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6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59)
툭툭, 바닥에 떨어지는 핏방울이 기묘한 울림과 함께 단단해졌다.
단단해진 핏방울은 순식간에 검게 물들었고, 가늘고 붉은 금이 그어지며 으스러질 듯한 분위기를 띠었다. 하지만 핏방울은 그 금 간 형체 그대로 더욱 단단해졌을 뿐이고, 어느덧 바닥을 적신 핏물은 새카만 결정을 바탕으로 뜨거운 낌새를 모락모락 피워내는 붉은 실금이 깃든 형상으로 변해 있었다.
그 속에서 검은 구근(球根)이 연이어 떨어지는 핏방울을 씨앗 삼았다는 듯이 불끈거리며 하나둘씩 연이어 치솟았다. 검은 광택을 머금은 줄기가 붉은 실금을 품은 그대로 구근마다 뻗어나오며 오러 몽거를 더듬고 기어올랐다.
갈라진 오러 몽거의 살갗, 그대로 드러난 속살과 뼈마디 속으로 시커먼 결정으로 이뤄진 뿌리줄기 수십 가닥이 구불거리며 파고들었다. 오러 몽거의 몸이 이리 꿈틀 저리 꿈틀거리면서 연이은 폭발력을 뿜어냈지만 그 힘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듯이 결정의 줄기는 더욱 튼튼하고 강력하게 파고들어 결국 폭발의 원천인 심장에 이르고 있었다.
그리하여 ‘악마의 심장’은 오러 몽거의 심장을 움켜쥐고 으깨듯이 잡아먹었다.
―뭐? 투란, 무슨……!
드라고니아가 뜻밖의 상황에 흠칫하고 놀란 소리를 전할 때, 투란은 더욱 정신을 집중하며 기억의 한 자락을 ‘재현(再現)’하고 있었다.
심장을 먹어치운 ‘악마의 심장’이 폭발을 짓이기고 씹어 삼키며 그 자리를 대신하는 과정 속에서 오러 몽거는 끊임없는 괴성을, 비명일 수밖에 없는 외침을 흘려내고 있었다. 뒤틀렸으나 강렬한 오러, 그 막대한 생명력으로도 억누를 수 없는 파괴의 고통을 온 세상에 알리겠다는 듯!
격렬한 변화가 오러 몽거를 중심으로 맹렬한 소란처럼 이뤄져 갔다.
암벽산 한 귀퉁이 절벽에 올라선 몬스터는 손발보다 날개를 움직여 땅을 기는 시늉으로 빠르게 저편의 소란을 향해 다가갔다.
날개와 마찬가지로 검은 가죽으로 된 뿔이 우람하게 돋아났고, 가죽은 상하로 반 토막 나서 아래가 사라진 가면처럼 몬스터의 낯짝을 덮으며 목뒤와 어깨, 팔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데 그 가죽이 덮이지 않은 부분에는 살갗이 없고, 뼈와 내장이 고스란히 드러난 채였다. 얼굴의 아랫부분은 턱과 이를 그대로 드러냈고, 가슴도 그 뼈마디를 드러내며 안에 담긴 허파의 움직임을 통해 몬스터가 숨을 쉰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꼴이었다.
그런 채로 날개와 두 손, 두 발로 기는 몬스터는 어딘가 데빌 임프를 닮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날개에는 더 큰 손톱이 달려 있었고, 손바닥에서 마디 구분 없이 뻗어나가 휘어진 손가락은 갈고리 낫이 펼쳐졌다 휘어졌다 하는 것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 형상을 한 몬스터는 쉴 새 없이 울려나오는 오러 몽거의 괴성, 고통이 가득한 비명을 탐색하려는 듯이 계속 다가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거칠고 사나운 숨결과 함께 오러 몽거가 그 괴성을 누그러뜨리며 축 늘어진 모습이 되는 것을 멀리서 발견하고 데빌 임프를 닮았으면서도 한층 더 괴기스러운 몬스터가 멈췄다.
뿔을 젓듯이 고개를 갸웃하며 몬스터가 가죽 속에 하얀 덩어리처럼 박힌 눈알, 눈동자라고는 그저 어스름한 얼룩의 흐릿한 흔적처럼 보일 뿐인 눈알을 굴리며 오러 몽거의 상태를 좀 더 자세히 보겠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기까지 하는데…….
“그니까, 넌 대체 뭐냐?”
오러 몽거가 느릿하니 고개를 돌리다가 불쑥 묻는 말을 던지고 있었다.
몬스터가 이해하기 쉬운 괴성과는 전혀 다른, 몬스터에게는 아주 낯선 인간의 목소리가 오러 몽거에게서 흘러나온 셈이었다.
그 순간, 몬스터는 날개로 바닥을 찧으며 날아오르려 했다.
흉골부터 쇄골까지 이어지며 뼈가 드러난 목 줄기가 검은 손아귀에 쥐어지지만 않았다면 단숨에 수십 미터 상공(上空)으로 치솟을 수 있는 시도였다. 이를 증명하겠다는 듯, 붙들린 목 줄기 아래의 몸뚱이가 발끝으로 하늘을 찌르겠다는 듯이 뒤집어지며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었다.
몬스터의 날개가 보다 더 강렬한 부양력을 얻기 위해 유연하게, 바람을 압축시키겠다는 듯이 힘줄과 핏줄이 도드라진 몰골로 세차게 움직였다. 본체의 상황 따위는 모른다는 듯한, 조금 괴기스러운 날개만의 반항이었고 몬스터의 목뼈는 하릴없이 그 여파를 뒤집어쓰며 부러졌다.
와득.
“와, 진짜…….”
오러 몽거의 입에서 다시 사람의 목소리가 새나왔다.
그 목소리와 다르게 오러 몽거의 몸은 갈라진 곳을 조이고 메우면서 매끈해지고 있었다. 그동안 갈라지며 쏟아냈던 피와 살점은 그냥 해본 장난이었다는 것처럼!
어느덧 멀쩡한 오러 몽거에게 쥐어진 몬스터의 날갯짓은 느려졌고, 몸은 팔다리부터 바닥을 향해 축 늘어졌다.
―과연, 다른 몸에 깃드는 날개답군. 그 때문에 변종(變種)이 이뤄진 것 같기도 해 보인다만…… 투란, 저 끝자락을 봐라.
콰드득.
오러 몽거의 손아귀에 잡힌 데빌 임프의 변종이 온몸을 비비 꼬듯이 뒤틀어지며 오그라들고 있었다. 팔락거리며 저항하려던 날개조차 갑작스럽게 뿜어져 나온 오러의 압력에 강제로 휘말린 채로 몸을 감으며 조이는 꼴이었다.
오러 몽거의 형상에서 저절로 흘러나온 압도적인 오러, ‘어비셜 볼텍스’의 괴력을 어이없어하면서도 투란의 눈길은 멀리 프로브가 탐색해서 드라고니아가 알려주는 암벽산 한쪽 끝자락을 향했다.
거기에는 지금 잡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뒤틀어 꽈버리고 있는 몬스터, 데빌 임프의 변종으로 보이는 녀석들이 여섯, 일곱 정도 날아오르는 중이었다.
‘멀쩡하네?’
―그렇군?
그쪽의 일곱 마리는 입과 가슴까지 뼈를 드러낸 괴기스러운 몰골이 아니었다.
어떻게 봐도 보랏빛 살갗 위로 검은 가죽이 외투처럼, 이상한 가면처럼 뒤집어 씌워지며 날개까지 이어진 데빌 임프로 보일 뿐이었다. 투란이 삼킨 데빌 임프처럼 단색은 아니었고, 체격도 한 이십에서 삼십 센티 정도 더 크게 부푼 몰골인 듯했지만 어쨌든 데빌 임프라고 여길 만했다.
‘뭐지? 겁 없이 찾아온 녀석은 이렇게 망가진 꼴인데, 저 녀석들은 왜…… 야, 저것들 지금 멀어지는 거지?’
―아…… 어떻게 된 건지 알 것 같다.
‘뭐? 어떻게 된 건데?’
―무리 중에 제일 약한 놈을 보내 강제로 정찰시킨 거다. 임프 떼가 몰려다닐 때 가끔 그중에서 살갗이 찢기고 늑골(肋骨)이나 쇄골(鎖骨)을 드러낸 이상한 꼴을 한 녀석들이 있지. 무리 중에 약해서 학대받은 경우야. 그리 자주 볼 수는 없다만, 분명히 임프 무리에게서 가끔, 드물게 나타나는 일이다.
‘헤에…… 몬스터면서 사람 흉내라도 내는 건가?’
―그건 뭔 소리냐?
‘아아, 가끔 그런 헌팅 파티가 있어. 어수룩한 아저씨 하나 꼬드겨서 미끼로 보내는…… 생각나니까 기분 나쁜데?’
쿠웅, 콰드득.
무겁게 디딘 오러 몽거의 한 발은 돌과 자갈이 가득한 암벽산 정상의 바닥에 너끈히 3, 4미터는 될 듯한 폭으로 영향을 끼치며 십여 센티가량 가라앉게 했다. 작은 돌과 자갈이 부서지면서 티끌이 되어 흩날렸고, 회오리처럼 맴도는 그 궤적을 관통하듯 바닥에서 삐죽한 돌창이 몇 자루 치솟았다.
콰악.
오러 몽거의 손에 쥐어져 피와 살, 가죽과 뼈로 된 양 끝이 삐죽하고 중심이 볼록한 어리숙한 몽둥이 모양이 된 몬스터가 바닥을 뚫고 꽂혔다.
투란은 날렵하게 움직이는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웃었다.
너무 잘 움직이고, 힘이 절로 넘쳐난다!
발을 디뎌 방출한 오러로 만든 돌창을 향해 그 손을 뻗으며 투란이 더욱 멀어져가는 데빌 임프의 변종을 바라봤다. 정확하게 다시 세보니 일곱 마리인 녀석들은 이쪽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수백 미터 저 멀리서 확실하게 깨달았다는 듯, 영악스럽게도 흩어져서 각자 다른 방향으로 날고 있었다.
빠르게 쫓는다 해도 한 마리 겨우 잡을 사이에 나머지는 모두 도망칠 수 있어 보이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탈출법!
―영리한데? 어쩔 거냐? 그걸로 모두 맞출 수 있겠어?
드라고니아가 흥미롭다는 듯이 물으면서도 프로브 여럿을 통해 파악한 바람의 세기, 흐르는 방향, 멀어져가는 녀석들과의 거리를 쉴 새 없이 투란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굳이 돌창을 만든 까닭을 안다는 듯, 재주를 보이라고 부추기듯!
오러 몽거의 입꼬리를 올리며, 아래위로 거칠게 돋아난 송곳니 몇 쌍을 입술 너머로 돌출시키면서 투란이 소리 없이 대답한다.
‘키린이 말했…… 아니, 내 머릿속을 지지면서 마음에 아주 똑바로 새겨줬지. 수백 미터 밖에서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해야 하는데 몬스터 로드의 힘을 봉쇄당하면 어쩔 거냐고, 거리가 멀다고 포기하고 힘이 묶였다고 징징 짜고만 있을 거냐고. 그럴 때 어찌할 바 몰라 헤매는 바보는 되지 말라고, 오러 윌더처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라고 말이야. 무투술이 오러 윌더에게서 발휘되면 왜 강화무투술이라 불리는가를 알려준다면서…… 크아아앙!’
느긋하게, 즐거운 회상처럼 떠들던 투란의 눈꼬리…… 오러 몽거의 눈꼬리가 치켜 올랐다. 낯이 굳어지면서 오러 몽거의 손발이 부르르 떨리는 듯한 격렬한 진동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강제주입식 학습법, 다시 느껴지는 그 고통을 담아 투란은 두 손으로 바닥에서 뽑아 올린 돌창을 모조리 사납게 휩쓸어 쥐며 앞으로 격렬한 발구름과 함께 뛰었다.
쿠웅!
파아아앙!
한 자루 돌창이 허공을 찢으며 순식간에 저 멀리로 사라졌다.
수백 미터 저편에서 다시 수십 미터를 빠르게 멀어지며 삽시간에 백여 미터 가까이 거리를 더 벌려놨던 데빌 임프의 변종 한 마리가 축 늘어졌다. 날개조차도 돌창에 꿰뚫려 허우적대는 몰골로 지상을 향해 빙빙 돌며 추락하는 모습이 작은 점처럼 보였다.
쿠웅, 팟, 팟, 파아앗!
몇 자루 돌창이 투란의 두 손에서 연이어 날아갔다.
너무 요란하고 적나라한 굉음(轟音)을 흘리는 투창인지라 몇 마리는 처음 명중당한 녀석과 다르게, 그 피해를 이미 봤다는 듯이 잠깐 피하는 시늉도 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달랑 한 자루가 날았던 것과 다르게 이번에는 한 마리마다 투창이 서너 자루씩 날고 있었다.
오러 몽거가 한 걸음을 디딜 때마다 소용돌이처럼 바닥을 휘감고, 돌과 자갈을 으스러뜨리고 뭉쳐버린 오러의 괴력이 연이어 돌창을 뽑아 올렸다. 돌창은 곧바로 투란의 손에서 투창이 되어 날아갔으니…….
그워어어어!
쾅, 쾅!
어느새 투창질을 멈춘 투란이 창공의 구름에게 들으란 듯이 함성을 내지르며 가슴을 두드리니, 암벽산을 쩌렁쩌렁 울리는 폭음(爆音)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얌마, 시끄러워! 헛짓하지 말고, 떨어지는 놈들 그냥 바닥에 다 내리꽂히게 둘 거냐? 아니면…….
‘에어로! 테라트!’
바람과 흙의 정령수를 부르는 투란의 소리 없는 외침은 곧바로 드라고니아에게 다음 대책이 되었다.
바람과 흙의 두 정령수가 저 멀리서 바로 움직이는 것을 느끼며 투란은 느릿하니 돌아서서 자신이 한 걸음 디딜 때마다 수 미터를 짓누른 오러 몽거의 흔적을 확인하며 제자리로…… 정탐을 위해 왔던 괴기한 데빌 임프의 변종을 꽂아놓은 자리로 돌아왔다.
여전히 오러의 파동에 휘감겨 풀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고깃덩어리 창을 향해 투란이 손을 내밀었다. 새카만 손바닥에 온통 핏빛의 고리가 맴돌았고, 뒤틀린 몰골인 몬스터에게 닿는 순간에 바로 이 몸에서 저 몸으로 갈아타겠다는 듯 옮겨갔다.
핏빛 고리가 번져간 몬스터의 형체가 순식간에 투명해졌고, 아지랑이처럼 너울거리며 흩어져 사라져갔다.
여전히 오러 몽거의 형상을 유지한 채로 투란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문장의 풍경 속으로 들어온 새로운 변종 데빌 임프는 보이드의 껍질로 꽉 움켜쥐어 놓은 채로 새로운 심장을 관조하며 감상했다.
드라고니아도 그런 투란의 기분을 이해한다는 듯…….
―좋으냐?
놀린다기보다는 칭찬하듯이 한 마디 던졌다.
투란은 다시 오러 몽거의 흉포한 낯짝에 송곳니를 쌍으로 드러내는 미소를 띠며 소리 없이 대답한다.
‘좋아! 아주 좋아! 고생한 보람이 있잖아!’
이 심장은 앙상했지만 멀쩡했던 오러 몽거의 심장이 아니었다.
마도사의 은신처를 지키는 가디언과는 전혀 다른 오러 몽거를 위해서 ‘악마의 심장’이 새로 조성(造成)해낸 형상이었고 오롯하게 이 오러 몽거만을 위한 심장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투란은 온몸이 찢기고 터져나가는 고통을 견디면서 마그마 로드의 힘으로 버텼고, 아라크녹스 왕의 눈으로 두 갈래 나선이 융합할 궤적을 읽어냈다.
그렇게 해서 블랙 애쉬조차 엮어 넣은 마그마 로드와 온갖 그물과 매듭을 단숨에 엮는 왕의 능력을 기반으로 ‘악마의 심장’이 형상을 꾸미고 만들어냈다!
마침내 오랫동안 풍경 한구석에 우두커니 자빠져 드러누웠던 녀석을 이렇게 꺼내서 멋지게 움직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심지어 키린이 알려준 오러의 기교, 강화무투술의 투창법까지 해내지 않았던가!
크르르륵.
바닥을 끄는 돌로 된 고치가 바람에 실려 투란에게 다가왔다.
모두 일곱 개의 고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