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5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55)
―애초에! 너처럼 생각 없이 골렘을 작동시키질 않는단 말이다! 그러니 어디 둘까 고민하지도 않고, 어디 쓸모 있는가도 저질러놓고 생각하는 경우가 없지! 목적이 있어서 기동시켰는데 그걸 왜 배낭에 처넣을 궁리를 하겠냐고!
으르렁!
투란에게는 드라고니아의 말이 그냥 포효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의미야 제대로 알아들었지만…….
‘알았어, 알았다고. 드라코눔에는 이런 거 떠올랐다고 바로 해보려 하는 장난꾸러기 마법사는 없단 말이지. 근데…… 정말 없을까?’
멋대로 짚어보는 투란의 말은 드라고니아를 움찔하게 했다.
딱 ‘장난꾸러기 마법사’란 부분에서 그랬다는 것을 투란은 바로 느낄 수 있었다.
키득거리면서도 투란은 모르는 척했다.
놀리더라도 나중에 놀려야 할 일이니까.
가능하다면 드라코눔에 도착해서!
언젠가는 꼭 가볼 거라고 다짐하면서 투란은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금방 자신의 소소한 실수를 깨달았다.
블랙레온을 꺼내고서 덜렁 골렘만 담았다는 것.
아직 금색의 마도사가 흘리고 간 것이 눈에 띄고 발에 밟힐 정도로 많이 남았는데!
당장은 어디 쓰는 것인지 모르겠고 뭐 하는 것인지 모를 것이라도 결국 알아낼 수 있을 터였다. 켈 데릭이 팔아준 도감을 통해서라든가, 알드바인의 공방 장인들이라든가, 상아탑의 대마법사가 된 홀시딘이라든가! 들고 가서 캐물을 곳은 많으니 흘리지 말고 전부 챙겨갈 일이었다.
다시 투란이 블랙레온을 꺼내 주섬주섬 주워담는 꼴은 드라고니아를 조금 가라앉힌 모양이었다. 가만히 전부 담을 때까지 지켜보는 듯하더니, 남긴 것이 없이 깨끗해지자 묻는다.
―여긴 어쩔 거냐?
‘어?’
조금 뜻밖의 물음이었다.
여기를, 금색의 마도사가 남긴 은신처를 들고 갈 수는 없을 텐데?
의아해하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한다.
―세란드가 떠날 때 말했잖아. 이곳은 브로큰 킹덤과 바로크 왕국의 거의 중간 지점이라고, 황무지이고 야생이 가득한 상태지만 그만큼 얻고자 하면 얻을 것이 많을 수도 있는 곳이라고 말이야. 다른 건 다 치워도 은폐마법은 그대로 넘기고 가기도 했지. 넌 알드바인을 거점으로 삼으려고 하지만, 결국은 춤추는 산맥을 두루 돌아볼 생각도 하고 있잖아. 이 북부에서 브로큰 킹덤이랑 바로크, 두 지역 사이의 황무지는 생각보다 넓고 황량하다고. 금색의 마도사조차 이 북부 황무지에서는 중간 거점이 필요할 지경이었다는데, 넌 필요 없냐?
“흐흠.”
투란은 조금 납득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밀실과 홀, 통로를 둘러보며 차분히 오락가락 걸어봤다. 깨끗하게 정리된 탓인가, 마법에 의해 저절로 밝혀진 공간이 꽤 넓으면서도 평온한 기분을 들게 했다. 침대만 그럴듯하게 둔다면 당장 퍼 잘 수 있을 듯한…….
‘중간 거점이라면 뭘 둬야 하는 거지?’
홀의 중앙에 가만히 멈춰 서면서 투란이 중얼거렸다.
마치 자신을 향해 묻는 듯한 말이었지만 드라고니아가 바로 대꾸한다.
―고민할 까닭이 있냐? 세이프티 하우스를 미리 설치해둔다고 생각해봐. 미리 사용할 물품을 채워놓은 세이프티 하우스라면 이래저래 쓸 만하잖아? 아무리 마법배낭이 따로 있다고 해도 결국 소모하다 보면 비워지니까. 추가 소모량을 예상해서 두면 되는 거지. 역병의 수해에서 일을 기억해봐, 세이프티 하우스 만들 때마다 결국 가구만 채워진 텅 빈 집이라고 너도 네 남매도 툴툴거렸잖아. 그걸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이런 거점인 거야.
‘흠…… 애매하긴 한데, 그럴듯하다? 드라코눔에서 그런 식으로 거점을 마련해두고 지내봤어?’
―필수적으로 설치해둔다. 주기적으로 다닐 경로를 따라서,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마법은 만 가지 일을 해낼 수 있어도, 언제나 완벽하게 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아니니까.
미묘하게 머뭇거리는 듯하다가 드라고니아가 대답하고 있었다.
투란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구체적으로 뭘 어찌 대비해놓는가 궁금하지만 왠지 물어도 드라코눔의 경우랑 투란 자신과는 사정이 다르다고 딴소리할 듯한 드라고니아가 느껴졌다.
해서 투란은 지친 시늉을 하며 풀썩 주저앉았다가 그대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갑자기 피곤하다!’
소리 내지 않고 외쳤지만 기묘한 피로가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오니, 저절로 투란의 눈이 끔벅거리며 감길 듯했다.
―잠들기 전에 세이프티 하우스 만들어 놔라! 은폐마법에만 기대지 말라고, 최소한의 대책은 세워! 문지기까지 다 치워놓고 바위에 뚫린 굴이라고 늘어지지 말라고!
‘알아서 해줘도 되잖아! 칫.’
가만히 손을 들어 올리면서 그 안에 맺힌 윌 라이트의 마력을 보다 강하게 응축시키면서 투란은 입술을 달싹였다. 은폐된 암벽 동굴의 깊은 곳, 그 벽과 천장, 바닥을 모두 아우르며 겹쳐지는 안전한 은신처를 상상하면서.
“세이프티 하우스.”
홀 한복판에서 침상이 솟구치며 투란의 몸을 떠받들었고, 사방에 창을 대신하겠다는 듯이 두꺼운 장막이 드리워졌다. 밝았던 분위기가 어느새 어스름하니 잠들 때라고 외치는 것처럼 변했다.
금색의 마도사가 오랫동안 버려둔 비밀스러운 장소는 어느새 구석구석 어스름한 그림자가 장악하는 공간이 되었고, 암벽산의 일부가 되며 더 강인하고 견고하게 다져지고 있었다. 통로는 가려졌고, 통로의 방마다 든든한 빗장이 걸리면서 새로운 문을 달고 잠겨졌다.
마법의 변화가 끝나는 낌새를 느끼며 투란은 잠들었다.
―일어나!
‘어…….’
―깨라고!
‘어…… 어?’
눈을 비비면서 투란이 침상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어스름한 풍경은 잠깐 투란에게 ‘여기가 어디?’ 하는 생각부터 들게 했다.
―간만에 아주 마음 놓고 잤구나! 그건 잘했는데, 이제 일어나야 할 때야!
‘어? 뭐야, 왜?’
칭찬하는 듯하다가 핀잔 비슷하게 잔소리하는 드라고니아를 알아차리고 투란은 눈가를 비비면서 맹하니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살짝 몽롱한 기분이기는 했지만 주변 풍경은 세이프티 하우스란 것을 금방 느낄 수 있었고, 매우 안전한 상태란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이리 조급하게 보채는가?
―문 긁는 소리 안 들리냐?
‘응? 문?’
겨우 투란은 구부러진 통로 너머에서 뭔가 버벅거리는 듯한, 아주 작아서 숨소리조차 줄이고 들어야 겨우 귓가에 닿는 소리를 들었다.
‘손님이 찾아올 곳도 아니고…… 뭔지 몰라?’
―여기 마법은 안팎으로 탐지를 몽땅 차단한다고 했잖아.
‘그거 아직도 효과 있어? 세란드, 뭘 넘겨준 거야…….’
투덜거리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한숨부터 불어넣으며 말한다.
―그 은폐와 차단 덕분에 여기서 뭔 짓을 해도 바깥에서 모르게 하는 효과도 있는 거야. 웬만한 마법으로는 전혀 밖으로 기척이 새나가지 않는다고! 아무튼, 들리는 꼴 봐서는 암벽산 위의 임프가 몇 마리 내려왔나 싶은데, 빗장을 건드리는 것이 좀 수상해.
‘수상하다니?’
―날개 달려 파닥대는 임프가 이런 깊은 우물 같은 동굴에 내려오는 일이 드물다. 뭔가에 쫓기거나 겁을 먹고 숨을 곳을 찾는 것 같거든.
‘오호?’
투란은 팔다리를 쭉쭉 뻗어 몸을 풀고 침상에서 내려섰다.
여전히 희미하지만 그래도 조금 더 선명해진 끼긱거리는 소리가 통로 저편에서 들려왔다.
느긋하게 걸어 나가면서 투란은 궁금했다.
‘임프가 1톤짜리 빗장을, 둘이니까 2톤이나 되는 빗장을 들어 열 수 있으려나?’
―들지 않고 그냥 갉아 끊을 수는 있을걸.
‘엥? 쟤네가? 헬임프처럼 불길을 몸에 담은 것도 아니잖아?
―담지는 않았지. 하지만 임프는 기본적으로 헬 크리쳐로 분류되지. 괜히 그러는 게 아니야. 급할 때는 자기 생명을 소모해서라도 불꽃 속성의 기묘한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래. 저렇게 급하게 뭔가에 겁을 먹고 깊은 구멍으로 숨어서 안전한 곳을 찾는 중일 때는 가끔 바위를 뚫고 굴을 파기도 한다고.
‘마법에다가 무거운 빗장까지 걸린 곳을 무리해서 뚫으려고까지? 좀 심한데?’
―제일 사나운 임프는 겁먹은 임프라고 말했잖아. 잘난 척 까불 때보다 겁먹고 도망칠 때 임프가 잠재력을 모두 발휘한다니까.
‘음…… 역병 나무를 태우던 그놈처럼 말이지.’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어느새 꽤 옛날처럼 느껴지는 일을 떠올리는 말을 했기에 그때의 경우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역병의 수해, 그 안에 어쩌다 들어와서 기웃거리던 헬임프…… 투란 일행을 따라왔나 해서 의아했던 그 호기심 많은 임프는 역병 걸린 식육목에게 감기고 처맞고 죽을 것 같으니 몸 안의 불꽃을 거창하게 뿜어내며 숲 밖으로, 자신의 보금자리로 도망쳤다.
그때 투란도, 네 남매도 꽤 놀랐었다.
둠고그나 다크레이디도 아닌 쪼그마한 그대로의 헬임프가 그리 강렬한 불길을 온몸으로 방사(放射)하는 광경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
드라고니아는 그때도 투란에게 저리 말했었다.
겁먹은 임프가 최강의 임프라고.
‘야, 잠깐. 그러면…… 뭐가 쟤네를 겁주는 거지?’
―그거 때문에 깨운 거잖아. 저 녀석들이 안티-셸의 빗장에 저렇게까지 달려들게 하는 놈이라면, 저 문도 그렇게 안전하지는 않으니까. 부서지기 전에 나가보라고. 여기 은폐 마법은 전체가 연계된 거라 저 출입문도 꽤 중요한 역할을 한단 말이다.
‘마법 아까워서 깨웠냐.’
투란은 은신처의 출입문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러쿵저러쿵 한참 호기심 가득한 이야기를 하는 듯하더니, 결론은 문짝 부서질까봐라니!
―이런 식으로 안티-셸 다시 거는 게 얼마나 까다로운지 알아? 빨리 열어보라고!
이젠 시침 떼지 않고 보채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투란은 팔짱을 끼고 매우 진지하게, 서두르지 않고 되묻고 있었다.
‘야, 그런데…… 안에서는 이거 빗장 어떻게 열어? 여기 빗장 원래 밖에서 열게 된 거였잖아?’
―응?
드라고니아가 평소와 다른 맹한 대꾸를 했다.
투란으로서는 꽤 어이없는 일이었다.
‘너, 여기 와서 계속 좀 이상하다? 왜 그래? 이런 당연한 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니!’
―그냥 걷어차고 나가! 문짝 볼 때까지 아무 생각 없던 녀석이 뭘 따져! 힘으로 밀고 나가!
‘마법 깨진다며?’
―빗장은 마법에 연계되어 있지 않아! 문만 부수지 않으면 돼!
당당한 말투가 투란을 한층 더 어이없게 했다.
이젠 아예 몰라라 하고 재촉이라니!
하지만 하도 심한 그 태도 때문인가, 혹은 점차 거세지는 문밖의 소란 때문인가.
투란도 슬그머니 호기심이 치솟고 있었다.
밖에 대체 뭐가 와 있는가.
겁먹고 사나워진 최강의 임프인가, 아니면 그 임프를 몰아세우고 있는 뭔가인가.
우득, 뿌드득.
투란의 두 팔이 부풀어 올랐다.
검게 물든 두 팔은 평소에는 잘 꺼내지 않는 몬스터의 형상이었다.
크기와 상관없이 어딘가 거대한 파괴력을 응축시킨 듯한 근육이 그 검은 살갗 아래에서 폭발적으로 꿈틀거렸다. 그렇게 형성된 손은 손바닥까지 시커멓게 물든 채로 문에 닿았다.
콰드등, 터엉!
깨애액! 깨개에엑!
빗장 둘이 저 멀리 튕겨 나가면서 쓸려나간 것들, 날개를 늘어뜨린 임프 몇 마리의 비명이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화앗.
빛덩이 둘이 투란의 등 뒤에서 앞쪽을 향해 도도한 빛살을 뿌려냈다.
한데 투란은 호기심 가득하게 봐야 하는 문밖의 풍경 대신에 자신의 두 팔을, 오러 몽거의 두 손을 내려다보면서 곤란해하고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단숨에 2톤이나 되는 빗장을 풀잎처럼 날려 보낸 괴력, 여기까지는 분명히 기대한 대로였다.
‘뭐냐, 왜 몸 안이 터지고 있는 거지?’
힘줄, 핏줄 따위의 구조라고 여겼던 오러 몽거의 근골(筋骨) 조직이 연쇄(連鎖) 폭발하고 있었다.
작게, 끈질기게, 매우 강렬한 폭발력이 질주하는 궤적이 된 채로!
―스파이럴 버스트?
드라고니아는 그 현상을 알고 있는 듯, 하지만 역시 ‘이게 왜?’ 하는 의문을 담아 중얼거리고 있었다.
때문에 투란은 살짝 안심했다.
‘뭔지 알아?’
―오러 몽거의 신체구조가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거냐? 스파이럴 버스터는 전혀 다른 몬스터인 줄 알았는데…….
‘야, 뭐냐고!’
깨액, 끼아악!
투란의 궁금증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빗장에 맞고 깔린 임프들이 괴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그 눈가와 손끝에서는 어느새 파란 불꽃이 맺히고 있었고…….
화아악!
거침없이 투란을 향해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