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6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57)
오러 몽거는 자폭해서 사라지기 전에 얼마나 많은 ‘스파이럴 버스트’의 흔적을 남겼을까? 그 흔적을 잘못 세서 여러 마리가 출현했다고 착각했을 수도 있을까? 착각했다면 오러 몽거 하나가 자폭해서 남긴 것을 여럿으로 여긴 탓에 더 흔하다고 잘못 알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결국 오러 몽거는 터진 것보다 멀쩡하게 활동한 경우가 더 많지는 않았을까? 그렇다면 터질 걱정 없이 오러 몽거의 힘을 마음껏 휘둘러도 괜찮은 것 아니겠는가!
한순간에 온갖 망상이 투란의 뇌리를 스쳐가는데…….
―뭔 생각이 그리 복잡하냐? 헛된 생각이야. 스파이럴 버스트는 독특한 궤도로 같은 개체가 남긴 건지 아닌 건지 확실히 구분이 된다. 착각하고 싶어도 못 해.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와글거리는 잡념을 딱 끊어 정리하듯 말했다.
덕분에 투란은 겨우 생각을 멈출 수 있었다.
‘궤도?’
―나선의 궤도, 나선마다 독특한 간격을 지닌 흐름이란 말이다. 아마 오러 몽거의 어비셜 볼텍스 역시 그 소용돌이 궤적마다 다를걸? 그게 몬스터의 정수에도 단단히 각인되어 있을 테니까, 삼킨 둘을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잖아?
다독이는 것인가 핀잔하는 것인가 알 수 없는 말투였지만, 드라고니아의 말은 투란을 확실히 안정시켰다. 들으면서 자신이 형성한 몬스터 오러 몽거의 상태를 살피다가 문득 깨닫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궤도, 궤적이든 투란이 형성한 오러 몽거…… ‘봉인의 금쇄’로 여기 박혀 있던 녀석은 그 심장과 몸통이 깔끔하게 호응하며 두 가지 나선을 아주 잘 조화(調和)시키고 있었다. 몸의 크기, 팔뚝이나 다리의 굵기를 어찌해도 ‘어비셜 볼텍스’와 ‘스파이럴 버스트’는 그에 걸맞게 어우러져 적절하게 그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어쩐지 괜한 걱정을 했는가 해서 투란은 겨우 안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안도와 함께 투란의 눈가가 미묘하게 찌푸려졌다.
조금 늦게 드라고니아가 한 말, 오러 몽거의 개체마다 볼텍스의 궤적이나 나선의 궤도가 다르다 짚은 점.
‘설마…….’
‘봉인의 금쇄’에 묶여 있던 오러 몽거가 발하는 두 가지 전혀 다른 성질의 나선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납득한 채로 어울리고 있었다. 이 조화는 다른 것이 끼어들 여지가 없게 하는 깔끔함을 투란에게 분명하게 느끼게 했고, 덕분에 안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투란에게는 전혀 다른 개체인 오러 몽거, 심장을 잃고 나뒹굴며 결코 움직이지 않았던 녀석의 정수도 있지 않던가.
오러 몽거 둘이 전혀 다른 나선의 궤도를 지녔다면, 그래서 원래 한 몸이었던 심장과 몸통 말고 다른 한 녀석에게는 저 심장이 제대로 효과가 없다면……?
다행스럽게도 심장이 ‘스파이럴 버스트’를 일으키기는 해도 그 궤도는 원래 몸이 간직한 대로라면 투란에게는 매우 좋은 상황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될지 어떻게 될지는 해봐야 아는 것이고, 추측은 전혀 쓸모가 없다!
‘망할, 잘못되면 터지는 거잖아!’
새삼 그 위험을 느끼면서 투란은 낯을 왕창 구겼다.
그런 투란을 자극하는 듯한 소음이 천장의 구멍 쪽에서 가까워졌다.
아까와 같은 꼴이 아무래도 데빌 임프가 한 마리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풀썩, 파다닥.
아까처럼 한 마리 떨어지지 않고 두 마리가 엉긴 채로 투란이 바라보는 자리로 떨어져 내렸다.
―으흠? 맞아, 뿔의 형체도 조금 갖췄다고 했었어. 따로 악마의 뿔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만…….
가죽의 날개를, 거기 달린 십수 센티의 기다란 손톱으로 서로를 할퀴며 후려치는 채로 두 마리 데빌 임프가 어른이 된 날개 달린 임프의 형상을 자랑하듯 일어섰다. 투란이 두어 걸음 간격을 두고 물러서지 않았다면 녀석들의 억센 날개에 세게 맞았을 듯했다.
‘뿔? 가죽이 그냥 삐죽한 거 아냐?’
―그 삐죽한 모양이 제법 뿔처럼 돋았잖아. 저거 데빌 임프의 특징으로 꼽히는 모습이야. 각질(角質)이 제대로 이뤄진 뿔이 아니고, 살갗이 그대로 부풀어 뿔처럼 돋은 것. 조그마한 임프가 귀가 뾰족해서 뿔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만, 저 정도면 그냥 뿔 취급해도 되잖아?
투란의 심드렁한 말에 드라고니아는 왠지 정성껏 주장하고 있었다.
그 말대로 확실히 손가락 두엇을 뭉친 크기로 울퉁불퉁하니 돋아난 가죽뿔은 제법 뿔이라 할 만했다.
이렇게 투란이 감상하는 사이, 새로 떨어져 내린 데빌 임프 둘은 두리번거리다가 한편에 몰려 있는 날개 달린 임프의 작은 몸통 셋과 머리가 완전히 우그러져 녹색 피가 걸쭉하게 들러붙은 다른 데빌 임프를 봤다. 그리고 바로 둘이 입맛을 다시듯이 혀를 내밀어 삐죽한 이빨을 넘어 입술을 핥는 꼴은 딱 식욕을 느끼는 모습!
“그래, 너네가 그렇지.”
쓴웃음 절반, 기대한 몬스터의 우정 어린 모습이 없음에 안도하는 넋두리 절반을 섞은 투란의 중얼거림이었다.
그다음, 투란은 두 손을 굵직하고 길게 바로 내뻗었다.
파닥, 파파팍.
우직, 콰드득.
날갯짓, 제법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날갯짓과 손톱 없이 삐죽한 손가락의 저항이 소란스러웠지만 오러 몽거의 검은 손아귀는 가차 없이 데빌 임프의 머리통을 하나씩 움켜쥐었고 으스러뜨렸다.
그 둘을 다시 바닥에 떨구면서 투란은 천장의 구멍을 향해 오러 몽거의 포효를 내질렀다. 배 속부터 올라오는 오러의 소용돌이, 심장에서 치고 나와 숨결 사이에 터져나가는 듯한 폭발음이 뒤섞인 듯한 포효는 암벽산을 쩌렁쩌렁 울리며 멀리 높이 퍼져나가는 듯했다.
―더 내려올 녀석은 없게 된 모양이다.
가만히 프로브를 위로 올려보낸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여전히 포효의 여운이 멀리 울려퍼지며 남은 듯했지만 이미 투란은 쪼그리고 앉아서 데빌 임프 셋의 잔해를 뒤척이고 있었다.
‘이 녀석들도 악마의 날개이려나? 아니면…… 셋 다 악마의 날개랑 관련이 없을 수도 있겠지?’
―그렇겠지.
뭔가 아까 하던 고민 따위를 훌렁 날려 보낸 듯, 금방 관심의 대상을 바꾸는 투란이었지만 드라고니아는 모르는 척하고 대꾸했다. 아무래도 오러 몽거보다는 악마의 날개에 관심을 갖는 편이 더 낫다고 여기는 듯한 분위기였다.
이를 투란도 느끼기는 했지만 생각할수록 꺼려지고 망설여지는 쪽보다는 가볍게 다루는 옛날이야기 속의 악마가 더 편안한 것은 맞는지라 일단 세 마리 데빌 임프를 따로 나눠 늘어놓고 손대기 시작했다.
나란히 늘어선 셋 중 가운데 놓인 데빌 임프를 향해 닿은 투란의 손에서 ‘악마의 심장’이 뿌리줄기를 뻗어내며 촉수처럼 파고들었다. 잠시 꾸물거리며 흔적을 드러내고 튀어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하면서 샅샅이 헤집고 더듬었다. 그리고 그 뿌리줄기가 날개로 이어져 나가면서…….
‘와? 이거 봐라?’
―정말로 악마의 심장과 완전히 호응하는 거냐? 허, 악마의 화신이 괜한 소문이 아니었다니…….
데빌 임프의 날개는 몸통이 죽은 것 따위는 모르겠다는 듯이 활기차게 꿈틀거리며 펄럭이려 하고 있었다. 투란이 억제하지 않았다면 양옆으로 놓인 데빌 임프 둘은 그 날갯짓에 바로 튕겨나가 벽에 처박혔을 수도 있었다.
몸은 머리를 부순 것만으로 완전히 죽은 꼴인데, 날개는 따로 여분의 생명이라도 있는 듯한 광경…… 아예 목 줄기를 잡고 일어선 채로 높이 치켜올려 그 날갯짓을 잠시 감상하던 투란이 히죽 웃었다.
‘다섯이었지? 악마의 화신…….’
―그래, 심장과 날개, 눈과 다리, 손톱.
혀를 차는 듯하면서도 드라고니아는 도감에 있었던 정보를 다시 짚어줬다.
‘잘하면 보석상에게서 구할 수도 있는 것이 눈알이었고…….’
―다리는 날개랑 비슷하게 하도 뒤죽박죽으로 나타나서 쉬울 수도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지. 하지만 손톱은 아예 보기 힘든 희귀종이라 했어.
우드득.
들어 올린 데빌 임프의 가슴팍 깊이 투란의 손이 꽂혀 들어갔다.
문장의 핏빛 고리가 맴도는 손은 순식간에 데빌 임프를 투명하게 흩어버렸다.
몸이 죽어서도 퍼덕이던 날개 또한 가차 없이 투명한 티끌이 되어 사라졌다.
‘운이 좋으면 어디선가 얻을 수 있겠지. 희귀종이라니까, 어쩌면 나이 들어 은퇴하고 싶은 몬스터 로드가 비싸게 팔려고 할 수도 있고 말이지. 그럴 경우에는…… 돈만 많으면 금방 구할 수도 있겠는데? 흐흐흣!’
―뭐? 몬스터 로드가…… 자신이 획득한 정수를 팔아? 그게 어디 담아지는 것도 아닌데…… 아, 직접 만나서 넘긴다고? 아니, 잠깐! 정말로 그런 거래가 있기는 하냐? 희귀종의 몬스터 에센스를 얻어놓고 그걸 팔아치운다고? 뭐 그런…….
‘그게 뭐가 이상해? 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바로크 왕국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라고 하던데? 은퇴하는 병신들…… 그 나라 몬스터 로드 중에서는 나이 잔뜩 먹고 나서 더 이상 몬스터 터럭 하나 보기 싫어지면 젊고 강한 몬스터 로드를 골라서 자기가 길들인 몬스터 에센스를 파는 경우가 많다고 했는데, 전혀 못 들어봤냐?’
―당황스럽군. 몬스터 로드에 대해서라면 제법 많은 정보가 드라코눔에 모여 있다만, 바로크 왕국의 전통이나 다름없다는 정수의 전승이 그런 금전 거래란 이야기는 없었는데 말이다.
‘음? 야, 그 전통은 몬스터 로드로 채워진 군단 내에서의 일이고. 군단이랑 무관하게 따로 사는 몬스터 로드도 많잖아. 사냥한 몬스터의 잔해를 그대로 거래하는 경우도 있다는 거, 그건 알잖아? 그런 거랑 비슷한 거야. 덕분에 겨우 한번 사냥된 희귀종 몬스터를 품은 몬스터 로드가 대를 잇는 것처럼 나타난다고 하잖아.’
―그런가…… 엥? 갑자기 블랙레온은 뭐냐?
오가는 이야기를 납득하던 드라고니아는 투란이 불쑥 마법배낭을 꺼내는 모습에 어리둥절했다.
‘어? 아, 세 마리니까 하나는 담아가고, 하나는 새 은신처에 넣어두려고. 저 작은 녀석들도 불꽃이 꽤 특별했었지?’
투란은 가볍게 대답하면서 남은 두 마리 데빌 임프의 몸을 샅샅이 더듬고 있었다. ‘악마의 심장’ 줄기로 자신이 이미 더듬고 삼킨 녀석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를 철저히 비교하고 검토하듯.
그다음에 한 마리는 간단히 블랙레온의 검은 사자 아가리에 처넣듯이 담고, 한 마리는 대충 열린 문 너머로 던져넣은 다음에 투란은 날개 달린 임프 쪽으로 움직였다. 바로 작은 어린아이 체격인 임프의 가죽이 갈라졌고 피가 몇 방울 튀어올랐다.
―머리 짓이겨진 부분에서 나온 피를 이미 봤잖아?
굳이 팔다리, 가슴 언저리의 피까지 째보고 확인하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어이없어하며 중얼거렸다. 투란은 이에 대해 조금 당당하게 대답한다.
‘이것들이 커서 데빌 임프가 되는 걸 수도 있잖아. 작은 놈이라고 피가 변하지 않는다고 확신은 못 하지. 아무튼…… 뭐, 일단 셋 다 별 차이 없어 보이니까 하나 삼키고…….’
―굳이 삼키지 않아도 되잖아? 이 녀석들보다 훨씬 격이 높은 헬임프를…….
지나치게 문장의 용량을 낭비하는 것 아니냐고, 드라고니아는 따지려 하다가 말을 멈췄다.
작은 체격의 날개 달린 임프 한 마리, 그 정수가 투란의 문장 안에 투영하는 형상을 알아차린 탓이었다.
투란도 가만히 허공에 눈길을 고정한 표정으로 그 형상을 조금 더 자세히 지켜봐야 했다.
* * *
타우루스를 떠올리게 하는 우람한 뿔, 가죽이 뿔부터 단단하게 감고 온몸으로 번져간 듯한 외형은 근육질이었고 데빌 임프 못지않게 컸다. 뿔의 크기를 생각하면 나란히 놓고 봤을 때 더 커 보일 터였다.
데빌 임프와 비교하면 근육질의 팔다리가 거의 두 배 가까이 두껍고, 가슴과 배의 드러난 근육의 형상이 보다 흉악해 보이는 괴기스러운 외모…… 어떻게 이런 형상이 작은 어린애 같던 날개 달린 임프의 모습인가?
거기다가 아예 데빌 임프를 초라하게 끝장내겠다는 듯이 돋아난 거대한 날개는 어딜 보고 느껴도 결코 어린애 같은 체격에 달려 있을 것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와이번이라든가, 아니면 드레이크의 비늘 없는 날개라고 허풍을 쳐도 될 듯한 우람하고 거대하며 균형 잡힌 형태!
* * *
‘섞인 탓인가 본데?’
눈을 깜박이면서, 자기 앞에 아직 놓여 있는 두 마리, 날개 달린 임프의 작은 몸뚱이를 내려다보면서 투란이 결론처럼 말했다.
드라고니아도 동의했다.
―그래, 어떻게 데빌 임프가 되는 건지 모르겠다만…… 둘의 정수가 하나로 엮여서 가능성이 완전히 열린 형상이라 할 수밖에 없군.
날개 달린 작은 임프, 그 어린애 같은 녀석과 보통 사람이 올려다봐야 하는 거구의 데빌 임프의 정수가 뒤섞이고 그 형상이 부풀면서 나온 결과였다. 거의 똑같은 몬스터의 정수가 섞이듯이 두 몬스터가 서로의 정수를 주고받으며 섞여지는 상태는 투란이 뒤늦게 알아차릴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딱히 섞을 마음은 없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다른 몬스터이니 분별되어 있겠거니 하고 방심한 틈을 탄 결과이기는 했다. 하지만 왠지 이 결과는 투란에게 꽤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악마의 날개도 더 대단해진 것 같은데?
드라고니아가 한번 더 짚은 말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