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5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51)
Chapter 171. 마도사의 유산
세란드가 사라졌다.
투란은 털썩 엎어지듯, 네 발로 바닥을 짚는 것처럼 쪼그린 꼴이 되어서 웅얼웅얼했다.
“뭐, 뭐냐고…… 이게 뭐야!”
―꽤 합리적인 일 처리로군.
“얌마!”
―지금 네 모습은 아무도 없는 빈방에서 혼잣말하는 넋 나간 모습이다. 그게 버릇이 되니까 자꾸 생각하는 대로 중얼거리는 버릇이 생긴 거지. 그래도 옴파르는 별로 나쁜 이름은 아니니 다행이다만.
‘어우으으!’
아랫입술을 깨무는 시늉을 하며, 몸을 뒤로 젖혀 다리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은 꼴로 자세를 바꾸면서 투란이 소리 없이 포효하는 시늉을 했다.
이는 모두 세란드, 월드 가디언인 세란드가 뭐라 할 틈도 주지 않고 날벼락 치듯 상황을 끝장내고 떠난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투란을 당혹시킨 일이 잔뜩이었으니…….
‘힘들게 얻었는데! 못 쓰게 해놨잖아! 이거 뭐냐고!’
이리 투덜거리면서도 소리 내지 않으려 애쓰는 것도 그 영향이었다.
―원래 따로 쓸 곳도 없었잖아? 차라리 지금 상태가 너한테 유리할 텐데?
‘지나가던 몬스터 파팍 휘감아서 깔끔하게 잡을 수가 없잖아! 봉인의 금쇄를 얻었는데! 대마도사의 아티팩트를 얻고 뭐 하나 잡은 것도 없는데 배꼽에 박아놓고 못 쓰게 해놓다니! 월드 가디언이면 이래도 되는 거야?’‘
억울한 투란의 외침은 소리 없이, 마음으로만 깊이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드라고니아는 잠깐 침묵했다.
세란드가 해놓고 간 일, ‘봉인의 금쇄’를 이용해서 ‘옴파르’라고 새로 이름을 새겨놓은 금빛 찬란한 마도구를 제압하고 투란의 배꼽 안에 박아버린 일을 되새기기라도 하는 듯한 침묵이었다.
더불어 그런 짓을 하면서 세란드가 남긴 말…….
―자세한 설명은 너와 함께 하는 자에게서 들어. 드라코눔의 비전마력을 너에게 알려줄 정도라면 충분히 알려줄 테니까.
이를 되새김질하며 음미라도 하는 듯하던 드라고니아가 다시 말문을 연다.
―월드 가디언으로서 제대로 일 한 거야. 충분히 느끼고 있잖아. 게다가 다른 몬스터 로드의 평범한 방식도 알려줬고 말이지.
‘진짜인가 아닌가 확인도 못 해본 방식이잖아!’
―어느 정도는 너도 이미 하면서도 무심히 넘겼을 뿐이었잖아.
‘그야…….’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부정하며 외면하려 하지 마라, 애도 아니면서.
‘크앙!’
여전히 소리를 억누르면서도 투란은 나름 으르렁거리는 시늉을 해봤다.
하지만 드라고니아가 짚은 바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세란드가 알려준 다른 몬스터 로드의 방식, 그게 평범한가 아닌가를 떠나서 고유마력으로 일으킨 파동을 통해서 주변을 탐지하거나 공격, 방어에 응용한다는 그 방식에 대해서 듣고 나니 투란 자신도 거의 생각 없이 몇 번 해본 적이 있었다.
‘봉인의 금쇄’를 이용해서 이를 보다 적극적으로, 보다 강력하게 활용하는 역장―세란드는 이를 볼트 울티마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원래 금쇄에 담긴 봉인 마법이라고 했다―의 방식은 투란이 그저 새로운 운영법을 자각한 것이라면서, 그 정도로 강력한 역장을 구성하는 것이 특별할 뿐이며 딱히 고유마력을 이용한 감각의 확장을 위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세란드가 다소 거칠게 알려준 셈이었다.
‘봉인의 금쇄’에 ‘옴파르’를 끼워서 투란의 배꼽에 푹 꽂아주는 것으로!
귀에 거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란 말도 곁들였고, 사실이기는 했다.
하지만 ‘옴파르’를 봉인했기 때문에 이를 뽑아 다른 몬스터를 움켜잡는 일에 쓸 수는 없게 되었다.
난데없이 마도구의 봉인지가 돼버린 탓에 투란이 질겁했지만, 세란드는 아주 냉혹하고 철저한 표정으로 말했다.
“스펠리쉬 어빌리티로서 안착(安着)하게 되면, 그 때는 금쇄가 저절로 해방될 거야. 딱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그 순간이 오면 바로 알 수 있게 된다. 그 때까지만 참는다고 생각해. 어쨌든 옴파르는 두 번째 옴니앙이고 기본적으로 같다는 점을 생각하면, 투란 너는 엄청난 아티팩트를 갖게 되는 거야! 그러니 그 때까지만 참아!”
살짝 혹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기는 했다.
세란드가 휙 떠난 다음에 드라고니아가 덧붙인 말이 그 혹한 기분을 단숨에 날려 보내서 문제였지!
‘야, 정말로 이거 언제 안착하는지 예상 못 해?’
새삼 투란이 희망의 끈, 보풀이라도 잡겠다는 듯이 물었다.
―스펠 오브가 스펠리쉬 어빌리티로 안정화하는 시간은 전부 제각각이었다. 스펠 스택이 하나뿐이었을 때도 말이지. 그런 데다가 담고 있는 주문의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는 것은 확실했지. 괜히 발상은 좋지만 선택은 하지 않는 마법의 도구, 술식이 된 게 아니야. 그러니 투란, 미련 버려라. 세상을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는 마도구를 봉인한 위업을 자랑스럽게 여기라니까.
‘필요 없어! 어디 가서 자랑도 못 하는 거잖아!’
―음? 그야 홀시딘이라면…….
‘닥쳐!’
슬그머니 시크릿 키퍼인 상아탑의 마도사를 거론하려는 드라고니아를 향해 투란은 아주 매몰차게 으르렁거렸다.
그럼에도 뭔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애초에 ‘옴파르’란 이름이 새겨지기 전, 미완성인 채로 스펠 오브를 잔뜩 뿜어내고 있던 옴니앙 세컨드란 가칭(假稱)이 전부였던 마도구를 제압해서 처리하려 할 생각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전부 내 책임이 아니라고 징징거릴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겠노라 작정하고 달려들다가 상황 이상하다 싶어 세란드를 부른 것은 다름 아닌 투란 자신 아닌가!
뭔가 원인을 따지고 결과를 돌이키려 해도 결국 투란 스스로 저지른 일에 묶인 꼴이었다.
―너무 비관적인 생각에 몰입하지 마라. 그래도 금색의 마도사가 제정신일 때 지녔던 재산은 물려받았잖아. 기대되지 않냐? 그 시절의 금색의 마도사는 미래의 대마도사라 불리며 활약했다니까.
슬쩍 화두(話頭)를 돌리려 하는 드라고니아였다.
한창 이게 무슨 꼴이냐고 징징대던 투란에게는 나름대로 탈출로이기는 했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도망칠 곳은 그쪽뿐이니,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면서 투란은 뒤로 발라당 누워버렸다.
세란드가 깔끔하게 정리해둔 탓인가, 홀의 천장과 바닥, 벽 어디에도 금가고 깨진 흔적은 없었다. 지금 투란이 드러누운 자리 역시 파인 흔적이나 피와 살이 눌어붙은 자취 따위는 한 톨의 먼지만큼도 없는 상태였다.
‘저 바깥 문 쪽도 정리했다고 했지?’
―그래. 이전에 못 했던 뒷정리를 깨끗하게 끝냈다면서 가버렸지.
누운 채로 투란의 눈길이 홀의 안쪽, 빗장 걸린 바깥문으로 향하는 통로의 반대편을 향했다.
휘황한 빛의 군무에 가려져 있던 벽, 벽이라고밖에 생각하지 못했던 곳이 훤히 뚫려 새로운 밀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세란드가 그 밀실을 드러내주면서 했던 말은 간단했다.
―금색의 마도사란 위명을 얻게 한 도구들, 그 시절에 모아둔 재보가 모두 담겨 있다. 둘러보고 쓸 만하면 가져가 써라. 금은보석류도 있으니까…….
‘금은보석류…….’
―그 한마디만 단단히 기억하냐?
되새기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바로 으르렁거렸다.
투란은 누운 몸을 데굴데굴 굴리며 밀실 쪽으로 다가갔다.
‘저기 저 돌인형은 어딜 봐도 금은보석은 아닌 것 같은데?’
밀실의 저편 벽, 몇 미터 안쪽 벽에 널브러진 것처럼 팔다리 모양을 쭉 뻗고 늘어뜨린 채로 기대앉은 모습의 바윗덩어리는 분명히 사람 모양을 흉내 낸 형태였다. 손발의 섬세한 형체라든가, 얼굴의 윤곽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이 그저 크고 작은 돌덩이를 어떻게든 접착만 시켜놓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머리 한복판에 묘하게 파인 문자를 닮은 무늬를 새겨놔서 뭔가 용도가 있어 보이기는 했다.
―골렘이다, 이 바보야!
‘골렘……? 어디서 들어봤기는 한 것 같은데? 뭐였지?’
―카엘이 공개한 유사생명형 마도구로 유명한 거다. 뭐, 빈약한 오우거 하나 못 만들어서 끙끙거리는 마법사들에게는 별 흥미를 못 끄는 마도구이기는 하지.
‘돌인형이 움직이는 거야? 바위 트롤로 착각하기 쉽겠네?’
또렷이 기억나는 것이 없기에 투란은 대충 비슷한 걸 들먹이고 있었다.
―자주 그런 경우가 있기는 하지. 하지만 바위 트롤은 몸에 돌조각이 잔뜩 붙어 있어도 핏발 선 눈이라든가, 돌 틈새로 피가 나는 가죽이 드러나 있잖아. 자세히 보면 아주 확실하게 구분이 된다.
‘대강 봐도 일어서면 한 삼 미터는 될 것 같은데? 저런 게 움직여서 들러붙는 꼴 보면 자세히 보기 싫을걸? 근데 카엘은 왜 또 저런 걸 만들었대? 오우거보다 어려운 거라면, 뭐가 특별해?’
―카엘의 경우에는 그냥 꿈속의 추억일 뿐이고, 저걸 활용하는 마법사의 입장이라면 먹이면서 관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오우거랑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이라 택하는 거지.
‘돌이라서? 그러면…… 제작에 들어간 마력총량 대비해서 활동범위는 어떻게 되는데? 한번 기동시켜서 영구동작하는 마도구는 없다며? 그래서 생명활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오우거가 좋은 거라며?’
나름대로 마법의 지식을 되새기면서, 그나마도 살짝 끙끙거리는 낌새를 실어 힘들다는 시늉을 하면서 투란이 물었다.
―골렘은 제작방식에 따라서 상당히 유연한 선택이 가능하지. 마석(魔石)을 이용해서, 마력의 충전(充塡) 핵을 갖춰놓으면 그 핵이 파괴되지 않는 한 지속적인 활용도 가능해. 대신 그 마력 충전 핵을 구현하는 술식이 까다롭고, 제대로 만들려면 들어가는 재료를 구하기가 까다롭다는 문제가 있다.
‘흐흠, 그래서 저건 움직인다는 거야, 아닌 거야? 들어가면 벌떡 일어나서 패려고 들려나?’
투란은 벽에 기대고 늘어진 골렘을 보며, 밀실의 경계 너머로 발가락 손가락을 살짝 담가볼까 말까 하는 시늉을 하면서 묻고 있었다.
그 꼴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한숨을 섞어 드라고니아가 대답한다.
―저건 정지된 상태다. 뭣 때문인가는 모르겠다만, 저 안에 넣어둘 때 이미 활동을 완전히 정지시켜서 뒀어. 더 활동시킬 생각이 없어서 깨끗하게 정리해 담아둔 셈이지.
‘헤? 그럼, 그냥 줍는 사람이 주인?’
―그래. 얼굴에 마법술식의 핵심이 되는 문자를 그냥 노출시켜 놨잖아.
‘아, 저거…… 룬 시스템인가 하는 거랑 완전히 다른데? 문자 맞냐?’
―옴 시스템 문자다.
‘어? 옴?’
―마하박티 신전 쪽에서 흘러나온 체계가 다른 마법문자야. 상당히 특이한 경우라고 생각해라. 보통 마법사들은 선택하지 않는 거다만…….
‘미궁 안에서도 그렇고, 이 근처에 있으면 그 마하박티 신전이랑 친하게 되는 건가? 그 환마들도 그 신화에서 나왔다더니.’
―글쎄…… 마하박티 신전에서도 옴 체계는 기도문에서나 쓴다만…… 그냥 금색의 마도사가 특이했다고 생각해라. 뭣 때문인지 이제 와서 물어볼 수도 없잖아.
‘킁, 그렇네. 그래서 룬이 아니고, 옴이면…… 골렘 못 움직이나?’
―그건 전혀 상관없어. 그냥 저 문자 시작점에 손끝을 대고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딱히 문자를 해독하고 어쩌고 하는 과정이 필요 없다. 아까 네 말대로, 줍는 게 주인인 상태지.
가만히 일어나 앉으며, 밀실 안쪽으로는 손가락 끝만 넣어 쿡쿡 찌르면서 별일 없는가를 확인하며 투란이 갸웃하다가 다시 묻는다.
‘근데, 어디 쓰라고?’
드라고니아가 살짝 말문이 막힌 듯했다.
확실히 골렘은 특별했다.
데리고 다니면 바로 눈에 띌 터였고, 다들 끌고 다니는 이를 마법사로 볼 터였다. 투란이 마법사로 분장하는 경우라면 꽤 특이하다고 쳐다봐줄 것이 분명했다. 눈에 띄고 싶다면 골렘을 끌고 도시에 들어가는 것이 참으로 좋은 방법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몬스터가 와글거리는 야생의 황무지에서 골렘이 저 바위로 된 몸뚱이를 무겁게 움직이며 쿵쾅거리고 돌아다닌다면?
바위고 뭐고 상관없이 쪼개는 몬스터가 어디서 올지 알 수 없는 곳, 짐승이라도 바위 정도는 으깰 수 있는 마수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곳에서 저런 골렘 끌고 다니는 짓은 그다지 안전한 선택일 리가 없다!
―소재부터 확인해 봐야겠는데?
‘응? 소재라니?’
갑작스럽게 나온 말에 투란이 더욱 갸웃했다.
―금색의 마도사가 일부러 이런 곳에 남겨놨잖아. 그 실력이라면 어렵잖게 아무 곳에서나 골렘을 만들어낼 수 있는 마법사였다. 쉽게 만들 수 있는 소재로 꾸민 것을 이런 은밀한 곳에 숨겨놨을 것 같지는 않거든.
‘흐흠, 가디언까지 세워놓고 말이지.’
투란도 살짝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물론 마법사 성질머리란 것이 보통 사람과 달라서, 자기가 만든 거면 아무리 하찮더라도 소중히 숨겨놓을 수가 있기는 했지만!
‘안에 뭐 위험한 거는…… 없겠지?’
―세란드가 대충 다 정리했다고 했잖아!
‘쳇.’
투란은 슬쩍 일어서면서, 밀실 안으로 일단 주먹과 고개를 살짝 담가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