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6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61)
Chapter 173. 북벽 산맥 너머로
“아, 맞다! 마경 크랙! 거기가 깔끔하게 관리가 된다니! 덕분에 괜히 헷갈렸잖아!”
쏟아지는 빗속에서 투란이 갑자기 허공을 향해 주먹질하며 외쳤다.
―응? 헷갈려?
드라고니아가 갸웃하는 대꾸를 했다.
‘툴로쉬! 켈 데릭! 도감 살 때 신나게 떠들었잖아! 아우읏! 춤추는 산맥에서도 소문난 마경인데 헷갈리게! 거기 미친놈들 가는 거 맞다고!’
투란은 씨근거리면서 비를 토해내는 먹구름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따졌다.
―흐흠, 그러고 보니…… 그때 많은 이야기를 했었구나. 그러면…… 오러클 말고 다른 사람에게서도 이런저런 말을 들었었다는 말이잖아? 뭘 오러클에게만 들은 시늉을 하고 있었어?
파고드는 드라고니아의 물음은 날카로웠다.
흠칫하면서도 투란은 재빨리 우겨댔다.
‘헷갈렸다고! 너 때문이야!’
―그게 헷갈릴 일이냐?
‘소리 내지 않고 떠들다 보니 헷갈렸지! 크으으랙! 크크랙, 그러기도 하는데 얌전히 크랙 하니까 다른 말인 줄 알았어!’
―헛소리하는 걸 보니 딴생각을 지우려는 수작인 걸 바로 알겠다만, 왜? 뭐가 갑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거냐? 악마의 날개도 수확했고, 오러 몽거의 심장도 원하는 대로 새로 만들었잖아? 뭐가 또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자신의 건망증을 포장하려고 억지를 부리는 거야?
냉담한 드라고니아의 긴 추궁은 투란을 잠잠하게 했다.
그 침묵을 더욱 이용하겠다는 듯, 드라고니아가 다시 말을 잇는다.
―그러고 보니, 나도 크랙에 대해서 그 지형변화의 원인에 대해서 말 나왔을 때 자세히 얘기한 적이 있지? 켈 데릭의 가게에서는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했었고…… 너도 그때 크랙에 다시 가네 마네 했던 헌터 파티에 대해서 말했었잖아? 전혀 기억이 없는 곳도 아니고 이래저래 흥미로운 곳인데 대체 뭔 생각을 하느라고 딴소리를 하는 거냐? 어차피 나랑 너랑 따로 갈 일도 없잖아! 얼른 실토하지?
미묘하게 윽박지르는 듯하면서도 꼬박꼬박 짚고 하는 말에 투란은 맹한 표정을 짓다가 빗속에 젖은 머리를 긁적이며 느릿하니 대꾸를 하는데…….
‘와, 그걸 다 기억하고 따지냐? 대단하다.’
어딘가 살짝 회피하는 말투였다.
이에 대해 드라고니아가 보다 엄격하고 냉랭하게 묻는다.
―너, 아까 고르고니아 세 자매에 대해서 뭔가 망상을 품는 것 같았다만? 그거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거냐?
‘응? 유렐리아? 아니, 왜 갑자기 유렐리아를…….’
―외우기 힘들다고 앵앵거리던 이름이 바로 튀어나와? 어디 있는가도 모른다면서 뭐 하게? 이젠 스테노아도 얌전하잖아? 메듀시아도 딱히 날뛰는 낌새도 없잖아? 왜 갑자기 유렐리아를…….
‘내 말 따라 하니까 재밌냐?’
소리 없이 툴툴거리는 투란은 입으로 한숨을 쉬고 있었다.
어느 틈엔가 투란이 꺼낸 말끝을 따라 하는 꼴이 된 드라고니아가 잠깐 멈칫하다가 다시 강하게 말을 잇듯이 묻는다.
―갑자기 본능적으로 그 행방을 느끼기라도 했냐? 어디 있나 대강 감이 오거나 그래?
‘뭐? 야, 그럴 리가…….’
빗방울을 튕겨내듯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 채로 투란은 먹구름이 조금 흐릿해진 것을 올려다봤다. 서서히 얄팍해지는 꼴이 슬슬 품고 있던 비와 바람, 번개를 거의 다 토해내고 지친 듯이 보였다.
다시 빗방울이 맺힌 눈가를 훔쳐내면서 멀리 보니, 저 먼 북벽의 풍경은 아직 먹구름이 드리운 어둠, 비바람에 가려진 탓에 그림자처럼 희미했다.
‘그냥, 유렐리아가 폭풍을 몰고 다닌다며? 그래서 그냥 생각난 것뿐이야.’
―먹구름 닿기 전부터 찔끔거리며 생각하지는 않았고?
‘먹구름 몰고 오는 바람 때문에 생각났다고!’
―투란, 세 자매 중에 둘을 잡았다고 혹시나 마지막 하나는 쉬우려나 하는 거라면 완전히 착각이다. 셋 중에서 유렐리아가 가장 잡기 어려워. 잘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잖아. 느릿느릿해서 거의 일 년 가까이 곁으로 다가가 움직여도 알 바 아니라는 스테노아라든가…….
‘야, 갑자기 무슨 일 년이야! 반년…… 아니, 다섯 달도 안 넘겼다고!’
뾰로통해서 따지는 투란을 드라고니아는 깔끔하게 무시한 채로 이야기를 이을 뿐이었다.
―미궁 깊은 곳, 밀실에 감금당해서 꿈쩍도 못 하는 처지였던 메듀시아랑 절대로 같은 경우일 수가 없어. 단순히 강한가 약한가의 문제가 아니야. 예전에도 이야기하지 않았었냐? 오러 몽거와 유렐리아를 비교하면서 말이다.
‘그래, 범람하는 날개라고 했었지. 산도 퍼내서 먼지를 만든다고 네가 그랬지.’
―다른 거 말고, 일단 그 날아다닌다는 점에 주의하란 말이다! 스테노아처럼 절대로 뛰기 싫다고 흐느적거릴 리도 없고, 메듀시아처럼 감금되어 누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몰골이 될 리도 없어! 만난다면 정말로 네 머리 위에다가 산을 퍼붓고 가버릴 수도 있다고!
‘야, 누가 유렐리아 쫓아간다고 했냐? 그냥 갑자기 든 생각이고…… 그 생각을 하다 보니까 옛날 크랙에 대해 들은 것도 잠깐 헷갈린 것뿐이라고! 어딨는지도 모르는데 잡으러 가긴 뭘 잡으러 가냐.’
가만히 잦아드는 빗방울, 가슴에 흐르는 빗물을 손으로 밀어 털어내면서 투란은 투덜거렸다. 뭔가 말 한마디…… 아니, 몇 마디 달리했다가 추궁당하고 있는 꼴이 굉장히 한심스럽다는 기분이 들게 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는 조금 집요하게 다시 묻고 있었다.
―어딨는가 알면? 이번처럼 피할 수 없는 거냐?
아까처럼 예전에 했던 이야기가 왜 달라졌느냐고 추궁하는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신중하게, 윽박지르는 낌새가 전혀 없이 투란에게 진지한 대답을 기대하는 말이었다.
때문에 투란도 되는대로 나오려던 대답을 멈추고 생각했다.
과연 유렐리아의 행방을 제대로 알아낸다면, 그 때는 지금과 다를까?
이미 둘을 한자리, 하나의 문장 속에 품었으니 스테노아의 그 괴기스러운 본능도 남은 하나를 찾아내라 뭐라 할 일은 없을까? 메듀시아 역시 스테노아에게 푹 빠져서 마지막 남은 자매는 알아서 폭풍이나 몰고 다니라며 관심 없을까?
투란은 문장 깊은 곳에서 느릿하게 산책하듯이 움직이는 스테노아에게, 찰싹 붙어서 하나로 융합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메듀시아에게 이 물음을 드러내봤다.
그에 대한 반응이 투란의 기대를 뛰어넘는 기괴함으로써 바로 튀어나왔다.
스테노아는 ‘그래서 어디?’라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메듀시아는 ‘유렐리아.’라는 되뇜을 하며 곧바로 문장 너머의 어딘가를 보는 듯한 자세를 취한 것!
순간적으로 투란은 메듀시아의 그 자세, 그 눈길이 향하는 곳을 깨닫고 바라봤다.
북벽 산맥의 한 귀퉁이, 거의 바로크 왕국의 북방이라 일컬어지는 곳을 향한 투란의 눈가에 뱀의 비늘이 돋아났고 어스름한 금빛과 백색, 청색이 소용돌이치는 눈동자가 잦아드는 비바람 속에서 선명하게 맺혀졌다.
―투란?
흠칫 놀란 듯이 드라고니아가 투란을 불렀다.
쏴아아앗.
문득 빗소리가 투란의 귓가를 울렸다.
가만히 투란은 두 손을 눈앞으로 움직였다.
어느새 뱀의 비늘이 덮인 팔뚝과 손목, 아예 뱀의 머리로 변한 채로 손에서 뛰쳐나갈 듯한 손가락이 제멋대로 구불거리는 꼴이 보였다.
메타모픽 서펜트, 메듀시아의 특별하다는 능력이 낳은 형상이었다.
그리고 손가락이 변한 뱀의 눈으로 투란은 자신의 얼굴에 박힌 눈동자가 메듀시아의 석화(石化) 능력을 발휘하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두 손의 열 손가락이 순식간에 굳어지는 듯한 순간, 그 석화가 곧바로 손과 팔을 타고 치밀어 오를 듯한 순간에 뱀의 비늘 사이로 황금모피의 터럭이 치솟았다.
은은하면서도 따스한 파동, 세 자매의 맏이라는 스테노아가 일으키는 황금의 파동이 메듀시아의 형상을 살짝 입은 투란을 감싸며 퍼졌고 돌이 되려는 변화를 시작하던 손가락, 열 개의 뱀 머리를 찍어누르며 다시 손가락 모양으로 되돌려놨다.
푸우웃, 핫!
입으로 괴상한 소리를 뿜어낸 투란이 비바람을 몰아내듯 외친다.
“썩을! 뒈질 뻔했잖아아앗!”
―아니, 그럴 일은 전혀 없었다만?
굉장히 냉소적인 드라고니아의 반박이었다.
후욱, 숨을 세게 들이쉬면서 입으로 소리 낼 틈을 못 찾은 채로 투란이 바로 으르렁거린다.
‘뭐가 전혀 없어! 손가락이 뱀인 채로 돌이 되고 있었다고! 으아앗! 얘, 이거 자기 얼굴 거울로 봐도 돌 되는 거 맞잖아! 이런 위험한 녀석을 봤나! 누가 가둔 건지 몰라도 정말 잘 가뒀었구만! 그래, 그러니까 그 캄캄한 미궁 깊은 곳에…….’
―잠깐! 뭐라고?
‘가둬둔 거…… 응? 뭐가? 왜? 아직 돌 되는 부분이 남았어?’
―아니, 그런 일은 없고! 투란, 누가라는 얘기 말이다!
‘응? 그게 뭐? 야, 이번에는 헷갈린 거 아니잖아? 미궁 안에서도 계속 누가 저지른 거냐고 너도 궁금해했잖아? 그러면서 뭘…….’
―투란, 메듀시아가 반응했다. 조금 전에 나조차도 이 문장의 공허(空虛)를 울리는 분노와 기억의 파편을 느꼈어!
‘에, 뭐라고?’
투란은 당황했다.
조금 전에 돌 되어 죽을 뻔했다고 느낀 순간, 다른 것은 다 옆으로 치워두고 그 위협에 온통 마음이 쏠려 있었다. 그 순간에 뭔가 보다 짙게 드라고니아의 잔소리처럼 마음을 퉁, 하고 튕긴 듯한 기분도 들기는 했지만 돌이 되어…… 그냥도 아니고 자기가 삼킨 몬스터 낯짝을 멋대로 변한 손가락 뱀눈으로 보다가 돌이 된다는 얼빠진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뻔했다는 것 때문에 슥삭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한데 그 순간에 뭐가 어쨌다고?
―스테노아는 문장 속에서 자매를 기억했다. 메듀시아 또한 문장 속에서 스테노아를 기억하며 함께 어울리는 풍경을 만들고 있잖아. 과연 그 기억이 전부일까? 몬스터마다 별개라는 것은 다시 강조하지 않아도 되잖아? 투란, 다시 한번 미궁을 생각하고 메듀시아에게…… 겁나면 눈 감고 그냥 그 기억만 되새기도록 해보라고!
움찔하는 채로 ‘또 돌 될 위험을 겪으라고!’라고 징징대려는 투란에게 으르렁거리면서 드라고니아가 강하게 제안하고 있었다. 물론 따질 말은 여전히 남아 있는 투란이었다.
‘눈 감으면 돌 안 되냐?’
―안 되잖아! 눈빛을 일부러 뿜어내지 않는 한, 눈이 마주치지만 않으면 돌 되는 일 없다고!
‘뭔가 조건이 많이 늘어나고 이상하게 바뀐 것 같다만? 아무튼 눈 감고 있으면 일단 괜찮다는 말이겠지?’
새삼 메듀시아의 눈빛에 대해 이런저런 상황을 더듬으려다가 투란은 더 심하게 압박하려는 드라고니아의 태도를 깨닫고 그냥 눈부터 감았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르며 너무 놀라서 쿵쾅거리며 두엇으로 분화(分化)할 듯했던 ‘악마의 심장’까지 마저 진정시키고 나서야 투란은 메듀시아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물으려 하니, 흩어지는 먹구름과 함께 잦아드는 빗줄기처럼 ‘뭘 어찌 묻냐?’ 하는 의문이 먼저 떠오르는 투란이었다.
―얌마…… 누가 메듀시아를 미궁에 감금했는가, 그걸 물으라고! 하는 김에 환마에 대해서도 확인해보면 좋고.
이를 가는 듯하면서도 드라고니아는 질문을 정리해서 투란의 뇌리에 꽂아주고 있었다.
‘아, 그래. 알았어. 알았다고! 집중하게 잔소리 좀 그만!’
결국 드라고니아에게 칭얼대는 말부터 늘어놓고 나서야 투란은 다시 메듀시아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이렇게 차분해진 투란이 메듀시아에게, 그 정수에 닿아 드라고니아가 정리한 바를 묻는 순간…….
―너는 이곳…… 유렐…… 성채 앞에…… 어쩔 수 없…… 때가…… 기다…… 메듀시아여, 좋은…….
단편(斷片)이 되어 끊어진 말, 둔하게 울리며 왜곡된 목소리를 흘리는 흐릿한 사람, 두 마리 뱀이 휘감은 단장(短杖)이 배꼽 높이까지 닿는 것을 짚고 선 마법사라 여겨지는 누군가가 투란의 기억 속으로 투영(投影)되었다.
동시에 투란은 가슴이 무겁게, 먹먹해지는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메듀시아가 조용히 스테노아에게 기대며 지금 전한 바를 자신은 잊고 싶어 한다는 듯한 몸짓을 풍경 속에 드리우는 것도 투란에게는 한층 더 기묘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이게…… 뭐지?’
드라고니아에게 자신이 전해 받은 것을 최대한 끌어모아 넘기면서 투란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 흐릿하고 애매했지만 메듀시아가 너무나 격노해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도 못해버린 채로 기억한 바를 어찌할 수가 없으니까.
그러나 드라고니아는 그 흐릿하고 모호하며 분명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과거의 파편을 받는 순간, 격렬한 숨결과 코웃음이 가득 담긴 외침을 토해내고 있었다.
―카엘 디아크! 역시 범인은 대마도사였군!
그야말로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다는 듯, 마치 이제까지 줄곧 의심을 풀지 않았다는 듯한 말투로.
투란에게는 ‘왜?’라고 전혀 납득 못 할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