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6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64)
오러 몽거에게 잡아 먹힌 것은 들소 떼만이 아니었다.
지나가던 히엔나 한 무리, 기묘한 소란에 이끌려 다가왔던 사티로스 한 무리, 멀리서 썩은 시체가 있는가 쫓아왔던 대형 도마뱀, 뛰어놀던 임프와 고블린 등등…… 오러 몽거가 날뛰는 범위 안에 들어온 짐승, 몬스터는 품종을 가리지 않고 뼈와 살, 피 한 방울 남김없이 잡아먹히는 참상이 벌어졌다.
그 참상 속에서 오러 몽거의 앙상했던 몸은 계속해서 불룩거리며 부풀며 보다 더 강인하고 튼튼한 모습으로 회복되고 있었다.
잡아먹은 것들이 모조리 압축되고 응축되어 오러 몽거의 피와 살, 뼈대 속으로 스며들기라도 하는 듯했고 그 결과 성장이라도 한 것처럼 오러 몽거의 신장(身長)조차 거의 4미터 20센티에 도달하고 있었다.
그렇게 주변 2, 30킬로미터를 질주하고 배회하던 끝에 오러 몽거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먹이…… 사냥감은 땅밑에서 튀어나왔다.
나오고 싶은 경우는 전혀 아니었던 듯, 나오자마자 크고 긴 나팔소리처럼 울어댔고 몸 주변으로 희끄무레한 땀방울을 잔뜩 흩뿌리기까지 했다. 그 땀방울에 닿은 땅이 움푹움푹 파이며 이지러지는 광경은 마치 녹아 먹히는 것처럼 보였다.
오러 몽거가 수 미터의 땅이 단숨에 짓이겨지도록 구른 발구름으로 끌어낸 괴물은 25미터 몸길이, 높이가 7, 8미터는 되어 보이는 등짝을 지닌 민달팽이였다. 옅은 황갈색 등짝은 바위처럼 보이지만 절반 정도 내려와 땅에 대고 기어다닐 배가 시작될 부분부터는 하얗게 변해가며 희멀건 체액에 잔뜩 젖어 있는 거대한 벌레형의 괴수(怪獸)…….
어느 틈엔가 오러 몽거에게서 꽤 멀리 떨어진 허공에서 맴도는 프로브, 거기에 깃든 마력에 의식을 싣고 있는 드라고니아는 한숨을 쉬며 지켜보고 있었다.
투란이 완전히 의식을 본능에 떠맡긴 것처럼 정말 아무 생각 없는 채로 미쳐 날뛰는 탓이었다.
덕분에 어지간한 마력의 구성체는 오러 몽거가 아무렇게나 뿌려대는 오러의 파동에 휩쓸리면 그대로 부서질 판이었기에 프로브도 거리를 두고 관측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미리 구성해둔 프로브가 아니었다면 드라고니아는 오롯하게 의식을 몽땅 오러 몽거에게 집중한 투란에게 말도 못 붙이고 문장 밖의 현실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 채로 답답하게 기다려야 했을 상황.
그럼에도 저 괴수, 몬스터이지만 어지간한 일이 없으면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대형 벌레 스톤 슬러그에 대해서는 한마디라도 해줘야 할 필요를 느꼈기에 드라고니아는 안 듣거나 못 들어도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중얼거린다.
―투란, 듣고 있기를 바란다. 저 녀석의 체액은 점착성(粘着性) 용해성(溶解性)을 띠고 있고 대상은 모든 물질(物質)이다. 쉽게 말해서, 들러붙으면 티끌만 한 조각이라도 완전히 녹여 분해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야, 인마! 닿지 말라는데 입속으로 뛰어들고 있냐! 야! 너 내 말 들으면서 지금……!
뿌으으으으우웅!
옅은 황갈색의 등짝이 으득거리며 움직였다.
등짝의 색을 그대로 이어받은 촉각은 빠르게 땅을 짚고 허공을 더듬으며 도대체 뭐가 깊은 땅밑에서 여유롭게 움직이는 자신을 두들겨 튀어나오게 만들었나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거대한 민달팽이는 그 탐색을 오래 할 필요가 없었다.
쿵쾅거리며 한 걸음마다 십여 미터를 가볍게 건너뛰는 억센 발걸음으로 찾던 놈이 달려오고 있었으니까.
촉각을 움직인 거대한 민달팽이는 주둥이를 오물거렸고 녀석을 향해 슬쩍 뭔가 토해낼 시늉을 하며 겨냥했다. 이제까지 지상이든 지하에서든 만나는 녀석들이 그런 동작만 하면 부리나케 비켜서는 꼴을 봐왔기 때문이었다. 그런 녀석들에게 바로 몸통을 날리는 것, 그것이 민달팽이가 터득한 전투 방식이었다. 그 거대한 몸을 굴리며 몸 아래쪽에서도 줄줄 흘러내리는 침을 위아래 사방으로 뿌리는 것만으로 민달팽이는 적을 뭉개고 잡아먹으며 살아남았으니까.
한데 촉각을 내밀며 슬쩍 녀석을 삼킬 정도로 입을 여는 순간, 냉큼 그 입안으로 뛰어들며 단숨에 배 속으로 훌렁 넘어가다니…….
민달팽이는 입을 다물고 잠깐 촉각으로 허공을 더듬었다.
원체 생각이 없는 몸인지라 이게 무슨 일인가 따지는 시늉도 하지 않고 문득 정리된 상황을 바로 받아들일 수 있는 듯, 민달팽이가 고요해진 주변을 확인하자마자 다시 바닥에 촉각을 꽂으며 땅 밑으로 스며들려는 순간, 일이 터졌다.
그 일은 바로 민달팽이의 튼튼한 등짝, 황갈색의 매끈한 바위로 착각하기 쉬운 껍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바위로 착각해도 상관없이 튼튼히 등짝 껍질이 금이 가고 오그라들며 몸 안쪽으로 푹 꺼지더니, 그대로 부서지며 구멍이 나버린 것.
그리고 드러난 속살, 괄괄 터져야 할 체액이 온데간데없고 속살이 뒤틀리며 다시 옆의 튼튼하고 멀쩡한 껍질과 함께 휘말리며 으스러지고 사라졌다. 그 원인이 바로 드러났으니, 민달팽이의 거대한 몸통 안으로 뛰어든 오러 몽거가 들이마시고 있는 탓이었다.
괴수의 속살, 껍질, 내장을 모조리 손짓발짓으로 끌어모으며 입에 담고 구겨넣고 있는 것!
지나가던 다른 몬스터가 봐도 어딘가 몰상식하다고 혀를 찰 듯한 광경이었다.
―몬스터라고! 몬스터! 너 좋아하는 정수가 가득한 몬스터! 잡아먹지 말고 삼키란 말이다!
드라고니아가 한층 더 미친 듯한 외침을 투란에게, 그래도 완전히 정신줄 놓지 않았다는 증명이라도 하듯 정교한 마력의 파동을 통해 마구 쏟아넣었다.
하지만 거대한 민달팽이 괴수, 스톤 슬러그가 주변을 뭉개고 뒹굴며 한 점 한 점 파먹히는 고통을 발광(發狂)하는 동작으로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어도, 투란에게서 나오는 대꾸, 대답은 전혀 없었다.
―저기 저 고블린 떼가 어처구니없어하면서 지나가는 거 안 보이냐? 고블린한테도 미친놈 취급받는 중이라고!
자극적인 말까지 던져봤지만, 드라고니아는 대답을 얻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새 몸부림치던 스톤 슬러그가 그 거대한 민달팽이의 형상을 잃은 채로 희끄무레한 체액과 뱃살 덩어리로 변해버렸다. 이제는 오러 몽거가 거대한 살덩이를 퍼먹으면서 제자리를 맴도는 듯한 광경이 된 것이다.
드라고니아는 이제 경이롭다가 칭찬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는 듯, 말문이 막힌 것처럼 고요해질 수밖에 없었다.
오러 몽거의 온몸을 덮은 스톤 슬러그의 체액이 검은 살갗에 파고들지 못한 채로 느릿하니 맴돌면서 으스러지는 꼴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광경이었기 때문이었다. 강력한 오러 가드가 자연스럽게 생성된다고는 해도, 그것이 어지간한 마법을 거뜬히 막아낼 지경이라 해도 수십 미터에 달하는 괴수가 남긴 용해성 체액을 입자 단위로 갈아없애서 무효화한다는 것은 드라코눔의 누구라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이 분명했다.
하지만 투란이 그 본능을 만개(滿開)해버린 오러 몽거는 그리 하고 있었다.
덕분에 그 선 자리 주변으로 오러의 파동이 자욱하게 흘러넘치는 중이었고, 그 무겁고 날카로운 오러의 소용돌이는 끊임없이 그 몸뚱이를 짓이길 듯이 응축되고 있었다. 저 정도 압축이라면 몸을 움직이기는커녕 그냥 바위처럼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 정상이라 할 지경인데, 오러 몽거는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폭발을 자연스럽게 활용하며 까닥까닥 잘도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 연쇄적인 크고 작은 치명적인 폭발을 담은 몸은 이제 매끈하고 시커먼 살갗, 새하얗게 일렁이며 티끌 하나 묻히지 않은 털을 곳곳에서 자랑하는 분위기였다. 거대한 민달팽이의 잔해, 살조각과 체액을 한 점 한 방울 남김없이 먹고 갈아버린 다음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배가 찬 듯한 몰골이라 할 수도 있었다.
어찌 보면 먹다 지쳤다고도 할 수 있는 상황…….
그 상황은 갑작스럽게 오러 몽거의 형상이 해체되면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불과 바람, 미묘한 안개와 흙이 어우러지며 일으키는 장벽이 끝맺었다.
갑작스러운 그 광경은 드라고니아를 흠칫하게 했다.
투란의 모습이, 사람으로서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중이었다.
가슴에 선명하게 ‘천칭’의 문장까지 드러내면서.
사대속성의 정령수가 그 상황에 부여된 임무를 바로 수행해서 치솟는 것이 바로 저 장벽.
드라고니아는 바쁘게 프로브를 움직여 투란에게 다가가려다가 멈췄다.
오러 몽거의 형상은 사라졌지만 그 강대한 오러의 파동, 그 여운은 아주 흐리고 옅게 남아서 여전히 투란을 중심으로 넓게 소용돌이치는 중이었다. 마치 아직은 오러 몽거의 괴력이 깃든 오러가 여운처럼 남아 있는 듯.
그리고 곧 드라고니아는 더 이상 프로브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천칭’을 향해 남겨진 오러의 여운이 맹렬하게 응축되기 시작했고, 동시에 ‘천칭’의 풍경 속에 격변이…… 이제까지 드라고니아가 지켜봤던 어떤 변화도 초라하게 만들 정도의 대격변이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그 격변은 드라고니아에게도 자신을 지키는, 몬스터 에센스 형태로 ‘천칭’에 머물고 있는 자신의 의식을 지키는 마법을 다시 점검하게 강요하는 현상이었다.
더불어 투란도 그리 하라고, 겨우 다시 말을 할 수 있는 상태인가 할 때 그렇게 요구하면서 또 다른 부탁까지 하는 중이었다.
때문에 드라고니아는 알 수 있었다.
이제까지 투란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가.
모두 저 순수한 오러의 파동이 왜 필요했는가.
그것으로 무엇을 하려는가.
―너 대체…….
* * *
‘나는 멍청하지 않아.’
‘가끔 덜렁대기는 하지.’
‘실수로 죽을 정도는 아니야.’
‘그래, 그렇게 삼킨 몬스터에게 위협받을 일도 없지!’
‘내 정신이 올바른 상태라면!’
‘나는 크랙에 대해서 알아.’
‘그 얼음과 불꽃이 어우러지는 마경에 대해서 당연히 알지!’
‘하지만 슬쩍 잊고 있었지.’
‘드라코눔의 아칸이 웜에 대해서 말해주기까지 했는데…….’
‘낯선 곳이라고, 겨우 한두 번 들은 것으로 기억했지.’
‘고무쇠 아저씨가 그랬잖아.’
‘몬스터 로드에게는 실수란 없다, 다스리지 못한 몬스터의 본능이 미쳐 날뛰는 것은 순전히 그 자신의 기량이 부족한 것.’
‘메듀시아의 능력이 특이한 탓이라고 해두면 안 될까?’
‘스테노아도 거들었어.’
‘아무튼, 저거 보라고. 보이드를 뱀처럼 꾸며서 움직이잖아.’
‘바로 저게 메타모픽 서펜트!’
‘자기 몸만 바꾸는 게 아니었어.’
‘바보 드라고니아.’
‘몰랐을까?’
‘나중에 따지고.’
‘그래, 수많은 ‘나’여…….‘
’이야기꾼 흉내 낼 때 아냐.‘
’아무튼 정리하자!‘
겹쳐진 금빛 고리.
‘천칭’으로 몬스터의 정수가 들어오며 보이드의 거품, 그 껍질에 휘감기는 통과의례를 형성하는 탑처럼 쌓인 금빛 고리가 오그라들고 뭉치며 정상의 허공에 꽂힌 기둥처럼 변했다.
기둥은 금방 뒤틀리며 꼬여 나선의 궤적을 각인당했고, 이리저리 출렁거리는 새로운 고리로…… 이전보다 더 많은 개수의 고리로 분해되었다.
분해와 함께 출렁거리며 위아래로 부딪히고 나선의 궤도를 물려받고 뒤틀듯이 꿈틀거리는 고리는 모두 제멋대로인 듯하면서도 새로이 밀려드는 힘을 그대로 문장의 풍경 속으로 정밀(靜謐)하면서도 광폭(狂暴)하게 흩뿌리고 있었다.
그 힘은 한편으로는 너무 고요하고, 한편으로는 너무 사나운 오러.
고리가 그 여파를 ‘천칭’의 축, 저 아래에 시커멓게 맴도는 ‘심연’의 형체에 꽂힌 채로 문장의 풍경 중심을 차지한 끝이 보이지 않은 기둥 같은 축에 그대로 전하려 하니 고리 바로 아래에 놓인 원반이 먼저 뒤틀리기 시작했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원반의 뒤틀린 형상은 뭔가 올려놓으면 바로 미끄러뜨려 저 ‘심연’이 있는 아래로 내던질 듯이 위태로운 분위기를 잔뜩 띠었다. 이를 민감하게 받아들인 듯, 원반의 장식 같던 난간을 횃대 삼아 올라서 있던 황금매가 날아올랐다.
비행과 함께 황금매의 발목에 걸린 사슬이 길게 ‘천칭’의 축을 휘감은 정경(情景)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사슬이 축을 감은 채로 황금매의 비행에 따라서 움직이니, 정상에서 새로운 형태가 된 고리와 함께 축에 낯선 회전력을 전하는 듯했다.
결코 흔들리지 않을 듯했던 ‘천칭’의 축…… 중심이 되어 온 기둥이 뒤틀리며 나선의 파문을 머금으며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요동과 함께 투란이 강력한 사유(思惟)를 드라고니아에게 전한다.
‘마법, 내 안에서 너를 지키는 그 마법!’
‘그걸로 내 안에 담긴 다른 녀석을 가둘 수도 있다고 했었지?’
‘메듀시아, 녀석을 가두고 스테노아에게도 걸어야 해.’
‘반짝반짝, 마법 준비해줘.’
―알았다.
평소와 다르게, 드라고니아 또한 ‘천칭’이 심상 풍경 속임에도 마력파동을 이용해 답하고 있었다.
그렇게 투란은 문장의 심상 풍경에 거대한 격변을 심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