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7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70)
―숲의 마수를 왕이 사냥한다, 얘네가 이리 예언했다는 말의 속뜻은 왕이 아니면 죽으니까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야. 오르카란 종족이 투신에게 사랑받는다고 하는 까닭은, 저기 무섭고 억센 놈이 있다고 하면 모그와가 있으니 괜찮다고 달려들어서 싸우든가, 싸워 이기고 모그와를 완성한다며 덤벼들든가…… 전투 회피란 의미가 없는 놈들이거든. 그러니까 나름대로 널 배려한 셈이다. 왕이 아니면 길잡이로서 데려가지 않는다고 선언한 셈이기도 하고.
으적으적.
이야기를 들으면서 투란은 자기 몫의 고기를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쿤토르가 이야기 끝났다고 보이는 침묵하는 태도, 드라고니아가 참지 못하고 쏟아내는 ‘오르카 켈카르’란 종족의 특성…….
꿀꺽, 꿀꺽.
고기를 삼키고 입술을 손등으로 문지르고 나서, 쿤토르가 나무에게 부탁해 그 껍질로 만든 물주머니의 물을 두어 모금 마시고 나서 투란은 묻는 말을 꺼내고 있었다.
“숲의 마수가 강한가? 내가…… 쿤토르 너를 구한 인간이 이길 수 없을 정도로?”
―야, 그런 얘기가…….
드라고니아가 끼어들려다가 말을 흐렸다.
피워놓은 요리를 위한 모닥불의 광채에 쿤토르의 적갈색 눈빛이 깊이 번뜩이면서 이리저리 움직인 탓이었다. 마치 드라고니아가 하는 말을 엿보겠다는 듯한, 분명히 윌 라이트의 마력공명을 느끼고 더듬는 듯한 그 태도.
“인간, 강하다. 하지만 숲의 마수와 싸우면 안 된다. 그 마수는 왕의 몫, 왕의 사냥감이다.”
“음…….”
투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쿤토르가 투란을 숲의 마수에게 데려가는 길잡이 노릇을 하지 않는 까닭, 다른 어떤 것이 아니고 투란이 왕이 아니란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숲의 마수보다 세냐 약하냐는 전혀 상관없다는 뜻.
‘얘네, 그 예언이 없었다면 알아서 쳐죽였을 것 같네?’
문득 투란은 쿤토르가 보통 몬스터 헌터보다 강하다는 점을 짚으며, 쿤토르를 기준으로 삼아 오르카 일족의 전사 수준을 가늠해봤다.
―못 죽였어. 예언은 죽이지 못한 다음에 나왔을 거다. 숲의 마수는…… 북벽 산맥에서 거의 오백여 년 이상 활동해온 몬스터야.
드라고니아는 깔끔하게 부정했다.
이번에는 마력의 공명이 아닌, 문장 속의 풍경을 통해서.
쿤토르가 전혀 짐작도 할 수 없는 과정을 거친 말은 투란의 입가를 살짝 비틀게 했다. 잔소리를 멈출 생각은 않고 들키지 않게 계속할 궁리를 해내다니!
그래서 투란도 비슷하게 되묻는다.
‘어떤 몬스터인데? 오백 년이면 자세히 알고 있겠지? 대강이라도 말해봐.’
―나중에.
드라고니아는 쿤토르를 주시하며 조심하듯 대답했다.
쿤토르는 모닥불에 남은 토끼 고기를 올려놓으면서 투란이 생각에 잠긴 듯한 시늉을 하는 꼴을 보고 말한다.
“인간, 약하지 않다. 쿤토르는 전사의 시련, 모그와를 완성한다. 쿤토르가 왕의 길잡이가 되는 일은 전사로서 복수를 마친 다음이다. 쿤토르에게는 아직 예언받은 기회가 남아 있다.”
“어? 기회?”
“쿤토르는 왕을 두 번 만난다. 인간, 어쩌면 다음에 만날 때는 인간이 왕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면 쿤토르는 인간, 왕의 길잡이 된다. 그러니 인간은 서둘지 않는다, 루곤 성채로 가는 길이 먼저다.”
“어…….”
침착한 쿤토르의 말에 투란은 어정쩡하니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투란에게는 아무래도 ‘오르카 켈카르’에게 왕이란 말은 인간이 노력만 하면 될 수 있는 뭔가를 의미하는 모양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왕족으로 태어나야 한다는 처음 조건, 혹은 아예 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왕이라 외치든가 해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서 전혀 알 바 아닌 듯하니.
―건국(建國)이라면 가능하잖아?
드라고니아는 매우 쓸모없는 말을 하고 있었다.
투란은 무시했다.
쿤토르는 다시 토끼 고기를 적당히 찢어놨고, 투란 쪽으로 밀어놨다.
거의 익은 토끼 고기를 불에 묻히듯이 그을리며 투란이 이야기를 바꿔 묻는다.
“쿤토르, 전사의 시련은 뭐지? 어떻게 모그와를 완성하지?”
“맹수를 찾아 교감한다.”
쿤토르의 대답은 금방 나왔다.
투란이 납득도 이해도 할 수 없어 눈을 깜박이게 하는 대답이었다.
그 표정을 알아봤다는 듯, 쿤토르가 말을 바로 보탠다.
“모그와를 지닌 맹수를 찾는다, 쿤토르가 교감한다. 예언의 주술사라도 쿤토르의 말을 듣게 된다. 배신자들을 벌준다. 인간, 이제 알아들었다?”
“모그와를 지닌 맹수라니?”
뒷부분 다 잘라내 버리고 투란이 앞부분을 짚어 물었다.
드라고니아가 희미하게 ‘마수’라고 말했지만, 투란은 그 말은 알 바 아니란 듯이 쿤토르에게 진지하게 묻고 있는 셈이었다.
으적거리며 고기를 몇 점 찢어먹고 나서 쿤토르가 숲의 한 방향, 투란을 안내해가던 산악왕국 루곤 쪽을 가리키며 대답한다.
“인간의 성채, 루곤 근방에서 사냥하는 맹수가 있다. 검은 표범, 벼락의 모그와를 지닌 검은 표범이다. 검은 표범과 교감하면, 쿤토르도 벼락을 다룰 수 있다. 천둥망치를 얻기 위해 쿤토르는 벼락의 검은 표범과 교감해야 한다. 그러면 배신자들도 족장의 천막에 숨지 못한다.”
꽤 자세해진 설명이었다.
투란에게는 ‘벼락?’이라든가, ‘검은 표범?’이라든가, ‘천둥망치?’라든가, ‘천막에 숨는다니?’라는 연속적인 의문을 쥐어짜 내게 하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뭐 하나 제대로 납득할 수 없는, 의문의 연속!
드라고니아가 참을 수 없게 된 듯, 하나씩 짚어 해석하듯 빠르게 들려준다.
―벼락을 일으키는 마수가 있는 모양이네. 숲의 마수란 놈을 이야기하는 거는 아닐 거다. 이 녀석들은 네가 아는 마수란 모그와를 지닌 맹수일 뿐이니까. 아무래도 벼락의 속성을 지닌 마수를 노리는 까닭은…… 오르카 켈카르의 전설적인 무기를 노리는 건가? 천둥망치라면 세 벌 정도 있다고 들었는데…… 음, 정말 천둥망치를 손에 넣는다면 오르카 일족의 면죄부 노릇을 한다는 족장의 천막이라도 무시할 수 있지. 거기 들어가서 서너 달 참회하면 무슨 죄이든 면책되는 것이 얘네들 풍속이야. 그걸 강제로 뜯어낼 궁리까지 하는구만.
‘음, 그렇게 해석되는 이야기였군.’
투란은 알아들은 척했다.
사실 반쯤은 알아들었고, 반쯤은 뭔 소리인가 헷갈렸다.
덕분에 또 메듀시아가 기억을 나눠놓는 영향력을 발휘했는가 확인까지 했지만, 이미 ‘악마의 심장’으로 머리가 나뉘어도 온전한 기억을 되새기게 할 준비까지 해놓은 다음이란 것만 다시 확실히 했을 뿐이었다. 이전에도 그 덕분에, ‘메타모픽 서펜트’가 자연스러운 척하며 몸을 변화시키는 광경에서 본래 의도와 다른 형성이 어째서 자연스러운가를 따지는 ‘악마의 심장’ 속 ‘투란’ 덕분에 알아차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메듀시아는 확실히 통제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드라고니아가 설명한 쿤토르의 이야기는 원래 알아듣기 좋지 않았다는 것!
‘좋아! 그러면!’
생각을 정리해버린 투란이 쿤토르를 향해 매우 진지한 눈빛으로 다시 묻는다.
“어디 있는가 찾을 수 있나? 쿤토르, 검은 표범과 만난 적 있다? 없다?”
쿤토르가 투란을 가만히 바라봤다.
투란은 그 적갈색 눈빛 속에서 ‘이 바보가?’ 하는 듯한 낌새를 느꼈다.
그래도 그 눈빛에 이어 나온 쿤토르의 목소리는 깔끔하게 정리된, 말투만 이상한 멀쩡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없다, 검은 표범의 모그와는 오르카를 만나면 죽인다. 검은 표범의 벼락을 본 오르카는 모두 죽었다. 쿤토르, 죽음을 선물하는 검은 표범과 교감한다!”
투란의 눈이 저절로 끔벅거렸다.
이번에는 투란의 눈빛 속에 ‘얘가 미쳤나?’ 하는 낌새가 어려 있었다.
쿤토르 또한 투란처럼 그 눈빛 속의 낌새를 무시했다!
“좋은 교감 되기를…… 지켜보도록 하지!”
투란은 말투 흉내 내기를 멈추고, 쿤토르의 마수 사냥……은 아닐 듯하지만 뭔지 모를 그 교감에 함께한다는 선언을 했다.
루곤 왕국까지 얼마나 걸리려는가 모르겠지만, 가는 길에 만날 것을 기대하면서!
햇살이 나뭇가지를 스치며 흘러내렸다.
쿤토르는 며칠 동안 투란이 본 그대로, 나무에 굵고 큰 손을 댄 채로 뭔가 중얼거리며 기원하고 있었다. 흡사 사제가 신을 향해 기도라도 하는 듯한 분위기였고, 쿤토르의 신이 된 나무는 거기에 바로 호응해주고 있었다.
나무껍질이 벗겨지고 나무 속이 저절로 휘어지며 뻗어나와 쿤토르의 새로운 창이 돼주고 있었다. 단단한 껍질에 든든하게 쌓이고 끝은 저절로 갈려버린 것처럼 뾰족한 창…… 기묘한 주술의 소재가 된 나무는 투란이 건드려본 바에 따르면 굉장히 튼튼해서 그냥 가지만 꺾어도 몬스터 잡는 몽둥이로도 쓸 수 있을 듯했다.
‘거참, 희한한 마법이라니까.’
투란이 새삼 감탄하니, 드라고니아가 혀를 찼다.
―무장생성이 저 주술보다 상위잖아. 저건 이 숲 밖에서는 전혀 쓸 수 없는 주술이라니까.
‘아무튼! 이 숲에서는 저 나무창이 웬만해서는 안 부서진다며? 여기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으면 훨씬 좋은 거잖아. 나무로 만든 창이 바위도 부숴대는데…….’
쿤토르가 나무창을 휘두를 때의 위력을 되새기며 투란은 소리 없이 툴툴거렸다.
앞서 뽑아낸 나무창으로 큰 사슴을 공격했을 때, 사슴이 날렵하게 피했고 쿤토르의 창은 대신 바위에 꽂혔었다. 그걸 힘으로 우악스럽게 휘둘러대니 바위가 부서지며 그 파편으로 사슴을 잡았던 광경, 멀뚱거리며 보는 입장에서 투란은 놀라면서도 감탄했었다.
나무창이 바위를 찍고 부수는 요술, 그걸 휘둘러대는 오르카란 종족의 괴력.
투란에게 저 모습은 ‘오르카 켈카르’가 태어나기를 몬스터 헌터로 태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러니 어지간한 마수는 그냥 특이한 재주를 지닌 사나운 맹수로 여길 뿐이고!
‘루곤 왕국까지 이대로 얼마나 남았지?’
―쿤토르가 너를 이끄는 속도는 꽤 빠르다. 널 보통 인간으로 여기지 않으니까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 아무튼 보름 이내에 루곤 왕국에 도달할 거다. 이대로 쿤토르의 안내를 따르면 말이지.
드라고니아의 셈에 투란은 뭐라 하지 않았다.
날아가는 것도 아니고 숲의 한편을 길을 내면서 가는 중이었다.
커다란 토끼, 그보다 더 커다란 사슴을 사냥하고 가끔 나무 위에서 구경하는 잔나비도 때려잡아 구워 먹고…… 숲의 늑대나 곰은 곁눈질하며 눈치 보다가 그냥 지나가고!
쿤토르가 검은 표범의 행적에 대해서 꽤 잘 아는 것처럼 그 서식지를 향해 아무 빠르게 진격을 하는 셈이었다.
엉덩이에 투란을 꼬리처럼 붙인 꼴로!
‘나한테 고기를 나눠주고 뭐 하라고 하지 않는 것은 귀찮지 않아 좋기는 한데…… 왜 저러는 걸까?’
며칠 동안을 되새겨보면서 투란은 갸웃했다.
북벽 산맥에 올라서 거의 이십여 일이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확인하고 나니 뭔가 신기했던 숲도 왠지 심드렁하게 보였다. 쿤토르가 아니면 이 숲은 투란에게 그저 숲일 뿐이었다. 그 때문에 슬그머니 잡념이 끼어드는 셈이고, 가장 먼저 쿤토르가 꽤 잘 대해 주는 까닭이 궁금해지는 것.
―생명의 은인이잖아. 오르카의 명예에 대한 율법은 그런 부분을 꽤 명시적으로 다룰걸? 저 녀석이 네 생명이라도 구해내지 않은 한, 아마 계속 저럴 거다.
‘흠…….’
아리송한 이야기였기에 투란은 그냥 갸웃했다.
그리고 쿤토르의 머리 위에서는 굵직한 몸뚱이를 지닌 뱀이 입을 열고 떨어져 내리려 하는 중이었다.
“쿤토르, 뱀.”
투란이 하품하듯 가볍게 말하니, 쿤토르는 그제야 흠칫 놀라 사방을 둘러보는 시늉을 하며 옆으로 몸을 던져 구르고 있었다.
뱀의 입이 닫혔고, 우거진 나뭇가지 사이를 누비던 몸뚱이가 뒤늦게 쏟아져 내렸다.
“비늘벌레! 더러운 것!”
쿤토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욕처럼 투란에게 들려왔다.
뭔가 뱀을 부정하게 여기는 것인가 생각하며, 투란은 다시 쿤토르를 꼬리로 후려쳐서 손에서 나무창을 튕겨나가게 하고 입을 열어 통째로 삼키려는 뱀을 향해 뛰었다. 손발은 이미 드라고의 형상이었고, 뱀의 머리통에 바로 손톱이 꽂히며 손이 파고들었다.
시이잇, 쿵, 철썩.
소리 나는 숨결을 뒤늦게 뿜어내며 뱀의 머리통이 수풀과 진흙이 범벅된 바닥에 꽂혔고, 한껏 치켜 올라갔던 뱀의 꼬리는 여전히 삶의 여력이 남았다는 듯이 나무를 후려쳤다.
잠시 뱀의 머리를 누르면서, 뱀의 몸길이가 슬그머니 17, 8미터에 달하고 몸통 굵기가 일 미터를 넘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채로 투란이 말한다.
“쿤토르, 뱀을 무척 싫어한다?”
지금까지 봐온 역량이라면 뱀을 피하기보다 방향을 확인하고 나무창을 치켜세워 열린 아가리를 통해 머리를 꿰어버렸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쿤토르는 투란의 경고에 냅다 피할 궁리부터 했고, 튈 방향을 찾아 굴러버렸다.
때문에 묻는 말에 쿤토르가 움찔하면서 켕기는 표정으로, 송곳니가 어울리지 않는 주눅 든 낯빛으로 대답한다.
“쿤토르, 길 잃은 어린 시절에 뱀에게 먹힌 적이 있다. 그 뒤로 뱀을 피하는 버릇이 생겼다. 전사의 시련이 완성되면 고칠 것이다.”
“어, 그래.”
투란은 깊이 따지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갈 길이 여러 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