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6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58)
사악.
날개는 부드럽게, 원래 임프의 형상과는 무관했다는 듯이 투란의 등 뒤에서 자연스럽게 치솟으며 산뜻하게 접혔다. 섣불리 주변을 건드릴 까닭이 전혀 없다는 듯, 좁은 공간이라도 완벽하게 인지하고 움직일 영역을 스스로 확보하듯이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날개가 스스로 생각을 하고 제멋대로 판단까지 한다고 착각할 지경으로…… 악마가 깃들었다고 여길 정도로!
―대단하군.
드라고니아가 짧게, 되풀이하듯 감탄했다.
“흠.”
투란은 갸웃했다.
드레이크의 감성으로 보면 이 날개는 너무 얄팍하고 말랑말랑한 느낌이었다.
―야! 이거 바위도 후려쳐서 쪼개 버리는 날개라고!
드라고니아는 곧바로 투란의 감성을 바로잡겠다는 듯이 으르렁거렸다.
‘뭐…… 단단하게도 말랑하게도 되니까, 나름 쓸모가 많기는 하겠네. 그런데…… 둘씩 삼켜도 딱히 달라지는 것이 없잖아?’
투란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소리 없이 불평했다.
애랑 어른, 날개 달린 작은 임프와 2미터는 훅 넘는 거인에 가까운 데빌 임프 한 쌍을 삼켜서 그 정수가 융합하고 격변했기에 날름 한 쌍을 더 삼켜봤다. 하지만 정수는 간단하게 융합하면서도 처음과 같은 격렬한 변화는 없었다. 그래도 조금 더 정밀하고 튼튼해진 것 같기는 했다.
―욕심 그만 부려!
‘네, 네.’
투란은 남은 한 쌍을 다시 챙겨서 블랙레온 안에 담아 넣었다.
―뭐야, 두고 가려는 거 아니었어?
‘하나씩 남았잖아. 가져가서 멜란드한테 줘보려고. 보니까 이 녀석들, 그냥 적당히 피나 살덩이만 있어도 될 것 같기는 한데…… 그렇게 되면 페란드나 제란드한테도 나눠줘야지. 신기하잖아.’
―악마의 심장은 나눠준 적 없으면서.
‘그건 많이 위험하거든. 나도 섀도우 하트 노릇까지 도달하기 쉽지 않았어. 그게 뭔지도 몰랐지만…… 남들한테 권할 수는 없어. 미치기 쉽다고.’
문득 처음의 ‘투란’이 자신에게 사기 쳤던 기억을 되새기면서 투란은 낯을 구겼다. 그땐 정말 엄청나게 충격받았었는데…….
덜컹, 텅.
오러 몽거의 괴력이 깃든 손길에 문이 닫히고 1톤 빗장 둘이 다시 올려졌다.
많이 찌그러진 문짝, 뒤틀린 빗장이 간신히 맞물려서 툭 치면 그냥 도로 떨어지며 삐걱거리며 문이 열릴 듯한 몰골이었다.
벅벅,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투란은 돌아서서 구멍 아래로 섰다.
‘나중에 생각 잘하고 와서 고쳐놔야지.’
돌아올 일이 없다면 그냥 잊으면 그만!
간단한 다짐을 하는 투란을 향해 드라고니아는 한숨을 쉬었지만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투란은 두 손을 털었고, 적당히 붉은 가죽에 둘린 형상으로 바꾸었다.
조용히 투란의 등 뒤에 대기하던 날개가 스산한 분위기를 띠며 펼쳐졌다.
콰악!
―엥?
콰콱, 콱!
날개의 손톱이 구멍 벽을 찍으며 투란이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날아오르는 거 아니었냐!
새삼 어처구니없어하는 드라고니아인데…….
‘얘가 무슨 드레이크 날개냐, 가만있어도 바람 받고 둥실거리고 뜨지 못한다고.’
툴툴거리는 대꾸와 함께 투란은 날개의 테두리를 따라 적당히 돋은 날개손톱, 날개를 거대한 손처럼 여기며 벽을 찍고 올라가는 일에 몰두했다.
‘악마의 날개’가 투란이 아무런 무게도 없다는 것처럼 가볍게, 아주 빠르게 암벽의 구멍을 돌파해서 정상으로 투란을 데려가는 듯했다.
그리고 그 정상에서는…….
파다닥, 푸드득.
새 몇 마리가 구멍 입구 주변에서 빠르게 날갯짓하며 흩어졌다.
암벽산 정상은 수백 미터의 규모로 펼쳐진 황무지, 돌이 가득한 풍경을 머금은 채로 날개 없는 녀석은 오지 말라고 외치듯이 우뚝 돋아 있었다.
투란은 멍하니 잠시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몬스터보다 지나가던 철새가 더 많아 보이는 듯한 광경이 살짝 묘했다.
눈에 힘을 주고 좀 더 자세히 보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변에 제법 날개 달린 임프 무리가 돌아다닌 흔적이 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전혀 없었다. 구멍 아래로 내려왔던 세 마리가 그 전부는 분명히 아닌데…….
―저기 바위 뒤, 뜯어먹힌 뼈다귀가 좀 있다.
시야에 가려진 곳의 상황을 드라고니아가 알려줬다.
투란은 느릿하니 수십 미터를 걸었고, 툭 튀어올라온 바위 뒤의 흔적을 찾았다.
알뜰하게 살점은 모조리 발라먹고 남겨진 어린애 크기의 뼈다귀, 날개뼈까지 남아 있는 잔해는 분명히 이곳에 서식하는 작은 임프의 날개 달린 형체의 잔해였다.
그 꼴을 보며 투란은 잠시 입을 열었고, 현재 자신의 치열(齒列) 상태를 확인한 다음에 팔뚝을 물어 살짝 남긴 이빨자국을 살폈다.
―맞는 것 같네, 데빌 임프가 작은 녀석들을 잡아먹은 잔해…….
드라고니아도 투란의 관찰을 인정하듯 말했다.
하지만 투란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데빌 임프도 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야. 이 근처에 있어. 어째 멀리 도망친 것 같기는 한데, 내가 융합한 몬스터의 모습을 한 놈이 있어.’
―두 종의 임프를 융합한 세 번째 놈이 실재한다는 말이냐?
‘어. 지금 내 이빨, 데빌 임프의 뾰족하기만 한 이빨이랑 다르잖아. 뼈를 봐. 뾰족한 것으로 꽉 깨물기보다는 뭉툭하니 으깬 흔적도 있어. 저기 날개뼈 언저리가 특히 그렇잖아. 그러니까, 있어. 두 가지 몬스터가 내 안에서 하나가 된 것이랑 다르게,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놈이 있어.’
투란의 눈길이 조용히 주변을 멀리, 가까이 훑었다.
어느새 눈가와 목, 어깨와 등 뒤에 시커먼 잉크빛이 살갗을 물들였고 그 속에서 눈알이 작은 돌기처럼 퐁퐁 튀어나오면서 전 방향을 훑어내는 중이었다.
드라고니아도 어느새 말없이 프로브를 십여 기 생성시켜놓고 주변에 넓게 퍼뜨리며 탐색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주변에서 발견되는 몬스터가 없었다.
있는 것은 그냥 빈자리에 내려앉아 쉬며 놀고 툭탁거리는 새 떼…….
‘어디 간 거야?’
잠시 관측을 지속하던 투란이 결국 바위에 걸터앉으며 ‘악마의 날개’를 축 늘어뜨린 채로 툴툴거렸다.
―아무래도…… 너 올라오기 전만 해도 꽤 있었던 것 같다만, 그 시간 즈음에서 부리나케 달아난 흔적이 많이 보이는데?
‘뭐?’
―생각해보니 데빌 임프 때려잡으면서 꽤 큰 소리를 질렀었잖아, 기억하지?
‘그랬나?’
―그래, 그랬지! 그게 그냥 낸 큰 소리가 아니고 오러 몽거의 포효였거든. 묶여서 골골하는 놈이 아니라 완전히 풀려나서 곧 튀어나간다고 알려준 것처럼 말이야. 그래서 다 도망친 모양인데?
‘그럼 저 새들은?’
―몬스터가 느낀 거랑 그냥 날짐승이 느낀 것이 다른 까닭은…… 너, 몬스터 로드잖아. 새 잡아먹는다는 생각보다 몬스터 잡아 삼키고 좋아라 했다는 낌새를 느낀 탓이 아닐까?
투란은 황당한 표정으로 주변에서 바닥을 콕콕 찍는 조그마한 새떼를 봤다.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돌틈의 먹잇감을 찍어대던 새 몇 마리랑 투란의 눈이 마주쳤다. 부리에 쪼그마한 벌레를 물고 있던 새가 두어 번 눈을 깜박인다 싶더니, 바로 벌레를 삼키고 더 부지런하게 돌 틈을 발톱으로 헤집으며 부리를 찍어댄다. 투란에 대한 두려움 따위는 전혀 없는 당당한 모습이었다!
“하, 저것들이! 내가 배고프면 독수리도 잡아먹어!”
끼이이!
저 멀리 독수리 둥지에서 어미가 새끼를 향해 먹이를 잡아 날아오며 내는 울음소리가 투란의 귓가에 팍 꽂혔다. 어딘가 느긋하면서도 여유로운 것이 이제 몬스터 따위는 주변에 없다고 알리기라도 하는 듯한 울음이었다.
뭔가 심술궂게 한마디 해봤던 투란의 얼굴이 구겨졌다.
“뭐 이런…….”
―이런 곳에 살다 보니 눈치가 빠를 수밖에 없지.
놀리는 듯한 말이었지만 투란은 거기 대꾸할 기분이 아니었다.
문장 안에서 융합된 정수가 형성한 몬스터랑 실재의 몬스터가 얼마나 닮았고 얼마나 다른가를 보고 싶었는데…… 기분 좋게 터뜨린 고함소리에 겁먹고 다 튀었다니, 이 얼마나 한심한 얘기인가!
몬스터도, 새들도 참으로 눈치 보는 능력이 대단하다고 칭찬해야 하는 일인가?
“한심해졌네.”
넋두리하듯 웅얼거리면서 투란은 잠시 암벽산의 황량한 풍경, 그러나 새들이 활기차게 넘나들며 지저귀는 기묘한 분위기를 가득 머금은 세상의 한구석을 가만히 지켜봤다.
몬스터가 없는 상황은 분명히 오래 갈 일이 아닌 것을 알 텐데, 새들은 그런 잠시라도 상관없다는 듯이 즐겁게 지저귀며 지저분하게 먹이를 놓고 다투든가 새로운 먹이를 찾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편의 독수리도 몬스터랑 눈치 싸움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이 기회란 듯이 부지런히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그 꼴을 멍하니 보던 투란이 피식 웃었다.
“저놈, 어디다 사냥해서 숨겨놓기라도 했나. 뭘 저리 자주 들락이면서 꼬박꼬박 먹이를 물고 온대…….”
―숨겨놓은 거 맞아. 암벽 틈새에 커다란 사슴이랑…….
‘진짜 숨겨놨냐! 독수리잖아, 독수리! 그 자리에서 먹고 튀는 놈인데?’
―토끼와 짐승인 히엔나도 있군. 이곳에서 살다 보니 저절로 보관하는 버릇을 얻게 된 모양이지.
투란이 놀라거나 말거나 진지하게 설명하는 드라고니아였다.
덕분에 한층 더 맥이 풀린 투란은 고개를 푹 숙였고, 긴 숨을 토해냈다.
“썩을…… 안 그래도 헷갈리는데, 독수리까지…….”
도리도리, 짜악!
고개를 젓고 두 손으로 뺨을 두드린 다음 투란이 눈을 부릅떴다.
순식간에 넋두리고 뭐고 다 날린 강한 표정을 꾸민 다음, 투란의 날개가 서서히 수그러들며 사라졌다. 사방을 훑는 눈동자를 담은 눈알들이 잠깐 격렬하게 데굴거리는 듯하다가 시커먼 살갗 안으로 잠겨들면서 사라졌다.
‘주변 좀 잘 봐주고 있어.’
드라고니아를 향해 강하게 말한 다음, 투란은 천천히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면서 집중하는 자세를 취했다.
뭘 하려는가 의아해하면서도 드라고니아는 멀리 퍼뜨렸던 프로브 여럿을 주변으로 끌어와 탐색의 방벽이라도 세우듯이 둘러놨다. 수백 미터 밖에서 뭔가 쏘아져 오더라도 바로 대응할 수 있도록.
투란의 손끝이 검게 물들고, 체모가 느릿하니 하얗게 변모해갔다.
금방 투란의 살갗이 잉크와는 다른 검은 색채로 물들었고, 기묘한 뒤틀림을 머금으며 섬뜩한 생명력이 꾸물꾸물 배어 나오는 듯했다.
앙상했던 녀석과는 다른, 심장이 뻥 뚫려 없을 뿐이었던 오러 몽거의 부푼 듯한 몸집이 투란에게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가슴은 뚫리지 않은 채로 꿈틀거리며 새로운 심장을 품은 채였다.
쿠쿵, 쿠웅.
가슴속에서 묵직하고 두꺼운 산울림 같은 음향이 가벼운 척하고 튀어나왔다.
빠득, 쩌억.
“히큭!”
심장에 가까운 어깨에서 팔까지, 단숨에 갈라지며 핏물이 터져나왔기에 투란의 두툼한 입에서 딸국질 같은 비명이 고음(高音)처럼 터졌다. 억누르려 해도 누르지 못한 비명이 주변에 퍼지면서 먹이 파먹는데 정신없던 새떼가 파닥거리며 순식간에 투란 가까이에서 멀어져 갔다.
갈라진 팔을 느릿하니 들어 올리는 사이, 투란의 몸 다른 부분이 빠득거리고 뼈와 살이 갈리는 소리를 내며 쩍쩍 쪼개졌다. 물컹거리며 피가 배어 나왔고, 앉은 채인 투란의 엉덩이와 발아래로 괄괄 쏟아졌다.
이대로라면 그냥 온몸이 갈라져서 토막 난 채로 쏟아질 듯한 위험한 상태.
―전혀 어울리지 못하는구만! 이제 그만해라, 더 하면 정신 잃을 수도 있어!
드라고니아가 경고했다.
투란은 입가를 뒤틀면서 쏟아져 내린 자신의 피를 노려보는 채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조금만 더 하면 돼! 괜찮아!’
쉬울 리가 없다고, 때문에 망설였고 각오했기에 투란은 멈출 수가 없었다.
오러 몽거의 심장은 원래 주인의 몸이 아니면, 다른 몸 안에서는 그 몸을 쪼개는 파괴적인 나선의 흐름을 만들며 폭발시킬 뿐이란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동시에 투란은 멈춰서 결코 움직일 리가 없는 듯했던 오러 몽거, 고르고니아 스테노아의 별빛뿔에 심장을 잃었던 녀석의 몸이 반응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스파이럴 버스트’와 ‘어비셜 볼텍스’, 마주치는 둘의 궤도가 어긋나 있지만 이를 맞물리게만 한다면 움직일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기에 투란은 멈출 수가 없었다.
―그만해! 네 몸이 먼저 무너진다! 투란! 정신 차려! 그거 없어도 충분하잖아!
드라고니아의 경고가 연이었고, 그 말대로 이제는 투란의 가슴까지 갈라지는 중이었다. 분명히 하나의 완전한 오러 몽거를 얻었으니, 다른 하나는 없어도 되기는 했다. 앙상하게 마른 것도 몬스터 엠블럼 속에서 완전히 보완할 수 있으니까, 아니면 그 형상을 꺼내서 꾸준히 살찌워도 되고…….
‘이놈한테 지는 것 같잖아! 키린 못 만났으면 계속 자빠져 있었을 것 같고! 이놈, 내가 꼭 움직여볼 거라고 다짐했어!’
투란은 이치에 닿지 않은, 순수한 감성을 내세우면서 으르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