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7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71)
Chapter 175. 벼락의 마수
이름도 모르고 종류도 알 수 없는 새가 저 멀리서 울었다.
숲을 넘어오는 그 메아리에 투란은 귀를 쫑긋하다가 갸웃했다.
무슨 새인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사악, 쿤토르는 그런 새 울음소리에 잠깐 귀를 기울이는 듯하다가 금방 자신의 단도를 점검하는 자세로 돌아갔다.
‘음, 저거 만든 지도 며칠 되었네?’
뱀에 대한 기묘한 혐오를 쿤토르가 드러내고 나서 사나흘 정도를 흘려보낸 것을 투란이 셈해봤다. 뱀은 일단 피하고 보는 묘한 그 버릇과는 별개로 쿤토르는 뱀의 송곳니를 뽑아냈고, 가죽을 벗겨냈다. 그 송곳니와 가죽을 소재로 만든 것이 바로 저 단도, 원래 지니고 있던 칼집…… 투란에게는 그냥 허리춤에서 덜렁거리던 장신구처럼 보이던 그물처럼 짜인 고리 같은 것에 담을 수 있게 송곳니를 다듬어 만들어냈다.
그리고 사나흘 동안 참으로 잘 써먹은 덕분에 맨몸이나 다름없던 쿤토르가, 투란에게까지 가죽으로 된 묘한 옷을 만들어 건네줄 지경으로 가진 것이 많은 오르카가 돼버렸다!
쿤토르가 토끼 가죽을 다듬거나 이빨, 발톱을 모으는 것은 그러려니 했지만 딱히 그걸로 바로 뭘 하는 모습은 투란에게 보이지 않았었다. 통으로 벗겨낸 핏기 넘치는 토끼 가죽은 질겼고, 이빨이나 발톱은 가죽을 적당히 꿰뚫기에는 너무 무뎠으니까.
하지만 막상 십수 미터의 뱀으로부터 날카로운 송곳니를 뽑아내자…… 아주 우악스럽게 토끼 가죽으로 싸고 쥐어짜 내듯이 뽑아내서는 바로 토끼 이빨과 발톱으로 갈고 다듬어 바로 단도를 만들어냈다.
그다음부터 쿤토르는 보다 용맹해졌고, 보다 사나워진 채로 숲을 관통하는 듯한 지름길을 고르고 있었다. 그 전에도 딱히 험하지 않은 곳을 고르는 시늉은 하지 않았지만 투란은 쿤토르가 저 송곳니 단도를 손에 쥔 다음부터 가는 길에 만나는 짐승, 토끼보다 크고 사나운 녀석들이 많아지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나무창으로 상대하려 들면 ‘모그와’로 튼튼해진 창이라도 단박에 부러뜨릴 것처럼 보이는 곰이라든가, 비비나비가 아닌가 의심스러운 개대가리를 달고 있는 잔나비라든가…… 그 품 안에 뛰어드는 것이 분명히 상대하기 편해 보이지만 어지간하면 들러붙기 싫은 맹수들이었다.
쿤토르는 그런 맹수를 열심히 사냥하면서…… 가죽을 벗기고 발톱, 이빨을 챙기며 계속 부자가 되고 있었다!
‘갖다 팔아도 은전이 금전이 될 것 같은데?’
투란은 대충 가늠해도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면서 단도 손질을 멈추고 타버린 나무를 살피는 쿤토르를 바라봤다.
“쿤토르, 나무 앞에서 멈췄다. 인간, 무슨 일인가 궁금하다.”
쿤토르가 먼저 말할 여유를 둘만큼 뒀지만 입을 다물고 있기에 투란이 그 말투를 흉내 내서 물었다. 애초에 이곳에서 쉬며 단도 손질하기에는 오늘의 여정이 좀 지나치게 짧았기에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묻는 말까지 나오자 쿤토르가 투란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때가 되었다는 듯이 진지하게 대답한다.
“검은 표범, 벼락의 흔적이다. 쿤토르는 앞으로 두 번, 혹은 세 번의 낮과 밤을 지나야 한다 생각했다. 쿤토르 잘못 생각했다. 인간과 쿤토르, 이미 검은 표범의 사냥터에 들어와 있다.”
“여기가? 음, 그게 검은 표범의 흔적이라고?”
우거진 숲에는 벼락 맞고 불타버린 나무 한두 그루는 꼭 있기 마련이었다.
거기서부터 번져 주변을 홀랑 태워버리는 강력한 불길이 되기도 하지만, 깔끔하게 한 그루 정도만 벼락의 직격으로 타버리고 주변은 잔뜩 머금고 있는 이슬의 축축함으로 불씨가 번지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그러니 벼락 맞은 나무가 검은 표범의 흔적이라면, 쿤토르에게는 뭔가 다른 근거가 분명히 있을 터였다.
투란이 나무 주변에서 보지 못하는 흔적이 대체 뭘까?
표범의 발자국이나 발톱 자국이 주변에 전혀 없었고, 검은 털이라든가 따로 짐작하게 해주는 잔재도 없는데…….
“나무가 쿤토르의 모그와에 호응해주지 않는다. 검은 표범의 모그와가 쿤토르를 거부하게 했다.”
투란이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른 근거를 말하는 쿤토르였다.
“어, 그래……. 그래서 어떻게 할 거지? 이제부터는 따로 가나? 교감을 내가 보고 있어도 되는 거야?”
맹하니 ‘또 모그와냐!’라고 절로 튀어나올 뻔한 투덜거림을 누르면서 투란이 새나오려는 쓴웃음까지 억누르면서 물었다.
쿤토르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신중하게 손질한 단도를 허리춤에 갈무리했고, 가죽으로 팔뚝과 발목을 감싼 것을 확인하면서 주변을 잠시 살핀 다음에야 쿤토르의 무거운 대답이 나온다.
“루곤으로 간다, 인간과 쿤토르는 계속 갈 길을 간다. 가면서 검은 표범의 사냥터에서 사냥을 한다.”
“검은 표범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갸웃하며 투란이 확인하겠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쿤토르가 투란을 보면서 자신의 송곳니를 드러낸 채로 웃는 낯으로 말한다.
“검은 표범은 사냥터를 지킨다. 검은 표범의 사냥감을 가로채고 있으면, 검은 표범이 쿤토르를 찾아온다. 인간, 겁내지 않아도 된다. 쿤토르가 검은 표범과 맞서고, 인간은 그냥 지켜보면 된다.”
자신감이 넘쳐나는 말은 투란을 살짝 삐딱한 기분이 되게 보챘다.
“음, 쿤토르…… 인간이 먼저 검은 표범을 사냥해서 쿤토르에게 선물해도 되나?”
살짝 쿤토르가 건네줘 입고 있는 가죽 외투…… 알드바인 공방은 물론이고 샤오콴 마을에서도 본 적이 없는 괴상한 모양의 외투를 툭툭 치며 묻는 말이었다. 쿤토르가 선물이라 준 이 외투처럼 투란도 검은 표범을 잡아 넘길 수 있다고!
조금 짓궂은 이 물음에 쿤토르는 잠시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생각하는, 투란이 기대하지 않은 진지한 자세로 고민하는 모습부터 보였다. 그리고 느릿하게 고개를 젓는 채로 대답한다.
“족장의 핏줄들은 그렇게 한다. 하지만 쿤토르는 족장의 핏줄이 아니다. 쿤토르에게는 쿤토르의 길이 있다. 인간의 선물, 사양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검은 표범은 선물받고 싶지 않다.”
“어, 그래. 그럼 나는 구경하고 있을게. 검은 표범이 나오면 말이야.”
투란은 조금 멋쩍고 민망한 낯빛으로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상해도 슬그머니 익숙해진 말투 속에서 쿤토르가 투란의 선물을 귀하게 여기는 태도와 전사로서의 자신이 선택한 길을 분명하게 정해놓고 있다는 두 가지를 확실히 느낄 수 있으므로! 게다가…….
‘족장의 핏줄은 뭐 하는 놈들이야?’
쿤토르는 아무래도 ‘오르카 켈카르’의 보통 녀석들이랑은 꽤 다르다는 생각도 슬금슬금 투란의 마음에 샘솟고 있었다. 이는 바로 드라고니아를 갸웃하게 하며, 문장 속에서 떠들게도 했다.
―묘하군. 예언의 전사를 핏줄이 어쩌고 하면서 절벽에서 뛰어내리게 하질 않나, 전사의 시련을 다른 자가 사냥해준 것으로 때우기까지 한다면…… 저건 꽤 희한한 부족인데? 인간도 아닌 오르카 부족 중에 저런 녀석들이 있었나?
‘야, 인간에 대해서 매우 얕보는 의견이 담뿍 담겨 있는 말 같다?’
―얕보는 게 아니야. 오르카는 자신의 사냥감을 남과 나누는 것을 쉽게 여기지 않는다. 얘네들에게는 금전을 통한 거래가 아예 없거든. 쿤토르가 투란 너한테 요 며칠 동안 이것저것 잔뜩 챙겨준 것도 순전히 절벽 아래에서 받아준 생명의 은혜 때문인 거지. 하물며 전사의 시련이라면…… 거의 맨몸으로 혼자 숲에 뛰어들어서 마치는 것이 관습이라고 나는 알고 있는데 말이지. 흠…….
‘배신이고 뭐고 없이 아예 혼자 사냥에 나서야 한다고?’
―아니, 그건 이미 자격을 갖춘 전사 오르카이고, 시련을 거치는 과정을 지켜보는 선임 전사가 있기는 하지만 거의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야. 절벽에서 떨궈버리는 짓도 당연히 않지.
‘음…… 뭐, 나중에 쿤토르가 알아서 해결하겠지. 나야 유렐리아 찾아서 루곤 왕국에 도착만 하면 되는 거고…… 그러고 보니 이야기도 제대로 듣지 못한 종족인 쿤토르를 만나서 꽤 편하게 여행하네?’
―글쎄다…… 만약 네가 장난으로라도 왕이라고 했으면, 지금 가는 길은 루곤 왕국이 아니라 숲의 마수가 날뛰는 보금자리였을걸? 너무 마음 놓지 마라. 숲의 마수는 자기 영역을 자주 바꾸니까.
‘뭐 하는 몬스터인가 기대되는데…… 돌아오는 길에 둘러보고 싶어진다고.’
투란은 쿤토르가 타버린 나무 주변을 긁어모으는 모습을 보며 팔짱을 낀 채로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벼락을 다룬다는 검은 표범은 마수라 했지만, 숲의 마수라는 별명을 지닌 녀석은 몬스터라 했으니까. 몬스터 로드로서는 그쪽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이 당연했다. 그 호기심과 함께 도대체 오르카의 예언이란 것이 대체 뭔가 한층 더 궁금해지기도 했다. 어지간한 마법이라면 그냥 그러려니 할 텐데, 마법사도 모른다고 으르렁거리는 앞날의 일을 미리 아는 이야기라니 투란에게도 낯설기 이를 데 없었다.
“인간, 이쪽으로 간다. 검은 표범의 사냥터를 가로지르는 가장 빠른 길이다. 사냥감이 아주 많은 길이다, 앞뒤이든 오른쪽 왼쪽 옆이든 뭐가 나올 수 있다. 조심해서 쿤토르를 따라오라.”
쿤토르가 방향을 잡고 나서 이미 구경하는 자세인 투란에게 말했다.
“응, 앞장서.”
가볍게 대답하며 투란은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드라고의 감각으로 파악한 것이나, 멀리 보내놓은 프로브로부터 얻어내는 상황에 대한 정보가 딱히 뭔가에 기습당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자카라의 거미 같은 녀석이 나올 수도 있으니 나름 조심은 해야 했다.
그래도 몬스터가 매우 드물다는 상황은 투란에게 묘하게 긴장을 풀게 하는 요소이기는 했다.
―긴장해라, 마수라고 얕보지 말라고!
드라고니아는 잔소리했다.
쿤토르는 투란의 마음가짐을 따지지 않고 앞장서서 반쯤 달리고, 반쯤 걷는 빠르기로 움직이고 있었다. 투란이 알아서 할 것이라 믿는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검은 표범에 집중하느라 주변을 더 이상 돌보지 않는다는 듯한 낌새도 살짝 풍겨나오고 있었다.
투란은 그런 쿤토르에게서 오르카의 보통 전사, 보통 모그와를 지닌 경우라면 또 어떨까를 가늠하는 채로 뒤따랐다.
어깨높이가 2미터가 넘는 대형 사슴 두 마리.
어지간한 그랑츄랑 키는 비슷해도 더 덩치가 좋아 보이는 잔나비.
기다랗고 시커먼 그림자를 드리워 뱀인가 착각했던 나무 타는 도마뱀.
주먹만 한 크기에 뿔이 무슨 칼날처럼 돋아난 채로 자기네끼리 난투를 벌이던 딱정벌레 한 무리…….
투란은 쿤토르가 검은 표범의 사냥터를 확인하고 질주하며 사냥한 것들을 가만히 헤아려 봤다.
여전히 몬스터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지간한 짐승이나 벌레는 전혀 아니었다.
알드바인의 북쪽 성벽 너머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정말 저것이 마수에도 끼지 못하는, 그냥 짐승과 벌레인가 의심스러운 것들이었다.
그런 것들을 꼬박 하루를 잡으며 오다 보니, 멀리서 벼락 치는 소리가 점점 다가오는 듯했다.
‘착각, 아니지?’
―벼락이 내리치고 있다.
‘마른하늘인데?’
―그래, 먹구름 한 점 없는 마른하늘이지.
‘그러면?’
―뭔가가 벼락을 불러내며 다가오는 거 맞아.
투란은 드라고니아와 이야기하면서 쿤토르를 바라봤다.
이제는 ‘용의 가호’에 관심 없다는 듯, 혹은 그럴 여유가 없다는 듯이 쿤토르는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면서 쉴새 없이 새로 사냥한 것들에게서 뭔가를 쥐어짜 내고 있었다. 검은 표범을 상대하기 위한 도구처럼 보이지만, 뭘 어떻게 하려는 것인가 투란으로서는 짐작도 안 가는 물품이 몇 가지나 되었다.
다른 때라면 무슨 장난감이라도 유물(遺物)로 남기겠다고 만드나 했겠지만, 투란은 쿤토르가 그 물품 하나하나에 말을 거는 꼴을 보며 그런 생각을 얼른 내버릴 수 있었다. 쿤토르가 나무에게 저리 정성껏 말하면 나무가 도구를 쥐어짜 내주니까.
그리고 얼마 후, 쿤토르는 나아가기를 멈췄다.
“여기서, 검은 표범을…… 만난다.”
툭툭, 몸에 걸치고 있던 부자가 되기 위한 짐들을 내려놓으며 하는 말이었다.
투란은 멈칫하다가 쿤토르가 내려놓는 가죽, 이빨, 발톱, 단단한 벌레 껍질 곁으로 가서 서며 물었다.
“검은 표범, 근처에 있어?”
“오고 있다. 기다린다. 걷는 힘도 아껴서 만난다.”
쿤토르의 대답은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줄 같은 긴장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 모습에 투란은 가만히 큰 나무를 골라 등을 기대고 앉았다.
이제부터는 투란이 뭔가 도울 일은 없었다.
쿤토르가 견디고 이겨내야 할 시련이니까. 다만…….
‘가까이 있다가 벼락 맞을 수도 있는 거잖아?’
이런 걱정이 슬그머니 투란의 가슴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글쎄…… 쿤토르가 너한테 열심히 만들어준 가죽옷 상태로 봐서는 빗나간 벼락 정도는 그럭저럭 버틸 것 같다만.
‘어? 이게 마법…… 아니, 모그와의 가죽옷이었냐?’
드라고니아의 말에 신기해하며 투란이 물었다.
―모그와인가는 모르겠다만, 가죽 사이로 흙을 뭉개넣어 놨어. 벼락에 대한 절연성(絶緣性)을 갖추기는 한 셈이야. 아, 벌써 왔나? 벼락은 녀석이 남긴 흔적이었던가…….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검은 표범의 형체가 보였고, 그 꼬리 너머 저편에서 벼락이 뚝 떨어지고 있었다.
콰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