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5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52)
―야, 아무것도 없어. 그냥 보관용 창고라고 했잖아.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조심스러운 행동이 완전히 괜한 짓인 것을 짚으며 투덜거렸다. 애초에 세란드가 말하고 갔음에도 이러고 있으니 일부러 장난질 친다 여길 수밖에 없기도 했고.
물론 투란은 반박하고 있으니…….
‘아무것도 없는데 왜 프로브가 계속 밀려나는데?’
―탐지방어용 마법이 벽 안쪽에 새겨져 있을 뿐이라니까!
드라고니아는 한층 더 으르렁거리는 대꾸를 하고 말았다.
입술을 삐죽이면서 투란은 슬쩍 마력의 파동을 흘렸다.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이 허공을, 바람결을, 돌을 흔들며 퍼져나갔고 벽 속의 마법이 저항하듯 미묘하게 반응해오는 것이 투란의 살갗에 느껴져 왔다. 몸이라는 영역을 넘어서, 그 경계 밖으로 흘러나간 문장의 마력은 한없이 오러에 가까운 반향으로 투란의 감각 범위를 확장시키고 있다는 증거인 셈.
투란에게는 익숙해서 별생각 없이 저질러 온 짓이고, 반쯤 본능적인 짓이었는데 다른 몬스터 로드에게는 이게 나름대로 집중해 단련하고 연습해서 겨우 얻는 감각이라고 했다.
세란드에게 그런 말을 듣고 나서는 스스로 대단했구나 하는 생각도 잠깐 들기는 했지만, 그보다 먼저 투란에게는 ‘왜?’ 하는 의아한 기분이 먼저 찾아와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애초에 그런 것은 오러인가 아닌가 알 수도 없는 매우 여린 ‘힘’, 문장이 흘려내는 그 ‘힘’의 흐름으로 주변을 더듬다 보면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었으니까.
투란이 처음 그랬던 것처럼…… 어째서 다들 처음부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인가, 살짝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다들 보이드 엠블럼으로 죽을 둥 살 둥 하면서 몬스터 로드로서의 시작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니 그러려나 하고 스스로 납득하려고도 했지만…… 그럼에도 ‘그냥 하면 되는 건데?’라는, 첫 몬스터를 삼킨 이후라도 딱히 어려워지지 않았잖나 싶은 생각이 계속해서 투란에게 묘한 의아함을 남기는 것이다.
―뭔 딴생각이 이리 많아? 금은보석이 없을까 봐 그러냐?
뚱하니 드라고니아가 하는 말은 투란을 한숨짓게 했다.
“내가 무슨 금은보석에 미친 놈이냐? 없는 것보다 있으면 좋으니까 그런 것뿐인데…….”
―잘 둘러봐라. 마도구란 것이 원래 금은보석으로 만들면 효과가 더 좋을 때가 많으니까. 금색이란 별칭이 붙을 정도로 금을 소재로 삼은 도구도 많이 썼다는 소문도 있었던 작자니, 없을 리가 없어.
‘흐흠.’
고개를 갸웃하면서 투란은 일단 골렘의 앞으로 다가서듯이 앞으로 두어 걸음 더 디뎌봤다. 밖에서 볼 때랑 별 차이가 없는 풍경이 조금 더 넓게 시야에 들어왔다. 벽을 파낸 모양의 선반, 그 위에 둘둘 말린 담요뭉치처럼 보이는 것들과 티끌 하나 없이 얌전히 놓인 온갖 그릇…… 한편으로는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망치, 톱, 칼 따위의 도구도 종류마다 있었다.
‘안에서도 탐지 안 되냐?’
문득 프로브를 손끝에 구성하면서 투란이 물었다.
―되기는 하는데, 정령포의 흉내라도 냈나…… 천에 감싸인 것들은 탐지가 제대로 안 되는군. 그래도 한 가지는 깨끗하게 보이기는 하네, 저 귀퉁이의 주머니. 안에 제법 금전 같은 것이 있어.
‘마법 주머니?’
―아니, 그냥 짐승 가죽 주머니야. 마법의 흔적은 전혀 없다만, 꽤 오래 써온 것처럼 많이 낡았군.
투란은 갸웃하면서 구석의 주머니를 당겨 쥐었다.
가죽 주머니는 제법 무거웠고 여기저기 쓰던 흔적이 짙게 배어 있었다.
주저앉아 편안하게 안을 열고 보니 정돈되지 않은 금전, 은전이 다양한 크기로 담겨 있었다. 거의 주머니의 절반가량을 채웠는데, 크기뿐 아니라 새겨진 모양도 다양한 것이 춤추는 산맥의 밖에서 굴러온 듯한 금화(金貨)나 은화(銀貨)라고 주장하는 분위기가 넘실거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박혀 있는 금장식의 두루마리 하나.
‘이건 뭐지? 마법의 흔적이 전혀 없네?’
두루마리를 꺼내 이리저리 훑어보면서 투란이 의아해하니…….
―휘장(徽章) 두루마리로군. 그러고 보니 바로크 왕국이었나? 에테온이었던가? 둘 중 한 곳에서 금색의 마도사가 공적을 세운 일로 휘장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몇 백 년 전이라 좀 애매한데…… 아마 황금 독수리의 휘장일 거야. 음, 맞군.
드라고니아가 프로브로 둘둘 말린 두루마리 안팎을 훑어보더니 투란 눈앞에 펼쳐진 두루마리의 환영을 비춰주며 말을 맺었다.
그래도 투란은 두루마리의 한편 걸쇠를 풀고 펼쳐봤고, 프로브가 그려낸 환영과 실제를 비교해봤다. 두루마리의 낡은 흔적, 곳곳에 살짝 남겨진 뭔지 모를 얼룩 부분이 음영으로 채색된 것이 조금 달랐을 뿐이었고 환영과 실물은 완전히 겹쳐질 정도로 같았다.
그 모양은 투란에게 오래된 휘장, 황금 독수리가 은근히 황금매의 문장과 닮은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기묘한 의문이 투란의 머리 한편을 스쳤다.
‘이거 뭐에 쓰는 거야?’
―뭐? 뭐에 쓰다니?
‘그니까, 마법도 아니고 그냥 독수리를 이상하게 그려놓은 거잖아. 금칠해서, 이렇게 그려놓으면 어디다 쓸모가 있느냐고.’
―공적을 왕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뜻이 담긴 거잖아! 무슨 쓸모라니, 군단병에게 주는 훈장 같은 거 몰라?
‘훈장? 마법사에게 주는 휘장이 그런 뜻이었어? 흐흠.’
―아니, 그거랑 똑같지는 않고! 마법사가 정착할 경우에 왕국 귀족에 준하는 대우를 해준다는 약속도 담겨 있지. 너, 휘장에 대해 전혀 들어본 적 없냐?
‘어? 뭐…… 샤오 마을에 왔던 로그메이지들은 별로 관심이 없었나 봐. 딱히 나라에서 뭘 받네 어쩌네 하는 말은 못 들었거든. 정착을 해도…… 춤추는 산맥 밖에 나가서 정착한다는 말이 많았으니까. 여기 왕국에서 주는 훈장, 휘장 같은 거는 관심 없기도 했겠지.’
기억 속에 거의 없는 이야기를 더듬어보면서, 투란은 정말로 휘장에 대해 몬스터 헌터라든가 몬스터 로드, 로그메이지들이 샤오 마을에 와서 떠든 적이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뭔가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공적과는 거리가 꽤 먼 이들인 탓일까?
그나마 휘장에 대해 몇 마디 했던 이는 역기 사제들을 쥐어팼던 오러클 아저씨, 하지만 그 아저씨 또한 무슨 가문의 휘장이니 뭐니 하는 말을 했을 뿐이고 공적에 따라 부여받는 휘장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런 기억을 더듬던 투란이 문득 눈살을 찌푸리고 두루마리를 다시 휘말면서 중얼거린다.
“결국 쓸모 없는 거잖아? 마법 물품도 아니고, 어디다 팔 수도 없는 거였네.”
―뭔 소리를 하는 거냐? 이 두루마리의 소유자는 휘장에 부여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거잖아? 그런 이야기 정말 전혀 모르는 거였냐?
드라고니아가 어리둥절해하면서, 한편으로는 굉장히 황당해하는 듯한 말을 하니 투란이 어리둥절해졌다.
‘뭐? 부여된 권리? 몇백 년 전 두루마리잖아? 여태 그런 권리가 부여된 채로 남아 있겠냐?’
―귀족에 준하는 대우라니까. 몇백 년이든 몇천 년이든, 왕국에서 그 권리를 보증해주는 거다. 왕국이 멸망해서 사라지지 않는 한, 이 두루마리를 들고 가서 그 권리를 누릴 수가 있다고.
‘헐?’
―인간사회에서의 귀족이 갖는 권리, 의무가 항상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도 그런 보증 때문이지. 얼마나 권리를 오래 인정해줄 것이냐, 그에 따른 의무는 또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하느냐 따위로 말이야. 투란, 넌 이런 얘기 모르는 거지?
‘음, 몰라. 그보다 의무라니? 이거 그냥 권리만 부여된 거 아니었어? 갖고 가면 마구 이런저런 일을 시키고 부려먹을 수도 있다는 거야?’
―글쎄? 바로크인지 에테온인지는 봐도 애매하다만, 어디냐에 따라서 지금 정책이 어찌 돌아가느냐에 따라서 다를걸? 대강 인간 왕국은 그렇게 돌아간다고 들었다만…….
‘흐흠.’
투란은 말아서 다시 걸쇠를 걸어버린 두루마리를 몽둥이처럼 들고 잠깐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런 판단도 내릴 수가 없었다. 귀족에 준하는 대우라는 것이 대체 뭔지, 생각을 깊이 하려 하면 ‘사제의 권한을 누리겠다고? 그럼 먼저 사제의 의무부터 그 몸 바쳐 실행해야지!’라고 뒈지기 직전까지 사람 패던 오라클 아저씨가 먼저 방긋방긋 웃는 얼굴이 떠오를 뿐!
‘일단 갖고 있다가 나중에 자세히 알아보면 되겠지. 홀시딘한테 물어봐도 될 것 같고…… 자, 그보다…… 이 금전, 이것도 반은 금화니 뭐니 하는 것 같은데 수집가한테 팔아달라면 팔 수 있으려나? 이것도 일단 그냥 챙겨 갖고 가야겠네.’
판단하기 쉬운 것부터 투란은 하나씩 정리하기로 했다.
먼저 마법이 걸리지 않은 것, 프로브로 쉽게 탐지되는 것들을 끌어내려 골렘 앞쪽으로 늘어놨다. 대부분 가죽 주머니처럼 드러난 것들이었고, 질이 좋기는 하지만 소소하고 오래된 공예 도구였다.
그다음으로 탐지를 방어하면서 속에 담긴 것을 보호하는 천에 휘감긴 것들을 하나씩 입구 쪽으로 늘어놓으면서 열어 보니, 대부분 마법 소재이거나 몬스터의 잔해에서 얻어낸 파편이었다. 크기가 모두 달랐지만 하나씩 따로 포장을 해놓은 것이 섞여서 서로 반응하는 것을 막아놓은 모양새였다.
투란이 다른 것은 그냥 옆으로 다시 휘감아 밀어놓았지만 크고 작은 몬스터의 파편은 아니었다. 그중에서 특히 눈길이 가는 두 가지는 가죽인데 쇠처럼 단단한 것, 뼈로 보이는데 아주 물렁한 것…….
‘이게 뭔가 알겠어?’
―이렇게 조각내놨는데 알 리가 있냐? 너도 몬스터란 것만 어렴풋이 느끼고 있잖아.
‘음, 어떻게 하면 좋으려나.’
―뭔지도 모르고 날름 삼키려고? 하지 마.
혀를 차며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혀를 내밀며 투란은 살짝 몬스터 파편의 맛을 보고 냄새를 맡고, 손끝으로 문지르면서 표면을 ‘악마의 심장’ 줄기로 더듬어봤다.
그래도 어떤 몬스터가 남긴 잔해, 파편인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몬스터의 정수가 여전히 맴돈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왜 이런 걸 남겨뒀을까?’
투란은 새삼스럽게 갸웃하면서 계속 킁킁거렸다.
조금 더 냄새를 짙게 맡다 보면 뭐든 떠오르지 않을까 싶었지만, 역시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단단한 가죽의 희미한 냄새는 오래 묵은 탓인 것만 같았고, 물렁한 뼈의 미묘한 노린내는 오래전에 오줌통에 담갔다가 뺀 탓이 아닌가 싶을 뿐이었다.
드라고니아가 한번 더 경고하겠다는 말투로 투란에게 이야기한다.
―왜라니, 마법사가 몬스터의 잔해를 손에 넣었다고 한꺼번에 다 쓸 리가 없잖아. 뭔가 용도가 있다면 조금씩 떼어다가 소모했겠지. 쉽게 구할 수 없는 희귀한 몬스터의 조각이라면 더욱 아껴 썼을…… 야!
가만히 듣던 투란이 귀를 쫑긋하면서 샤벨투쓰의 이빨을 불쑥 꺼낸 것은 ‘희귀한 몬스터’란 말이 나온 때였다.
단단한 가죽의 한 귀퉁이가 썰렸고, 물렁한 뼈도 한쪽 귀퉁이를 잘렸다.
이쯤 되니 드라고니아도 반쯤 포기해서 경고의 방향을 바꿨다.
―둘 다 한꺼번에 삼키려고 하지 마! 포장이 다른 까닭이 있을 테니까, 하나씩 하라고! 서둘지 말고!
‘알았어.’
순순히 대답하며 투란은 일단 물렁한 뼈를 두 손에 쥐고 가슴팍에 살포시 얹었다. 그 물렁함이 고무쇠를 연상시켜서 먼저 삼키기를 시도한 셈이었다.
그렇게 별 저항 없이 삼킨 물렁한 뼈의 조각은 금방 투란의 손에서 투명하게 으스러져 사라졌다.
* * *
뼈와 살, 힘줄로 이뤄져 있는 기괴한 형체가 눈알을 굴리고 혀를 날름거렸다.
보이드에 감싸인 그 형체를 투란은 자세히 살폈고, 드라고니아는 그 과정에 동참하다가 키득거리며 말한다.
“미트 슬러쉬였군. 마도구를 완성할 때 녹여서 칠하면 마력을 보다 온전하게 스며들게 할 수 있어. 흐물흐물하면서 머리카락 굵기의 틈새로 지나다니는 능력이라면 꽤 인정받지. 사체(死體)라면 바위 몬스터라도 녹여낼 수 있는 소화액을…….”
* * *
―얌마!
문장의 풍경에서 설명을 듣던 투란이 냉큼 마음을 돌려 단단한 가죽을 두 손에 살며시 움켜쥐는 것을 알고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렸다.
‘뭔지 알았잖아, 별문제도 없고. 다음 것으로 넘어가야지!’
뻔뻔한 대꾸를 대충 하고 나서 투란은 조금 진지하게 마음을 가다듬으며 단단한 가죽을 가슴에 얹었다.
썩썩.
기도라도 하듯이 가슴에 문질러진 가죽 위로 금방 핏빛 고리가 번져 갔다.
* * *
“굼벵이?”
나무도 못 타서 낮은 곳의 풀밭, 풀잎 사이로 기어다니며 이슬 받아 먹는다는 쪼그마한 벌레 종류의 통칭을 부르면서 투란은 어처구니없어했다.
풍경 속에 삼켜진 단단한 가죽, 그 안에 담긴 정수가 드러낸 형태는 분명히 그 벌레 종류를 떠올리게 했으니까.
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