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6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63)
“보이는 대로 똑바로 가서…… 저 절벽을 올라간 다음에 왼쪽으로 쭈욱 가라, 요약하면 이렇게 되는 거네?”
톡톡, 손가락으로 활짝 펼쳐진 도감의 지도를 두드리면서 눈앞에 드라고니아가 여러 가지 참고사항을 덧붙인 환영의 지형상태를 보면서 투란이 중얼거렸다. 도감을 꺼내놓고 잠시 옹알거리듯이 불평하다가 결국 이곳의 지형을 담은 지도를 펼쳐놓고 잠시 방향을 가늠하고 난 다음이었다.
―엄청나게 축소한 말 같다만, 일단 맞다고 해두지.
이번에는 드라고니아가 투덜거리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북벽 산맥까지 가는 길은 황무지라지만 어쨌든 나름대로 평원인 지역을 가로지르는 것이고, 거기 도달한 다음에는 눈에 보이는 대로 말한 것처럼 단순하지 않은 높이 8천 미터가량을 올라가야 한다는 일인지라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불가능하다 치를 떨 상황이었다. 저 평원은 이미 짐승과 몬스터가 어우러진 생태계였고, 저 절벽은 구름이 중간에 걸쳐 있는 채로 날짐승과 비행할 줄 아는 몬스터가 둥지를 튼 곳이니까.
그나마 다행이라면 춤추는 산맥을 벗어나는 경계선을 긋는 북벽 산맥이기에 몬스터보다는 순수한 날짐승이나 마수가 많다는 것이라 해야겠지만, 몬스터랑 부대끼며 자리 잡은 녀석들이 더 얌전하고 쉬운 상대라는 말은 전혀 할 수가 없는 곳.
별일 없이 절벽 꼭대기까지 올라선 다음에도 첩첩산중(疊疊山中)이었고, 고산(高山) 지역의 흉포한 환경과 함께 몬스터보다 마수, 마수만큼이나 사납고 거친 짐승들이 삶의 터전을 꾸민 곳이었다.
그리고 그런 산악지대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부족들…….
‘어쨌든 사람 사는 곳이란 말이잖아? 굳이 미리 알아둘 만큼 특이해?’
드라고니아가 북벽 산맥에 오른다면 반드시 거기 사는 여러 부족에 대해 알아야 한다면서 긴 이야기를 늘어놓으려 하기에 투란은 살짝 이를 피할 궁리를 하며 물음을 던져봤다.
―인간만 가득한 곳이면 굳이 내가 너한테 뭐라 하겠냐? 북벽 산맥에는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자들까지 보금자리를 꾸민 곳이란 말이다.
‘웨어울프 같은?’
문득 웨어비스트의 대표적인 예를 들며 투란이 물었다.
째잭, 까아악.
주변에서 괴상한 새떼의 다툼이 요란하게 투란의 귓가를 먼저 울렸다.
먹이를 놓고 싸우는 녀석들을 흘깃하고 투란은 일단 도감을 챙겨 넣었다.
떠들고 있기보다는 일단 가면서 들을 작정을 한 것이다.
가는 길에 새로 얻은 날개도, 새로 얻은 몬스터의 형상도 적당히 시험도 해보려는 참이었다.
―수인(獸人)도 따지고 보면 인간의 부류에 속하지. 정신줄 놓고 미쳐 날뛰는 경우라든가 저주받아 짐승의 본능만 남은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내가 뭐라 떠들 필요가 없지.
한데 조금 묘한 드라고니아의 말이 몇 걸음 유쾌하게 디디며 파닥대는 새 떼로부터 멀어지는 투란을 잠깐 멈칫하게 했다.
‘도대체 무슨 말이야? 요점만 확실하게 해줄래?’
뭔가 미묘하게 언짢은 탓인가, 이런 투란의 기분을 반영하듯 바로 발가락이 뱀의 머리가 되며 쉬잇쉬잇하며 쳐들리고 있기도 했다.
―메듀시아는 굳이 시험하지 말라고! 괜히 눈 마주쳤다가 돌이 되면 새라도 억울하겠다!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렸다.
투란은 낯을 구긴 채로 발가락을 노려봤다.
순식간에 뱀의 형상이 사라졌다.
멀쩡한 사람의 발가락이 자신의 발에 온전한 것을 투란은 노려봤다.
‘뭔가 잘못됐구만.’
말의 내용과 다르게 호흡을 고르게 가다듬으며 온건히 자세를 잡는 투란이었다.
―뭐? 그게 무슨…….
평소와 다른 말투 속에서 투란이 정말로 뭔가 잘못된 것을 짚고 있다는 것을 느낀 드라고니아가 흠칫하며 물으려 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한 투란의 행동은 더 이상의 대화를 모두 거부하고 있었다.
곧바로 투란의 등 뒤에서 날개가 치솟았다.
투란의 몸은 보랏빛 임프의 형상을 머금었고, ‘악마의 심장’이 살갗 아래를 채우고 번지면서 그 몸을 관통하듯 더듬고 통찰했다.
금방 임프의 형상이 사라지며 사람의 몸이 그 자리를 채우듯이 분명해졌다. 다만 날개는 그대로 투란의 등짝에 솟아난 채로 가만히 부드러운 움직임을 흘리며 꼿꼿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이런 과정은 딱히 뭐라 할 부분이 없었기에 드라고니아는 의아함과 함께 다시 묻는 말을 꺼내려 했다.
―투란, 갑자기 무슨…….
이번에도 투란은 대화를 하지 않고 바로 움직였다.
앞으로 세게 발을 구르면서 인간의 형상에 덧씌워진 꼴이 된 악마의 날개를 활짝, 부지런히 움직이며 내달리기 시작한 것.
몇 걸음 만에 투란은 암벽산 정상을 스쳐가는 바람의 한 자락을 잡아냈고, 악마의 날개는 곧바로 투란을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 허공을 두어 번 밟듯이 다리를 움직이던 투란은 곧장 몸을 엎드리는 자세를 취했고, 두 팔과 두 다리를 그대로 뒤로 뻗으며 고개를 젖혀 앞을 봤다.
악마의 날개는 몸이 어떤 자세를 취하든 별 상관없다는 듯이 그대로 투란의 등에서 활발하게 움직였고, 금방 수십 미터의 상공으로 투란을 옮겨놨다.
그렇게 잠시 날아가니, 투란이 내려다보는 아래쪽은 바로 암벽산 정상의 영역을 벗어났고 그보다 수백 미터 아래인 황무지의 풍경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악마의 심장’이 계속해서 투란의 몸을, 주로 날개와 이어진 상체를 샅샅이 뒤지는 듯이 움직였다. 이런 기묘한 탐색과 통찰의 결과, ‘악마의 심장’이 흘려내는 줄기가 날개로 스며들며 새로운 구근(球根)의 형체까지 꾸며낼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바로 날개를 웅크리게 했고, 구근 안으로 오그라들게 했다.
한창 날던 중에 날개가 푹 꺼지는 듯한 상황은 투란을 바로 지상을 향해 쏘아내듯 떨어지게 했다.
드라고니아가 흠칫 놀란 것은 그렇게 몇 초를 떨어지면서 투란이 가만히 눈을 감은 채로 지상에 격돌이라도 할 작정인 듯 꼼짝도 않는 것을 확인한 다음이었다.
―야, 너 그 몸으로는…… 정령수까지 움직이지 않게 하면 어쩌려고! 투란!
이 다급한 낌새 가득한 외침에 투란은 겨우 대꾸를 하는데…….
‘앙상한가, 통통한가.’
전혀 상황과 상관이 없는 괴이한 말로 뭔가 고르자는 듯했다.
상당히 뜬금없었지만 드라고니아는 그 순간에 투란이 오러 몽거, 두 번째로 얻은 심장이 온전해서 심장을 적출해 쓰러뜨린 오러 몽거를 놓고 하는 말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상 속에 떠올린 그 형상을 고스란히 전하면서 물었으니까.
―실체는 앙상했다만, 정수로 꾸민 형상은 그런 손실이 없는 온전한 채였잖아? 물론 그 실체를 그대로 반영해도 별 상관은…… 투란?
‘깜박깜박하면서 계속 바꿔보려는 생각은 안 했는데 말이지.’
―뭐?
‘뱀의 형체도 멋대로 만들고 말이야.’
투란은 쐐기를 박듯이 소리 없는 중얼거림을 흘리고는 가까워지는 땅을 노려보면서 마음을 한 가지 형상에 집중했다.
오랫동안 감금당한 채로, 자신을 묶은 사슬에 시달리면서도 보호를 받던…… 앙상하게 말랐음에도 도도하게 그 지닌 바 능력을 과시하려 했던 흉포한 몬스터, 오러 몽거가 추락하는 투란의 모습 속에서 울렁거리며 그 형상을 드러냈다.
거의 순수한 오러 몽거의 몸뚱이는 허공에서 뭔가 잡고 디딜 것도 없는 채로, 날개조차 없기에 그대로 추락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입에서 나온 투란의 말은 이를 한층 더 부추기는 듯했으니…….
“미쳐 날뛰어라! 배고픔을 채워봐! 내가 허락한다!”
―그게 무슨 미친 소리냐! 투란 지금 대체 뭘……!
드라고니아가 버럭 외치면서 당황했다.
문장에 정수가 삼켜진 오러 몽거는 당황하지도, 머뭇거리지도 않으며 갑작스러운 해방을 즐기듯이 본능을 드러낼 뿐이었다.
그워어어어어!
황무지, 평야의 들쑥날쑥한 작은 언덕 사이로 허공에서 시작된 메아리가 길게 퍼져나갔다.
쿠우웅.
소리는 두툼했지만 땅울림은 그리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채로 살짝 퍼졌다.
콰앙!
연이어 땅이 짓이겨지며 울려퍼진 소리는 조금 더 큰 진동을 퍼뜨렸고, 추락한 것이 일으킨 것보다 더 격렬한 힘이란 것을 과시했다.
그워어엉!
뭔가가 처박힌 곳에서 일어서면서 성난 듯, 억울한 듯, 고통스러운 듯이 울부짖었다. 그 소리와 함께 오러 몽거가 앙상한 몸을 일으키며 황무지에 서고 있었다.
일어선 오러 몽거의 앞에는 주먹으로 내리찍어 만든 흔적, 2미터 폭으로 몇십 센티가 가볍게 주저앉은 얕아 보이는 구덩이가 생겨나 있었다.
킁킁거리는 콧김을 뿜으며 냄새로 뭔가 찾는 시늉을 한 오러 몽거가 파릇한 눈알을 굴리며 눈매를 좁혔다.
수백 미터 너머 저편에서 오러 몽거 쪽을 향해 일제히 고개를 돌리고 있는 들소의 무리가 보였다. 네 발로 튼튼하게 땅을 짚고, 하늘을 향해 높이 치솟은 뿔을 갸우뚱거리며.
소 떼를 향해 오러 몽거가 무릎을 구부렸고, 발에 힘을 줬다.
땅거죽을 통째로 밀어내는 듯한 괴이한 파문이 바로 오러 몽거의 발가락부터 시작되며 번져나갔다. 맨땅이 물결치는 듯이 고랑을 겹치고 엉기면서 열 발가락에서 시작된 파문이 온통 제멋대로임을 드러내면서도 똘똘 뭉쳐 낮은 보(堡)를 쌓은 듯했다. 그야말로 누군가 기묘하게 겹쳐진 파문을 흉내 낸 고랑을 파놓은 듯한 형태가 거의 완성될 듯할 때, 오러 몽거가 튀어올랐다.
투웅.
겹쳐진 고랑이 받쳐준 듯, 꽤 탄력이 가득한 소리가 굵직하게 퍼졌다.
오러 몽거는 쏘아진 포석(砲石)처럼 비스듬히, 가장 멀리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경사각(傾斜角)으로 수십 미터를 단숨에 가로질렀다.
쿠웅.
앞으로 내디딘 두 번째 발 디딤은 한층 더 오러 몽거를 가속시켰다.
쿠웅, 투웅.
조금 엇갈린 느낌을 담은 듯한 묘한 소리가 연이어 터졌고, 수백 미터 너머에서 긴장하던 들소 무리는 자신들이 목표가 된 것을 조금 늦게 알아차렸다.
거센 콧김, 소의 울음소리와 함께 들소 무리가 겨우 발을 움직이며 몬스터를 피하는 몸짓을 할 때, 오러 몽거는 들소 한 마리의 등짝을 한 손으로 잡아 올리며 바로 입으로 가져가 뒷덜미를 물어 으깨고 있었다.
앙상한 입이었지만 들소의 가죽, 뼈, 살점은 걸쭉한 죽이라도 된 것처럼 단숨에 빨아들였다. 순식간에 목의 절반이 날아간 들소는 바로 경직되었고, 그 뿔이 오러 몽거의 입에 담겨 오드득거리며 으깨져 사라졌다.
콰득.
여전히 한 손으로 들소의 등허리를 쥔 채, 다른 한 손으로 들소의 머리를 꽉 움켜쥐어 두개골과 두부(頭部)를 압축시켰다. 오그라든 소머리는 오러 몽거의 한입에 그대로 삼켜졌다.
이렇게 한 마리가 희생하는 사이에 사방으로 흩어지며 달아나고 있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포식자, 사냥꾼 앞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 셈이었다.
하지만 허기진 오러 몽거는 들소 떼를 향해 빙 둘러치는 듯한 발길질을 했고, 땅을 찢으며 파쇄된 자갈 덩이들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퍽, 퍼퍽, 음머어어!
엉덩이와 몸통에서 피가 튕기며 비명과 함께 들소 몇 마리가 쓰러졌다.
으적, 와드득.
입에다가 마구 우겨넣은 들소 한 마리가 순식간에 반 토막이 났다.
전반신이 사라진 남은 반 토막을 뒷다리부터 잡고, 알뜰하게 빨아들인 탓에 핏방울도 겨우 맺히는 꼴을 만든 채로 오러 몽거가 자세를 낮춰 빈손으로 땅을 후벼파서 한 움큼 집어 올렸다.
키드득.
오러 몽거의 손에 쥐어진 흙덩이가 압축되며 이제는 흩어지지 않는 단단한 덩어리가 되었다는 듯한 소리를 흘렸다.
와직!
단단한 덩어리가 다시 손아귀의 괴력에 뭉개졌고, 날카로운 파편이 되었다.
촤아악!
오러 몽거의 팔에서 시작된 오러의 흐름이 실린 파편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발길질에 날려온 돌조각, 흙덩이에 쓰러지지 않은 들소 무리의 몇 마리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는 몰골로 땅바닥에 뒹굴었다. 그 와중에 머리가 거꾸로 접히듯이 목이 부러지고 다리가 부러지는 광경은 그나마 살아남은 몇 마리 들소를 더욱 빠르게, 더욱 멀리 흩어져 달아나게 했다.
와득, 우걱.
오러 몽거는 들고 있던 반 토막 들소를 한 점 남기지 않고, 발굽까지 씹어 삼켰다.
그 검은 몸, 하얀 체모(體毛)에서 은은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갑작스럽게 너무 열을 냈다고 알리는 듯…….
그르르.
낮은 목젖 울림과 함께 오러 몽거는 한 걸음 디뎠고, 어느새 그 어깨가 불끈거리며 앙상함을 벗어던진 듯한 몰골을 드러냈다.
흡사 들소 한 마리를 그대로 몸 안에 압축시켜 구겨넣기라도 했다는 듯.
방금 먹은 것이 이미 완전히 소화되어 영양으로 전부 쓰였다는 듯.
그럼에도 여전히 앙상한 몸매인 오러 몽거는 쓰러진 들소를 향해 성큼성큼 빠르게 다가갔다.
아직 배고프다는 것이 그 동작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