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7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67)
“쿤토르의 얼굴이 이상한가?”
투란의 눈길이 닿자마자 쿤토르가 자신의 뺨과 목덜미를 더듬으며 말했다.
그리고 바로 쿤토르의 표정이 돌변했다.
송곳니를 넘어 나오는 목소리도 험악해지고 있었는데…….
“배신자들! 쿤토르에게 혼돈의 독을 씌우려 한 부정한 것들!”
투란은 굉장한 말투와 쩌렁쩌렁 울리는 그 음량(音量)이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님을 알았지만, 튕겨나오는 침과 코앞에서 터지는 외침에 휩쓸린 것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얼굴을 손으로, 드라고의 손인 채로는 인간의 얼굴가죽이 벗겨질까 봐 형상을 해제한 채로 털고 씻어내는 시늉을 하면서 투란이 묻는다.
“중독된 거야?”
“이 땅에서 중독되지 않을 수가 없지 않나!”
쿤토르의 대답은 격렬했다.
투란에게는 제대로 된 대답이 전혀 아니었다.
“이 땅?”
“그렇다, 이 땅! 이 저주받은 혼돈의 대지에서 오르카 부족은…… 인간, 너희는 괜찮다. 안심해라. 너희는 옛 왕의 가호로 독의 위협에서 벗어난 부족이잖은가. 하지만 쿤토르는 아니다! 이 배신자들!”
화내려 하다가 투란이 눈을 깜박이며 맹한 모습을 본 쿤토르는 돌연 투란을 안심시키겠다는 듯이 말하다가 자신의 처지에 대해 말하려다가 다시 격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격노에 따라서 곤두섰던 쿤토르의 핏줄이 짙은 보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문득 데빌 임프의 보랏빛 살갗을 떠올리면서도 투란은 뒷머리를 세차게 긁적이는 시늉을 하며, 드라고의 형상을 몸에서 깨끗하게 걷어내면서 쿤토르에게 다시 묻는 말을 꺼낸다.
“저기, 무슨 말인가 전혀 모르겠거든?”
“배신자들, 쿤토르를 떠밀었다! 저 위에서! 인간, 네가 몬스터 모그와로 구해주지 않았다면 쿤토르는 대지의 뼈와 살이 되었을 것이다! 고맙다!”
“어, 그래 그러니까 왜 갑자기 중독된 거라고?”
“음? 이 혼돈의 대지에 선 자는 원래 중독된다. 인간은 옛 왕이 가호로 중독되지 않는다. 으흠, 쿤토르를 구한 인간은 어려서 모르는가? 인간 주술사에게 제대로 배우지 못했는가? 아, 혹시…… 쿤토르를 구한 인간, 그대는 배움을 거부당한 채로 쫓겨난 것인가? 설마 몬스터 모그와를 다루지 못해서……?”
떠들면서 어딘가 기묘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넘기는가 싶은 쿤토르가 슬슬 자신을 의심하는 눈빛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느낀 투란이 발끈했다.
“미쳐 날뛰는 몬스터 로드가 널 구했겠냐! 일이 있어서 온 거야! 그보다…… 그러니까 너는, 쿤토르는 여기 있는 것만으로 몸에 독이 흐른다는 거냐?”
“당연하다! 이 저주받은 혼돈이 뒤트는 대지는 축복의 부족, 오르카의 쿤토르에게 독이다! 배신자들! 쿤토르는 배신자들을 벌할 것이다!”
다짐을 하듯 쿤토르가 두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짚으며 입술 속에 감춰진 이를 빠득빠득 갈아댔다.
그 사이에 투란은 이 어긋난 대화를 되짚으며 ‘오르카 켈카르’란 종족의 특성을 엿보기 위해 쿤토르의 모습을 재빠르게 훑어봤다.
키는 대강 2미터 10이나 20센티미터 안팎, 굵은 손목과 팔뚝, 허벅지나 발목의 굵은 꼴은 그랑츄와 상당히 닮았지만 치렁치렁 뼈와 돌로 장식한 가죽바지를 입은 모습과 적갈색의 피부 위에 녹색으로 그려진 채로 꿀렁거리는 핏줄과 힘줄을 그대로 드러내는 문신은 이 녀석이 몬스터일 리가 없다고 단언하고 있는 듯했다. 뿌리가닥부터 꼬아서 수십 줄기의 밧줄 모양을 만든 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좀 수상한 모양이었지만!
‘바지만 입었네?’
문득 쿤토르의 차림새가 자신과 닮았다는 것을 투란이 알아차렸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에게 배신당해 절벽에서 밀려 떨어졌다는 이야기 또한 투란 자신과 왠지 비슷한 구석이 있잖은가.
“얼마나 버틸 수 있어? 절벽에 올라가면, 이 땅에서 벗어나면 괜찮아지는 거야?”
충동적으로 투란이 묻는 말이었다.
쿤토르는 배신자를 향한 분노의 외침을 멈추고 투란을 바라봤다.
왜 묻느냐고 갸웃하는 것과는 다른 신중한 눈빛으로, 살갗과 똑같은 적갈색의 눈동자로 투란을 똑바로 보는 채로 쿤토르가 대답한다.
“일곱 낮, 일곱 밤. 오르카의 부족이 이 혼돈의 독에 버틸 수 있는 가장 긴 시간이라 했다. 약한 자라면 그보다 더 빠르게 독에 물들어서…… 몬스터가 돼버릴 것이다.”
“그래, 몬스…… 뭐?”
투란은 흠칫했다.
독에 물들었다기에 당연히 죽는가 했는데, 몬스터라니?
쿤토르의 입술이 송곳니를 머금은 그대로 미묘한 웃음처럼 뒤틀렸다.
“몰랐는가? 분명 배우지 못했다면 모를 수밖에 없는 일. 오르카 부족은 숲과 강, 산의 가호를 받는다. 하지만 이 저주받은 혼돈의 대지에서는 어떤 숲도, 강도, 산도…… 어버이여야 할 대지의 어느 한 조각도 오르카 부족을 가호하지 않는다. 대신 저주한다. 저주해서 오르카의 마음을 파괴하고, 오르카의 몸에 괴물을 심는다. 오르카 부족은…… 몬스터가 된다. 그렇게 되기까지, 일곱 낮과 일곱 밤, 오르카의 마음이 꺾이고 몸에서 괴물이 자랄 때까지 걸릴 수 있는 가장 긴 시간이다.”
조금 친절하게, 배우지 못한 투란을 배려하듯이 길게 나온 설명이었다.
자꾸 배우지 못했다고 짚는 말과 그 태도에 살짝 욱하는 기분일 수밖에 없지만, 투란은 이야기의 요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진짜야?’
손끝으로 이마를 짚으며 눈을 살짝 감고 쿤토르의 말을 되새기는 시늉을 하면서, 그래도 설마 하며 투란이 드라고니아에게 소리 없이 물었다.
―진실이다.
다른 말 없이 드라고니아가 대답했다.
말문 열면 당연히 저 ‘모그와’가 뭐 하는 소리인가 설명도 해주겠거니 했던 투란에게는 매정하다고 으르렁거릴 정도로 짧았다!
하지만 그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을 틈도 없이 투란은 봤다.
웃옷 대신에 몸에 그려놓은 듯한 쿤토르의 문신, 그 녹색으로 물든 살갗 곳곳이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듯이 꾸물거리고 있잖은가.
“그거…… 괜찮은 거야?”
쿤토르가 투란의 눈길을 따라 자신의 팔뚝, 어깨를 둘러봤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괜찮다, 아직은. 쿤토르의 모그와가 버티려 하는 것이다. 전사의 모그와는 쉽게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쿤토르는…… 여덟 낮과 여덟 밤을 버텨낼 것이다!”
말끝이 팍 치솟으면서 강렬한 도전과 투쟁에 대한 의욕이 가득한 외침이 되고 있었다.
“어, 그래.”
과거의 일곱 밤낮의 기록을 깨고 싶다는데 뭐라 할 수 없어서 일단 이렇게 추임새를 넣고 만 투란이었다. 하지만 바로 투란은 고개를 젓고 절벽을 가리키며 으르렁거리듯이 쿤토르를 향해 묻는다.
“그보다! 그냥 올라가는 거는 어때? 여기 남아서 여덟 밤낮을 버티지 말고, 그냥 내려온 곳으로 가는 거 말이야. 쿤토르, 빨리 올라가면 그 배신자들의 뒤를 쫓을 수도 있잖아?”
“전사의 시련을 마쳐야 한다.”
잠깐 혹한 표정을 짓던 쿤토르가 조금 힘든 낌새를 담아 말하고 있었다.
배신자들을 단죄(斷罪)하는 것보다 전사의 시련이 중요하다는 의지가 투란에게 꽤 인상적이었다. 그래도 투란은 부추기듯이 말을 더한다.
“그 시련을 여기서 마치려고? 위에서 하려던 거 아니었어? 어쨌든 절벽 위로, 떨어져 내린 곳으로 가서 끝내고 바로 배신자들을 쫓을 수도 있잖아? 아니야?”
“인간, 그 말이 옳다. 하지만, 인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쿤토르가 이 절벽을 무사히 오를 방법이 없다. 떨어지면서 봤다. 산양의 마물, 노래하는 마물, 벌레둥지인 새, 벽을 타는 지렁이, 돌 틈새의 독벌레…… 며칠이 걸려 올라갈 수는 있지만, 절벽에 사는 괴물들, 짐승들과 싸울 수가 없다. 시련을 마치지 못해 모그와의 힘을 쓰지 못하는 쿤토르에게는 대항할 수단이 없다!”
좌절, 절망이 가득한 대답은 길었다.
투란에게는 그 의미가 끝까지 와닿지는 않았다.
떨어지는 동안에 참 많이 보고 확인했다고 감탄하기에는 넉넉했다.
대체 뭘 설명하는 말인가는 많이 애매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 절망의 절반 정도는 납득할 수 있었고, 투란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쿤토르, 데려다줄게.”
그래서 나름 따스하게 말해줬다.
“인간?”
굉장히 의아하고 의심스러운 눈초리와 짧은 말투 속에 가득 담긴 것은 ‘네가 어떻게?’라는 소리 없는 되물음!
투란으로서는 ‘도와준다는데 무슨 태도냐!’라고 울컥해서 버럭 소리치고 싶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발끈하는 대신, 투란은 팔다리를 다시 드라고의 형상으로…… 이번에는 어깨와 목덜미, 배를 휘감는 사파이어 티란트의 시퍼런 광채를 머금은 비늘을 드러내면서 차분하고 담담하게 말할 뿐이었다.
“잡고 놓지만 않으면 돼. 그러면 이까짓 절벽, 끝까지 데려가 준다.”
말과 함께 조용히 투란이 내미는 손에서는 푸르스름하고 날카로운 손톱이 번뜩이고 있었다.
쿤토르는 투란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고, 이미 드러나 있는 송곳니와 함께 입술 안에 감춰져 있던 가지런한 이를 모조리 드러내며 웃었다.
“인간, 쿤토르의 손은 힘이 세다!”
“그럼, 잡아!”
새파란 광채가 북벽 산맥의 한 곳, 8천 미터라는 절벽을 질주(疾走)하며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날아가는 것들과는 전혀 다른, 절벽이지만 짓밟고 할퀴며 올라가는 질주였다.
그 광채의 한편에는 덜렁덜렁하는 듯한 커다란 체구가 달려 있기도 했다.
절벽 높은 곳에서, 그 틈새에서 살아가던 녀석들에게는 매우 낯설고 신기한 상황이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절벽을 거슬러 뛰어 올라다니며 살아가는 사티로스들이 관심을 가졌고, 그런 사티로스를 노리거나 절벽에 붙은 작은 벌레와 짐승을 사냥하며 날갯짓하는 하피들도 엿봤다.
그저 관심을 두거나 보기만 하지 않고 조금 더 접근하는 경우도 있었다.
곧바로 절벽을 수직으로 내달리는 것을 향해 다가가며, 그 궤도 앞에 선 채로 저것이 대체 뭐냐고 따져보려는 짓을 해보려는 경우도 있었다.
그 간격이 너무 좁아 격돌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하피는 새파란 광채가 휘두르는 둔중한 것이 하는 발길질에 날려 갔고, 사피로스는 그 둔중한 것의 엉덩이에 뺨을 맞고 튕겨나가기도 했다.
그 사이에 우렁찬 투란의 목소리가 절벽을 타고 메아리친다.
“싸울 만해?”
쿤토르의 굵고 사나운 대답도 바로 메아리를 울려낸다.
“언제라도 싸울 수 있다! 쿤토르는 전사의 시련을 끝낼 것이다!”
“좋아, 걷어차 봐.”
부추기면서 투란은 다시 쿤토르를 휘둘렀다.
무리 중 하나가 차여 날아갔던 하피 몇 마리가 발톱을 세우고 달려들다가 쿤토르의 발길질에, 엉덩이에 두들겨 맞고 튕겨나갔다.
이 광경을 향해 절벽을 껑충거리던 사티로스 몇 마리는 돌을 던졌다.
드라고의 발처럼 자유롭게 절벽을 밟지는 못하는 모습이었지만, 사티로스는 산양의 뒷다리만으로 충분히 절벽의 틈새를 밟으며 꽤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투란은 그 꼴을 보며 웃었고, 방향을 틀어 내달렸다.
“잘도 찾아 던지는구나!”
사티로스가 던지는 돌은 절벽의 약한 부분을 뜯어냈거나, 그 틈새에 살짝 얹힌 돌이었다. 다가서는 것이 무서워졌으면 구경이나 하거나 도망칠 줄 알았는데 절벽이란 상황을 이용해서 떨궈보겠다고 찾아서 줍고 던지는 꼴이라니…….
그냥 두고 가기보다는 그런 사티로스를 향해 내달리며 쿤토르를 휘둘러대는 투란이었다.
타격에 이어 사티로스의 비명이 터졌고, 절벽 아래를 향해 길게 추락해갔다.
그런 사티로스의 모습을 흘깃하고 투란이 다시 절벽을 할퀴며 올라가니…….
“인간! 벌레둥지 새는 조심해라! 벌레가 몸에 붙으면 돌과 쇠를 녹일 침을 흘린다!”
쿤토르가 나아가는 방향을 보며 외치고 있었다.
“그래에에?”
투란은 도대체 그게 뭐냐고, 오히려 보고 싶다는 흥이 돋은 기분을 담아 대꾸하고 있었다. 이는 드라고니아의 침묵을 마침내 깨뜨렸으니…….
―웜버드 얘기잖아! 부딪히지 말라고! 넌 멀쩡해도 쿤토르는 죽는다!
‘에? 쳇.’
툴툴거리면서도 투란은 듣지 않을 수가 없는 이야기였다.
그 와중에 올라가는 쪽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미는 몬스터, 쿤토르가 왜 벌레둥지 새라고 했는가를 고스란히 알 수 있는 괴조(怪鳥)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형태를 확인하면서 투란은 달리는 방향을 재빨리 바꿨다.
깃털과 가죽으로 된 새가 아니라, 온갖 구더기 굼벵이가 엮여 새의 모양을 하고 있는 괴물은 그런 투란을 향해 눈덩이를 꿈틀거리기는 했지만 새파란 광채가 가득한 팔다리를 확인하고는 바로 고개를 돌려 딴 곳을 보고 있었다.
‘군체형?’
문득 투란은 벌레둥지라 불리는 다른 몬스터의 경우를 떠올리면서, 웜버드가 어떤 종류의 몬스터인가를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쿤토르는 경고의 외침을 터뜨리느라 바빴다.
“인간! 튀어나온 돌이다, 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