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5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47)
소동이 끝난 통로를 흘깃하고 투란은 다시 뒤로 돌아서서 닫힌 문부터 살펴봤다. 안티-셸은 밖에서 볼 때랑 다르게 보다 넓은 범위로, 문과 통로의 시작부분까지 잠식하듯 펼쳐져 있었다. 그 영역 안으로 들어간다면 스펠 오브는 바로 으깨질 듯한 분위기가 흉흉하게 풍겨 나왔다.
‘겁 많은 녀석들한테는 딱 맞는 울타리네.’
애초에 마도구인 스펠 오브가 겁을 먹는다는 것부터 괴상하게 뒤틀린 일이기는 했지만, 방금 도망친 녀석들을 본 투란에게는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드라고니아는 갑자기 울컥한 듯 으르렁거린다.
―젠장, 이 쪼그만 녀석들이!
투란은 바로 무슨 일인가 알 수 있었다.
바로 빈정대며 놀리는 말이 투란의 마음속에서 튀어나온다.
‘야, 왜 자꾸 내 소중한 의지의 마력이 담긴 프로브를 깨 먹는 거야?’
―시꺼! 저 안쪽에는 아무래도 좀 더 센 마법을 품은 스펠 오브가 있는 모양이니까 주의나 해라!
‘뭔지 알기도 전에 프로브 깨졌어?’
―그래! 아오오, 이 썩을 마도사 놈! 절제란 말을 전혀 모르고 살기라도 했나!
모처럼 성질부리는 드라고니아에게 투란은 어리벙벙한 기분을 느꼈다.
도대체 프로브가 어떻게 깨졌기에 침착, 냉정을 주장하는 드라고니아가 이러는가?
슬그머니 돋은 호기심에 투란은 재빨리 프로브 한기를 스스로 만들어 굽은 통로 저쪽으로 보냈다. 프로브가 즉각적으로 수집하는 오감의 정보가 스며온다 여기는 순간, 뭔가가 격하게 부딪혀 왔다.
오감이 동시에 뒤틀리는 느낌과 함께 투란은 험한 소리가 저절로 입에서 불쑥 튀어나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썩을 것, 대체 뭐야!”
―뭔 바보짓이냐?
‘니가 날 궁금하게 했잖아!’
―바보짓이 내 탓이라고? 이런 멍청이가!
‘대체 뭐였어?’
으르렁거리려는 드라고니아에게 투란이 빠르게 물었다.
한숨과 함께 혀를 차는 낌새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살짝 불퉁한 듯한 대답이 바로 투란의 뇌리를 울렸다.
―그냥 들이박은 거다. 프로브나 저 미친 스펠 오브나, 마력으로 구성되어 있잖아. 그러니까 뭔가 자기네랑 다른 것이 끼어드니 냅다 들이박은 거지. 뭔 생각을 한 거는 아니야. 아무래도 마력이 자기네랑 다른 구성체니까 반사적으로 한 짓인 거지. 이건 처음 스펠 오브를 작성해놓은 마법사가 미리 이질적인 마력 구성체랑 근접했을 때 지정해놓은 반응 같은 거야. 그러니까 내가 욕을 했지.
‘그렇다 쳐도…… 어떻게 프로브가 한 번 부딪혔다고 바로 깨지냐?’
―마력을 잔뜩 담아놓은 스펠 오브가 있는 거지. 강한 마법을 쓰기 위해서 만들었던 모양인데…… 저런 걸 몸에 새기면 주문 발동하자마자 말라 죽을 거다.
드라고니아의 험한 말투 속에서 투란도 문득 알아차렸다.
프로브와 부딪쳤다고 바로 프로브의 마법구성을 파괴할 정도라면 어지간한 마법사의 마력 수준을 훨씬 뛰어넘을 터. 그런 마력을 웬만한 사람의 몸에서 쥐어짜 내려 한다면 그냥 독을 심어버린 꼴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남의 몸에 박지 않고 저렇게 둥둥 떠다니는 꼴로…… 잠깐, 조금 전에 본 흔적은 마법이 아니었는데?’
프로브의 파괴와 함께 오감이 뒤틀리던 순간까지의 광경을 되새기던 투란은 낯을 찌푸렸다.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 원을 그리듯 구부러진 통로를 돌아 들아간 프로브가 보여줬던 풍경, 그 한편에 남겨진 길게 파인 고랑 같은 흔적은 마법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크고 거센 힘을 지닌 뭔가가 벽과 통로를 마구 긁어낸 흔적이었다.
―스펠 오브 말고 따로 뭔가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만.
드라고니아도 뒤늦게 그 흔적을 알아차린 듯 중얼거렸다.
‘있었어도 저놈들 때문에 울화가 터져서 죽은 지 오래겠지. 일단 가보자고. 조심하면서!’
투란은 가만히 옆에 부서진 문짝 너머를 살피면서, 저 너머 흔적까지 가는 동안에 따로 덮쳐오는 스펠 오브 패거리는 없는가 둘러보면서 움직이려 했다.
퐁, 포포포퐁.
고개를 문짝 너머로 살짝 내밀자마자 몰아쳐 온 거품방울이 요란하게 터졌다.
‘저렇게 연속해서 쓸 수 있는 마법이 흔하냐?’
난리통이 돼버린 방안 한구석에서 비어 있는 거품방울을 미친 듯이 뿜어내는 초록빛 스펠 오브를 보며 투란이 어이없어 물었다.
―버블 자일 같은 마법이 흔할 리가 있냐. 아기 드래곤이 파이어 브레쓰 대신에 뿜어내는 거였다는데…… 그나저나 아까 하나는 저리 도망쳤는데 또 하나가 더 있다니, 아무래도 스펠 오브가 한 종류씩만 있는 것은 아니었나 보네. 근데 왜 몰려 있던 녀석들은 전부 다른 종류였지? 이것 참…….
‘야, 잠깐! 아기 드래곤이라니, 그게 뭔 얘기야?’
―응? 카엘의 꿈 이야기잖아? 어, 너 모르는 거였나? 내가 말해준 적 없어?
‘없어! 꿈은 또 뭐야?’
―그러니까, 꿈에서 봤다는 거지. 대마도사 카엘이 꿈을 꿨는데, 거기 나온 아기 드래곤이 불꽃을 뿜어내는 대신에 저런 거품방울을 뿜어내서 침실에 숨어든 작은 괴물들을 물리쳤다, 그런 꿈 이야기라고. 카엘은 그 꿈을 발상의 원천으로 삼아서 꿈에서 봤던 그 거품방울을 구현해내는 마법을 만든 거라고.
‘와, 진짜 미쳤네! 악몽을 꿨으면 거기 나온 저주나 괴물을 만들겠다고 했겠네! 도대체…… 음? 야, 왜? 왜 갑자기 그렇게 불편한 기분을 나한테 뿜어내냐?’
―카엘은…… 악몽에서 얻은 발상도 기록해두고 뭔가 만든 적이 많아. 그런 위업이 알려지면서 룬디아크 같은 작자도 나타났지. 저번에 봤던 광하검도 카엘이 꿨던 악몽, 온 세상을 지배하는 악의 제국과 반란군이 전쟁하는 끔찍한 꿈에서 단서를 얻은 거라고. 뭐, 광하검의 경우에는 카엘이 만든 것은 아니긴 하지.
투란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전설적인 대마도사에다가, 전설적인 마도구 장인이 시대를 초월해서 쌍을 이뤄 미친 짓거리를 한다는데…… 그 짓거리로 탄생한 새로운 마법, 압도적인 마도구가 오히려 그들의 명성을 더욱 드높여준다니!
겨우 다시 생각을 시작한 투란은 결심했다.
‘가까이 가지 말아야겠다, 대마도사라든가 마도구 명장 곁으로는.’
드라고니아는 이런 투란의 다짐에 풋 하는 웃음소리를 노골적으로 흘리고 바로 핀잔한다.
―홀시딘은 이미 대마법사의 격을 갖췄고, 하클은 충분히 명장이라 불릴 텐데?
‘야, 상아탑의 마도사나 알드바인의 태엽 명인은 꿈꿨어, 꿈대로 만들어야지 같은 헛소리 안 하잖아! 에잇, 지금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인데 왜 자꾸 휘둘리게 하냐고! 다물고, 저놈 어쩔 거야?’
포포퐁, 퐁, 퐁, 포포퐁!
스윽 투란이 문턱에 기대자 방구석의 잔해 틈새로 숨으면서 초록빛의 스펠 오브는 더욱 사납게 주변을 거품방울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케인 월로 통로를 막고, 그쪽으로는 슬그머니 아케인 실드를 쳐들면서 투란이 보니 뒤엉켜 엉뚱한 쪽으로 흘러간 거품방울은 둥실거리며 천장 귀퉁이로 몰리고 있었다. 쏘아질 때의 속력을 잃고 나니 그냥 방 안을 순환하는 잔잔한 바람결에 실려 움직인 듯했다.
한데 그렇게 몰린 거품방울 속에는 노랗고 빨간빛의 조각을 머금은 것도 몇 개 있잖은가.
―그건 스펠 오브야. 저 거품방울에 휘말린 모양이군. 원래 생긴 거랑 겹쳐져서 버블 자일에 갇힌 건지 아닌지 애매한 꼴이지만…… 갇혔으니 저렇게 한 귀퉁이에서 바들거리는 중이겠지.
‘못 터뜨리나?’
―내부에서 어떤 마법을 쓰려 하든, 그 마력이 바로 거품을 타고 무질서하게 방출된다. 안에 갇힌 것이 뭐든 거품면과 닿지도 못하지. 저게 은근히 까다로운 점이 일단 갇히면 웬만한 마력이나 괴력으로도 뭘 어쩌지 못하고 저렇게 갇힌 채로 둥실거린다는 거야.
‘중급 마도사면 쓸 수 있다며? 중급 마도사가 쓰기에는 너무 대단한 마법이잖아?’
―음, 대단하긴 하다만…… 저거 밖에서 치면 바로 터지거든. 안에 있는 것도 터지면서 상당한 충격을 받기는 하지만, 내구성이 좋으면 제법 버텨내기도 하고. 그래, 거품방울처럼 생긴 것뿐 아니라, 성질도 거품방울인 거지. 외부의 충격에 대한 처리까지 완벽하게 하는 마법이었으면 거의 최상급 수준까지 난해해질 거다.
‘그렇다 치고, 내가 갇혀도 짜증 날 상황인 거는 맞지? 그런 걸 뒤통수에 달고 가기 싫은데?’
―흐흠, 흥미 없는 거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뒤를 조심할 궁리를 하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불쑥 던진 물음이었다.
‘어? 뭔 얘기야?’
―아니, 뭐…… 일단 몬스터잖아. 장난치기 좋은 건데, 네 성격이라면 냉큼 삼키지 않을까 했지.
‘아오옷, 이게 날 뭘로 보고!’
투란은 반사적으로 울컥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 투란의 마음 한편에서는 ‘오호? 그럴듯한데?’라는 생각이 동시에 치솟고 있었다.
매우 미묘한 갈등의 순간이었고, 투란은 방 안을 둘러보는 눈길을 하면서 잠시 침묵하는 시늉을 했다.
가구가 있었는지, 도구가 있었는지, 무슨 재료가 있었는지 짐작할 수 없는 나무와 돌, 가죽 따위로 짐작되는 것들이 잔뜩 찢어지고 뒤엉킨 채로 여기저기 뭉그러진 채였다. 벽에 선반이 걸렸던 흔적도 있었지만, 못과 함께 동강 난 잔해 말고 나머지는 어디 갔나 알 수가 없었다.
그런 뭐가 했는지 모를 난동의 결과를 보던 투란이 불쑥 묻는다.
‘너도 아는 마법술식이잖아? 너는 버블 자일 못 쓰는 거냐?’
―드라코눔의 아칸씩이나 돼서 저런 걸? 쓴다면 스톤 프리즌나 플레임 셀을 썼지, 저렇게 톡 치면 터지면서 감금했던 것에 타격을 주는 마법은 안 쓰지. 쓰지도 않는 마법을 익혀둘 필요는 없었고, 그냥 형태와 특징을 알고만 있었을 뿐이다.
왠지 당당한 드라고니아의 대답이었다.
듣고 나니 투란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저 버블 자일은 드라고니아에게 완전히 장난을 위한 것이고 투란에게 그게 어울린다고 지껄였단 말이잖은가!
투란은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이 방 꼴을 봐서는, 다른 방도 비슷하겠지?’
―거의 똑같겠지.
‘귀한 거 없지?’
―금붙이는 분명히 없다만.
‘마도구 재료라든가, 마법 소재는?’
―전혀 보이지 않는군.
‘그러면…… 거품방울에서 풀려난 녀석의 형제들이 어떻게 하나부터 볼까!’
―응?
드라고니아가 갸웃할 때, 투란은 아케인 실드 너머로 아케인 볼트를 쐈다.
아케인 포스를 다루기 시작하면서 기본적으로 배우는 방패와 화살의 마법은 쏘아져 몰려오는 거품방울을 튕겨내고 쪼개면서 천장 귀퉁이로 날아가 뭉쳐 있는 거품방울 한 무더기를 터뜨렸다.
퐁, 포포퐁, 파파팡!
오래 묵어서 그런가, 조금 사나운 소리가 울려퍼졌다.
풀려난 노란빛 조각이 천장 귀퉁이에서 쏜살같이 방 안 중심으로 움직였고, 사방에 금빛줄기를 수십 가닥 쏘아내며 휘두르기 시작했다.
촤악, 촤아앙.
금빛줄기가 꽂힌 벽, 바닥은 검게 파인 흔적으로 끄적인 낙서의 흔적을 머금기 시작했고 부서진 잔해가 다시 동강 나고 그슬리며 검은 재를 휘날렸다.
―아, 저거 아케인 라이트였나.
‘빛을 비추는 마법? 저게?’
―빛의 파장을 조절해서 포톤 블레이드랑 비슷한 효과를 내게 한 모양이야.
‘어, 저 빨간 거 뭐 하려는 거지?’
설명을 들으면서 천장 귀퉁이에 아직 남아 있는 붉은빛 조각의 스펠 오브, 하나도 아닌 여럿을 보면서 투란은 눈가를 찌푸렸다. 은근히 서로 뒤엉겨 마력을 뭉치는 꼴이 힘을 합쳐 뭔 짓을 저지를 듯한 상태로 보였다.
화르르!
천장 귀퉁이에서 시뻘건 불덩이가 부풀며 번져 나왔다.
―아, 파이어 월인 모양인데? 하나씩 있을 때는 파이어 볼트 정도로 보였는데 연계해서 벽을 치다니, 알려진 것보다 스펠 오브가 더욱 발전된 형태였었군. 이전 같으면 연계는 불가능했을 텐데.
드라고니아가 감탄하는 사이, 투란은 한 걸음 물러서면서 문턱에서 멀어졌다.
방 안은 파괴적으로 조절된 아케인 라이트, 여럿이 뭉쳐 뿜어내는 불덩이가 벽을 만들겠다고 날뛰는 현장이 되었고 그 속에서 마구 샘솟던 거품방울이 힘없이 터져나가는 괴상한 광경을 꾸미고 있었다.
그리고 거품방울을 뿜어내는 스펠 오브가 바닥의 잔해 틈새를 헤집으며 문턱으로 굴러오고 있었다. 거품방울에 잔해의 파편을 담아 여기저기 튕기게 하면서, 열심히 성난 스펠 오브들로부터 벗어나려는 모습이었다.
‘어이구야, 도망치려는 거냐. 쯧.’
투란은 슬쩍 문턱에서 완전히 물러섰고, 아케인 실드와 아케인 월도 물리면서 저편으로 도망갈 길을 내줬다.
초록빛 조각이 재빠르게 그 길을 타고 구르듯이 방안에서 벗어나는 순간, 방 한복판 허공에 못 박힌 듯했던 노란빛 조각이 번개처럼 그 뒤를 따라가듯 방에서 튀어나왔다. 연이어 천장 귀퉁이의 붉은빛 조각 몇몇도 순식간에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멀뚱하게 도망치고 쫓는 스펠 오브 떼를 보면서 투란이 중얼거린다.
“원한이 쌓였던 거냐?”
―이거 놀라운데? 저 정도로 감성적일 수가 있었나.
드라고니아는 조금 색다른 방향에서 놀라고 있었다.
마법술식을 저장하는 마도구가 감금과 해방, 그로 인한 울분에 대해 서로 반응하고 있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