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5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46)
Chapter 170. 마도사의 둥지 Ⅲ
우득, 쿠르릉.
한쪽 빗장이 투란의 한 손에 붙들려 들어 올려졌다.
곧이어 맞물려 있던 다른 빗장도 투란의 다른 한 손에 붙잡혀 들리고 있었다.
쿠릉, 키이잉.
빗장이 양쪽으로 넘어가면서 문짝 안에서 뭔가 요란하게 뒤틀리며 돌고 쇠를 긁어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후후훗.”
투란은 일부러 소리 내서 웃었다.
무쇠뿔 오우거의 두 팔, 하지만 무쇠뿔 오우거보다 서너 배는 더 굵어진 두 팔을 매단 어깨를 으쓱거렸다. 두 팔에서 흘러나간 두 손, 그 손 전부가 아닌 뻗은 손가락 둘이 빗장을 밀어 움직이고 있었다. 빗장 둘에 손가락 넷, 웬만한 어른 팔뚝보다 굵어진 손가락이기는 했지만…… 손가락 둘로 일천 킬로그램, 단위가 톤으로 바뀌는 중량을 밀어 움직인 것은 누가 보더라도 흠칫 놀랄 일이었다.
―잘 써먹는구만. 평생 쓸 일 없을 줄 알았는데.
드라고니아는 놀랐다기보다는 조금 맥빠진 듯한 말투로 속삭이고 있었다.
투란이 무쇠뿔 오우거의 형상 속에 몰튼노트 기간틱의 팔을 섞은 것을 알았기에 왠지 심드렁한 분위기를 가득 띠는 듯했다.
‘아직 몰라? 여전히 탐지 방해야? 뚫지 못하겠어?’
―그냥 열면 되는데 뭘 억지로 밀어 넣고 보려고 하냐. 애초에 이 문짝의 방어는 대충 해놓은 거라고. 간단히 말하자면, 안에 놔둔 뭔가가 밖으로 어슬렁거리고 나왔다가 오러 몽거에게 뭉개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대책? 신경 쓰지 말고, 거인의 팔뚝으로 앞을 가린 다음에 열어봐. 뭔 일 나고 싶어도 아무 일 없을 테니까.
‘왜 삐진 거야?’
심드렁한 태도를 한층 더 짙게 뿌려대는 드라고니아에게 투란은 노골적으로 투덜거려 따졌다.
―내가? 삐지긴, 내가 너도 아닌데…… 그냥 1톤이 생각보다 가볍구나 싶어서…… 이제까지 네가 발휘하는 근력 정도는 상황이 어떻든 간에 대충 어느 정도 가늠한다 싶었는데…… 하아…….
‘삐졌구만. 키클롭스랑 섞지 않고 몰튼노트 기간틱이랑 섞은 게 왜 그렇게 불만스러운데?’
―누가 뭐라 했냐? 난 그냥 키클롭스를 추천한 것뿐이고, 다른 부분에 대해서 불만을 말한 적이 없다만?
‘프로브로 잘 보고, 방어나 잘 맡아줘. 당긴다!’
점차 삐딱해지는 드라고니아의 말투를 느끼며 투란은 툴툴거리는 채로 할 일을 하기로 했다.
콰륵, 콰르륵.
거칠게 바닥을 긁는 채로 문짝이 한가운데가 두 쪽 나듯이 갈라지며 당겨졌다.
투란이 빛의 조각을 느낀 것은 문틈이 아주 미세할 때였고, 드라고니아가 아케인 월을 펼쳐서 그 틈새를 밀봉하듯 억누른 것도 그때였다.
화앙, 파팡, 치이잉.
문틈 사이로 튀어나오려는 빛의 조각은 제멋대로인 색채만큼이나 제멋대로인 소리를 내며 붕붕 날면서 여기저기 틈을 찾아 들이박고 있었다. 그 움직임에 따라 불꽃이 튀기도 했고, 바람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도 났고, 달궈진 쇠가 급격하게 식는 듯한 소리도 났다.
‘이게 대체 뭐여?’
투란은 문짝을 좌우로 당겨 활짝 열어젖힌 다음, 더스트 월과는 비교도 안 되는 튼튼한 마력의 벽인 아케인 월에 마구잡이로 충돌하며 ‘닥치고 돌격!’이란 짓거리를 실행하는 현란한 빛 조각들의 정체를 물었다.
묻기 전에 가장 먼저 떠오른 추측은 세상 다 부서져도 몰라라 하며 장난이나 치는 정령, 요정 따위를 으깨서 안에 던져놓았는데 그 으깨진 조각들이 여전히 저리 붕붕거리며 날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 추측을 투란은 하나를 세기 전에 포기했다.
빛의 조각이 뿌려대는 다채로운 현상…… 불꽃, 서리, 번개, 난잡한 음향까지 모든 것이 철저하게 마력에 기반을 둔 현상임을 알아차린 때문이었다.
요정이나 정령의 힘과는 계통이 아예 다른 것이다.
―스펠 오브…… 같은데?
드라고니아도 애매한 듯, 갸웃하는 말투로 한 가지 짚어내고 있었다.
투란은 그 까닭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빛의 조각, 빠르게 날고 있기에 그렇게 보였던 것들이 실은 둥그런 외피를 두르고 있었다. 그 형태를 따지고 보면 투명한 구체, 오브 안에 빛의 파편이 박힌 꼴이었다. 그런 채로 작은 마법을 쉬지 않고 뿜어대고 있으니, 주문을 새겨넣은 마법 구슬이 아니라고 할 만했다.
‘그게 멋대로 날면서 저렇게 되는 대로 마법을 뿌리는 마도구는 아니잖아?’
―원래는 그렇다만…… 투란, 혹시 빗자루가 마법에 걸려서 멋대로 날며 몬스터가 된 이야기 들은 적 없냐?
갑작스럽게 묻는 말은 바로 투란에게 어떤 동화를 떠올리게 했다.
마녀가 햇살을 가리는 구름을 치우려고 빗자루에 마법을 걸어서 날려 보냈는데, 하늘을 가득 메운 먹구름과 뒤엉켜 춤을 추듯 싸우던 빗자루가 마녀의 통제를 벗어나면서 세상 구름을 다 모아 마녀의 머리 위에 소나기를 퍼부어 줬다는 이야기.
어린 시절 투란에게는 ‘그래서요?’라고 그다음을 재촉하게 하는 이야기였는데, 그다음이 없었다.
덕분에 투란이나 샤오콴 마을의 아이들이 모두 다 어리둥절해서 ‘어쩌라고?’ 하며 그 빗자루가 몬스터인가, 마도구인가 따져보거나 어떻게 사냥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어린아이다운 말을 잔뜩 쏟아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들 진지하게 의논했었던 적이 있었다.
‘몬스터는 안됐고, 그냥 마녀를 괴롭히기만 한 마법 빗자루였습니다……라고 끝난 이야기였는데?’
―그래? 구름을 몰고 다니며 벼락 치는 몬스터 빗자루란 부분이 누락된 이야기를 들었구나.
‘야, 그게 지금 저거랑 뭔 상관인 건데?’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보며 투란은 조금 짜증을 담아 되물어야 했다.
열린 문, 그 문턱을 넘어 들어가면서 바로 시작되는 통로는 길쭉이 뻗어나가면서 오른편으로 원을 그리듯이 구부러졌고, 통로의 양쪽으로 문이 여럿 듬성듬성 박혀 있었다. 하나같이 문짝이 뜯기거나 태워지거나 얼어 부서진 채라, 그냥 벽에 문 모양의 구멍이 뚫렸다고 보일 지경이었다. 부서진 문짝의 잔해가 없었다면 분명히 그냥 누가 문을 만들다 포기했다고 착각했을 광경이다.
저런 풍경을 만들어낸 난동의 주역, 빠르게 스쳐가기 때문에 그저 빛의 조각으로 보이고 강화된 시각과 인식능력으로 포착해야 겨우 빛의 파편을 중심으로 거품방울 같은 투명한 껍질이 덮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스펠 오브와 닮은 괴상한 저것들은 아케인 월을 새로운 장난감으로 삼겠다는 듯이 거침없이 그 마법을 뿌려대며 더욱 미쳐 날뛰는 군무(群舞)를 펼치는 중이었다.
―마도구가 미쳐 날뛴다는 점에서, 저건 그 이야기 속의 빗자루랑 같은 상황이다. 그리고 그 빗자루보다 본능적이고 충동적이지. 저 지경이면 이미 정상적인 마도구에서는 한참 벗어난 걸로 보이지만, 저건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거다.
‘그니까, 뭔 소리냐고오오!’
―몬스터라고.
‘뭐?’
파지직, 치이잉, 화르릉!
눈앞에 작은 번개가, 송곳처럼 날카로운 바람결에 찢긴 달아오른 쇳덩이가, 크게 뒤틀리며 번지는 불덩이가 쳐들어와 아케인 월에 충돌했다. 시야를 현란하게 하는 그 난무를 눈동자에 비추면서, 투란은 그 현상을 일으킨 미친 마도구를 다시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그냥 고장 난 물건이 멋대로 통통 튀는 거라 여겼는데, 몬스터라니.
‘진담이냐?’
―방금 생각났다. 금색의 마도사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초기 업적. 그중에 저런 물방울처럼 생긴 스펠 오브를 작성했다는 것이 있었어. 그냥 들고 각인된 마법을 끌어내 사용하는 그런 스펠 오브가 아니고, 저 물방울 형태를 몸에 그대로 융합시켜서 마법을 원래부터 갖춘 능력처럼 활용하게 해준다는 각인형 마도구. 그렇게 생긴 능력을 스펠리시 어빌리티라고도 불렀다고 했지.
‘그런 대단한 마도구에 대한 소문은 저어어언혀어어 못 들어 봤는데?’
―조금 심각하고 조금 생명을 위협하는 문제가 있었거든. 그래서 널리 알려 보급까지는 못했다만,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연구소재였지.
‘마법의 비전 같은데, 다들 알고 있다는 거야?’
위험한 도구라 해도 쓸모 있다면 거침없이 갖다 쓰는 몬스터 헌터가 널리고 널려 있었다. 그런 이들에게 목숨 조금 위협당하고 마법 한 가지를 몸에 새길 수 있느냐고 물으면 당장 그러자고 할 터. 그럼에도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몰래 감춰둔 비전마법이 아닌가 싶었다. 한데 마법사들이 이미 알고 있다니, 그렇다면 대체 왜 몬스터 헌터 사이에서 널리 소문이 나지 않았을까? 그런 소문이 났다면 투란이 자랐던 샤오 마을에서 못 들었을 리가 없다.
이런 투란의 의문에 대해 드라고니아가 피식 헛웃음을 머금은 답을 한다.
―한번 몸에 박으면 떼어낼 수 없는 마도구니까. 반지나 팔찌라면 언제라도 몸에서 떼어낼 수 있잖아. 거기 마법을 새겨 넣은 거랑 별 차이가 없었거든. 다만 살아 있는 몸에 마도구의 능력을 부여한다는 점이 많이 특이했을 뿐이다. 오러 사인과도 다르게 순수하게 마법을 쓸 수 있게 해주는 각인술이었으니까.
‘생명을 위협한 문제는 뭔데?’
―본래 마력을 지니지 않은 자에게 각인하면 그 생명을 쥐어짜 내서 마력으로 강제전환시켜 주문을 발동시켰지. 짜낸 마력이 크면 클수록 상처 입고 병들어가는 거야. 아케인 볼트 한두 방 쓰고 그 꼴 난 경우도 있으니까. 효율성이든 안전성이든 따지면 따질수록 엉망이었어. 결국 동화 같은 발상을 실현했고, 그 실현 방식만은 마법사에게 나름대로의 업적으로 인정받았던 거야. 마법사 아닌 이들 입장에서는…….
‘역시 미친 마법사라고 했겠지.’
퐁, 포퐁, 퐁퐁.
한 걸음 더 내딛자마자 아케인 월에 부딪혀 오는 거품방울이 요란하게 터지면서 앙증맞은 소리를 냈다.
복잡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투란은 잠깐 어리둥절해서 두 걸음째를 내딛지 않고 멈췄다. 빛의 조각을 간직한 거품방울이 터졌나 했는데, 빛의 조각 따위는 한 점도 품지 않은 빈 거품방울이었다.
‘이건…… 스펠 오브가 아닌가?’
―스펠 오브가 뿜어내는 거품이다. 버블 자일인 모양이네. 걸리지 않게 주의해라. 상당히 귀찮은 거니까. 우습게 보여도 저게 대마도사 카엘이 원전(原典)을 만든 거야.
‘그런 마법은 못 들어본 것 같은데?’
당장 검토해본 천 가지 마법 주문 속에 없었다.
거품 뿜어내는 것이 뭐가 위험한가도 전혀 납득하기 어려웠다.
―중급 수준 이상의 성질 더러운 마법사를 만난 적이 없어서겠지.
‘만나자마자 불 지르는 상아탑의 상위 마도사는 본 적이 있다만?’
―홀시딘처럼 확실히 알고 뭘 하는 경우에는 성질이 더럽다고 하는 게 아냐. 아무튼, 저 버블 자일은 대상을 거품방울 속에 가둔다. 그리고 안에 갇힌 자는 거품방울을 깨지 못하고 둥실둥실 함께 떠다니는 꼴이 돼버려. 카엘은 저걸로 몬스터 떼를 감금하고 실험해서 몰살시킨 적도 있지.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만, 닿지 않으면 되는 거냐?’
―그래.
퐁, 포퐁.
두어 방울이 더 아케인 월에 부딪혀 터졌다.
그리고 방울을 뿜어내던 빛의 조각은 문턱 너머에서 웅웅거리다가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뜻대로 되지 않아 짜증이라도 내는 어린아이처럼…….
치익, 퍼엉.
서리가 공중에 맺히고 불꽃에 증발하다가 느닷없이 터졌다.
여전히 날뛰는 스펠 오브의 무리를 향해 투란은 한숨을 참는 시늉을 하면서 걸어나갔다. 그렇게 아케인 월로 통로를 봉쇄하며 밀어붙이는 걸음이 서너 번 디뎌졌을 때, 일 톤의 빗장이 걸려 있던 문으로부터 이, 삼 미터 정도 멀어졌을 때 투란의 등 뒤에서 문이 움직이는 소리가 울렸다.
투란이 흠칫하며 돌아보니 문이 닫히고 밖에서 일 톤짜리 빗장이 걸리는 소리가 무겁게 울려왔다.
닫힌 문에서 폴폴 풍겨나오는 안티-셸의 낌새를 투란이 느낄 때…….
―잘됐네. 이제 이것들 빠져나갈 상황에 대한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아케인 월을 보다 앞으로 밀어 움직이며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나는?’
―나가기 전에 이 안을 정리할 생각부터 해라! 그냥 암벽을 뚫고 올라가도 되는 놈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정리라니…… 보물 찾으러 들어왔구만, 미친 마도구 때문에 정신 사나운 꼴 겪는구만, 여길 내가 정리해야겠어?’
―당연히 해야지!
‘쳇.’
―어차피 보물이든 뭐든 찾으려면 저것들 정리해야잖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데?’
―그야…… 일단 몬스터잖아? 몬스터 로드답게…….
‘이 정신머리 없는 것들이 문장 속에서 저러고 날뛰라고? 꼴 봐라, 저게 어디 묶여 가만히 있을 것들이냐!’
―후려쳐봐.
‘뭐? 으앗? 야!’
갑작스러운 말과 함께 아케인 월의 한 귀퉁이가 열렸다.
동시에 기회를 잡은 스펠 오브, 붉은빛의 조각을 품은 녀석이 그 틈새로 쏘아지듯 들어왔고 불씨를 튕기겠다는 듯이 불꽃을 꼬기 시작했다.
투란은 가차 없이 날벌레 잡는 손짓으로 붉은빛과 그 작은 불꽃을 후려쳤다.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이 자연스럽게 실린 그 손짓은 스펠 오브를 단숨에 으깨버렸고, 흩어버렸다.
―역시 마도구 망가뜨리는 일에는 몬스터 로드의 손길이 효과가 좋군.
드라고니아가 살짝 뻔뻔하게, 약간 으스대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몬스터 로드답게 몬스터가 된 마도구를 삼키라 권하거나 그런 생각은 한 적이 없다는 것처럼!
그리고 아케인 월 건너편에서 이 광경을 목격한 스펠 오브 떼는 바로 통로 저편으로 몰려갔다. 동료의 파멸을 보고 살기 위해 도주를 선택한 것처럼.
‘매정한 것들.’
투란은 꿍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