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5)
‘후우, 그 약장수 광대 아저씨처럼은 안 되네.’
키린은 먼 하늘을 보면서 깊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그의 눈앞에서는 투란이 열심히 걸음을 옮기면서 손짓 발짓으로 궁정 무술의 기본자세를 반복하는 중이고, 그의 마음속에서는 ‘드라코눔의 아칸’이 쉴 새 없이 으르렁거리면서 이게 대체 뭔 짓이냐고 따지는 중이었다.
하지만 키린은 팔짱을 낀 채로 제법 근엄한 자세, 왕으로서의 품위를 보일 때의 키드릭, 에테온의 왕이자 자신의 아버지인 사람의 모습을 흉내 내며 그 모든 것을 그냥 흘러가는 구름처럼 바라볼 뿐이었다.
이 풍경을 만들기까지, 조금 고생한 자신에게 주는 보상이라는 듯이.
‘뭐, 어떻게 되었건 괜찮은 거지.’
만족도 하면서!
—뭐가 괜찮아! 어째서 저 녀석에게 이상한 걸 가르치는 게 괜찮은 건데! 저 무지몽매한 꼬마가 얼마나 위험한가, 저놈이 하는 말을 듣고 충분히 느꼈잖아! 몬스터가 있으니까 오러의 기술 따위는 필요 없다는 소리 들었잖아!
‘하지만 지금은 몬스터를 꺼내지 않아도 되는 오러의 기술을 익히겠다고 저렇게 열심히 하고 있잖아? 괜찮아, 괜찮다니까.’
땀을 뚝뚝 떨구는 투란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와 함께 키린은 내면에서 울부짖는 드라고니아를 다독였다.
—괜찮기는! 그런 얼렁뚱땅이 얼마나 통할 것 같나! 얼마나 오래갈 것 같아서! 그렇게 여유 부릴 상대가 아니라고! 저건…….
키린의 입가에 보다 깊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드라코눔의 아칸’이 지적하는 부분에 대해서 전혀 걱정이 없다는 듯한 미소였고, 이는 편안한 기분과 함께 고스란히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저편에서 열심히 움직이는 투란에게는 마치 자신이 제대로 아주 잘하고 있어서 키린이 즐거워하는 꼴로도 보였다.
‘잘 통하고 있잖아?’
키린은 ‘아칸’을 향해 소리 없이 속삭였다.
어떤 걱정과 염려를 하더라도, 실제 상황은 정말 키린이 의도한 대로 잘 풀리는 것으로 보였다. 아무래도 투란에게 한바탕 폭풍처럼 쏟아 낸 이야기가 통한 듯했다.
—그, 그딴, 보기 뻔한 잔꾀가 가득한 말에 속았다고!
드라고니아의 울분이 느껴지는 반문이 깊이 키린의 마음속에 메아리쳐졌다.
키린은 이에 대답하는 대신에 고요하게 투란을 바라봤다.
몬스터가 있지 않느냐고 몬스터 로드답게 대답한 소년, 그런 투란을 향해서 키린이 토해 낸 열변은 간단한 내용을 되풀이하면서 살을 덧붙인 장황하고 번잡한 이야기였다. 그저 ‘몬스터 엠블럼을 사용할 수 없게 하는 적을 향해 몬스터 로드가 무슨 짓을 하겠는가, 그럴 때 바로 오러를 좍좍 뿜어내는 거야!’라는 설득에 불과한 이야기를 키린은 몇 가지 본보기가 되는 경우를 줄줄 늘어놓으면서 투란에게 퍼부어 댔다.
말의 폭풍에 휘말려서 귀를 쫑긋하고 그 이야기를 전부 깊이 마음에 품은 듯한, 사실은 감당할 수 없이 쏟아진 이야기에 당황하던 투란은 바로 몬스터를 꺼낼 수 없을 때의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척했고, 결국 키린이 알려 주는 대로 궁정 무술을 단련하기 시작했다.
—저런 것 없이도 여기까지 견디며 돌파해 온 녀석이 새삼스럽게 저런 것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저러고 있다는 소리냐? 그게 말이 돼?
드라고니아의 의문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드라코눔의 아칸’답게, 이미 강력한 능력을 갖춘 투란이 새삼 저런 손짓 발짓에 혹해서 저러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키린이 투란의 수작에 넘어가서 헛짓거리하고 있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는 모양이었다. 계속해서 쏟아질 듯한 잔소리를 피하겠다고, 일단 투란이 속이는 것일 거라고!
키린은 그런 ‘아칸’에게 대꾸하는 대신에 손뼉을 치며 투란을 멈추게 했다.
“좋아. 대충 기본형 여섯 가지는 모두 기억한 것 같으니, 일단 좀 먹고 잠도 좀 자 둬야겠지?”
“어? 벌써요?”
투란은 한창 신이 난 듯이 대꾸하고 있었다.
키린이 고개를 저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투란, 벌써가 아니야. 육왕국의 궁정 무술, 그 여섯 가지의 기본형을 반복해서 세 번이나 했다고. 이미 두어 시간은 훨씬 지났어. 아무리 오러를 끌어낼 수 있다 해도, 몸의 피로를 씻어 내는 게 아니라 견뎌 내는 거라니까. 자, 어서 와서 먹고 쉬고 자라!”
“예…….”
투란은 이마에 배어 나온 땀을 손등으로 털어 내면서 키린 앞으로 와서 앉았다.
불길이 맴돌면서 흙을 갈랐고, 땅속에 묻힌 채로 뜨거운 열기만으로 찜이 된 흙도마뱀이 솟구쳐 올라왔다.
이를 보자마자 투란의 입가에 침이 고였고, 키린의 손짓에 투란은 바로 그 앞에 폴싹 앉으면서 찜이 된 흙도마뱀을 집어 뜯어 먹기 시작했다.
키린은 여유롭게 이를 지켜보면서 기다렸고, 투란이 세 마리를 먹어 치운 다음에 깊이 숨을 몰아쉬면서 겨우 잠깐 쉴 듯한 모습을 보이자 말한다.
“이제 누워서 쉬어. 잠이 오는 걸 억지로 깨어 있으려 하지 말고.”
작은 속삭임이었지만 투란은 그대로 그 말을 따르겠다는 듯이 옆으로 폭 쓰러졌고, 곧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고르게 흘리면서 깊이 잠들었다.
키린이 허공에 손짓을 했고, 불꽃이 부드럽게 밀려와 담요처럼 투란을 덮었다.
그리고 곧 투란의 주변에 장벽처럼 불길이 일어서며 작고 단단한 성채가 이뤄졌다.
키린은 투란이 고요하게, 더 깊이 잠드는 모습을 보고 나서 일어나 돌아섰다.
곧 키린과 투란 사이에 보다 두껍고 높은 장벽이 세워졌다. 그다음에 키린이 등 뒤에 투란을 둔 채로 앞을 향해 손짓했다.
그 손짓에 따르듯 바닥에서 치솟은 긴 불꽃이 둥글게 테를 이뤘고, 그 테의 안쪽을 채우는 불의 엷은 막은 곧 ‘드라코눔의 아칸’을 투영해 보였다.
“음, 이 정도면 소리 내서 말할 수 있겠지?”
“그렇다.”
마지못해 나오는 듯한 대답이 테 속에 형성된 드라고니아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그러면서 드러나는 섬세한 드라고니아의 표정은 ‘이게 대체 뭔 짓이냐!’라고 꽥꽥대고 싶은 듯한 기분까지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었다.
그런 꼴을 보면서 키린이 빙긋 웃고 말한다.
“넌 내 이야기를 얼마나 기억하지? 내가 투란에게 몇 가지 본보기 이야기를 했는지 대답할 수 있어?”
‘아칸’의 표정은 명백하게 짜증 난다는 쪽으로 변했고, 대답이 바로 나왔다.
“키린, 너는 투란에게 오러 윌더가 신전의 전사, 타락한 신수, 광기 어린 마물 앞에서 싸운다는 애들이나 열심히 들을 동화 같은 이야기를 열두 가지나 쏟아 냈다. 그렇게 한꺼번에 쏟아 낸 이야기를 그 짧은 동안에 전부 기억할 능력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고!”
“헤에? 그럼 넌 내가 투란에게 쉴 새 없이 말한 육왕의 비전도 모두 기억하는 거야? 넌 능력이 되는데…… 그 몰골로도 가능한가?”
갸웃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몰골’이라는 한마디에 묘한 비아냥거림도 섞은 듯한 말투로 키린이 다시 물었다.
“나의 이성이 기능하고 있다! 이런 몰골이라 해도 상관없이, 내 이성의 모든 능력은 제대로 발휘되고 있다고! 몸은 이런 그려진 형상이고, 마법은…… 너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괴물의 형상 속에 봉인되어 버린 듯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이성을 이끌어 내 말을 하는 동안에 내 기억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
드라고니아가 욱해서 토해 내는 말을 키린은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너무 주의 깊게 듣는 모습인지라 ‘드라코눔의 아칸’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변명하는 꼴이 된 것을 깨닫고 못마땅한 눈매로 키린을 쏘아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키린이 지금 중요한 일, 재앙이나 다름없다 판단되는 투란을 놔두고 뭔 짓을 하는 거냐고 따지고 싶은 듯한 눈빛이 저절로 불꽃의 형상 속에서 뿜어져 나올 듯도 했다.
그런 불만을 느낀 듯, 키린은 슬쩍 딴 곳을 보는 시늉을 하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것참, 내 5년은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건지…….”
이 소리는 바로 ‘아칸’을 움찔하게 했다.
이 깊은 곳까지 들어와 키린은 광기만을 뿜어내는 자신의 형상 속에서 이성의 끈을 붙잡아 끌어내려 했고,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드라코눔의 아칸’은 거기에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정말 투란을 만날 때까지, 5년 동안 겨우 붙잡아 낸 이성으로 지껄여 댄 말은 몇 마디 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다시 ‘아칸’이 뭔가 변명하려고 입매를 움찔거릴 때, 키린의 말이 작은 한숨과 함께 나온다.
“뭐, 그건 나중에 따지고. 투란과 나의 엇갈리는 시간에 대해서 말인데, 드라코눔에서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용하지?”
“응? 그건……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여러 가지? 그냥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서 듣거나, 옛날에 있었던 일 중에서 잊힌 것에 대해 확인하거나…… 그런 정도가 아닌 거야?”
키린이 의아한 듯이 묻는 말은 ‘드라코눔의 아칸’에게 분명하게 흠칫한 표정과 몸짓을 보이게 했다. 사람으로 치면 감추고자 한 일이 들통났을 때나 나올 법한 태도였다.
그 꼴에 키린은 좀 세고 긴 한숨부터 쉬었다. 그다음에 천천히 보다 짙어진 형상의 ‘아칸’을 향해 말한다.
“혹시 내가 투란과 같이 가거나 투란이 나와 함께 갈 수 있거나…… 뭐, 그런 것도 되나?”
잠시 드라고니아의 당황이 짙어졌다.
하지만 물끄러미 바라보는 키린의 눈길을 더 피할 수 없게 된 ‘아칸’은 대답을 꺼내고 말았다.
“그렇다. 어떻게 알았지?”
“응? 어떻게 알다니?”
키린이 삐죽거리는 말투로 물음을 받아쳤다.
하지만 ‘아칸’은 냉정하게 자신의 물음을 되풀이한다.
“키린, 난 지금 너를 통해 세상에 존재한다. 방금 네가 물은 것, 애초에 내가 이 시간의 교차역에 대해 설명하면서 애써 부정한 부분이지. 나는…… 너의 몬스터로서 느낄 수 있다. 네가 이곳에 대해 이미 어떤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그게 대체 뭐지? 인간 사이에는 알려졌을 리가 없는데…….”
“흠…….”
키린이 살짝 머리를 긁적거리는 시늉을 했다.
‘아칸’은 그 동작의 의미를 깊숙하게 느끼고 알 수 있었다.
과연 이런 중대한 비밀을 드라고니아에게 누설해도 되는가 고민된다는, 인간에게 이 시간의 교차역에 대해 구체적인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기를 꺼린 ‘드라코눔의 아칸’이 보여 준 태도를 따라 하는 모습이다!
“이봐! 지금 그런 장난을……!”
“예지의 드라고니아. 과거 여섯 왕국의 왕 앞에 나타나 먼 미래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다가올 대범람이라는 재앙에 구체적으로 대항할 방법을 내놓고 동맹의 강화를 이야기했던 용신족 마법사.”
“아! 키린, 네가 그 이야기를 어떻게?”
“야, 나 왕자야. 에테온의 패왕이라는 분의 아들이라고.”
“그래, 왕자잖아! 그 이야기는 왕에게만 전승되는 걸 텐데? 젠장, 이래서 인간이란……!”
“멸망한 왕족과 함께 사라진 이야기였지. 새로운 맹약을 통해 왕이 된 내 아버지에게는 그런 비밀스러운 전승의 약속 따위는 쓸모가 없다고. 그래서 새롭게 동맹의 계약을 다시 맺자고 온 거였잖아. 너 말이야, 너!”
“크응!”
드라고니아가 머리를 딴 곳으로 향하면서 세차게 콧바람을 내쉬었다.
살짝 불꽃이 그 콧바람을 따라 흐르는 듯한 광경을 보며 키린은 한숨을 힘차게 내뿜었다. 그리고 내친김이라는 듯, 투덜거림이 키린의 입에서 툭 튀어나온다.
“동맹하자고 와서 미쳐 날뛴 놈 때문에 내 꼴이 대체 뭔지! 하여간 드라고니아란!”
혀를 날름대면서 그대로 ‘아칸’의 말투를 따라 하는 키린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드라코눔의 아칸’은 아무 반박도, 불만도 내놓지 않았다. 그저 살짝 찡그린 듯하면서도 키린의 투덜거림을 모두 참고 견디는 모습만 보일 뿐이다.
“옛날 소리는 그만하고. 내가 투란 쪽으로 가는 거랑 투란이 내 쪽으로 오는 거, 어떻게 선택할 수 있고 어떻게 둘 다 피할 수 있지?”
잠시 ‘드라코눔의 아칸’이 그 황금색 광채와 붉은 비늘의 영롱함을 과시하듯, 불꽃으로 그려진 그 형상을 집중하는 태도로 키린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담담한 대답이 나온다.
“선택 방법은 모른다. 피하는 방법은 하나가 여기 남고, 하나가 떠나면 된다.”
“아무 때나?”
“가능한 한 빨리…… 서로의 시간이 섞여서 아주 엉뚱한 시기로 튕겨 나가기 전에.”
“함께 있어도 괜찮은 시간은 얼마나 되지?”
“알려진 바로는 100일 정도라고 했다. 드라코눔의 기록으로는.”
“흐흠, 그렇다면…… 아주 안전하게 잡아서 열흘 안에 투란과 내가 각자 갈 길로 가면 괜찮겠군.”
“어쩔 생각이지? 정말 저 재앙을…… 그냥 방치할 생각인가?”
“이봐, 아칸 씨.”
“내 이름은 아칸이 아냐! 난…….”
“몬스터 로드를 너무 얕보지 말라고. 그리고 내가 몬스터 로드란 것도 잊지 마. 이래 봬도, 드라고니아가 질투에 미쳐 날뛰게 할 정도의 엄청난 몬스터 로드라니까!”
키린이 슬그머니 장난기 어린 말을 했지만, ‘아칸’은 복잡한 표정을 통해 근심과 염려를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그런 드라고니아를 향해 키린은 한마디를 더한다.
“그리고 투란은 재앙이 아냐. 내게 세계가 보내 준 행운이지.”
‘드라코눔의 아칸’이 이게 뭔 헛소리냐는 듯이 에테온의 괴물 왕자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