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7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73)
허공이 녹색의 무늬로 칠해졌다.
번개 그물이 녹색과 뒤엉키면서 약해졌다.
날카로운 발톱이 적갈색의 살갗을 긁으며 번개의 잔재를 남겼다.
우람한 주먹이 시커먼 가죽의 볼을 후려갈겼다.
입안이 터진 검은 표범이 으르렁거렸고, 스쳐간 발톱에 등짝이 찢어진 쿤토르가 함성을 질렀다.
투란은 그 격렬함 속에 드러난 기괴한 현상에 주목했다.
‘모그와……? 번개를 들이마셨어? 아, 앞발 피해 더 깊이 뛰어들었어도 등짝은 긁혔는데…… 발톱이 번개를 머금은 거야, 아니면 번개를 부른 거야? 헷갈리잖아! 대체 저 녀석이 왜 몬스터가 아니고 마수인 건데!’
벼락을 부르고 번개를 펼쳐내는 시커먼 가죽의 표범은 꽤 매혹적이었다.
노란 눈동자는 마치 황금을 녹여 부은 듯했고, 시커먼 털가죽은 어둠을 머금은 그림자가 꿈틀거리는 모양이었다.
그런 마수에 대적하는 쿤토르는 적갈색의 바위 같았고, 완강(頑强)했다.
상처를 돌보지 않는 자세였으나 자신의 힘을 위축시킬 수 있는 치명상은 모조리 피해내는 전사의 모습이 또렷했다. 치명상이 아니더라도 저런 상처라면 꽤 아플 텐데…….
콰득! 우지끈.
굵직한 나무가 검은 표범에 맞아 부러졌다.
쿤토르가 계속해서 파고들어 뒷다리를 잡고 휘둘러 버린 때문이었다.
몽둥이가 된 검은 표범은 갸르릉거리며 이전과 다른 억울함을 토하는 시늉을 하더니, 입으로 벼락을 뿜어냈다!
그 번쩍하는 순간보다 먼저 쿤토르는 검은 표범을 잡았던 손을 놓으며 옆으로 구르고 있었다. 이제까지 격투 속에서 없던 표범의 재주였지만, 어떻게 낌새를 눈치채고 먼저 움직인 모습이었다.
그리고 투란은 맹하니 자신에게 날아드는 벼락을 바라만 봤다!
‘야, 이 썩을…….’
치이익, 투웅.
바람에 그슬리고 타는 소리가 나면서 허공이 둔탁하게 울리며 벼락을 흩어버렸다.
―정신 좀 차리지?
드라고니아가 툴툴거렸다.
‘용의 가호 좋구나!’
투란은 딴소리를 해버렸다.
드라고니아가 윌 라이트의 마력으로 에어로를 재빠르게 둘러쳐서 벼락을 무효화한 광경이었다. 쿤토르가 읊조리는 ‘용의 가호’란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라 볼 수 있기는 했다.
어이없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말문이 막힌 시늉을 할 때, 투란은 검은 표범이 금색 눈동자로 자신을 한번 쏘아보더니 바로 몸을 돌려 튀는 꼴을 봤다. 쿤토르는 막 몇 미터 굴러간 자리에서 일어서는 중이었다.
문득 자신이 방해한 꼴이 되었나 싶어 투란이 쿤토르를 보고 어색하게 웃는 표정을 짓는데, 쿤토르가 풀썩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쿨럭거리고 있었다.
“어? 쿤토르, 다쳤어?”
투란이 다가가며 물었다.
“물을 마셔야 한다.”
거친 숨결로 쿤토르가 말했다.
곧바로 투란이 물주머니를 건네줬다.
이전과 달리 쿤토르는 손으로 물주머니를 잡고 제대로 마시고 있었다. 그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기는 했지만.
투란은 가만히 지켜보다가 쿤토르의 숨결이 조금 진정되자마자 묻는다.
“쉴 거야? 쫓을 거야?”
“쫓는다, 모그와가 더 강해졌다.”
“어, 그래.”
뭔 소리냐고 따져 묻기를 포기하고 투란은 그냥 사슴고기 한 묶음을 내밀어줬다.
쿤토르가 알뜰하게 여러 묶음으로 나눠놨던 사슴고기는 아직도 며칠은 버틸 수 있을 정도였다. 한 끼에 사슴 한 마리를 통으로 씹어먹는 짓만 하지 않는다면, 여유로운 셈이었다.
으적거리면서 거칠게 사슴고기를 뜯어먹고, 숨을 몰아쉬고 하던 쿤토르는 천천히 일어서면서 몸을 추스르는 채로 걷기 시작했다. 파르르 떨리던 손발이 어느 정도 진정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번개의 여력에 조금씩 온몸이 찌릿거리는 모습이 훤히 드러난 채였다.
투란은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냥 쿤토르의 뒤를 쫓았다.
검은 표범이 이번에는 나무를 타지 않고 숲의 샛길을 따라 움직인 듯, 가는 길은 잔풀과 이끼가 눕고 긁힌 채로 제법 걷고 뛰기 좋게 다듬어져 있었다. 그리 많은 발걸음이 닿은 것 같지는 않지만, 주변과 비교하면 꽤 편안한 길이었다.
이번에는 쿤토르도 빨리 갈 생각이 없었던 듯, 차분히 조금 빠른 걸음으로 신중하게 나아갔다.
투란이 재촉할 까닭은 없었다.
검은 표범이 선행하며 무슨 포악을 떨기라도 한 듯, 중간에 끼어들어 가로막는 맹수는 없었다.
기묘하게 고요한 숲의 산보가 되는 듯한 상황.
그렇게 두어 시간이 흘러갔다.
숲의 한편이 텅 빈 듯한 빈터가 쿤토르와 투란을 맞이했다.
수십 미터의 폭을 지닌 빈터의 한복판에 검은 표범이 길게 몸을 펴고 누워 있었다. 숨을 고르게 쉬며 누운 그 꼴이 그야말로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편히 쉬는 자세였다.
투란은 빈터의 상황을 둘러봤고, 번개와 벼락이 난무하며 만들어낸 자리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꽤 시간이 흘렀는지, 검게 탄 흔적을 지우는 듯한 새싹이 가득 돋아나서 채우고 있는 풍경은 풀잎으로 이뤄진 커다란 침상 노릇도 겸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저놈, 잠자리에 난입하는 기분인데?’
투란은 쿤토르가 후욱 숨을 세게 들이쉬고 내쉬면서 송곳니 사이로 새는 소리를 흘리며 검은 표범을 향해 다가가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꽤 엉뚱한 생각인가 싶었는데,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검은 표범의 모습은 정말로 잠이 깨서 손님을 맞이하는 것처럼 보여서 투란에게 묘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끝장을 보려는 것 같다만…… 쿤토르가 죽을 수도 있어.
드라고니아가 벼락을 다루는 마수와 전사의 시련을 마무리 지으려는 쿤토르를 가늠하다가 불쑥 말했다.
‘글쎄…… 끼어든다고 좋아할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투란은 빈터에 발을 딛지 않고, 벽처럼 둘러쳐진 나무에 몸을 기대면서 소리 없이 대꾸했다. 아무래도 이 빈터의 생김새가 한 걸음 더 들어가면 검은 표범이 휘몰아치는 벼락의 간격 안인 듯싶으니 미리 피하는 태도였다.
―오르카 켈카르의 전사라면 당연히 싫어하겠지. 하지만 넌 인간이잖아? 이럴 때 여행의 동반자를 방치할까 말까를 고르라면, 구한다 쪽이잖아?
드라고니아가 살짝 심술궂은 말투로 묻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입술을 삐죽이면서 투란은 쿤토르와 검은 표범의 상황에 집중하는 시늉을 했다. 마음속으로는 쿤토르가 죽을 듯하면 구해야 하나, 아니면 여전히 뭔지 모를 그 고대주술 ‘모그와’로 어떻게 하겠거니 믿고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가 전혀 결정하지 못한 채로!
이런 구경꾼 투란의 갈등을 한 방에 날려 보내겠다는 듯, 검은 표범이 어깨를 들썩였고 바로 연잇는 천둥소리가 아스라이 빈터를 울리면서 쿤토르를 맞이하고 있었다.
콰릉, 쿠르릉.
“모그와아앗!”
가슴을 두드리면서 쿤토르가 함성을 질렀다.
녹색 무늬가 쿤토르의 드러난 몸, 살갗을 누비고 번지며 꿈틀거렸지만 가슴을 두드리는 소리는 빈터에 찾아드는 벼락의 광채가 뿌리는 은은한 천둥소리에 파묻혀 버릴 뿐이었다. 그나마 내지른 함성이 들린 것이 오히려 신기한 상황이었다.
쿠르릉.
허공을 두드리는 천둥이 조금 더 요란하게 번졌다.
검은 표범은 느릿하니 쿤토르와 간격을 재듯 빈터를 맴돌며 걷기 시작했다. 은근히 투란을 흘깃하며 멀어지려는 낌새가 엿보이는 자세였다. 아무래도 멀뚱히 서 있는 채로 자신이 내뿜은 번개를 흩어버린 모습을 인상 깊게 기억한다는 듯.
쿤토르는 거기에 발을 맞추듯, 힘을 가득 담은 걸음을 내디디면서 표범을 향해 다가갔다. 비어 있는 두 손을 한껏 펼치며 이번에는 송곳니 단도를 쥘 생각도 없다는 것처럼, 그대로 검은 표범을 억센 두 손만으로 움켜잡겠다는 듯한 자세였다.
그리고 잠시 둘은 서로를 가늠하는 데 집중했다.
콰르릉!
‘그와아앗!”
빈터를 채우는 벼락, 난무하는 번개를 두른 채로 검은 표범이 쏜살같이 쿤토르를 향해 뛰었고,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는 쿤토르가 거기에 맞서며 돌격했다.
이제는 투란에게도 익숙해진 녹색이 다시 허공을 물들이는데, 새하얀 발톱이 녹색 허공을 찢어발기면서 쿤토르를 함께 찢기 위해 사납게 휘둘러지고 있었다. 그 궤도에서 피해낸 쿤토르가 머리로 검은 표범의 가슴팍을 들이박으며 두 손으로 그 목을 휘감아 매달렸고, 빈터를 휘몰아치는 벼락이 그 주변을 둘러쳤다.
어느새 벼락이 내리치며 이뤄진 섬광의 담장이 투란의 시야를 가로막았다.
고함과 포효, 누가 맹수이고 누가 사냥꾼인가 알 수 없는 소리가 저편에서 울리는 듯한데 쉴 새 없이 울려대는 벼락 담장의 천둥소리가 시야와 함께 그 또한 막아버리는 듯했다.
‘야, 이래서는 손댈 수가 없잖아?’
뚱하니 투란이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그렇군, 이건 예상 못 했는데…….
드라고니아도 쓴웃음을 띤 듯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억지로 투란이 손대려 한다면 당장 이 벼락의 담장을 찢고 들어가 한참 난투를 벌이는 오르카의 예비 전사와 마수 사이로 끼어들어 둘을 갈라놔야 할 참이었다. 적당한 때를 노리고 끼어드는 것은 이제 가능하지 않은 상황인 것.
투란은 그냥 귀를 기울이고 눈을 떼지 않으며 나무에 기댄 채로 아예 팔짱까지 끼어버렸다. 드라고니아가 그런 태도에 바로 짙은 쓴웃음을 담아 말한다.
―죽든 살든 상관없는 거냐?
‘어, 설마 죽기야 하겠어? 쿤토르, 말투 빼고는 거의 최상급 사냥꾼이라 할 만하잖아?’
―오르카란 종족이 좀 그렇기는 하지.
‘그럼, 그냥 보는 거지 뭐.’
그렇게 투란이 구경하는 사이, 격렬한 만큼 가진 힘을 다 쏟아 넣은 피 흘리는 결투가 매듭을 짓는 듯했다.
화아앗, 휘리링.
번개가 퍼져나가면서 돌풍이 거센 소리를 흘려냈고, 벼락이 담장이 걷히면서 쿤토르가 검은 표범 등짝에 달라붙어 목을 조르는 광경이 훤히 드러났다.
얼핏 보면 검은 표범을 엎어 쓰러뜨리고 올라탄 듯했지만, 네 다리를 웅크린 채로 완전히 엎어지지 않고 배를 띄운 채로 그르렁거리는 검은 표범은 아직 완전하게 제압되지 않았다.
오히려 올라탄 두 다리가 쉴 새 없이 흔들거리며 표범의 등짝을 제대로 조이지 못하는 쿤토르가 먼저 힘이 다 빠져나간 모습이었다. 남은 힘을 전부 쏟아부어 표범의 목을 조르는 것이 그야말로 유일한 희망인 것처럼 보이는데…….
―모그와, 성공한 건가?
드라고니아가 불쑥 말했다.
투란도 그 의미를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쿤토르의 몸에 들러붙어 있던 녹색의 무늬가 어느 틈에 검은 표범의 등짝으로, 앞뒤 다리의 시커먼 털가죽 위로 은은하게 번져 있었다. 완전히 물들이지는 못한 꼴이었지만, 그 시커먼 색채에 살짝 튕겨나오는 여린 빛깔이라 바로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녹색의 무늬는 검은 표범에게 번져 있는 채였다.
‘성공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
투란이 팔짱을 풀고 조심스럽게 나무에 기댄 몸을 떼어내면서,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또 다른 돌발 상황에 대비하면서 물었다.
―글쎄? 워낙 이놈 모그와랑 저놈 모그와가 다르니까. 어쩌려나?
매우 무책임한 대답을 하는 드라고니아의 말투가 굉장히 냉소적이다!
투란은 이를 ‘몰라!’라고 알아듣고 가만히 쿤토르를, 검은 표범을 지켜봤다.
번개와 벼락의 잔재가 희미하게 사라져 갔고, 모처럼 다시 돋아났던 빈터의 풀잎들이 검게 그을리거나 허옇게 바스러지는 광경이 또렷해졌다.
쿤토르와 검은 표범의 상처도 그을리고 피맺힌 모양을 겨우 드러내는 듯이 보였다.
크륵, 그르르…….
검은 표범이 앞발을 꺾고 땅에 코를 쑤셔박듯이 엎어졌다.
목을 조르고 있던 쿤토르의 몸이 그대로 공중에서 거꾸로 돌면서 등짝부터 땅에 처박혔다.
‘실패?’
―모르겠다.
투란이 의아해했고, 드라고니아는 어떤 판정도 내릴 수 없는 것이 답답한 듯이 대꾸했다.
잠시 쿤토르와 검은 표범이 꿈쩍도 않았다.
기묘한 고요가 맴도는 사이, 녹색이 허공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나기 시작했다.
쿤토르가 그 녹색의 아지랑이와 호응하듯 꿈틀거리면서 몸을 돌려 일어나고 있었다. 검은 표범은 그대로 헐떡거리는 채로 고개만 돌려 숨구멍만 다시 터놓는 중이었다.
쿤토르도 완전히 일어서기는 무리였던 듯, 무릎걸음으로 두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검은 표범에게 다시 다가가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다가가서 쿤토르가 두 손으로 검은 표범의 머리를 짚을 때, 쿤토르의 몸을 가득 채웠던 녹색의 문신이 모조리 그 두 손에 몰려들며 꿈틀거렸다.
덕분에 쿤토르의 맨살, 적갈색의 살갗이 힘줄과 핏줄을 보랏빛으로 돋아내는 것이 아주 또렷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투란이 흠칫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아주 짧은 순간, 검은 표범이 녹색의 광채로 변해 사라졌다!
쿤토르의 손에 몰려 있던 녹색이 번개처럼 다시 팔뚝을 타고 어깨로 몰리며 그 무늬를 싹 바꿔버렸다.
―성공한 모양인데?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