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6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56)
Chapter 172. 악마의 날개
―나선 형태로 이뤄지는 연쇄적인 폭발, 그 양상 그대로 이름을 붙여서 스파이럴 버스트. 뭔가가 그런 기괴한 형태의 흔적을 남기고 다닌 적이 있었다. 오러 몽거와 움직인 궤적이 교차하거나 일치한 적은 없어서 따로 노는 몬스터였다고 여겼는데…… 듣고 있냐?
‘어? 아, 듣고 있어.’
끼에에엑!
날개 달린 임프가 머리와 몸통이 뜯기는 탓에 비명을 질렀다.
그럼에도 손끝에서 파릇하니 피어 올리는 불꽃은 거침없이 투란의 몸을 핥고 있었으니, 임프가 겁먹고 공포에 질렸음에도 몬스터다운 발악을 하는 셈이었다.
투란의 몸, 작지만 분명하게 볼텍스의 오러를 흘려내는 살갗에는 그 불꽃이 파랗든 하얗든 닿지를 못했기에 별 영향은 없었지만 그래도 살짝 따듯한 것이 헬임프가 아니더라도 제법 뜨거운 불길을 다루는 임프라 알 수 있었다.
우직, 좌아악.
빗장을 건드리던 임프 몇을 모두 목을 찢어 죽이고 나서 투란이 세어보니 겨우 세 마리였다. 몸집을 다 가릴 수도 있어 보이는 날개가 파닥거리며 불꽃을 가득 퍼뜨리는 난동 탓에 두어 마리 더 있는가 착각했을 뿐이었다.
갸웃하며 투란이 주변을 다시 둘러보는데 위쪽에서 묘한 소리가 가까워지는 중이었다.
퍽, 퍼덕, 키익.
오러 몽거가 붙들려 있던 자리, 그 위로 휑하니 뚫린 굴뚝 같은 구멍을 통해 뭔가 버벅거리며 끼어 내려오는 소리였다.
툭툭, 발로 찢어놓은 임프 셋을 한구석에 날려 보내면서 투란이 드라고니아와 대화를 하자는 듯, 소리 없이 말한다.
‘그래서, 오러 몽거가 스파이럴 버스트의 흔적을 남긴 것 같다고? 이거 밖으로 뿜어져 나갈 낌새는 전혀 없는데? 순전히…… 몸 안에서 터지고 있잖아.’
―지금 네 몸 상태로 봐서는 어떤 기교(技巧)가 아닌가 싶다만. 어비셜 볼텍스와 스파이럴 버스트가 어떻게 작용하는가, 제대로 느끼고 있는 거냐? 그 과정을 검토하면 뭔가 더 알아낼 수 있을 듯한데…….
‘야, 내가 무슨 마법 실험 소재라도 된 것처럼 말하지 마!’
쿠웅.
투란이 투덜거리는 사이, 위에서 내려온 뭔가가 바닥을 찧었다.
푸닥, 파다닥, 펄럭!
큰 날개를 펼치고 우뚝 선 몰골이 두리번거렸다.
드라고니아는 잠시 하던 이야기를 멈췄고, 투란은 혼잣말처럼 웅얼거렸다.
“저건 뭐래……?”
생김새는 날개 달린 임프가 어른이 된 것처럼 보였다.
그냥 어른도 아니고, 어른 중에서도 거인(巨人) 소리를 들을 만큼 커다란 체격을 자랑하는 완력(腕力)을 마구 과시라도 할 듯한 난폭한 어른.
날개 또한 그런 어른의 분위기에 어울릴 정도로 폭이 넓고 길어 보이는데, 손톱이 곳곳에 돋아난 모양과 다르게 깔끔하게 정리되어 접히고 나서 부드럽게 펄럭이는 꼴은 마치 소매 없는 클로크라도 두른 듯이 보였다.
비록 홀랑 벗어젖힌 몰골에다가 털 하나 없는 밋밋한 가죽으로 덮인 온몸,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불그스름한 가죽으로 덮여 암수 구분도 없는 꼴이 뭘 입었다고 하면 옷에 대한 모욕처럼 느껴질 듯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저 날개는 암벽에 뚫린 긴 구멍을 내려오는 동안에 온갖 요란을 떠는 원인이었으면서도 상당히 깔끔하게 정돈된 문명(文明)의 흔적 같은 분위기를 띄우는 셈이었다.
―악마의 날개?
드라고니아가 새로 나타난 어른 임프 녀석보다는 그 날개에 관심을 두는 듯한 말을 했다.
‘응? 저게?’
투란은 살짝 갸웃했다.
확실히 잉칼의 날개랑은 달라 보였다.
절대로 날개여야 하고, 날개의 형상은 긍지이고 자부심이기 때문에 결코 왜곡될 수 없다는 헛소리를 하면서도 필요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감추고 다니는 괴상한 악마종, 잉칼의 날개는 저렇게 클로크 형태가 될 리는 없었다. 숨기면 숨겼지, 결코 날개의 외형만큼은 유지하고 왜곡 없이 매달아야 한다는,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를 전승에 따르면 말이다.
어른 임프의 표정이 구겨졌다.
입술이 살짝 열렸고, 온통 가시처럼 뾰족하게 돋아난 이빨이 가지런하게 드러났다.
꾸아아앙!
그 입술을 넘어 배 속에서부터 우러나온 괴팍스러운 소리는 마치 투란에게 따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 귀퉁이에 몰아넣은 임프, 작은 아이 같은 날개 달린 임프는 자신의 사냥감이고 먹이인데 왜 저리 망가뜨렸냐고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아이, 시꺼!”
투란은 짜증 섞인 대꾸를 하고, 껑충 뛰었다.
퍽!
투란의 주먹이 어른 임프의 볼을 후려갈겼다.
힘을 빼고 친 탓인가, 고개가 홱 돌아가며 뒤로 주춤 물러서기는 했지만 어른 임프의 머리통이 터져나가지는 않았다.
―뭐 하냐?
드라고니아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오러 몽거의 형상을 완전히는 아니지만, 사람의 체격 속에서도 특성을 발휘하도록 몸 안쪽에 확실히 채워 넣고 있는 중이었다. 그 괴력을 발휘했다면 어른이 된 임프고 뭐고 일단 머리통이 으스러질 터인데…….
‘어라?’
―뭐야, 의도나 바가 아니냐?
투란이 살짝 놀란 듯했고, 드라고니아는 찌푸린 듯한 기분을 담아 다시 물었다.
‘충분히 머리가 으스러질 줄 알았는데?’
투란은 의도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꾸아앙!
다시 돌린 얼굴, 한쪽이 잔뜩 부풀고 있는 채로 어른 임프가 격렬한 감정을 가득 담아 괴성을 질렀다. 생명이 담긴 존재라면 마땅히 쳐맞은 바에 대해 고통을 토하고 반격을 가해야 한다는 원칙을 안다는 듯, 한 대 맞은 정도로 겁먹고 도망가는 작은 임프들과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듯!
그 괴성과 함께 어른 임프의 두 손이 손톱을 세우고 할퀴려 들었다.
따로 손톱이 덮이지 않은 손끝이 삐죽하게 길어진 채였고, 어두운 분위기 속의 붉은 가죽인 탓인가 핏빛에 가깝게 보이기도 했다.
‘흐흠, 설마 악마의 손톱까지?’
묘한 기대와 함께 투란은 슬쩍 두 팔뚝을 들어 어른 임프의 길어진 손톱, 그래 봐야 십 몇 센티 정도 돌기(突起)된 것에 불과한 손톱을 막아봤다.
키익.
검게 물든 투란의 팔뚝에서 힘없는 마찰음이 울렸다.
꾸어?
어른 임프가 당황한 듯한 소리를 냈다.
―음, 나름대로 필살기였나 본데? 악마의 손톱은 전혀 아닌 것 같군.
드라고니아가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어른 임프를 이리저리 가늠하며 중얼거렸다.
한숨과 함께 검게 물든 투란이 그대로 손을 내밀어 어른 임프의 머리통을 낚아채며 묻는다.
‘그래서, 이놈 뭐라고 하는 놈이야? 완전 사내놈이니 다크레이디는 아닐 테고 이 꼴로 둠고그도 아닐 테고…….’
―데빌 임프? 아마 그렇게 부를걸?
‘아마?’
―옛날에 이런 크기로 잔뜩 다닐 때는 그냥 귀찮아서 다들 임프라고 몰아 불렀을 거야. 크든 작든 따질 정도로 여유가 없는 시절이니까. 그래도 작은 놈들이랑 다르기는 하니까, 나중에 좀 더 동화 속 악마의 모습과 닮았다고 데빌(Devil)을 수식어로 붙여서 구분한다고 했던가? 이런 녀석들이 제법 많아서 나도 좀 헷갈린다.
평소와 다르게 많이 불확실한 기억을 더듬는 듯한 드라고니아였다.
꾸에엥, 파팍.
머리통이 잡힌 어른…… 아마도 데빌 임프라 불리는 듯한 녀석이 머리통을 잡은 투란의 굵어진 팔뚝, 손을 마구 할퀴었고 발길질도 시도했다. 그걸로 부족하다 싶으니 바로 클로크처럼 늘어뜨렸던 날개까지 펼쳐서 날개에 달린 손톱으로 찍고 할퀴려 하고 있었다.
투란은 데빌 임프의 팔다리는 가볍게 무시했지만 날개를 펼치고 확 늘어난 괴력은 그렇게 무시할 수가 없었다. 단순하게 부양력만을 발휘해서 난동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날개의 가죽 언저리, 테두리에만 닿아도 꽤 충격이 느껴지는 때문이었다.
‘팔다리보다 날개가 더 세다?’
―아, 그렇다면 이거 분명히 악마의 날개일 거야. 데빌 임프가 원래 지닌 날개보다 강제로 스며들어 이식된 날개 쪽이 더 강하게 발현한 경우일 수가 있어. 데빌 임프 날개는 좀 질기고 튼튼한 날개지, 이렇게 바위처럼 단단한 성질은 전혀 없을걸?
멀리서 구경하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말투가 살짝 투란의 속을 긁었다.
그 불편함 때문인가, 순간적으로 투란의 어깨에서 시작된 연쇄폭발이 팔을 타고 손아귀로 전해졌다. 살갗을 뚫고 나오는 폭발의 흔적 따위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 힘은 온전하게 손을 움직이는 괴력이 되어 데빌 임프의 머리를 우그러뜨렸다.
열린 코와 입, 눈, 귀에서 한꺼번에 녹색의 체액을 흘려내면서 데빌 임프가 날개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늘어뜨렸다.
“음? 이놈, 피가 왜……?”
―데빌 임프 맞았나 보네. 그놈들 피는 독성(毒性)을 품고 있어서 정상적인 적색이 아니라 녹색일 때가 많아. 죽을 때가 되면 독성이 한꺼번에 돌아서 한 방울 남김없이 녹색으로 변하지. 덕분에 겁먹은 채로 독이 돌아서 그냥 죽기도 하지만, 자신을 죽게 한 대상에게 독을 남겨 죽이려 드는 셈이야.
‘자기 몸으로도 못 버티는 독이었던 거냐!’
검게 물든 손에 걸쭉하게 들러붙는 듯한 녹색 피를 보며 투란이 질겁한 시늉을 했다. 하나 드라고니아는 손만은 확실히 오러 몽거의 형상인 투란을 향해 아주 냉소적인 대꾸를 할 뿐이었다.
―데빌 임프의 독에 죽을 오러 몽거였다면 다들 참 다루기 쉬웠을 텐데 말이다.
‘온몸이 다 오러 몽거인 채가 아니잖아!’
우득, 꽈드득.
투덜거리면서 투란은 녹색의 피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언저리를 모두 오러 몽거의 형상으로 변화시켰다. 마도사의 가디언이었던 오러 몽거가 매우 작아진 채로 다시 그 자리에 선 듯한 분위기가 풍겨나왔다.
털썩.
데빌 임프를 떨궈놓고 투란은 몸을 점검했다.
‘스파이럴 버스트’와 ‘어비셜 볼텍스’란 특징.
이 둘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가, 투란은 신중하게 관조했다.
잠시 후, 두 가지가 완전한 오러 몽거의 몸, 뭔가 세월이 깃든 것처럼 많이 마르고 작아져 버린 듯해도 내부 구성은 똑같은 오러 몽거의 몸 안에서 질주하며 심장을 중심으로 활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비셜 볼텍스’는 심장을 향해 강렬한 오러의 소용돌이를, 몸 곳곳에서 제각각 일어난 거세고 사나운 생명력의 흐름을 끌어당겨 집중시키는 흐름을 만들어냈고……. ‘스파이럴 버스트’는 그와 정반대라고 과시하듯, 심장으로부터 폭발이 시작되어 오러 몽거의 강력하고 단단한 몸통으로 번져가면서 그 힘으로 동작을 만들어냈다.
그 원리, 상황이 투란에게 뒤늦게 깨닫게 했다.
‘뭐 이런 미친…….’
―정말 터무니없는 신체구성이었군.
드라고니아 역시 관조를 공유하면서도 따로 살핀 바를 바탕으로 투란에게 공감하고 있었다.
‘이따위니까 움직이질 않았지!’
―그렇게 된 것 같다.
다시 한번 투란이 예전의 기억, 처음 오러 몽거를 얻고 꿈쩍도 않아 몸에 감금당한 꼴이 되었던 것을 되살리며 으르렁거렸고 드라고니아는 쓴웃음을 머금은 듯이 중얼거렸다.
오러 몽거의 몸, 그 막강한 형체는 ‘스파이럴 버스트’의 폭발력이 아니면 아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몸에 담긴 막강한 힘, ‘어비셜 볼텍스’의 틈새를 만들며 폭발하는 흐름을 통해 겨우 근골(筋骨)이 꿈틀거리면서 동작을 만들어내는 탓에!
실로 한 몸에서 살갗을 찢어발기고 튀어나가는 폭발력이 아니라서 그렇지, 실상은 뭔가를 폭발시키고 그 반발을 통해 물건을 움직이듯 몸을 움직인다는 원리는 부정할 수가 없는 것.
뭔가를 이런 식으로 만들면 신체를 유지하는 내구성과 폭발력의 균형이 매번 엇갈리며 달라지는 탓에 금방 파괴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해도 할 수 있는 동작은 기껏 한두 가지에 불과한, 아주 기괴한 장난감인 것이 당연할 정도의 괴기함.
도대체 어떻게 이런 몬스터가 생성될 수 있었는가.
투란이 그 원인에 대해 궁금해할 때, 드라고니아는 다른 생각을 그대로 토해내고 있었다.
―어비셜 볼텍스가 구심력(求心力)을 잃게 되면, 오러 몽거의 몸이 부서지면서 스파이럴 버스트의 파괴력이 주변에 그대로 남게 될 거야. 그렇게 해서 남겨진 흔적은 마치 전혀 다른 몬스터처럼 보일 테지. 어쩌면…… 오러 몽거는 기록보다 더 많은 수가 출현했었는데 그중 몇몇만이 눈에 띌 정도의 활동을 유지했던 것일 수도 있군.
‘그건 무슨 얘기야?’
―스파이럴 버스트의 흔적은 오러 몽거랑 비교하면 몇 배, 아니 몇십 배는 더 많이 기록되어 있어. 지금 알아낸 바를 바탕으로 추측하면…… 균형을 잡고 광범위하게 활동했던 오러 몽거가 아주 희귀한 거고, 대부분 자폭했을 거란 말이다.
‘헐?’
조금 늦게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하는 말에 담긴 위협적인 상황을 깨달았다.
균형을 잘못 잡으면 오러 몽거는 터진다!
전혀 다른 몬스터가 ‘스파이럴 버스트’의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 것처럼, 흔적도 없이 터져 사라진다!
‘이런 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