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5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48)
투란은 갸웃했다.
‘왜? 갇혀 있다가 성내는 게 이상한 거야? 내가 하나 쳐서 터뜨렸을 때도 겁먹고 도망갔잖아? 딱히 이상해 보이지 않는데?’
―위협대상을 피해 움직이는 거랑, 감금당해서 화를 내는 거랑 다르다. 저런 식으로 활성화된 마도구라면 기본적으로 내구도에 위협을 주는 대상은 회피하게 되어 있으니까. 겁먹은 도주처럼 보였던 것도 그저 미리 지정된 기능대로 행동한 것뿐일 수 있었어. 하지만 조금 전에 보인 것은…….
‘흠, 분명히 서로 다투다가 도망치고 쫓는 거였지.’
―그래, 저건 확실히 몬스터가 되면서 감성적인 반응능력이 생긴 거라 봐야지. 그러니까 조심해라. 눈에 거슬린다고 대뜸 기괴한 마법을 쓰는 녀석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아무래도 여기 날뛰는 스펠 오브는 금색 마도사의 마도서에 기록된 주문술식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커.
‘세란드가 준 천 가지 주문 속에 없는 것도 있으려나?’
―있겠지, 세란드가 이해하지 못한 것들도 말이야.
드라고니아의 진지한 말에 투란은 조금 더 긴장하고 조심하기로 했다.
당장 몸과 마음에 와닿는 위협은 분명히 없지만, 정신 놓고 있다가 무슨 날벼락이 떨어질는지 모르니까. 하찮은 마법이라고 얕보다가 험한 꼴 당했다는 이야기는 나날이 늘면 늘었지 주는 일은 없다 하잖나.
조금 과하다 싶은 투란의 이런 조심스러움은 몇 걸음 더 나아가 처음 문의 반대편 벽에 열린 문턱 가까이 갔을 때 바로 보답받을 수 있었다.
쇳물이 화살처럼 휘익 날아들었고 걸쭉하게 늘어지면서 아케인 월을 침식했지만 미리 조심했기에 바로 한 발 빼면서 다시 아케인 실드로 이어진 두 번째 쇳물 화살을 막아낸 것이다.
‘이것이 대체 뭣이냐?’
―그게 과장스러운 표현이냐? 어울리지 않아! 그냥 하던 대로 해라!
투란이 말투를 꼬아 던진 물음에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렸다.
미리 경계했지만 놀랐노라고 과장해보려 했던 투란은 입술을 삐죽이며 다시 묻는다.
‘그니까, 뭐냐고!’
―멜팅. 이쪽은 완전히 광물(鑛物) 계통 소재를 담아놓은 방이야. 그 광물을 처리하기 위해 모아두기라도 했나? 몽땅 광물 처리 관련인 스펠 오브로구만. 그냥 마법을 날리는 것이 아니라 광물 녹인 것을 함께 쏘아낸 덕분에 아케인 월이 침식당한 거다. 이럴 때는 그냥 물질 자체를 튕겨낼 수 있는 아케인 실드가 더 낫다는 거지.
‘음? 아케인 월도 실드 대용(代用)되는 거 아니었어?’
―어떤 의지로 구현하느냐의 문제기는 하지. 스펠 오브에 주의해서 내가 구현한 탓에 녹아버린 쇳덩이가 들러붙어 파고드는 것은 못 막은 거야.
‘흠…….’
투란은 살짝 새로운 방 안쪽을 들여다보며…… 드라고니아가 대답과 함께 아케인 월을 재구성하는 것을 느끼면서 방이라기보다 창고라 해야 할 풍경을 살폈다.
광물 계통, 그렇게 정리한 것처럼 온갖 쇠와 돌이 녹고 끓다가 식어가는 괴상한 상태로 문 안쪽을 맴돌고 있었다. 어지간해서는 밖으로 튀어나올 리가 없어 보이는데, 조금 전에는 아케인 월에 자극받아 그런 듯했다. 이제는 아케인 월도 그냥 그러려니 한다는 듯, 그저 빙빙 맴돌며 녹고 끓고 식는 기묘한 과정 속에서 바닥을 파며 뜨거운 쇳물로 가득 찬 구덩이를 파는 중이었다.
‘이 방, 멀쩡한 게 신기하다.’
벽이 녹지 않고 저렇게 녹고 끓는 것들이 파고 들어갈 구덩이가 생긴 것을 알아차리면서 투란은 반쯤 놀라고 반쯤 어이없어했다.
―바깥 문이랑 마찬가지야. 벽과 천장은 노골적으로 안티-셸을 기반으로 한 복합적인 마법 방어로 처리되어 있고, 바닥은 일정 깊이…… 대충 방 크기랑 비슷한 깊이 아래로 그런 처리가 되어 있다. 아예 저럴 수 있다고 가정하고 만든 걸로 봐서는 여기가 확실히 마도사의 레어라 할 만하군.
‘레어냐…….’
무슨 몬스터가 은신한 동굴 취급하는 말에 투란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투란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 톤짜리 빗장, 양쪽으로 하나씩 내려서 맞물리게 했으니 합하면 가차 없이 이 톤이 되는 빗장을 걸어 놓은 문 안쪽은 온갖 마법이 난무하는…… 비록 투란 자신은 별 위력을 못 느낀다고 하지만 대책 없는 다른 이라면 그 작고 여린 마법에도 몸에 온갖 흉터를 새기면서 치열하게 도망치거나 맞설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그러면서 몇 걸음 깊이 들어왔다 싶으니 순수한 마법이 아니라 쌓아둔 광물을 가공해서 튕겨 날려주는 창고가 문을 활짝 열고 반겨주기까지 했다.
이 상황이 금색의 마도사가 꾸민 것인가 아닌가는 죽고 다치는 입장이라면 전혀 따질 리가 없었다. 이 정도면 객관적으로 몬스터의 레어라고 말하는 편이 오히려 정확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면서 투란이 다음 문 가까이 다가서니………….
휘잉, 파앙, 콰릉, 콰앙!
돌풍과 천둥, 폭발이 방 안쪽에서 처절하게 격돌하는 광경이 보였다.
이는 꽤 뜻밖이었다.
‘왜……?’
어째서 문 가까이 오기 전까지 저 난장판, 작은 천재지변(天災地變)의 낌새를 전혀 못 느꼈을까? 저 난리통의 소리도 충격의 파동도 문 가까이 발을 딛고 나서야 투란에게 들리고 보이고 느껴진 까닭은?
―침묵의 경계로군. 부서진 문이랑, 문턱에 아직 침묵 마법이 남아 있다. 부서지는 바람에 가까이 다가서면 이 정도 들리는 셈이지.
‘이건 뭐 하는 스펠 오브야?’
살짝 앞뒤로 고개를 움직이면서, 드라고니아가 말하는 침묵의 경계선을 넘나들어 확인하면서 투란은 방 안을 난무하고 있는 색다른 마법에 대해 물었다.
―아무래도…… 날씨 제어를 시험하는 실험실 같은데?
‘날씨……?’
작은 돌풍과 천둥까지는 그렇다 치겠지만, 투란에게 저 작지만 뜨거운 폭발은 전혀 날씨랑 관련이 없어 보였다.
―화산 폭발을 흉내 낸 거야. 크든 작든 화산이 터지면 주변 날씨를 완전히 갈아엎으니 말이지. 바닥을 잘 봐. 다양한 지형을 모사한 기물(器物)이 가득하잖아. 뭐, 관리가 제대로 안 된 탓에 벽이랑 천장까지 다 갈려 나간 모양이지만…… 그래도 방 하나의 범위를 유지하기는 하네.
‘벽이랑 천장 장식도 지형을 흉내 낸 거야?’
―그래. 아무래도 지상만이 아니고 지저 해저의 날씨 변화까지 한꺼번에 다루는 실험장이었나 보군.
‘몬스터 엠블럼에 미친 마도사인 줄 알았는데…….’
―그런 면에서 본다면 아무래도 여기는 금색의 마도사란 별명이 붙을 무렵, 아주 착실했던 시절에 준비한 곳일 수 있겠군. 그 시절에 시작해서 여전히 끝내지 못한 실험을 계속하는 방이고 말이지.
‘그렇다 치고, 이 파인 흔적은 뭐지?’
투란은 슬슬 마도사의 기묘한 실험보다 노골적으로 뚜렷해지는 벽의 흔적, 뭔가가 가차 없이 긁고 지나간 굵으면서도 울퉁불퉁한 고랑처럼 새겨진 흔적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날씨 실험실 문 옆부터 이 흔적은 상당히 이질적으로 안쪽을 향해 이리저리 이어지고 있었다.
―글쎄, 마법은 확실히 아니지.
드라고니아도 그 수상한 흔적이 무엇 때문인가 단정 짓지 못했다.
아직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
때문에 투란은 본격적으로 휘어지는 원을 그리는 듯한 통로를 따라 서너 걸음 더 내디뎠고, 프로브가 뭉개지면서 파악하지 못한 발자국을 볼 수 있었다.
돌바닥을 짓이기면서 충격으로 주변을 으깨놓은 흔적임에도 그 중심이 되는 발자국이 또렷한 채 남은 것이다. 발자국 주변으로 조금 굵고 큰 스펠 오브 몇몇이 치열하게 반짝이며 뭔지 모를 마법을 휘날리기는 하는데, 딱히 어떤 영향을 끼치는 효과는 없어 보였다.
덕분에 투란은 한층 더 수상하게 그 스펠 오브 몇을 보며 묻는다.
‘저거 뭔 마법이야?’
―환각 계통이다. 아케인 월에 효과가 아주 깔끔하게 몽땅 차단되는 중이지.
‘그렇구나…….’
쇳물을 동원해서 후려치던 거랑 완전히 반대 성향이었다.
순전히 감각을 뒤틀려는 마법은 아케인 월에 아무런 손상도, 부딪혔다는 흔적도 없이 그 너머에서 소실될 뿐!
착실하게 아케인 월을 밀어붙이며 투란은 몇 걸음 더 걸어나갔다.
거의 골목을 돌아선 듯하다 싶을 때, 통로 좌우로 몇 개의 문이 더 박살 난 채로 하늘거리며 문턱 안쪽의 괴기한 풍경을 맛보기로 흘려놓는가 싶은 것이 보였지만 투란의 눈길은 통로 끝에 고정되었다.
넓게 펼쳐진 퍼브의 홀과 비슷한 공간이 치열하게 난무하는 광채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빛의 색조가 조금만 달라도 전혀 다른 마법이 터져나오는 스펠 오브의 군무가 거기 있었다. 이제까지 밀고 들어오면서 본 것들과 비교하면 수백 배나 밝다고 할 수밖에 없는…… 수천, 수만의 색조가 혼돈을 수놓은 테피스트리처럼 어울리며 출렁거리고 있었다.
그 광경의 의미를 외면하려 해도 외면할 수 없기에 투란은 잠깐 생각을 멈춰 지켜봐야 했고, 결국 새는 신음을 삼키며 소리 없이 묻고 말았다.
‘세상 마법, 여기 다 모아놓은 거냐?’
투란보다 더 놀란 듯한 드라고니아의 대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투란은 이해할 수 있었다.
수천, 수만의 마법술식이 저마다 그 효과를 드러내기 위해 마력을 뒤트는데, 서로 간섭하고 방해하느라 겨우 섬광의 파편만 자아내는 듯한 광경.
그런데 저것이 어떻게 보이는 것일까?
그저 눈에 보이기는 하는데 살갗에 와닿는 것은 전혀 없었다.
저 홀에 도달하기 전에 지나쳐야 하는 방 몇에서 흘려내는 마법의 낌새가 더 선명할 지경이니…… 통로 끝의 홀이 제법 넓다는 것이 어떻게 잘 보이는가부터 의아할 정도였다.
―옴니앙…….
간신히 다시 말문을 연 듯한 드라고니아의 말이었다.
‘응? 옴니앙? 그건…… 세란드가 머리에 이고 있던 거? 어라? 잠깐! 기억났다! 이 발자국!’
어리둥절해서 갸웃하던 투란은 몇 걸음 앞에 보다 깊이 박힌 발자국, 그 옆의 벽에 그어진 패인 흔적을 다시 확인하며 그르렁거리는 듯한 목울림을 토해냈다. 동시에 드라고니아도 알아차렸다.
―세란드가 남긴 거라고?
‘그래! 내가 사냥한다고 쫓을 때 봤던 거잖아!’
몬스터 세란드의 발자국, 그 하얀 손길이 닿은 흔적이었다.
황금매를 덧씌우기 전, 그런 일은 상상도 못 하면서 한 대 맞고 죽을 뻔한 원한을 품고 풀기 위해서 쫓으며 투란이 읽었던 흔적, 이제는 지난 일로 대충 잊었던 그 흔적이 통로에 이질적으로 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세란드가 여기 알려준 거잖아? 당연히 흔적이 남아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다만…… 왜지?
드라고니아가 전후관계를 살피는 듯하다가 갸웃했다.
몬스터가 된 세란드가 여기서 왜 날뛰었는가?
투란은 어깨 위에서, 아케인 월의 보호를 받는 프로브가 맹렬하게 주변을 최대한 탐색하는 것을 느꼈고 바로 힘을 보탰다.
그리고 바로 투란은 봤고, 드라고니아도 확인했다.
끊임없이 명멸(明滅)하는 스펠 오브의 수천, 수만의 군무 속에 감춰져 있던 것. 그 명멸 속에 잠깐씩 드러난 그림자 틈새로 보인 수천, 수만의 파편을 프로브가 모으고 짜기워 만든 저 홀의 풍경…… 으스러지고 뭉개진 로브, 피와 살, 뼈가 고스란히 드러난 잔해가 그 한복판에 놓여 있었다.
얼핏 봐도 마법사 하나가 짓이겨져 죽어 있구나 싶은 그 광경, 거기에 한층 더 기괴함을 더하겠다는 듯이 천장 가까이 뜬 채로 꼼짝도 않는, 십몇 센티는 될 듯한 투명한 구슬은 한 귀퉁이가 깨진 채!
수천, 수만의 스펠 오브가 가득 채운 빛의 난무 속에 가려진 홀의 상황이었다.
그 밖에 부서진 가구, 망가진 도구 비슷한 것들의 파편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저 마법사였던 것의 잔해, 세란드가 몬스터로서 남긴 흔적.
그것만으로 추측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여기로군.
‘어, 여기였나 봐.’
금색의 마도사, 아겔페스가 아겔이란 짤막한 이름으로 황금매의 문장을 실험하며 세란드를 속이다가 죽은 곳.
모든 것을 포기한 세란드가 몬스터로서 다시 태어난 곳.
어찌 보면 미리 생각 못 한 것이 바보스럽다 여길 수도 있었다.
몬스터 세란드가 딱히 감춘 것도 아니었는데…….
―자세히 묻지 않은 탓이 크긴 하다만, 그놈 자세히 물어도 대답 안 해줬을걸?
드라고니아가 살짝 위로라도 하는 듯한 말을 투란에게 건넸다.
‘뭐, 앞뒤 자르고 가보면 안다고 하기는 했지.’
쓴웃음으로 머리를 긁적이면서 투란이 대답했다.
확실히 와서 보다 보니 알 수 있기는 하니까.
하지만 투란에게는 와서 봐도 알 수 없는 것, 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저 구슬이 옴니앙인 거 맞아?’
세란드가 머리통 속에 애지중지 박아넣었던 구슬, 몬스터의 정수로서 세란드와 함께 삼켜져 황금매의 문장 속에 자리 잡고는 몬스터 세란드의 길쭉한 귀 사이로, 머리 위에 얹어놓은 그것과 저 홀의 구슬이 동일하다는 뜻인가, 아니면 같은 마도구란 뜻인가?
―맞는 거 같다. 파괴된 건지, 미완성인 건지가 좀 애매하다만…….
이는 투란에게 한층 더 애매한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