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5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49)
‘부서진 거야, 만들던 거야?’
어느 쪽이냐고 확실히 하란 듯이 되묻는 말이었다.
어쩌면 세란드는 저 부서진 파편을 삼키고 거기서 얻은 정수(精髓)를 통해 온전한 구슬을 따로 갖춘 것일 수도 있으니까. 저것이 옴니앙일지라도 일단은 스펠 오브이니, 저 난동을 부리는 수천, 수만의 스펠 오브처럼 몬스터가 된 경우일 수도 있잖은가. 혹은 세란드가 완성된 다른 옴니앙을 삼켰고, 저건 다른 옴니앙으로서 아직 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고.
―아무래도, 미완성인 채로 작동을 시작했다고 보는 편이 맞는 것 같기는 하다만…… 아래에 저렇게 덩그러니 시체가 놓여 있어서는 완성품이 파괴된 채로 저러고 이을 가능성도 있거든.
드라고니아는 확정 지을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래서 투란은 다른 물음을 던졌다.
‘경우에 따라 처리방식이 달라지나?’
드라고니아가 흠칫 놀라 되묻는다.
―처리? 저걸?
‘왜 놀라? 그냥 두자고?’
―아…… 그냥 둘 수는 없다만…….
드라고니아가 퍼뜩 정신 차렸다는 낌새로, 매우 곤란한 분위기로 웅얼거렸다.
투란에게는 상당히 괴상한 반응이었기에 다시 보채 물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못 해? 방법을 모른다는 거야?’
―찍어 누를 수는 있다만, 솔직히 말하면 저대로 그냥 두고 싶다.
‘엥? 그냥 두자니, 왜?’
설마 겁먹었나 해서 투란이 갸웃하니, 드라고니아가 숨을 잔뜩 몰아쉬었다가 내쉬는 흉내를 내면서 투란의 뇌리를 쩌렁쩌렁 울리는 외침을 터뜨린다.
―무슨 마법을 재현해서 터뜨릴지 모르니까! 잊었냐? 세란드의 옴니앙에서 파워 서클까지 끌어냈잖아! 지금 상태로 놔두면 탈 없을 것을 일부러 건드려서 무슨 엉뚱한 사고를 치게 할지도 모르니까!
‘아우, 시끄러! 좀 살살 말해라. 꼭 머리통 울리는 방식으로 떠들어야겠냐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털어내는 시늉을 하며 투란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불퉁스러운 대꾸를 해도 투란 역시 지금 제안을 무시할 생각은 없었다.
가만히 두면 그냥 그대로인 것을 일부러 건드려서 난리를 일으키다니, 몬스터 헌터이든 몬스터 로드이든 해서는 안 될 짓의 첫 번째로 꼽히는 것!
당장 터지는 것이라면 바로 손을 써야겠지만 며칠 뒤라든가, 몇 년에 터질 것 같으면 일단 물러서서 생각부터 깊게 오래 해보는 것이 먼저!
그런 불문율을 투란이 차례대로 늘어놓으며 슬그머니 발을 뺄 낌새를 보이니, 드라고니아가 바로 움찔하면서 묘한 말을 꺼낸다.
―아니, 그건 아니고…….
‘엥? 뭐가 그건 아냐?’
―하아, 너 지금 돌아서서 홀시딘이 몰튼노트 지역을 내버려 뒀던 것처럼 몇십 년이고 잊고 있을 궁리를 했잖아. 그러니까 그건 아니라고!
‘아니야? 그럼 어쩌자고? 건드리지 말고 그냥 두고 싶다며?’
―그래! 그냥 두고 싶다! 그치만 그냥 둘 수가 없잖아! 봉인의 금쇄라도 건드리지 않고 딴 구멍으로 들어왔으면 모를까, 그것까지 해체해서 마도사의 레어를 활짝 열어놓은 꼴로 해놓고 어떻게 그냥 두냐! 그러면 안 돼!
으르렁거리는 드라고니아의 이야기에 투란은 손가락으로 볼을 긁적이면서 휘황한 빛이 여전히 난무하는 통로 끝의 홀을 바라봤다.
그냥 두고 싶고 그냥 둬서는 안 된다니…….
그런 말을 하는 까닭도 명확하기는 했다.
원래 마법사란 방문 앞에 돌 하나만 옮겨놔도 문에 걸린 마법이 이상한 짓을 하게 해놓는 작자들…… 어쩌면 이 안의 난장판도 투란이 가디언인 오러 몽거와 그 구속을 유지하던 ‘봉인의 금쇄’를 치워버린 탓일 수도 있다.
그 전에 세란드에게 아겔이란 이름을 들이댔던 금색의 마도사가 저 꼴이 된 탓일 수도 있지만…….
‘어쩌라고?’
뭘 어떻게 할 방법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투란으로서는 불퉁하니 이리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반쯤은 이도 저도 고르지 못하는 드라고니아를 흥미로워하며 또 뭐라 하나 기대도 해보는 투란이었다. 언제나 확고한 방향을 지닌 채로 잔소리하던 녀석이 이러는 꼴 보는 것도 신기하니까!
드라고니아는 이런 투란의 분위기에 조금 울화를 뿜어내면서도 어쩔 수 없는지, 잠깐 사이에 깊이 생각한 바를 말한다.
―야, 봉인의 금쇄…… 여기다 쓰자.
‘뭐? 어떻게?’
투란은 어리둥절해서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드라고니아는 그 의문에 답하듯, 생각한 바를 좀 더 길게 차분히 늘어놓는다.
―스펠 오브 하나둘씩 때려잡아 묶자는 말이 아니야. 중요한 거는 저 깨진 옴니앙이니까. 잘 보면 느껴지잖아. 저 부서진 부분에서 스펠 오브가 계속 퉁퉁 튀어나오는 거…… 저게 버블 자일이 아니라 스펠 오브를 뿜어내는 거잖아. 그러니까 저 깨진 옴니앙을 봉인하자고. 마력을 묶고 스펠 오브를 토해내는 원천을 봉인해버리면 얼추 정리되지 않겠냐고.
‘내가 그 고생을 해서 얻은 아티팩트를 하루, 아니 반나절……도 아닌 몇 시간도 아닌 한 시간도 안 된 지금 도로 뱉어내란 말이냐! 딴 방법은? 쉽고 편한 거 말고, 조금 어렵고 까다롭더라도 딴생각을 해! 다른 대책을 내놔!’
투란이 으르렁거리듯이 대꾸하는 말은 길었다.
한데 드라고니아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다른 대책을 내놓으니…….
―그럼, 몬스터 로드의 마력으로 역장을 두르고 다 찍어 누르는 쪽으로 해볼래?
‘역장으로?’
―마도구든 마법이든 닿는 거 망가뜨리는 재주는 몬스터 로드라면 아무나 자랑하는 짓이잖아? 넌 그걸 확대해서 단숨에 이 동굴, 마도사의 레어를 장악할 수 있는 재주를 배웠고. 그거라면 부서졌든 미완성이든 관계없이 옴니앙이라도 굴복시킬 수 있을 테니까. 그다음에…… 완전히 부숴버리든 삼켜서 지워버리든, 어떻게 할지 생각을 더 해보자고.
‘잠깐만.’
투란은 눈가를 손으로 문지르면서 생각에 잠겨들었다.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드라고니아가 처음에 던진 미끼, ‘봉인의 금쇄’를 쓰자는 말은 얻은 아티팩트를 바로 날려버리는 이야기였고 투란이 냉큼 그러자고 하기에는 억울한 제안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꺼낸 까닭은 아무래도 이 두 번째 제안을 실행하자는 뜻일 텐데…… 이 또한 쉽게 그러자 할 것이 아니었다.
투란 스스로 어렵고 까다로운 대책이라도 내놓으라 하기는 했지만, 이건 투덜거리면서 어렵고 까다롭다고 할 수준이 아닌 상황이니까.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면 오히려 ‘크하핫, 내 힘을 봐라!’라고 우걱거리면서 밀어붙였을 수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투란은 지금의 상황을 꽤 명확하게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알고 있었다.
맨눈으로 보면 작은 빛이 조각들이 부풀었다 오그라들었다 하며 눈앞을 휘황찬란하게 만드는 채로 뭔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온갖 채광을 마구 뿌려대서 거의 눈을 멀게 할 지경일 뿐이지만, 그 밝기를 걸러내고 마력의 흐름을 느끼고 파악하려 하면 저건 온갖 속성의 마법이 제멋대로 영역을 확장하며 현상을 주도하기 위해 격돌하는 광경이었다. 수천수만 가지 마법이 제멋대로 마력을 흘려내는 탓에 서로 부딪혀 상쇄하는 중인 속으로 자신의 마력만 믿고 걸어 들어간다니…… 마법에 대해 조금만 알아도 몸에 기름 붓고 마른 풀잎으로 된 외투를 걸친 채로 대장간 화덕 안에 뛰어드는 것이 더 안전할 터였다.
무엇보다 투란의 마음에 걸림돌로 불룩거리는 점은 금색의 마도사 아겔페스가 황금매의 문장을, 비록 불완전한 것이었으나 몬스터 엠블럼을 연구하고 만들어냈다는 사실이었다.
옴니앙이란 마도구에 그런 부분마저 담겨 있다면, 저 스펠 오브에 몬스터 엠블럼을 건드릴 수 있는 마법이 있다면 그저 몬스터 로드의 마력은 끄떡없다고 믿고 들어가는 것은 자멸(自滅)하는 지름길로 질주하는 셈일 수도 있다.
―뭔 생각이 그리 많아?
드라고니아가 불쑥 하는 말이 투란의 생각을 뚝 끊었다.
‘네 탓이잖아!’
대답은 신속하게 투란의 마음에서 퍼져나갔다.
―내 탓?
어처구니없어하는 드라고니아였고, 투란은 한층 더 단호하게 말해줄 수 있었다.
‘맨날 마법이 어쩌고저쩌고하면서 겁을 잔뜩 줬잖아! 나한테, 네가! 그러니 지금 당장 자신 있게 쳐들어갈 수 있겠냐고! 그래, 안 그래?’
훌렁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기분을 줄줄이 흘려내며 하는 말에 드라고니아가 잠깐 할 말을 잃은 듯이 침묵했다.
오래 가는 침묵은 아니었다.
―얌마! 무식하게 뛰어드는 얼간이 짓을 못 해서 억울하다는 거냐!
‘누가 억울하대? 이럴 때는 아는 만큼 겁난다는 말이잖아! 몰랐으면 일단 힘 팍 넣고 한 걸음이라도 디뎌봤을 텐데, 보라고 발가락까지 겁먹어서 앞으로 밀어 넣을 수가 없잖아!’
꼬물꼬물, 뒤꿈치를 올리고 발가락을 살짝 앞으로 내밀어 부르르 떠는 시늉까지 하며 투란이 한껏 억울하다는 듯이 지껄였다.
―아, 진짜 이놈이! 하아아……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데? 그냥 돌아서서 튀려고?
짧게 토해져 나오는 드라고니아의 기분은 다채롭게 투란의 마음을 울렸다.
울컥하는 울화, 분함, 포기, 맘대로 하라는 한숨에 이르는 그 기분에 투란은 조금 진지하게 대답해야 했다.
‘카엘의 아티팩트는 내버려두기에는 너무 위험해. 내가 올 수 있었다면, 다른 누군가 또 올 수도 있잖아. 그리고 다음에 오는 녀석은 오러 몽거를 만날 일도 없을 테고. 그러니 저걸 여기 묶어두고 가는 거는…… 최악이 아니면 하지 않을래. 게다가 내가 문장의 고유마력으로 역장을 만드는 것도 결국 이 아티팩트 때문이잖아.’
귀를 만지작거리면서 투란은 다시 한번 ‘봉인의 금쇄’가 자신을 주인으로 삼고 호응하는 것을 느꼈다. 미묘한 마력의 흐름, 언제라도 길에 늘어질 수 있는 사슬의 반향…… 안정적인 분위기가 투란을 조금 더 자신 있게 받쳐주는 느낌이었다.
‘이 녀석의 도움을 받아서 역장을 최대한 펼쳐 억눌러 보자고. 그러려면 먼저…… 저게 대체 어째서 저 안에서 나오지 않는 건지부터 알고 싶은데?’
슬쩍 어깨 위의 프로브를 가슴 쪽으로 옮겨 흔들면서 묻는 말이었다.
드라고니아도 조금 전의 부글거리며 뒤엉킨 기분을 훌훌 털어낸 듯이 대답한다.
―저 온전하지 못한 옴니앙의 영역이야. 잘 봐라, 방 안에서 나왔다가 저 홀 안으로 휘말려 들어가는 스펠 오브는 다시 나오지 못하는 거, 그래도 꾸준히 방 안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걸로 봐서는 각각의 방마다 스펠 오브를 꾸준히 생성하는 뭔가가 있다고 보인다만, 그건 나중 일이고. 일단 저 홀 안은 옴니앙의 내부라고 생각하는 편이 맞을 거야. 온갖 주문의 반향을 읽고 내재하며 언제라도 방출할 준비를 하는 대마도구, 그게 옴니앙인데 저렇게 스펠 오브를 방출하고 내부여야 할 공간을 홀로 확장해서 나름대로 관리한다고 생각해보는 거지. 그렇다면 투란 네가 할 일은 간단해진다. 이 공간, 마도사의 레어 전체를 휘감는…… 최소한이라도 저 홀 전체를 휘감아서 억누르는 마력의 영역을 만들어내는 거야. 그리고 조여서 옴니앙의 본체, 구슬 안으로 구겨 넣고…… 사슬로 묶어. 일단 그리 처리한다면…… 야, 바로 시작하지 말라고!
한참 설명하고 있던 드라고니아는 가만히 듣던 투란이 돌연 마력을 방출하는 상황에 바로 흠칫하며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투란은 이미 마음을 정했다는 듯, 들을 설명은 모두 들었다는 것처럼 귀걸이가 된 ‘봉인의 금쇄’를 순환시키는 고유마력의 흐름을 만들어냈고 몬스터 엠블럼이 그 검은 얼룩 같은 형상을 드러내게 한 채였다.
문장의 마력은 곧바로 투란의 온몸을 오러처럼 휘감아 둘렀고, 서서히 두꺼워지면서 그 범위를 넓혀나갔다. 언제라도 몬스터의 형상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마력이 오러의 방어처럼 몸을 두른 것은 투란에게 조금 즐거운 느낌이었기에 더욱 거칠 것 없이 역장의 영역이 확대되었다.
곧 문가를 넘나들며 굴러 나오던 스펠 오브가 역장에 닿아 빛의 가루처럼 흩어지기도 했다. 순식간에 서넛이 그리 되고 나니 다른 스펠 오브 떼가 방 안으로 되돌아 숨거나 홀의 군무 속으로 뛰어들며 피해가는 상황이 되었다.
투란은 그런 상황을 살폈고, 앞뒤로 둘러쳤던 아케인 월이 잠식되어 사라진 것도 파악했다.
‘프로브, 못 움직이겠어?’
―어렵다…… 윌 라이트의 마력도 가까이에서는 은근히 간섭 받아서 장애를 일으키는데…… 그냥 치우고 보고 느끼는 편이 더 정확하겠어. 어차피 문장의 고유마력은 네 감각을 더욱 강화하고 활성화하니까, 그냥 네 몸으로 보고 느끼는 쪽이 더 낫다.
‘그렇기는 하네, 그러면…… 뒤편 정리부터 좀 하자.’
투란은 먼저 빗장이 걸린 문 쪽으로, 구부러진 통로 쪽으로 역장을 확장시켰다.
보이지 않는 손을 뻗고, 입김을 채워 넣는 듯한 감각.
마력의 손을 다루는 연습이 문득 떠오르는 와중에 투란은 등 뒤에 늘어선 벽과 방에서 파직거리며 뭔가 부서지며 파편을 휘날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몬스터 로드의 힘에 저항하려다가 마도구가 깨지는 듯한…….
―과연 몬스터 로드.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지만, 드라고니아가 냉큼 확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