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6)
Chapter 18. 선택된 괴물!
투란은 희미한 냄새를 느꼈고, 천천히 눈을 떴다.
‘도마뱀 냄새가 아니네?’
날도마뱀이라든가 흙도마뱀이 쪄지거나 구워지며 나는 냄새랑 달랐다.
보다 상큼하면서, 어딘가 입안에 단맛이 돌게 하는 색다른 냄새였다.
킁킁거리면서 투란의 몸이 느릿하니 일으켜졌다.
맹한 낯빛으로 눈을 깜박거리면서 투란은 냄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투란이 누웠다 앉은 자리에서 불과 2미터 정도에 둥글게 뭉쳐진 불꽃이 쟁반이나 접시처럼 깔린 채로 그 위에 주렁주렁 굵은 타원으로 보이는, 알처럼도 보이고 무슨 단단한 나무 열매처럼도 보이는 20센티 언저리는 될 법한 것을 굽는 꼴이 보였다.
냄새는 거기서 질질 흘러나와 주변을 꽉 채우는 걸로 투란에게 느껴졌다.
그리고 키린의 목소리가 흘리는 말.
“깼구나? 그럼 와서 하나 집어 봐.”
투란의 엉덩이가 바로 들썩했고, 두 손을 앞발처럼 움직이며 쪼르르 불꽃의 쟁반 앞으로 몸이 미끄러졌다. 그 상태로 투란은 엉덩이를 찰싹 부드럽게 달궈진 흙에 얹은 채로 구워지고 있는 열매를 덥석 잡았다.
“와!”
따듯한 느낌 하지만 뜨겁지 않고 깊이 손가락 살갗 속으로 스며드는 열기, 신기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이었다.
키린이 웃으면서 다시 권한다.
“껍질째로 먹어도 되기는 하는데, 손톱으로 살살 벗기면 금방 쉽게 벗겨지니까 벗겨 내고 먹어 봐. 그편이 더 맛있어.”
투란은 바로 권하는 대로 손톱을 세워 커다란 열매의 껍질을 긁었다.
톡하고 뭔가 끊어지는 작은 소리가 나며 열매의 껍질은 손톱이 박힌 곳에서부터 무슨 매듭이 풀어지는 것처럼 훌렁 까졌다. 무슨 꽃봉오리가 열린 듯했고, 그 속에는 옅은 분홍색으로 물든 걸로 보이는 회백색의 말랑한 덩어리가 담겨 있었다.
투란의 코가 바로 킁킁거렸고, 열매 속이 풍겨 내는 냄새의 달콤함을 알아차렸다.
덥석, 바로 투란은 열매를 물었다.
“맛있지?”
키린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다.
우걱거리면서 두 입, 세 입을 마구 입에 넣어 후룩대는 소리와 함께 삼킨 다음에 투란이 겨우 생각난 표정으로 묻는다.
“이게 뭐지요?”
달고 부드러우면서 입안에서 저절로 녹듯이 부스러져 훌훌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이상한 열매, 크기도 큰 것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투란은 살면서 이런 열매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하지만 키린이 싱긋 웃었을 때, 투란은 등골이 살짝 오싹해지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오싹함에 퍼뜩 느낀 것은 여기가 어딘가 하는 단순한 생각.
흙도마뱀, 날도마뱀이 무리 지어 사는 이곳에서 과연 사람이 먹을 만한 이런 열매가 자랄 수 있던가?
“식육과(食肉果)라고 들어 봤어?”
키린이 되묻는 말이었다.
투란이 갸우뚱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한마디 대답과 함께 투란은 다시 열매의 속살을 씹으면서 우물거렸다.
키린은 투란이 그 한입을 삼키고 다시 입을 열 때를 기다려 말한다.
“고기 먹는 과일이라고, 못 들어 봤어?”
잠깐 투란이 입을 연 채로 멈췄다.
투란의 눈이 깜박였고, 기억 너머에서 불러온 이야기가 먼저 입에서 새 나온다.
“식인목…… 같은 건가요? 사람 잡아먹는 괴물 나무 같은?”
“비슷하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요목에 기생하는 과일 모양의 마수라고 해야겠지. 응, 맞아. 생긴 거는 딱 고만한 과일이고, 누가 건드리면 얼른 그 달콤한 속을 내보이면서 유혹해. 그 유혹에 넘어간 짐승이 속살을 딱 물거나 하면, 바로 껍질에서 가시가 돋으면서 짐승을 잡아먹는 마수. 과일이나 열매처럼 생겼다고 식물형 마수라고도 하지. 고기가 없으면 요목에 들러붙어 사는 탓에 요목이 없는 곳에서는 쉽게 볼 수가 없어. 맛있지?”
방긋거리는 웃음과 함께 키린이 설명을 길게 꺼내 놓고 있었다.
약간 멍하니 이야기를 듣던 투란은 키린의 말 맺음, ‘맛있지?’ 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바로 다시 손에 든 열매의 속살을 깨물고 있었다. 그다음에 고개가 끄덕거려졌고, 투란의 눈빛에는 뭔가 납득한 표정도 떠올랐다.
뭔가 마치 ‘응, 괴물 왕자님이니까.’라는 듯한 미묘한 분위기조차 투란에게서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키린은 속에서 격하게 반응하는 드라고니아의 투덜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듣고도 처먹냐! 뭐야, 저놈 비위가 너랑 맞먹나! 식육과라는 걸 알았으면 우엑거리는 것이 보통 지성이 있는 생명체의 반응 아니야! 저게 뭘 뜯어 먹고 자랐는지는 상상을 해야지!
‘글쎄, 맹수도 사냥해서 잡아먹잖아? 그 맹수가 어떤 고기를 먹든가 상관없이. 이거 문제 삼는 쪽이 지성에 문제 있는 거 아냐?’
키린은 마음속을 향해 이렇게 반박했고, 투란에게 말한다.
“요리하는 방법을 모르면, 그냥 속이 다 타 버릴 수가 있어. 산 채로 껍질을 잘라내면 속살이 오그라들어서 겨우 한입만 나오고. 상당히 요령 좋은 요리사가 아니면 이거 제대로 요리 못하지.”
뭔가 잘난척하는 소리였지만 투란은 귀를 쫑긋거리더니 묻는다.
“특별한 불꽃이 아니면 굽지 못하나요? 불 조절만 잘하면 구울 수 있나요? 대장간에서 풀무질해서 불 조절하면 되는 건가요?”
이 물음에 담긴 뜻은 키린을 웃게 했다.
투란은 정말 이 식육과의 맛을 마음에 들어 했고, 기회가 된다면 구워 먹을 작정이잖은가!
“대장간에서는 제대로 요리할 수 있을 거야. 아니면…… 음, 그래! 용암에 달궈진 바위라도 괜찮다고 했어. 나한테 이걸 가르쳐 준 카엘 아저씨는 불 조절을 하지 않고 용암 지역에 가서 뜨거운 바위를 박살 내 거기 묻어 놓고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데, 불 조절이 안 되어서 한 사흘을 굽기도 하더라.”
“상급 몬스터 로드 카엘 님?”
키린의 이야기를 듣다가 투란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음? 아, 그렇지. 그분 이야기도 나랑 엮여서 들었나? 어떤 이야기였는데?”
“반역왕 이야기요! 대마도사, 상급 몬스터 로드! 그리고 반역의 패왕!”
반짝대는 눈망울로 투란이 열변을 토하듯 외치고 있었다.
키린은 그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키린 자신과 엮였다기보다는, 에테온의 패왕이라 일컬어지는 아버지 키드릭에 엮여 나온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고 이는 키린에게 이야기를 이끌어 낼 단서였다.
“카엘 아저씨가 오러를 끌어낸다는 것도 이야기 속에 있어?”
“어? 아니, 그런 거는…… 없어요. 몬스터 로드가 오러 쓴다는 것도 여기서 키린 만난 다음에 제대로 들었는걸.”
한숨을 쉬며 투란은 대답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키린은 어렴풋이 느끼는 바가 있었고, 바로 확인하려는 듯한 물음을 잇는다.
“왜 한숨을 쉬어? 다들 모르는 일이라며?”
“어…… 그건 그렇겠지만…… 비전인 거죠?”
“음? 흐흠. 비전이라고 하는 말은 못 들었지만…… 대부분의 몬스터 로드는 오러 쪽에는 관심이 없지. 너도 그랬잖아.”
“에? 그렇겠죠? 음…… 이런 곳에 와서 숨도 못 쉬는 꼴을 겪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런 걸 좀 빨리 알았다면…….”
대답을 하며 투란은 다시 짙은 한숨을 쉬었다.
오러를 일으켜서 몸을 지킬 수 있는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 괜히 문장에 빌어 가면서 모험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장이 뒤틀리고 괴상해진 그 고생을 생각하니, 참으로 멍텅구리 같은 짓을 했다!
심지어 투란은 그 시점에서 스스로 ‘오러’라고 부르던 힘을 끌어낼 수도 있었잖은가! 그 또한 일단 오러 계통의 힘인 듯한데, 거기에 의지할 방법을 몰라서 정말 무모한 짓을 했다. 실로 죽을 뻔한 그 순간이 돌연 기억에 생생해지는 것이 투란에게는 저절로 몸을 떨게 할 정도였다.
키린이 투란의 반응을 지켜보다가 말한다.
“몰랐으니까, 새로운 비전에 도달한 거잖아.”
“예? 새로운 비전요?”
투란이 키린을 보며 ‘이 무슨 소리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키린이 쿡쿡 손끝으로 투란의 가슴을 찌르는 시늉을 하면서 말한다.
“몬스터를 유지한 채로, 몬스터를 삼킨다. 이게 비전이 아니면 뭐야?”
“아! 그렇죠, 참…….”
투란은 열매의 즙에 젖은 손으로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벅벅 긁적였다.
생각해 보니 투란 자신도 비전이랍시고 좋아했던 것 같았다. 그 뒤에 별꼴을 다 겪으면서 깜박 잊었지만.
“그런데 투란. 몬스터를 유지한 채로 다른 몬스터를 삼키는 거 말이야.”
키린이 살짝 느슨하게, 주의 깊게 꺼내는 말에 투란이 귀를 쫑긋했다.
괴물 왕자가 자신에게 비전에 대해 묻는 것인가, 자신만이 아는 비전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가?
투란은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까닭 없이 으스대고 싶은 기분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세상 누구도 할 수 없는, 투란 자신만의 비전! 뭔가 어린 시절 꿈이 이뤄지고, 소년의 야망을 채워 주는 느낌이잖은가?
“너 혹시, 그 비전 때문에 오러 몽거를 삼키면서 바로 변형하다가 갇힌 거 아니었냐?”
“네?”
투란이 눈을 껌벅거렸다.
어린 소년의 꿈과 야망이 뭔가 지저분한 현실에 강타당해서 으스러지는 듯한 기분은 착각일까?
키린이 조금 더 차분하게 말을 꺼낸다.
“내가 어릴 때, 궁금해서 카엘 아저씨에게 물어본 적이 있거든. 왜 몬스터 로드가 문장으로 괴물을 삼킬 때, 꼭 인간의 형태여야 하느냐고. 몬스터 엠블럼을 삼킨 굉장한 마도사는 왜 괴물을 삼키면서 바로 변형해서 그 힘을 쏟아 내도록 하지 않았냐고. 왜 그런 약점을 만든 거냐고 말이야.”
“그, 그러네요?”
투란의 눈이 기묘하게 깜박이며 눈꺼풀이 떨렸다.
투란도 생각해 보니, 키린의 말대로였다.
고대의 어느 시절, 엄청난 대마도사 혼자 혹은 여럿이 만들었다는 것이 바로 몬스터 엠블럼이라 했다. 그런데 왜 몬스터를 삼킬 때는 꼭 사람의 모습인 채로 유지해야 할까?
투란이 겪은 바로, 현재 투란의 문장 상태를 보건대 꼭 그러지 않아도 되는 듯한데…… 어째서 문장은 처음부터 약점을 간직한 채로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왜 그랬을까요?”
투란은 자신의 문장을 느끼면서 깊은 의혹을 품은 듯이 중얼거렸다.
키린이 이에 대해 가만히 이야기를 꺼낸다.
“카엘 아저씨 말에 따르면 그리고 나중에 슐테그 마도사도 비슷하게 이야기했는데, 그건 몬스터를 삼키는 힘이 바로 몬스터를 형성하는 힘인 탓도 있지만, 삼킨 몬스터를 완전하게 제어하기 위한 필요 때문이라 하더라고. 그러니까 몬스터 로드는 몬스터를 제어하기 위해 먼저 완전하게 자신의 안쪽에 몬스터를 담글 필요가 있다고 말이야. 그러지 않으면 삼켜지면서 자신이 형성되는 것을 알아차린 몬스터가 몬스터 로드의 안팎에 동시에 존재하는 자신을 느끼고 몇 배로 더 발광한다고, 그러면 몬스터 로드는 삼키면서 바로 광란하는 상태가 된다고 말이야.”
투란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하는 그 표정에 키린이 다시 차분하게, 담담한 말투로 이야기한다.
“음, 무슨 소리인가 알아듣기 어렵나? 간단히 말해서…… 사냥개 본 적 있냐? 마을에서는 목줄 걸어 놓는 사냥개 말이야. 그러니까 몬스터 엠블럼이 몬스터를 형성한다는 거는 그 사냥개에 목줄을 걸어 놓은 채로 풀어놓는 거야. 하지만 그 전에 목줄을 거는 거, 그게 몬스터 로드가 삼키는 과정이지. 한데 삼키면서 동시에 형성하는 힘이 유지되면, 목줄을 매서 길들여지기 전에 난폭한 사냥개를 마구 쓰다듬는 그런 꼴이란 말이지. 어때, 알아들었어?”
투란은 부르르 떨었다.
키린이 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퍼뜩 이제껏 겪은 일이 가슴에서 뇌리로 주르르 흘러넘치는 듯했다. 몸이 저절로 파들거릴 정도로 분명하게, 그 경험들이 줄줄이 투란의 몸과 마음에 각인된 기억을 자극한다!
“그, 그러면…… 몬스터를 형성하지 않고 몬스터를 삼키면, 일단 전부 삼킬 때까지는…… 아무 일 없는 건가요?”
“여태 어떤 몬스터 로드도 삼킬 때 문제를 일으킨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어. 삼킨 다음이 늘 문제였지.”
키린은 상큼하고 빠르게 대답하고 있었다.
투란도 이 대답에 ‘아!’ 하는 소리를 내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껏 투란이 들은 모든 이야기 속에, 다들 몬스터를 삼키다가 꽥꽥대면서 변신하고 발광했다는 소리는 한마디도 없었다.
삼킨 다음 그 몬스터의 폭동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만이 문제였지!
어떻게 보면 그거나 그거인 듯하지만, 투란에게는 매우 큰 차이를 보여 주는 말이었다.
“그, 그러면…… 그러면요, 오러 몽거를 삼킨다고 해도 일단 전부 삼키기 전에는 변신하지 않으니까…… 그런 괴상한 꼴로 여기 떠내려올 일도 없었던 건가요?”
투란의 이 물음은 곧 키린을 깨닫게 했다.
방금 혹시나 해서 물었던 것, 그 문제를 투란이 정말 품고 있었다.
몬스터를 삼키는 과정과 몬스터를 형성하는 과정이 완전하게 분리된 몬스터 로드에게는 있을 리가 없는 일, 하지만 그 두 과정이 동시에 이뤄지게 된 투란에게는 계속 있었던 일…….
“역시, 그래서 그렇게 감금된 꼴이 된 거로구나.”
확인하고 말하는 키린의 표정은 어딘가 밝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