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6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65)
“후우, 하아아…….”
북벽 산맥을 바라보면서 투란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일부러 높인 숨소리가 조금 낯설게 투란의 귓가에 스며들었다.
높이 치솟은 알, 진흙이 불에 달궈지고 굳어진 커다란 바위알의 정상은 그런 투란이 앉아 있기 편한 모양으로 파여 있었다. 사대속성의 정령수 넷이 바쁘게 조형해놓은 결과물이었다.
―꽤 뒤틀어버렸구나?
드라고니아가 조용히 말했다.
문장 속의 풍경, 이전과 확연히 다른 점은 정상에서 바닥없는 심연에 이르는 ‘천칭’의 축에 나선의 파형(波形)을 새겨넣듯이 울퉁불퉁하게 꼬아버린 형태를 부여했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전체적인 풍경이 이전과 다르게 굉장히 역동적인 채로 쉼 없이 요동치는 듯한 분위기가 강렬하기까지 했다.
‘보기 나빠?’
투란이 갸웃하며 물었다.
―나쁠 거야 없지. 그런데…… 왜 내게 선명하게 이 풍경을 보여주는 거냐?
아주 진지하고 신중하게 묻는 드라고니아였다.
이전에는 그저 뿌옇게, 드라고니아가 자신을 감추는 것처럼 투란도 상당히 모호하게 이 풍경의 전모(全貌)를 감춰두고 있었다. 그야말로 아이처럼 네가 숨기니 나도 숨긴다는 태도로!
한데 지금은 섬세하게 홀랑 드러낸 채였다.
드라고니아에게 모두 인식(認識)되도록.
피식, 투란은 북벽 산맥을 향해 눈길을 보내며 웃었다.
‘너라면 미리 볼 수 있을테니까. 이번처럼 메듀시아가 보이드에 적응해서 보이드로 뱀을 만들어내는 경우를 말이야.’
―이미 해결된 일이잖아. 게다가 메듀시아 홀로 그런 것도 아니지. 스테노아와 함께, 둘의 능력이 유대(紐帶)해서 가능했던 일이다. 지금 꾸며놓은 풍경은 거기에 대한 대처까지 완전히 갖췄는데 굳이…….
‘몬스터 로드에게 완벽한 대비가 있을 리가 없다잖아. 상급, 아니 최상급이라고 해도 가끔 이성을 잃고 감성에 휩쓸릴 수 있어. 사람이니까. 항상 자신을 완벽하게 관리하지 못하니까, 그게 인간의 특성이라고도 하잖아? 정령수로 대비해놓기도 했지만, 이것도 네가 제안한 거였지. 그러니까 좀 더 맡겨본다고. 내 안에 있으면서 나에게서 툭 떨어져 따로 노는 것 같은 너에게.’
짝, 짜짝.
이야기를 맺으면서 투란은 자신의 볼을 두드렸다.
살짝 빨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세게 두두렸고, 그러는 사이에 북벽 산맥을 향한 눈길은 보다 또렷해졌다.
몬스터 엠블럼의 심상, 그 풍경에 대해서는 이제 매듭짓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다는 몸짓이었고 이는 드라고니아에게 화제를 돌리게 했다.
―그러면…… 유렐리아는?
‘잡으러 가야지. 아니, 찾으러 가는 건가?’
도감의 정보가 정확하다면, 유렐리아는 분명 특정 지역에서 벗어나지 못한 꼴일 터였다. 하지만 그 정보가 더 이상 쓸모없는 상황이 돼버렸다면 헛걸음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투란은 가야 한다고 결정한 셈이었다.
―어쩔 수 없기는 하군.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판단을 납득했다.
풍경 속에 격변을, 아무리 다시 되새겨도 대격변이라 할 수밖에 없는 격렬한 변화를 심어넣으면서 투란이 보여줬던 것 때문이었다.
메듀시아가 어떻게 보이드의 껍질을 변화시켜서 거대한 뱀, 하나도 아니고 여러 마리의 거대한 뱀을 형성시켜 ‘천칭’의 축을 휘감고 투란에게 영향을 끼쳤는가를 분명하게 확인했던 광경이었다.
그 상황을 모조리 뒤엎버리려고 투란이 선택한 방법은 그야말로 극단적이고 과격했다. 파괴적인 오러를 잔뜩 키워내고 그걸 모조리 문장 안에 쏟아붓는 것, 아무리 오러가 정신을 보호하는 것이 그 근본적인 성질이라 해도 오러 몽거를 이용해 키워 올린 거칠고 사나운 오러를 그리 이용한다는 것은 함부로 쓸 방법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투란은 메듀시아가 스테노아와 연계해서, 어찌 보면 마지못해 하는 스테노아의 힘을 차용(借用)하며 형성한 보이드 서펜트를 얕보지 않고 한 방에 밀어붙이기 위해 그 위험한 방법을 선택했다.
도시 가까이, 혹은 동료가 곁에 있거나 했다면 감히 시도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난폭하고 끔찍한 몬스터 로드의 광란.
‘어쩔 수 없지. 또 이런 짓 하기는 그렇잖아.’
기지개를 켜며 바위알 위에서 일어서는 채로 투란이 각오를 다지듯 말했다.
유렐리아, 세 자매의 마지막 하나를 문장 속에 품지 않는다면 메듀시아는 또다시 해방을 시도할 터였다. 스테노아와 연계까지 해서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그 능력, ‘메타모픽 서펜트’가 단순히 자신의 형상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확인했기에 투란은 고르고니아 세 자매를 문장 속에서 완성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다.
―확실히 셋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면 제어하기가 훨씬 쉽기는 하겠다만…… 지금 정도로도 충분하기는 하잖아? 다른 자라면 모르겠다만 지금 너라면 메듀시아의 난동을 분명히 억누를 수 있어.
처음 카엘을 언급할 때랑 다르게 드라고니아는 신중한 만류를 하는 듯했다.
투란은 슬쩍 쓴웃음을 지었고, 다시 자신에게 다짐하듯 이야기한다.
‘칭찬이냐? 뭐, 그렇기는 한데…… 둘이 품고 있는 보이드가 느껴지거든. 음, 말이 이상한가? 아무튼 스테노아 하나만 있을 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메듀시아랑 함께하면서 빈 부분이 채워지고 이제 하나 남았다는 그런 느낌이 있어. 뭐랄까, 세 자매가 함께하지 않으면 이 녀석들 마음에 보이드가 있다고나 할까? 보이드 엠블럼이 주는 끔찍한 느낌인데, 유렐리아로 그걸 완전히 채워놓으면 훨씬 쉽게, 더 강력하게 힘을 발휘하게 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 가야지.’
―마음속의 공허라…….
미묘한 기분이 섞인 말을 중얼거리면서 드라고니아는 침묵에 빠져들었다.
그럭저럭 대화가 끝난 듯한 분위기를 느끼고 투란은 다시 한번 더 몸 상태를 점검했다.
시원한 기분은 착각이 아니었다는 듯, 홀로 나돌아다닐 때 갖추는 버릇이라도 된 듯한 차림새를 바탕으로 온몸이 아주 매끈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듯했다. 그야말로 뭘 해도 될 듯한 그런 기분이었는데, 그 속에서 투란은 새로 변해버린 문장의 심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한 흔적을 느끼고 미소할 수밖에 없었다.
‘하피 여왕은 그렇다 쳐도…… 거미 임금님까지 이럴 줄은 몰랐는데.’
풍경의 변화 속에서 투란은 품고 있는 몬스터의 형상을 보다 분명하게 보기 위해서, 드라고니아가 조금이라도 더 확실하게 정신계열의 마법을 쓰게 하기 위해서 몬스터의 본능을 거의 풀어놨었다. 오직 한가지 제약, 그 형상을 투란의 몸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제약을 걸고 몬스터마다 멋대로 풍경 속에서 움직이도록 허용했다.
그 결과는 바로 몬스터들의 대이동, 투란이 적당히 지정해놓은 풍경 속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각자 다른 영역으로 옮겨가며 서로 특성을 발휘하며 어울리는 괴변(怪變)을 낳았다.
가장 먼저 맹렬하게 활동했던 몬스터는 하피 여왕.
재빠르게 무쇠뿔 오우거의 어깨 위에 걸터앉으며 새로운 옥좌를 차지했다는 듯한 자세를 잡더니, 바로 파이로몽거와 그랑츄를 비롯해서 원래 거느렸던 몬스터들과 잡다한 느낌의 패거리를 자기 휘하로 끌어들여 기묘한 세력을 꾸며버렸다. 그야말로 본래의 위엄, 여왕의 자태를 확보한 셈!
그보다 조금 느릿한 듯했지만 아라크녹스의 왕, 아라크레온의 형상을 빌려 출현했던 몬스터 거미의 왕은 기묘하게도 퀸 아라크레온과 무리를 떠나서 투란이 몬스터의 형상을 융합하는 자리로 삼는 알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속에서 ‘악마의 심장’이 ‘작은 돌’을 품으며 위편에 아르고누스를 얹고 있는 상황을 파악하더니 냉큼 등짝의 자리를 차지하듯 자리 잡아 버렸다. 그러더니 마그마 로드가 뒤늦게 알의 형태를 감싸는 것에도 슬그머니 간섭해서 꽤 복잡한 구조를 꾸며버렸다!
그 때문인가, 수많은 변화 중에 이 아라크녹스 왕이 저지른 짓은 투란이 몬스터의 형상을 억제한 상태에서도 꽤나 묘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이었다. 미묘하게 오러의 형세에 몬스터 거미의 특성이 배어나오는 듯했고, 등에는 아예 오러가 아라크레온의 문신이라도 그릴 듯이 퍼져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 문신의 한끝은 거미줄이 길게 이어진 것처럼 투란의 머리로 이어지면서 거미집, 그물을 엮어 머리 구석구석을 감싸면서 아예 두개골 안쪽까지 구획을 나눠 채워버린 듯한 분위기로 오러의 형세를 꾸미는 중이었다.
몬스터의 형상은 티끌만큼도 없는데, 오러를 이용해 그 존재를 드러내는 아라크녹스의 왕이라니…….
아무런 해가 없고, 다른 의도가 전혀 없다는 것이 투란을 살짝 불안하게 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거기에만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기타 등등의 온갖 변화 속에서 툭 튀어나온 이변(異變)도 있었으니까.
보랏빛 데빌 임프와 ‘악마의 날개’가 서로를 버리듯이 독립한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막상 벌어진 상태는 투란에게 조금 납득이 가는 면이 있었다.
‘악마의 심장’이 악마의 날개가 원래 붙어 있던 데빌 임프의 형상 속에 스며들어 그 구성을 파악하고 구조에 끼어들었던 것. 오러 몽거를 광란시키기 전에 한 짓이었는데, 그걸 계기로 몬스터의 정수가 아예 갈라져버린 모양이었다.
그렇게 해서 독립한 날개의 정수는 ‘악마의 날개’로서 본래 자리를 찾았다는 듯이 ‘악마의 심장’과 아주 잘 어울리는 중!
이런 일이 가능할 줄은 전혀 몰랐지만, 몬스터 로드가 품고 있던 정수를 쪼개서 다른 이에게 전해줄 수 있다는 일을 떠올리면 몬스터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그 가능성이 열려 있지 않았나 하고, 투란은 막연히 추측할 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새로 얻은 듯한 ‘악마의 날개’를 펼치며 북벽 산맥을 향해 날아오를 채비를 하는 중에도 투란은 신기해하며 이 새로운 날개를 관찰했다.
‘뭔가 자꾸 날개를 얻는 기분인데? 드레이크 만나기 전에는 날개가 없어서 아주 불편해서 잔뜩 불평했던 것 같은데…….’
다시 따져보면 드레이크의 날개보다 나은 것을 얻은 적도 없기는 했다.
조금 특이하고 이상한 경우는 있는 듯한데…….
드라고니아는 투란의 혼잣말에 픽 새는 웃음을 흘리는 낌새를 살짝 보였지만 아직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듯이 침묵했다.
화아악!
투란은 가볍게 바위알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에어로가 자연스럽게 투란의 날개에 힘을 더해줬고, 덕분에 상승 속도가 더욱 빨라지며 날기가 쉬워졌다.
이렇게 북벽 산맥을 향한 비행이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점차 높이를 올려가면서, 나아가면서 투란은 북벽 산맥과 이어진 황무지…… 춤추는 산맥의 북방 평원이라 불리는 곳을 흘려보내듯이 구경했다.
느긋해진 기분 탓인가, 투란에게는 곳곳에 보이는 짐승과 몬스터의 난투조차 그저 스쳐가는 풍경의 조각인 양 보였다.
난투의 주역인 고블린과 늑대, 한켠의 구경꾼인 척하면서도 어느 쪽의 시체든 나오면 뜯어먹겠다고 노려보는 들개 떼가 보이는 처절한 삶의 전장이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시체 뜯어먹는 사나운 새 떼에게는 곧 이어질 만찬장인 모양이었다.
휘이잉.
그리고 얼마 더 바람을 가르며 날다 보니 몇 미터짜리 대형 도마뱀이랑 몇 미터짜리 대형 구렁이가 서로 뒤엉켜 뒹굴면서 서로 잡아먹으려는 광경도 보였다. 둘의 사투에 휘말려 죽은 듯한 들짐승은 납작하게 터져버린 탓에 들개인가 들사슴인가 전혀 알 수가 없었고.
파아앙.
날갯짓과 함께 한층 더 멀리, 빠르게 북벽 산맥에 다가갔다고 느꼈는데 여전히 저 멀리 지평선은 담벼락이라고 주장하는 듯한 산맥의 위용이 멀리 보일 뿐이었다. 이쯤 되니 투란은 살짝 걱정돼서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 너무 느린 건가? 이대로 날면 설마 내일이나 모레는 돼야 산맥에 닿는 거 아냐?’
드라고니아가 새삼 어이없어하는 듯했지만, 그래도 대답은 차분하게 나온다.
―악마의 날개가 성능이 아무리 좋다 해도 드레이크랑 비교하면 안 돼. 이 속도라면 대강 모레 밤은 넘겨야 할 듯하다만…… 그것도 느린 거는 아냐.
‘히익!’
파앗, 파앙!
잠깐 맹하던 투란이 바로 질겁한 시늉을 하면서 날개를 확 접었다가 세차게 펼쳤다. 순식간에 ‘악마의 날개’와 겹쳐지는 듯한 금빛비늘이 가득한 날개가 바람을 머금고 바람을 뿜어내며 투란의 비행을 가속시켰다.
―이 속도라면 한두 시간 걸리겠군.
묘하게 ‘썩을!’이라는 말이 덧씌워진 듯한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다시 속도를 가늠하며 말하고 있었다.
콰아앙!
허공에 폭음을 날리며 투란의 속도는 한층 더 가속되고 있었다.
어느새 눈가와 몸 곳곳에 드레이크의 형상이 짙어지는 중이었다.
문장의 풍경 속에서 여전히 새로 지어진 정원을 내려다본다는 듯, 고르고니아 자매의 위편에 자리 잡은 아기 드레이크의 날개였지만 작아도 몇 미터에 해당하는 드레이크 새끼의 몸통보다 훨씬 작은 투란의 몸은 아무 부담 없다는 듯이 소리보다 빠르게 북벽 산맥으로 쏘아내는 듯했다.
―야, 몸에 부담 걸리잖아. 균형 좀 잡아.
드라고니아는 인간의 육체에 걸린 드레이크의 작은 날개, 그에 따른 불균형과 과격한 비행속도로 인해 일어나는 부담을 짚으며 잔소리했다. 웬만하면 그냥 넘기려 했으니,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되었다는 듯.
북벽 산맥은 투란이 몸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돌격 비행을 해오거나 말거나, 도도하고 웅장하게 구름을 허리춤에 걸어놓은 듯이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않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