? 최소한 상아탑에 가져다 팔 마법의 소재라도 나오겠지! 그러니까, 이제 프로브를 방해하는 역장도 없고 식어가는 용암으로 막힌 입구로 따라 들어올 놈도 없고, 위로 뚫린 구멍도 조용하잖아. 그러니 보물 찾아야지!’
당당하고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투란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움푹 패고 울퉁불퉁한 동굴의 벽은 어느 방향을 봐도 그냥 다 막혀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조금 깊이 파여 들어간 부분에는 먹다 버린 뼈다귀가 몇 개 덩그러니 구르는 채로!
―프로브가 정상이니 바로 알아차려야지. 더스트 월, 저기 있잖아.
드라고니아가 혀를 차며, 투란처럼 뭔가 포기했다는 듯이 말했다.
‘음? 그걸로 벽을?’
투란은 갸웃했다.
더스트 월, 땅바닥의 먼지와 티끌을 모으고 거기에 살짝 마력을 첨가해서 벽의 형체를 만드는 것인데, 이게 딱 무늬만 벽이었다. 눈으로 봐서는 든든하고 단단해 보이지만 몸을 부딪치거나 손으로 더듬으면 바람에 헐렁거리는 거미줄처럼 바로 푹 뚫리고 찢어지는 것이다. 벽이라고 하기는 참으로 곤란하지만 단순하고 빠르게 펼칠 수 있는 마법이기에 거리를 두고 다른 자의 시각을 차단하는 데는 꽤 쓸 만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어울리는 마법은 분명히 아니기도 했다.
‘보물을 지키는데 그런 허풍 벽을 세워놨다고?’
어리둥절해하며 투란이 한쪽을 보는 채로 다시 물었다.
―어째 잘 아는 척하면서 뒷부분은 홀랑 잊고 있는 거냐?
드라고니아가 평소의 분위기가 돌아온 것이 울화가 치민다는 듯이 되묻고 바로 설명을 잇는다.
―더스트 월은 마력을 보태서 얼마든지 강화할 수 있잖아. 금쇄의 역장을 이용한다면 어지간한 철벽보다 더 강력해진 채로 침입자를 막을 수 있었을 테지. 뭐, 그 전에 오러 몽거에게 우그러졌겠지만…… 어쨌든 오러 몽거를 쓰러뜨리고 금쇄의 역장을 해제할 정도면 웬만한 마법으로는 막지 못할 테니, 그냥 더스트 월을 이용했을 거야. 그편이 효율적이니까.
듣는 사이에 투란은 더스트 월에 손을 대보고 있었다.
벽이 눈에 보이는 질감과 상관없이 출렁거렸고, 손이 닿은 부분도 허물어지며 흩어져 버렸다. 아주 작은 충격에도 견디지 못한다는 더스트 월의 평판을 다시 한번 투란에게 증명해 보인 광경이었다.
그리고 안으로 깊이, 적당히 사람이 지날 정도의 높이를 지닌 구멍이 드러났다.
바닥은 제법 다듬어놓은 듯 보였는데 몇 걸음 들어가니 제대로 된 포석이 밟히고 있었다. 그 포석이 살짝 휘어진 길을 만들고, 그 길의 끝에 문이 보였다.
강철을 바탕으로 한 문에는 금으로 세공해 박아넣은 무늬가 단정하니 더해져 있었는데, 빗장도 잘 걸려 있는 채였다.
‘음?’
투란은 거뭇한 강철에 금박 무늬를 씌운, 문과 동일하게 치장되어 있는 빗장을 보고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왜?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뭘 의아해하는가를 모르는 듯했다.
‘야, 빗장은 보통 문 안에서 거는 거라고. 문밖이 아니라!’
―흠? 그야 안에 뭘 가뒀을 때는…… 저기 뭘 가둬둔 거지?
반대의 경우를 들려던 드라고니아도 멈칫하며 투란의 의문에 동참했다.
투란은 낮게 한숨을 쉬고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 썩을 마법사 놈…… 금칠 좋아하면 금괴나 넣어두면 될 것을…… 도대체 뭘 숨겨놓고 밖에서 빗장을 걸어놓은 거야.’
―마법까지 겹쳐 걸어서 잠가놨는데? 호오, 이거 탐지방해도 걸려 있네?
‘헐?’
투란이 투덜거리는 사이에 탐색해본 드라고니아가 호기심을 드러내며 중얼거렸고, 투란은 한번 더 어이없어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대마도사의 아티팩트, 오러 몽거라는 희귀한 몬스터.
그 힘을 이용한 더스트 월에다가 한번 더 보태서 마법 잠금질이라니!
―가디언을 피해서, 살짝 장벽을 넘어서 스며드는 침입자를 대비한 거겠지. 이것도 더스트 월이랑 비슷한 스톤 록인 것으로 봐서, 진지하게 걸어놓은 잠금은 아니다. 그야말로 만약의 만약을 대비한 정도야. 다만…….
‘다만?’
―저 빗장, 양쪽에서 내려 맞물린 형태인데 한쪽 무게가 일천 킬로그램은 될 것 같은데?
‘그러면, 단위가 톤으로 바뀌는 거잖아!’
―그렇지.
‘이 미친 마법사, 마법으로 빗장 치운다는 생각을 못 했을 리는 없지?’
―제대로 마법의 잠금을 풀지 않으면, 빗장 주변으로 안티-셸이 발동한다. 그렇게 되면 순전히 근력으로 빗장을 치워야 하지. 이 굴의 규모로 봐서, 대규모 장비를 갖고 들어올 수는 없을 테니까.
‘안티-셸이면…… 마법 방해하는 그거?’
―그래, 먼저 발동한 안티-셸의 주변으로는 다른 마법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 못 한다는 거, 기억났냐?
투란은 문 가까이 다가가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그리고 피식 웃는 채로 문짝을 보며 중얼거린다.
“풀면 되잖아, 풀면. 그러면 일 톤짜리 빗장이 마법으로 훌렁 벗겨질 거잖아. 흥!”
―투란, 빗장은 이 문에 걸린 마법으로 벗겨지지 않을 거야.
‘뭐? 일 톤짜리가 마법으로 안 벗겨지면? 금색 마도사가 이 문을 이용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다른 구멍이 있어?’
―아니, 다른 구멍은 없어. 저 빗장은…… 문 안쪽에 설치된 기계구조를 이용해서 움직여 여는 거야. 빗장 위에 보이는 얼굴 모양 무늬가 보이지? 그 옆으로 손바닥 무늬도 있는 거, 그래 거기에 두 손과 얼굴을 들이대고 눈동자를 비추면 기계가 움직여서 문이 열리는 거야. 하클의 장비처럼 말이지.
‘오, 그런 거야? 그렇다면…….’
투란은 냉큼 두 손을 짚고 얼굴을 문짝에 들이댔다.
―야, 넌 안 돼! 이 바보가!
드라고니아가 화들짝 놀랐다.
그 순간에 투란도 화들짝 놀라서 머리를 뒤로 빼고 허리를 튕겨 손까지 문에서 바로 떼고 있었다. 간단하게 그저 놀란 동작이었지만 이 움직임을 반사적으로 활성화한 오러가 보조하고, 강화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투란이 손으로 짚었던 자리, 얼굴을 들이댄 문짝의 무늬가 사각 소리를 내면서 얇은 철판…… 분명히 칼날인 것에 한번 가려졌다. 계속 손을 대고 얼굴을 대고 있었다면 닿았던 자리를 썰어냈을 움직임이었다.
‘이, 이게 뭐야!’
―웬 바보짓이냐고! 당연히 금색의 마도사가 자기 손바닥이랑 얼굴을 열쇠로 해놨을 거란 생각이 안 드냐? 아무나 와서 손대고 얼굴 들이대면 좋아라 하고 열리는 빗장을 저리 노골적으로 뒀을 리가 있냐고!
‘이 씨! 잠깐, 손과 얼굴을 열쇠로 삼을 수가 있어?’
투란은 울컥했다가 바로 갸웃하면서 손바닥 무늬와 얼굴 무늬를 살펴봤다.
전체적으로 그냥 문짝을 이루는 재질이었지만, 손가락 끝마디가 닿는 부분과 눈동자가 들이대지는 부분은 미묘하게 달랐다. 마치 거울 같은, 묘한 질감이 그 작은 부분들을 채우고 있었다.
―과연 금쇄를 오래 갖고 있던 마도사답군. 지문과 홍채, 자신의 신체가 지닌 특성을 열쇠로 삼아놨었군.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관찰에 보태듯이 말했다.
‘진짜 미친 거 아냐? 몸을 바꿔치기하는 비술을 쓰면서 이래놔? 그거 몸이 바뀌면 달라지는 거잖아? 그렇지?’
―마법 잠금을 제대로 해제하면, 굳이 손가락과 눈동자를 들이대지 않아도 열리니까.
투란의 투덜거리는 의문에 드라고니아가 담담하니 대답하고 있었다.
‘그냥 들어 올리면 어떻게 되는데?’
점차 삐딱해지는 표정으로 투란이 물었다.
―어? 그건…….
이번에는 드라고니아가 살짝 당황했다.
분명히 1킬로그램의 중량이면 보통 심각한 난관이기는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