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7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69)
북벽 산맥, 그 정상에서 시작되는 숲은 광대(廣大)했다.
그 광대한 숲의 한편을 가로지르면서 투란은 알 수 있었다.
쿤토르가 매우 유능하다는 것.
투란에게는 해결할 수 없는 의문을 잔뜩 불어넣어 줬지만, 아무튼 숲을 헤쳐나가는 일에 있어서는 아주 능숙한 사냥꾼이라는 것!
‘말투는 참 이상하지만…….’
처음에는 그 하는 짓도 많이 이상하고 괴팍스러웠지만, 보다 보니 투란에게는 나름대로 납득이 가는 정상적인 행동이었다. 물론 쿤토르의 행동을 납득하면 할수록, 투란은 이 북벽 산맥의 대삼림 지역이 정상적이지 못한 이상하고 괴팍스러운 곳이란 점이 분명해지기는 했다.
거대화된 것도 아닌데 토끼 체격이 1미터를 훌쩍 넘어서, 뒷다리로 선 채면 그 귀 길이 덕분에 웬만한 사람만 해 보이니, 정상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그걸 잡겠다고 쿤토르가 나무창을 만드는 광경은 그나마 ‘모그와라잖아.’ 혹은 ‘고대주술이라잖아.’ 하는 마음가짐으로 훌쩍 넘길 수 있었다는 점은 투란에게 작은 위안이었다.
‘나무에게 부탁하면 창을 내주다니.’
이 숲의 또 다른 괴이(怪異) 중의 한 가지였다.
쿤토르가 손을 대고 중얼중얼 부탁하는 시늉을 하면, 나무껍질이 훌러덩 벗겨지면서 나무의 한 부분이 뚝 떨어져 나왔고 쿤토르가 원하는 모양이 되었다!
그 신기한 짓이 다른 곳에서도, 이 숲이 아닌 곳에서도 되는가 해서 투란이 살짝 흥분하며 물으려 했을 때 드라고니아가 먼저 말했었다.
―안 돼.
아주 간결하게!
그러면 대체 여기서는 왜 되는가?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쿤토르는 너무 당연한 일인 듯했고, 투란은 물어보면 분명히 ‘모그와!’라고 대답할 것 같아서 묻지 못했다.
이렇게 모호한 의문을 품은 채로 쿤토르를 지켜보며 지내기를 벌써 사흘!
어두운 밤하늘이 나무꼭대기에 찔린 듯한 별빛을 머금은 그늘 아래에 앉아 모닥불을 피우고 쿤토르와 마주한 투란은 슬슬 의문을 끝장내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숲의 기괴한 꼴을 며칠 동안 지켜보면서 거기에 어울린 쿤토르까지 확실히 지켜봤으니, 이쯤에서는 대답을 들어도 괜찮지 않겠는가?
그래서 투란이 슬슬 물을 준비를 하는데…….
“용의 가호는 어찌 얻은 것인가, 인간?”
쿤토르가 아무렇지도 않게 모닥불을 헤집으면서, 그 위에서 잘 구워지는 토끼 고기를 뒤척이면서 먼저 묻고 있었다. 마치 투란이 물을 준비를 한 것처럼, 대화할 준비가 되었으니 묻는다는 듯 아주 당연히 그렇게 하고 있다는 태도로!
하지만 투란에게는 그 물음이 무슨 뜻인가 전혀 납득이 가는 영역이 아니었다.
“에? 용의 가호?”
―젠장…….
바로 뒤따르는 드라고니아의 기묘한 푸념 또한 투란에게는 예상하지 못한 것!
누구에게 먼저 묻고, 누구에게 먼저 호응해서 대화를 할 것인가?
쿤토르가 투란의 어리둥절함과 망설임을 끊겠다는 듯이 먼저 꺼낸 물음을 잇고 있었다.
“용의 의지에는 모그와가 담겨 있다. 그 모그와를 건네서 용은 가호를 한다. 인간, 용의 가호를 얻었다. 쿤토르는 지켜봤다, 인간에게서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용의 가호를 지녔다, 인간.”
여전히 익숙해지기 힘든 말투였지만 투란은 이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다.
쿤토르가 투란에게서 드라고니아의 낌새를 느꼈다는 것, 거기에 의지니 뭐니 하는 말이 끼어든 것으로 봐서 그 단서가 된 것은 윌 라이트의 마력.
숲을 거치면서 쿤토르의 녹색 문신이 차분해졌고, 험하게 돋아났던 핏줄과 힘줄이 완전히 가라앉고 나니 쿤토르의 감각 범위가 확장되는 듯이 보였던 것이 저 물음을 꺼내게 했을 터였다.
투란은 목뒤가 뻐근하다는 듯이 손으로 문지르면서 되묻는 말부터 꺼낸다.
“어려워! 인간, 쿤토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가 잘 모른다! 용이 뭔지부터 알고 싶다! 인간, 아직 드래곤은 만난 적이 없다! 쿤토르는 왜 용에 대해서 말하고, 가호에 대해서 말하지? 인간은 까닭을 알고 싶다!”
―말투 흉내는 관둬라! 가만히 듣기 끔찍하잖아!
뭔가 침묵을 포기했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렸다.
쿤토르도 미묘하게 목젖을 울리며 눈꼬리를 살짝 치켜뜬 표정이 지금 투란의 말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표현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어 나온 쿤토르의 말은 차분했고 그런 기분은 완전히 걷어낸 채였다.
“지금 가는 길의 반대쪽으로, 백의 낮과 밤을 두 번 거치는 곳에 용의 도시가 있다. 용의 일족이 사는 도시다. 용의 일족은 그 도시를 드라코눔이라 부른다. 하늘에 산을 띄우고, 수많은 부족이 산 아래에 마을을 이루고 밭을 이루고 다시 도시를 이루는 모그와의 도시다. 그곳에는 용의 일족에게서 가호를 얻어낸 이들이 많다. 용의 의지로 모그와를 선물받은 이들이다. 인간, 짐승, 요정까지, 많은 부족이 용의 모그와로 지켜지며 산다. 인간, 그곳에서 오지 않았던가?”
“거기 가본 적 없다, 인간은.”
듣다 보니 호기심이 물컹물컹 솟구쳐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묻고 싶었지만, 투란은 정신을 가다듬으면서 쿤토르의 진지한 물음에 대해 답부터 했다.
쿤토르는 갸웃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가본 적은 없다. 그래도 인간은 용의 가호를 지녔다. 음…… 인간, 혹시 왕인가?”
“임금님? 내가 임금님이냐고? 대체 왜 이야기가 그리로 튀는 거야? 쿤토르, 인간 네 말을 전혀 이해 못 하겠다! 인간, 왕 아니다!”
느닷없는 물음은 투란을 잠깐 멍하게 했고, 말투 흉내 내던 것도 살짝 잊게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 다시 되뇌어도 역시 쿤토르의 물음은 대체 어디서 뭘 보고 무슨 생각을 해서 나온 것인가 전혀 짐작도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다.
이런 투란의 황당함, 어이없음을 느낀 듯 쿤토르가 송곳니를 덮은 입술을 축 늘어뜨리면서…… 매우 실망한 낌새를 그대로 풍겨내면서 말한다.
“그렇군, 왕이 아니다. 배신자들은 헛수고를 하고 명예만 더럽혔다.”
“뭐? 배신자들?”
역시나 엉뚱한 곳으로 튀어버린 이야기였고, 투란은 한층 더 맹한 표정을 지으면서 쿤토르에게 ‘설명 좀 해봐! 똑바로!’라는 눈길을 뿜어낼 수밖에 없었다.
쿤토르는 침착하게 그 눈길을 받아내면서 가만히 구워진 토끼를 뒤척이는가 싶더니, 큼직한 뒷다리 살덩이를 억세게 찢어 투란에게 넘기면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배신자들은 쿤토르가 예언의 전사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쿤토르가 족장의 핏줄을 잇지 않았기 때문에 예언의 전사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배신자들은 쿤토르가 위대한 왕의 길잡이가 될 수 없다고 믿었다! 쿤토르가 패배자들의 핏줄을 이었고, 버려졌기에 결코 예언의 전사일 수 없다고 외쳤다.
“잠깐! 그래서, 예언의 전사가 뭐지? 쿤토르, 인간은 모른다!”
투란은 과격하게 쿤토르의 말을 자르고 물었다.
사흘 정도 함께 지냈기에 그냥 한두 마디 모르는 낱말이겠거니 하고 넘어가면 그다음부터는 최소한의 설명, ‘모그와’란 말도 안 하는 종족이 바로 ‘오르카 켈카르’라고 단정 지은 탓에 던지는 물음이었다.
과연 쿤토르를 살짝 움찔하는 듯하다가 자기 손에 들린 토끼 고기를 우악스럽게 씹으면서 ‘왜 모르지?’ 하는 눈길을 보이는가 싶더니 바로 ‘인간이라 그런가?’ 하는 표정으로 대답을 꺼내고 있었다.
“예언은 말했다, 숲의 마수(魔獸)를 사냥할 왕은 위대하다. 그 왕이 어머니 숲의 품을 찾아왔을 때, 모그와의 시련을 마치지 못한 전사가 마중한다. 전사는 왕의 길잡이가 되어 어머니 숲에 침략해온 마수를 사냥하도록 돕는다. 위대한 왕은 어머니 숲에서 침략자를 물리치고 숲의 투쟁을 지킨다. 오르카의 여러 주술사들은 예언했다, 자신이 부여한 모그와를 품은 전사가 왕의 길에 발자국을 남기는가 마는가. 쿤토르는 족장에게 거둬질 때, 주술사의 예언을 받았다. 쿤토르가 왕의 길잡이가 될 것이며 모그와의 시련을 마칠 것이라 주술사가 예언했다. 배신자들은 그 예언을 싫어했다.”
“그래서 널…… 쿤토르를 절벽에서 밀어 떨궈버렸다?”
투란은 어느 정도 말을 하고 으적거리며 다시 토끼고기를 뜯어먹는 쿤토르를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중얼거렸다. 사실을 정리하자는 듯한 말투이기는 했지만, 투란의 마음 한구석에는 조금 의아한 생각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놈, 절벽에서 민다고 얌전히 떨어질 놈이 아니잖아?’
사흘 동안 쿤토르의 사냥을, 숲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숲의 위협, 투란에게는 많이 낯선 숲의 다양한 상태를 미리 파악하며 사냥하고 쉴 곳을 찾아내고 이렇게 고기를 구워내는 쿤토르가 ‘저길 봐!’란 말에 절벽 아래를 보다가 뻥 걷어차여서 떨어진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쿤토르라면 걷어차려는 놈 눈치채고 맞서 싸우다가 팔다리 꺾이거나 끊어져서 내던져질 일이어야 했다!
꿀꺽, 씹던 고기를 삼킨 다음에 쿤토르가 투란의 의심을 안다는 듯이 말한다.
“쿤토르가 뛰어내렸다. 주술사가 만들어준 예언의 칼을 쫓아서 뛰어내렸다. 쿤토르가 배신자들에게 맡겨둔 칼이었다.”
“칼에 무슨 예언이 있길래?”
말투 따라 할 생각도 포기하고 투란이 한숨 쉬듯 묻고 말았다.
쿤토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투란이 핵심을 짚어서 다행이란 듯이 대답한다.
“주술사가 예언했다, 칼은 쿤토르가 모르는 길을 따라 이끌 것이다, 칼이 있는 곳에 쿤토르가 있다면 반드시 왕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주술사가 이렇게 예언했다. 칼이 짐승의 아가리에 삼켜져 배 속으로 들어간다면, 쿤토르도 칼과 함께 그 아가리를 넘어 배 속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칼을 따라 뛰어내렸다. 배신자들이 칼을 던져 쿤토르를 떠민 것이다!”
입을 벙긋벙긋하면서도 투란은 뭐라 소리 내 말할 수가 없었다.
지금 소리 내서 뭔가 말한다면…….
―여전히 얼빠진 놈들이로군! 정신 나간 것들! 칼 던진다고 뛰어내린 놈이 뭘 떠밀었다고 떠들어! 이놈이나 그놈들이나!
이렇게 드라고니아가 참을 수 없어 토해내는 으르렁거림보다 더 심하게 투란은 쿤토르의 정신상태를 감정(勘定)하려 들 것이다! 더불어 이런 넋 나간 놈을 뭐하러 사흘씩이나 자제하면서 지켜봤는가, 자기 머리를 돌에 찧고 있을 터!
하지만 말을 자제하면서 투란은 멍청한 자신에 대한 자해(自害) 또한 자제해냈다!
“음, 그러니까…… 그래서 칼을 따라 뛰어내렸는데 나랑 만나서…… 내가 왕이냐고 물어본 거야?”
겨우 열린 입으로 뭔 말이든 토해내려 애쓴 결과, 꽤 그럴듯한 말을 할 수 있는 투란이었다.
으적으적.
쿤토르는 고기를 씹으면서 잠시 대답을 미뤘다.
그저 우악스럽게, 먹느라 바쁘다는 듯한 태도로 착각하기 쉬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투란은 쿤토르가 깊이 생각하는 중이란 것을 바로 알았다.
말투가 이상한들, 생각하는 모습이 느껴지지 않는 태도라 한들 이 ‘오르카 켈카르’란 종족은…… 쿤토르는 분명히 노련한 사냥꾼이니까. 노련한 만큼 사냥감에 대해서, 숲의 길에 대해서 이것저것 궁리할 터였다.
그리고 그 결과가 나온 듯, 한번 더 입안의 고기를 삼키더니 바로 쿤토르의 말이 나온다.
“칼을 잃어버렸다. 대신 인간을 만났다. 예언의 칼은 쓰임새가 다하면, 쿤토르를 떠난다 했다. 인간이 왕이라면, 쿤토르는 예언의 길에 발자국을 찍은 것이다. 하지만 아직 쿤토르는 전사의 시련을 끝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예언은 틀렸다. 예언이 틀렸다면…… 쿤토르는 예언의 전사가 아닐 수도 있다.”
투란은 조용히 토끼 고기를 뜯어먹으면서 귀를 기울였다.
지금 하는 이야기는 쿤토르 자신이 앞으로 어찌할까를 궁리하고 고민해서 나오는 것, 사흘 동안 투란을 지켜보면서 쿤토르 스스로 판단한 것에 대한 결과를 토해내는 것이다.
이런 투란의 고요한 태도에 응하듯, 쿤토르는 입가를 굵직한 팔뚝으로 문지르면서 이야기를 맺고 있었다.
“쿤토르는 배신자들을 용서할 수 없다. 배신자들을 벌할 자격은 전사만이 갖는다. 그러므로 쿤토르는 전사의 모그와를 얻고 시련을 치러 낸다. 인간을 인간의 성채, 루곤까지 안내해준다. 그리고…… 왕이 아닌 인간은 갈 길을 가고, 쿤토르도 가야 할 길을 간다. 쿤토르와 인간, 그렇게 숲의 동반자가 된다. 찬성하는가?”
투란의 고개가 한쪽으로 삐딱하게 기울어졌다.
쿤토르의 말투는 여전했지만, 그 속에는 이전과 다른 묘한 각오가 일렁이며 맺혀 있는 채였다. 그 각오를 증명하겠다는 것처럼 쿤토르의 어깨와 팔, 가슴에 번져 있는 녹색의 무늬가 꿈틀꿈틀, 불끈거리고 있었다.
―이 녀석, 복수하고 죽을 각오까지 하는 모양인데?
‘뭐?’
―예언의 전사라면, 길잡이가 되어서 너를 숲의 마수한테로…… 아, 그거 별명이 숲의 마수인 거고 몬스터야. 아무튼 그 숲의 마수한테로 너를 데려가야 하거든. 전사로서 예언을 완성하는 일은 오르카 일족에게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기도 하지. 하지만 투란 네가 왕이 아니라니까, 예언이 잘못된 경우라면 너를 데려갈 수 없지. 그건 영광도 위업도 아니거든. 책임은 엉터리 예언을 한 주술사가 지는 거고. 그 책임을 물으려면 역시 전사의 시련을 치러 내야 하고.
‘그런 얘기를 전혀 하지 않는 까닭은?’
투란은 쿤토르가 할 이야기 끝났다는 태도로 자기 몫으로 떼어간 토끼 고기를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고, 드라고니아에게 답을 보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