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7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68)
우여곡절이 제법 피어난 질주 끝에 투란은 정상에 도달했다.
구름을 넘어서, 튀어나온 돌과 절벽에 서식하는 괴상한 녀석들의 틈새를 뚫고 쿤토르를 한 팔에 매단 채로 투란은 절벽 정상에 발을 딛고 서서 외칠 수 있었다.
“뭐야, 이 우거지고 빡빡한 숲은?”
곁에서 투란의 새파란 손에서 겨우 손을 놓고 쓰러지는 쿤토르가 대꾸하듯 말한다.
“위, 위대한…… 어머니 숲이다…… 쿨럭.”
매달려 왔다는 처지이기는 했지만, 곱게 갓난아기처럼 받들려 온 것과는 정반대로 험악하고 사납게, 휘둘려지는 무기 대우를 받았다는 증언이라도 하듯이 쿤토르는 거센 숨을 몰아 내쉬다가 기침까지 하며 그대로 바닥에 드러눕고 있었다.
“어머니……?”
뭔 숲을 놓고 엄마를 찾는가, 투란에게는 전혀 제대로 된 설명이 아니었다.
때문에 투란은 한층 더 이상한 기분을 느끼면서 절벽 정상에서 수십 미터 간격을 두고 울창하게 펼쳐져 나가는 거대한 삼림(森林)의 풍경을 다시 둘러봐야 했다. 절벽 아래에서는 절대로 보일 리가 없는 이 대단한 광경은 어딘가 소문으로만 듣던 대수해(大樹海)가 이리 생겼을까 하는 생각을 저절로 들게 했다.
―거기 못지않을 거다. 이대로 북해(北海)에 닿는 대삼림이니까.
드라고니아가 감회가 가득 담긴 말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딱히 투란에게 해주는 말이라기보다는 다시 볼 수 없던 곳을 다시 보게 되어 이리저리 엉킨 기분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한 중얼거림이었다. 투란은 새로운 의문을 떠올리게 하는 한마디까지 담은!
‘북해는 또 뭐냐?’
―나중에.
드라고니아는 대답을 미뤘다.
투란은 바닥에서 훅훅거리는 쿤토르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무래도 소리 없이 하는 이야기조차 쿤토르가 들을까 봐 굉장히 조심하는 모양인데, 어째서 드라고니아가 이러는가를 알 리가 없는 투란이었다. 그저 뻣뻣한 느낌이 드는 드라고의 형상을 해제하면서 투란은 쿤토르에게 묻는 말을 꺼낼 뿐이었다.
“여기서 떨어졌었나?”
“이 근처였다. 배신자들의 냄새가 없다, 이곳에는.”
누운 채로 숨을 고르면서도 쿤토르는 고개를 돌려 몇 번 킁킁거리더니 대답했다.
투란에게는 쿤토르, ‘오르카 켈카르’가 후각(嗅覺)이 얼마나 대단한가 생각해보게 하는 광경이었다. 저리 잠깐 냄새를 맡고 바로 알 수 있는가? 아니면 그저 이 자리가 아니라서 간단히 말할 수 있었을 뿐인가?
‘냄새가 짙어서?’
혹시나 해서 투란은 쿤토르의 주변에서 어떤 짙은 냄새라도 나는가 하고 집중해봤지만, 특별한 냄새는 없었다. 그저 미묘하게 인간과는 다른 냄새라고만 느껴질 뿐이었다. 그나마도 숲과 짐승 틈바구니를 뒹굴다 보면 인간과의 미묘한 차이조차 금방 없어질 정도인…….
“후욱, 쿤토르는 배신자보다 먼저 모그와를 찾아야 한다. 시련을 치러 내야 전사의 모그와가 쿤토르의 진정한 힘이 될 것이다. 인간, 쿤토르의 목숨을 구해진 은혜, 여기에 데려와 준 은혜에 대해 어떻게 보답해야 하는가?”
어느 정도 숨을 고른다 싶었더니 쿤토르가 바로 고개를 삐딱하게 일으키면서 묻고 있었다. 아직 팔다리는 부르르 떨고 있는 채로 투란을 향해 묻는 모습은 별로 여유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뭔가 빠르게 셈을 하고 자신이 할 일을 하겠다는 자세만큼은 어딘가 고고한 분위기를 살짝 띤 것처럼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투란은 그 말속에 섞인 한마디 때문에 쿤토르가 비장하게 하는 그 말에 제대로 귀를 기울일 수가 없었다!
‘또 모그와!’
이쯤 되면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알면서 닥치고 있는 드라고니아에게 짜증을 흘려보내면서 투란은 방긋 웃는 시늉을 하며 쿤토르를 향해 또박또박 묻는 말을 꺼낸다.
“쿤토르, 인간이 몹시 당황스럽다! 모그와가 뭐지? 원래 갖고 있던 것 아닌가? 그 몸에 녹색 무늬 속에서 모그와가 지켜준다며? 지금 얌전해진 까닭은 모그와가 어디론가 숨어서 그런가? 쿤토르는 숨어버린 모그와를 찾아야 하나? 찾아서 시련을 치러 내야 한다는 말인가? 인간, 도대체 쿤토르가 뭘 모그와라 하는지 모르겠다!”
―인간, 잘도 따라 하는구나!
쿤토르의 말투를 고스란히 따라 하는 투란을 어처구니가 없어 참을 수 없다는 듯,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쿤토르 또한 이를 느낀 것인가, 살짝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갸웃하면서 투란에게 되묻고 있었다.
“인간, 모그와를 지녔다. 왜 쿤토르에게 모그와에 대해서 묻지? 그 힘으로 쿤토르를 여기에 데려왔다. 이미 힘을 지녔는데 왜 모그와에 대해 묻는가?”
투란은 ‘모그와’가 아까와 다른 새로운 뜻으로 쓰인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분명히 몬스터 엠블럼을 놓고 모그와라 했다.
하지만 동시에 쿤토르는 몬스터의 형상도 모그와라고 하고 있다!
그러니까 투란이 잘 알 것이라고, 그 힘을 지녔으면 궁금할 리가 없다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사의 모그와는 오러 윌더의 오러 사인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인가?
―야, 저놈들 그냥 전승되어 온 고대주술(古代呪術)을 몽땅 뭉뚱그려서 모그와라고 불러. 자신들이 모그와를 지녔으니까, 그로부터 신비(神祕)를 탐색하고 힘을 끌어내니까 인간도 인간 나름대로의 모그와를 지녔을 거라고 말하는 것뿐이야. 거기 관심 두지 말라.
드라고니아는 빙빙 맴돌려는 투란의 생각, 또다시 튀어나가려는 엉뚱한 말투의 질문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듯이 벼락 치듯 단숨에 말을 전했다.
물론 투란으로서는 ‘그건 또 무슨 소리냐고!’라는 반발하며 쿤토르를 향한 질문을 이을 수밖에 없었다.
“너의 모그와는 대체 뭐지? 시련은 어떻게 치러 내야 하는 거야? 그거…… 나도 시련을 치러 내면 모그와를, 쿤토르의 모그와랑 같은 모그와를 얻을 수 있나?”
떠들다 보니 너도 나도 공평하게 ‘모그와’를 남발하는 기분이 꽤 괴이해서 이러고도 말이 통하려는가 투란은 스스로 먼저 의심부터 해보는 중이었다. 한데…….
“인간, 오르카의 모그와를 원하는가? 음, 어렵지만 가능하다. 대주술사 카엘 또한 오르카 켈카르의 시련을 넘어서…….”
“누구? 대주술사, 누구라고?”
투란이 말을 잘랐기에 쿤토르가 조금 낯을 구기기는 했지만, 투란의 낯짝에 드러난 너무나도 황당해하는 표정을 보고 금방 쿤토르 역시 상황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덤덤하게 몸을 일으켜 앉으면서 쿤토르가 투란의 혼란을 안다는 듯이 말한다.
“카엘. 인간 부족에게는…… 대마법사? 대마도사? 그리 불린다고 했다. 인간, 카엘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가? 그가 오르카 켈카르의 대주술사란 사실을 몰랐는가? 으음, 놀랍다. 카엘은 인간 부족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고 들었다만.”
“어, 아니, 카엘은 알지. 대마도사 카엘. 대주술사란 말은 쿤토르에게서 처음 들었다. 음, 그래…… 카엘이 오르카의 대주술사이기도 하단 말이지, 그래…….”
투란은 얼렁뚱땅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
그 사이에 드라고니아를 향한 으르렁거림도 소리 없이 터져나가는 중이었다.
‘이게 뭔 미친 소리야! 얘네랑 대체 어떻게 엮인 거야? 그 대마도사, 어디까지 제정신이 아닌 거냐?’
―이야기가 길다만…… 그냥 이 오르카 켈카르란 일족 전부가 카엘에 의해서 이 세상에 이끌려온 다른 세계의 주민이라고만 알고 있어라. 불러와서 정착시키는 과정 속에서 카엘이 이 녀석들한테 대주술사라고 인정받았고 말이야.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대답.
투란은 한층 더 혼란스러워지고 말았다!
‘이 썩을…….’
쿤토르는 투란을 가만히 보며 마치 기분이 매우 혼란스럽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는 듯, 한쪽으로 조용히 몸을 돌리며 흙을 짚고 손으로 긁어모아 한 움큼 들어 올리면서 숨을 들이쉬는 자세를 만들고 있었다.
얼핏 투란에게 생각을 정리하는 여유를 주는 듯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쿤토르 스스로 숲과 흙의 냄새를 통해 뭔가를 정리하는 모습이었다.
투란은 문득 그런 쿤토르의 녹색 문신이 더 이상 끓지 않고 핏줄과 힘줄은 도드라진 채로 보랏빛을 지운 채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평정을 찾은 문신은 지금 쿤토르의 묘한 태도와 자세에 반응하듯, 차분하고 짙은 녹색의 파문을 일으키면서 쿤토르의 몸에 더 밀착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모그와? 고대주술이라고?’
―귀를 기울여라.
드라고니아의 말은 조금 이상했다.
그래도 투란은 일단 귀를 기울였다.
쿤토르의 나직한 목젖 울림이 불쑥 귓가에 잡히는 듯했다.
그것은 음음음, 소리처럼 시작되어 그르르, 끓어오르는 듯이 변했고 후우와아아, 하며 토해지는 듯한 기괴한 마무리를 긴 여운과 함께 흘렸다.
―저 소리를 대화 속에서 그대로 표현한 말이다, 모그와.
드라고니아의 짧은 설명이었다.
투란은 더 따질 힘을 잃고 말았다.
으으음므으으그르르르와아아……라는 희한한 소리니까 그냥 모그와라니!
그냥 미친놈들이 미친 소리를 하니까, 제정신인 자라면 당연히 따지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저절로 투란의 뇌리에서 팔딱거릴 뿐!
‘와, 돌아버리겠네!’
한숨과 함께 투란이 좋지 못한 표정을 감추기 위해 멀리 보다가 하늘을 보다가 절벽 아래를 보다 하니, 오히려 좋지 못한 상태를 드러내는 꼴이 되었다.
한데 쿤토르는 투란의 상태에 별 관심이 없는 듯, 혹은 지금 빠져 있는 기묘한 의식(儀式)…… 뭐냐 물으면 분명히 모그와라 대답할 짓에 깊이 빠져서 돌아볼 낌새가 전혀 없었다.
덕분에 투란도 잠깐 사이에 마음을 가다듬었고, 다시 쿤토르를 살필 수 있었다.
어느새 와앗 하는 매듭짓는 소리에 이른 듯, 쿤토르가 손에 모은 한 움큼의 흙을 손가락 사이로 흘려내면서 숨을 고르며 입을 다물며 그 냄새를 한껏 더 들이쉬는 듯이 보였다.
그 광경을 보던 투란은 문득 자신의 코끝에도 쿤토르가 흘린 흙내음이 닿는 듯해서 기분이 묘해졌다.
절벽 가에서 수십 미터 간격을 둔 채로 비탈져 내려가는 자리로부터 시작되는 숲에서 바람이 새나오는 듯했고, 뾰족한 나뭇잎과 방울진 열매가 흔들거리며 흘리는 냄새가 실려 오는 듯했다.
갑작스럽게 이런저런 냄새가 다 함께 작정했다는 듯이 몰려오는 듯한 분위기…… 투란은 이것이 단순히 자신의 착각인지, 아니면 쿤토르의 태도 때문에 왠지 코가 예민해진 탓인지 어리둥절해서 갸웃했다.
그 사이에 일어설 힘을 회복한 것처럼, 잠깐의 의식과 휴식이 큰 힘이 되어 줬다는 것처럼 굳건히 일어선 쿤토르가 말한다.
“인간, 숲이 말했다. 너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쿤토르를 인간이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부탁한다, 쿤토르의 모그와를 도와다오.”
“어?”
맹한 소리부터 내고 투란은 쿤토르를 바라봤다.
설마 투란이 이리저리 이용하기 편해서 하는 소리인가?
아니면 정말로 숲이 나불거리는 이야기를 들어서인가?
숲에서 몰려오는 짙은 바람결은 왠지 투란에게 에어로를 연상시키고 있었다.
그 안에 담긴 냄새, 깊고 그윽한 숲의 냄새는 어딘가 정령의 기척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쿤토르가 조금 멍해진 투란을 보며 다시 말한다.
“은혜는 갚는다, 인간. 숲이 말했다, 인간은 어디론가 가야 하고 숲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쿤토르가 인간이 숲을 거쳐가도록 돕겠다. 인간은 쿤토르가 숲을 거치며 시련을 완성하기를 도우면 된다.”
“에…… 음…….”
투란은 이럴 때 뭐라 해야 해야 하는지, 쉽게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쿤토르가 이런 투란의 태도에 갸웃하면서 묻는다.
“인간, 가야 할 곳을 모르는가?”
“아니, 알아. 알지…… 그러니까 저쪽으로 가면 있다는 성채, 성채이면서 왕국인…… 인간의 왕국인 곳인데, 루곤이라고…….”
어쩐지 계속해서 못 배운 인간이라 이러는가 여기는 듯한 쿤토르의 눈길을 받는 기분에 투란이 살짝 울컥해서 일단 방향을 대강 떠들어봤다. 구체적인 듯하지만, 왠지 오락가락하는 말이 될 뿐인데…….
쿤토르에게는 이 대답이 꽤 명확하고 충분했던 모양이었다.
“루곤! 인간의 성벽이다! 알았다. 쿤토르, 인간을 인간의 성벽까지 길잡이 해주겠다. 숲을 거치는 사이에 몬스터 모그와가 미쳐 날뛰지 않도록 돕겠다. 안심해라, 인간. 쿤토르, 아직 시련을 완성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강하다!”
“어, 그래.”
더 뭐라 한들, 이미 결정한 쿤토르의 확신에 가득 찬 눈망울에는 더 이상 의문도 망설임도 없을 것임을 깨달았기에 투란은 맹한 채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한다고 한 일은 확실히 하는 녀석들이다. 길 잃을 걱정은 안 해도 돼.
‘안 했거든?’
불쑥 떠드는 드라고니아에게 투란은 발끈하다가 깊은숨을 몰아 내쉬면서 쿤토르를 바라봤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녀석이잖은가!
대체 어디 가서 이렇게 제멋대로인 녀석을 또 볼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