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7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66)
Chapter 174. 북벽 산맥, 오르카
휘잇, 쿵.
날개가 사라지기 전의 마지막 움직임으로 쏘아낸 몸은 벌겋게 달아오른 살갗에서 모락모락 허연 아지랑이라도 뿜어내는 듯한 몰골인 채로 땅에 내리꽂혔다.
높디높은 북벽 산맥이 넓고 넓게 펼쳐진 채로 평원을 내려다보는 바로 앞이라 해도 좋을 곳이었다.
툭, 투툭.
투란은 처박힌 땅거죽 속에서 기어나오며 몸에 붙은 찰진 흙덩이를 털어냈다. 마른 땅에 처박았다고 생각했는데 1미터가량을 파고들고 보니 단단한 진흙이 끈적하게 맞이해준 덕분이었다. 때문에 달아올랐던 몸이 아주 빠르게 식으면서 살짝 춥다는 기분이 들 지경이었다.
‘이래저래 볼 것도 살필 것도 많구만.’
안팎으로 모든 것이 신기했기에 투란은 피식 웃고 말았다.
웃음과 함께 투란이 손등, 손바닥을 뒤집어가며 살피고 팔뚝을 둘러보는 사이에 식었어도 붉었던 살갗이 서서히 본래의 살색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 살갗을 저미며 흐르는 오러는 기묘하게 강해지고 있었다. 몬스터의 형상을 거둬들인 만큼, 오러가 강화되는 현상은 이제까지 투란이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너무 낯설어서 어쩌면 처음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모락모락 피어나는 현상.
게다가 붉은 그랑츄와 거기서 변이된 파이어몽거의 살갗을 이용하다 보니 느껴지는 풍경 속의 기괴한 상태…….
‘파이어몽거가 하피 여왕한테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었지?’
파이어몽거는 로드 오브 몬스터인 하피 여왕에게 들이대는 중이 아니라 무쇠뿔 오어거의 자리를 뺏겠다는 본능적인 의지가 강렬했다. 붉은 그랑츄는 확실히 로드 오브 몬스터의 휘하에 든 것 같은데, 파이어몽거는 그런 상태와 미묘하게 다른 것.
무쇠뿔 오우거도 딱히 로드 오브 몬스터를 따른다기보다는 별 관심이 없는 쪽이었다. 누가 자기 어깨에 자리를 잡든 말든 문장 속의 공허한 풍경 속에서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처럼!
반면에 하피 여왕은 로드 오브 몬스터의 특성과 본능을 잔뜩 발휘해서 그런 무쇠뿔 오우거와 파이어몽거를 중심으로 해서 조직을 꾸미려 하고 있었다. 붉은 그랑츄라든가 고블린 코만도라든가, 사티로스라든가…… 정수로부터 풍경에 드러난 몬스터 떼를 원래 다루던 휘하와 함께 옹기종기 모아서 그 영향력을 드리우느라 아주 바쁜 모습!
―자율성을 너무 부여하지 마라. 그러다 하피 여왕의 본성에 휘둘릴 수도 있잖아.
‘어? 뭐…… 메듀시아에게 휘둘렸다고 해도 그냥 옛날 기억이 잠시 헷갈린 정도잖아. 오래 당한 것도 아니고, 이제 비슷한 거에 당할 일도 없어! 그보다 메타모픽 서펜트의 특성은 어때? 역시 그런 거지?’
드라고니아가 마냥 호기심 가득한 투란의 태도를 짚었고, 투란은 슬쩍 말머리를 돌려 물었다. 풍경 속에서 별빛무리를 번뜩이며 한숨이라도 쉬는 시늉과 함께 드라고니아가 바로 대답한다.
―그래, 분명히 의식과 기억의 파편화 현상이 일어난다. 하지만 머리카락만이 변한 경우에는 아냐. 메듀시아가 그 몸 전체를 수많은 뱀으로 분화시킬 때 또렷해지는 현상이다. 덕분에 자신의 기억과 의식도 상당히 쪼개져 있었고…… 유실된 부분도 많아. 스테노아가 함께 하는 동안에는 그런 현상이 많이 억제되기는 한다만, 뇌수(腦髓)에 해당되는 신체조직의 변형이 있을 때는 반드시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절대로 머리를 여러 개의 뱀으로 쪼개는 짓 따위는 하면 안 돼.
‘문장 속에서 보이드로 뱀을 꾸몄을 뿐인데 내가 헷갈린 거잖아. 내가 뱀대가리를 마구 쪼갠 탓이 아니라고. 아무튼, 별의 정원 속에 넣어두니 이젠 된 거지? 뭐, 따로 대책도 세워놨고…… 그나저나 진짜 높구나?’
슬슬 잔소리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투란은 북벽 산맥을 올려다보며 정신을 집중하는 시늉을 했다. 한데 일단 고개를 쳐들고 눈앞에 활짝 펼쳐진 절벽을 바라보니, 이건 백여 미터의 체격을 지닌 거인이 달라붙어도 보통 사람처럼 보일 정도잖은가.
높디높은 정상을 올려다보려 하면 그 중간에 걸린 구름이 먼저 보였고, 좌우로 끝을 가늠하려고 해보면 그냥 저편 어딘가에서 하늘과 맞닿은 것처럼 보일 지경!
게다가 절벽은 깊기도 했다.
춤추는 산맥의 지형을 찍어누르기라도 하듯, 북벽 산맥에 닿은 지형이 깊은 골짜기를 이루면서 짓눌려 기울어지다가 지저(地底)로 파여 들어간 듯한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저 절벽부터는 지형이 변화하지 않아. 그래서 이 모양인 거다.
드라고니아는 설명을 포기한 듯, 아주 간단히 말하고 있었다.
투란은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대강 납득하고 있었다.
북벽 산맥에 대해 도감에서 넘겨보다가 얼핏 본 부분 역시 똑같이 말하고 있었으니까. 북벽 산맥의 지반(地盤)은 춤추는 산맥과 단절된 채이고 그 덕분에 원래는 거대한 산악지형으로 이어져 있어야 할 지형이 한쪽은 변화하며 평원 형태로, 한쪽은 그대로 있는 탓에 이 모양이 된 것이라고.
‘그래도 골짜기는 가끔 바닥이 보이네.’
절벽의 정상이 가물거리는 것과 다르게, 골짜기는 어느 곳은 바닥이 툭 불거지듯 드러나 있었고 어느 곳은 시커먼 그림자에 파묻힌 것처럼 보였다. 깊은 곳과 얕은 곳, 때로는 계단처럼 굴곡을 갖췄지만 때로는 그저 흙이 쏟아져 내려가는 비탈로만 보이는 형태가 산맥의 벽 앞에 으스러져 가는 풍경이라도 된 듯 보였다.
그리고 그런 지형을 장식하는 덤불, 바위, 움직이는 녀석들…….
투란은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갸웃하면서 웅얼거린다.
“자아, 그러면 저걸 어떻게 올라간다?”
길찾기를 단순하게 하려고 일단 북벽 산맥에 온다, 그다음에 올라가서 한쪽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선택을 했다. 그러니 이제 올라가면 되는데, 막상 올려다보니 날아오르는 것도 절벽타기를 하는 것도 굉장한 일거리였다. 그냥 하려 들면 뭔가 무척이나 심심해서 저절로 입에서 투덜거림이 튀어나올 지경!
―멍청한 생각은 한가할 때 하고, 떨어지는 녀석이랑 어떻게 해볼 것인가부터 생각해라.
‘뭐? 떨어져? 하피가? 사티로스가? 둥지 튼 독수리라도?’
투란은 드라고니아가 말하는 것이 뭔가 눈을 가늘게 하며 열심히 올려다봤다.
높은 절벽의 곳곳에서 생긴 모양대로 껑충거리는 사티로스들은 잘못 보면 산양 떼처럼 착각하기 쉬웠고, 하피는 독수리나 사이렌과 헷갈리기 쉬운 그림자를 품은 채로 날고 있었다. 하지만 드라고니아가 경고하는 것처럼 투란이 있는 근처로 떨어질 시늉을 하는 녀석은 없었다.
‘대체 뭐가 떨……? 그랑츄?’
의아해하는 사이, 구름을 꿰뚫으면서 추락하는 것을 보며 투란은 눈을 깜박였다.
어딜 봐도 이 절벽 곳곳에서 그 자태를 드러내는 녀석들이랑은 다른 형체, 가장 닮은 것을 꼽아보면 바로 그랑츄인 듯한 뭔가가 추락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그 형체를 살펴보면 그랑츄도 아니었다.
―오르카, 정확하게는 오르카 켈카르라고 하는 종족이다. 나름 지성도 갖췄고, 부족단위로 사회를 구성하고 사는…….
‘몬스터 아냐?’
―아냐!
‘날개도 없으면서 왜 위에서 떨어지는 거래? 아, 몸이 튼튼해서 떨어져도 괜찮은 경우인가?’
―등 떠밀려서 떨어지고 있는 거다! 내버려 두면 죽어!
‘헐? 구해야 하는 거야?’
―어? 아니, 뭐…… 괜한 일에 끼어드는 것일 수도 있기는 한데…….
‘구하자고 말라고?’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지느라 시간이 걸린다 해도, 앞으로 잠깐 사이에 절벽 아래로, 골짜기 틈새로 처박힐 상황이었다. 그런데 말 꺼낸 드라고니아가 머뭇거리는 소리를 하다니!
슬그머니 어떤 형태로 저 괴상한 존재, ‘오르카 켈카르’라는 그랑츄랑 닮았지만 결코 그랑츄가 아닌 녀석을 받아낼까 궁리하며 투란은 한번 더 구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했다.
구해서 대체 무슨 괜한 일에 낑겨버리는 것인가 궁금하기도 했고, 인간과 다른 종족이라니 죽은 다음에 시체를 구경하는 편이 더 쉽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얼핏 들기도 하는 미묘한 상황인 셈!
―구할 거면, 여러가지 몬스터를 섞지 말고 오직 하나만 써라. 추천은…… 드라고라면 이 절벽에서 자유롭겠군. 카프리곤은 저 녀석들이랑 분란이 잦은 사티로스랑 닮았으니 권하지 않겠어.
‘뭐래…….’
이랬다저랬다 하는 드라고니아에게 먼저 툴툴거려 보는 투란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투란의 두 다리와 두 팔은 드라고의 사파이어 광채가 가득한 비늘로 덮이면서 굵어지고 길어지며 그 형상을 바꾸고 있었다. 등뼈를 따라 새파란 광채가 머금어지는 듯한 순간, 투란은 그 자리에 둔하게 울리는 발구름 소리를 남긴 채로 절벽에 쏘아지듯 뛰었다.
절벽에 닿은 드라고의 두 발은 평지처럼 투란이 딛고 서게 해줬고, 강력한 탄성을 자랑하는 다리의 힘은 투란이 절벽을 질주하게 해줬다. 그렇게 절벽을 타고 내달리기 시작한 투란은 떨어져 내리는 ‘오르카 켈카르’를 향해 다가갔고…….
―여러 말 할 것 없이 손만 내밀어줘라. 잡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말이야.
드라고니아가 정말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하는 말을 들었다.
‘대체 뭐가 문제냐고!’
새삼 어이없어하면서도 투란은 그 말에 따랐다.
절벽을 밟으며 아래를 향해…… 떨어지는 녀석 곁에 붙으려니 추락하는 놈 곁에서 함께 바닥을 향해 돌격해가는 괴상한 꼴이 되었다는 상황에 한탄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으로 투란은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손톱이 우악스럽게 새파란 보석의 광채를 머금은 비늘로 덮인 손이란 것을 내밀고 나서 자각한 투란이 손 형태를 조금 부드럽게 바꿔볼까 하는 사이, 덥석 손목이 잡혔다.
‘오르카 켈카르’가 이를 악물고…… 입술 꼬리 양쪽으로 송곳니가 위아래에서 착실하게 두 쌍씩 돋아난 탓에 그랑츄보다 더 험악해보이는 표정인 채로 적갈색의 피부 탓에 한층 더 몬스터스럽다고 느껴지는 몰골로 인간과는 전혀 다른 악력(握力)을 실어 잡아 온 느낌이 투란에게 매우 괴상하고 어색했다.
‘와, 신기해!’
어쨌든 땅에 들이박을 수는 없는 상황, 투란은 몸을 돌리며 ‘오르카 켈카르’를 잡은 팔을 원을 그리듯 휘두르며 방향을 바꿨다. 발톱이 절벽을 할퀴었고, 잠깐의 키익거리는 사나운 소리 끝에 투란의 두 다리는 다시 절벽을 밟고 위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잠깐, 절벽 맞은편과 간격이 좁아진 틈새에 도달했을 때 드라고의 두 발이 절벽을 박찼고 ‘오르카 켈카르’를 한 팔에 매단 투란을 튕겨줬다.
털썩.
우아악!
자리를 잘 골랐기에 나름대로 계단 한구석인 듯한 곳에 내려섰는데, 내려서자마자 투란의 팔을 놓은 ‘오르카 켈카르’가 헛구역질을 하면서 거세게 토악질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왜 이래?’
―흠…… 예민한 감각을 지녔을 테니, 나랑 대화는 자제해라.
슬쩍 대화를 회피하는 드라고니아의 태도가 왠지 투란에게 한층 더 이 상황에 대해 발끈하게 몰아세우는 듯했다.
하지만 거기에 투란이 반응하기 전, ‘오르카 켈카르’가 그 험악한 송곳니가 돋보이는 얼굴을 들어 말하고 있었다. 지성을 간직했다는 말 그대로, 정말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쿤토르가 은혜를 입었다. 쿤토르는 반드시 은혜를 갚을 것이다, 인간.”
“쿤토르?”
“오르카의 전사, 쿤토르. 인간, 네가 몬스터 모그와로 구해준 자이다.”
“오르카?”
맹하니 투란은 되뇌었다.
속으로는 ‘켈카르’는 어디 갔냐고 따지는 듯한 기분을 가득 머금고!
하지만 그 와중에 투란은 한층 더 의아한 한마디에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몬스터…… 모그와?’
드라고니아는 묘하게 침묵했다.
그 사이에 이리저리 묘하게 말을 돌리며 자기 소개를 한 오르카의 전사 쿤토르가 다시 말을 하니…….
“오르카 켈카르, 대주술사가 말하길 이 세상의 다른 종족은 부족을 그리 부른다 했다. 인간, 그 이름에는 익숙한 모양이다? 쿤토르는 부족의 전사, 전사의 모그와를 완성하기 위해 시련의 숲에 들어섰다. 그리고 배신당했다! 으드득! 인간, 그대의 모그와로 구해져서 감사한다!”
뭔가 어리둥절해하는 투란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설명을 하는 말투였다.
하지만 투란이 제대로 이해한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어, 그러니까…… 몬스터 로드를 몬스터 모그와라고 하는 건가?”
어디서부터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기에 투란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묻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이 애매한 태도는 쿤토르에게도 영향을 끼친 모양이었다.
굵직한 눈을 두어 번 깜박이다가 쿤토르가 투란의 팔다리를 손가락질하며…… 굵은 손가락이 제대로 다섯 개 붙은 손이었고, 굉장히 컸지만 그랑츄의 특이한 손가락 모양은 아니었다. 다만 너무 커서 인간의 입장에서는 새끼손가락도 참 굵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하는 손인데, 그런 손으로 손가락질하며 쿤토르가 말한다.
“인간, 몬스터 로드는 그대의 부족이고, 그 모습이 모그와이잖은가?”
“모그와가 뭐야?”
순수하게 자신의 무지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투란은 이리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몬스터 로드에 대해 뭔가 착각하는 듯한데, 몬스터의 형상을 놓고 모그와라 하는 것이라면 전사의 모그와를 어쩌구 했던 말은 대체 뭔가?
쿤토르는 고개를 갸웃하며 ‘왜 모르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투란은 그런 쿤토로의 목덜미, 뺨으로 핏줄이 기괴하게 곤두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쿤토르의 태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기괴한 현상이 분명했다.
‘저건 또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