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81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77)
끼에에에, 캬악!
괴성과 함께 마이너 와이번이 허공에서 날개와 꼬리가 뒤엉긴 채로 오그라드는 것처럼 보였다. 쏘아진 그물에 걸려서 조여진 탓이었다. 그 와중에 긴 목을 움츠리고 쇠뇌살을 녹였던 것을 다시 토하는 시늉을 하고 있는데, 그물은 쇠뇌살처럼 녹지 않고 마이너 와이번을 더욱 억세게 조일 뿐이었다.
‘헤에? 녹지 않게 처리된 거였나?’
문득 투란은 마음이 시원해졌다는 것을 느끼면서, 루곤의 성채와 마이너 와이번 사이의 싸움을 편안하게 자신이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처럼 싸움 구경을 하다 보니 쿤토르와 여행하면서 쌓인 여러 가지 답답함과 불만히 확 풀린 모양이었다.
쿠웅.
성채 한 귀퉁이에 부딪히는가 싶었던 마이너 와이번이 성벽을 타고 구르면서 우거진 수풀 사이로 떨어졌다.
시야에서 그 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투란은 재빨리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갔고, 프로브를 은폐시켜 그 방향으로 보냈다.
‘와, 숲이 마을이랑 엮여 있네?’
마이너 와이번이 추락한 근처의 풍경은 투란이 기대하지 못한 것이었다.
높은 절벽에 성채가 들러붙은 듯한 모양만큼이나 희한하게 루곤 시가(市街)는 숲과 엮인 채로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 덕분에 마이너 와이번은 숲이면서도 숲이 아닌 인간의 도시 한구석에 떨어진 꼴이었다.
그리고 도시의 인간 중 경비를 맡은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그물에 휘감겨 뭉쳐버린 몰골인 마이너 와이번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는데…….
‘뭔 무장(武裝)을 전부 나무로 한 거지?’
그들은 쇠붙이로 날을 세운 것이 아닌 나무 몽둥이를 들고 있었고, 입고 있는 갑주 또한 투박하게 통나무를 썰어 몸에 붙인 모습이었다. 저런 몰골로 쇠를 녹이는 토사물을 뿜어내는 몬스터랑 어떻게 다퉈보려는 것인가?
투란의 의문은 금방 답을 얻었다.
그물 안에서 목을 한껏 구기고 젖히며 난리를 떨던 마이너 와이번의 입이 결국 열려서 다가서서 몽둥이질을 해대는 이들 몇을 겨냥했고, 우엑거리는 목젖울림과 함께 토사물을 뿜어냈다.
한데 그 결과는 매우 괴이했으니, 그들이 몸에 두른 나무 갑주가 쇠처럼 녹거나 으스러지는 낌새 대신에 그 토사물을 쭉쭉 빨아들이면서 번들거리더니 그걸로 끝이었다.
‘뭐냐, 저거 나무 아니었어?’
어이없어 웅얼거리면서도 투란은 더욱 자세히 지켜봤다.
갑주처럼 토사물을 뒤집어쓴 몽둥이가 한층 더 번들거리면서 그물 속의 마이너 와이번을 쥐어 팼고, 그 효과는 느리지만 분명하게 드러났다.
께에엑, 께에에…….
질러대던 소리가 점차 잦아들었고 눅신하게 처맞은 마이너 와이번이 그물을 밀쳐내던 힘이 점차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쇠를 대신한 나무 몽둥이였지만 굉장히 튼튼해서 그물 속의 몬스터 한 마리 정도는 확실히 쳐 죽일 수 있었다고 증명하는 광경이었다.
―흠, 다른 곳에서는 못 본 나무 품종인데? 이곳 특산물이겠군.
‘아, 그래. 근데 저 녀석 정도면 충분히 그냥 와이번이라 불러도 되는 거 아냐? 굳이 마이너라고 어쩌고 할 것 없잖아? 작은 품종 와이번이면 대강 저거랑 비슷할 것 같은데 말이지.’
조금 뚱한 기분이 된 투란이 엉뚱한 말을 했다.
―크기나 체격이 아니고, 몬스터의 특성이 거의 사라진 품종이라 그렇다니까. 그중에서 저기 죽어가는 녀석은 다시 몬스터의 특성이 살아난 경우라고.
드라고니아도 뚱한 말투로 대꾸하고 있었다.
그사이에 저편에서는 늘어진 마이너 와이번의 머리가 깨지고 으스러졌다.
뿔은 꽤 튼튼했었는지 두개골이 갈라지고 가죽이 뭉개지는 와중에도 번들거리며 꼿꼿한 꼴이 왠지 스산해 보였다.
투란은 나무 위에 걸터앉으며 쿤토르가 떠나기 전에 잡아준 자리, 루곤 성채 도시를 거의 둘러볼 수 있는 위치에서도 높은 나무를 차지한 이점을 살리겠다는 듯이 주욱 둘러봤다.
조금 전까지 그냥 숲이겠거니 했던 나무와 나무 사이, 몇 미터 지름의 나무 한편을 통으로 파내서 집을 꾸민 곳이 많았고 통나무를 둘러 벽을 친 다음에 다시 넝쿨로 덮어 수풀 더미로 꾸며놓은 곳이 대부분이었다.
‘어째 샤오 마을이랑 닮았네.’
문득 저 분위기가 낯익다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피식 웃고 말았다.
성채 아래의 숲과 엮인 도시, 저 마을이 아무리 커다랗다 해도 절벽에 콱 처박힌 채로 내려다보는 루곤 성채…… 왕국의 중심은 샤오콴 마을과 전혀 다른 루곤 왕국의 분위기를 장악하는 풍경이었다.
―어쩔 거냐? 쿤토르의 말에 따르면 저 절벽을 오르는 지름길은 성벽 안에 숨겨져 있다고 했잖아. 그냥 날아오르면 아무래도 마이너 와이번의 둥지를 만날 테고, 오해받으면 성채의 공격도 받을 수도 있어. 성벽 안에 들어가서 허가받을 방법은 있는 거냐?
드라고니아가 보채듯이 묻고 있었다.
투란은 잠시 생각해야 했다.
오는 동안 쿤토르가 ‘눈보라의 높은 산’이라 부른 곳이 바로 저 절벽 위, 루곤 왕국과 찰싹 들러붙었지만 그 영토는 결코 아닌 영역이었다. 대삼림에서 멀리 보이는 풍경만으로도 항상 허연 구름과 눈보라가 가득 채워진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아예 그런 이름도 붙어 있다 했고…… 무엇보다 절벽의 경로를 통하지 않으면 웬만한 괴조(怪鳥)라도 ‘논부라의 높은 산’을 오를 수 없다고 했다.
“저주라고 주술사들이 말했다, 높은 산에는 저주가 있어서 사나운 새들도 꺼린다고 말이다.
쿤토르가 이렇게 말했을 때, 투란은 문득 벼락을 휘둘러대던 검은 표범조차도 ‘맹수’라고 했던 것을 기억해냈고 구체적으로 사나운 새가 어떻게 생겼느냐고 물어봤다. 그 결과 오르카의 전사, 사냥꾼이 ‘사납다’라고 말하는 새는 모두 마수라고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간간이 그 마수 사이에 괴수, 몬스터라 분류되는 것도 끼어 있다는 것까지!
그러니 웬만하면 절벽의 경로, 절벽 타고 올라가는 방향을 고르는 편이 귀찮은 일을 겪지 않는 지름길.
‘왕국의 깊은 곳에 감춰진 지름길이라…… 왕자님인 키린이었다면 그냥 보내줬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아니잖아? 아, 정말 쿤토르 말대로 왕이었다면 모르겠는데…… 저주받은 곳으로 문을 활짝 열어주진 않을 거야. 분명히 말이지.’
―그러면 절벽 타고 오를 거냐? 뭐, 북벽보다는 낮아 보이기는 한다만…….
드라고니아가 투란이 쿤토르를 끌고 올랐던 북벽과 높이를 비교할 때, 투란은 고개를 미묘하게 저었다.
‘아니, 지름길을 찾아볼 거야. 성채 안, 절벽 속의 지름길이 뭔가 궁금하잖아. 허락이야 못 받겠지만…… 프로브 들키지 않게 잘 해달라고.’
투란이 나름대로 히죽 웃으며 소리 없이 하는 말은 드라고니아를 어리둥절하게 한 모양이었다.
―이 근방에서 프로브의 은폐를 탐지할 만한 마법의 흔적은 없어. 그러니까 프로브가 들킬 일은 없다만…… 넌 어떻게 숨어들려…… 기게이아?
말하는 사이, 투란이 기게이아의 반지를 꺼내고 있었다.
‘조심하면 들킬 일 없을 거야.’
반지를 손가락에 끼우며, 한번 더 히죽 웃는 채로 투란이 말했다.
그 말처럼 소리를 내지 않고, 나뭇잎의 흔들림조차 죽이면서 투란은 루곤 왕국의 수림을 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곧바로 성채를 향해서, 그 성벽을 오를 작정을 하고!
몇 그루의 나무를 건너가니, 금방 나무 사이에서 주변을 감시하는 경계병의 낌새가 엿보였다.
투란은 바로 엄지로 반지를 긁었다.
반지가 금방 투란을 투명하게 감췄다.
조금 기묘해진 시각 속에서 투란은 슬쩍 경계병 가까이 다가갔다.
어느새 변해버린 드라고의 발은 부드럽게 나무를 움켜쥐었고, 경계병이 높은 나무에 설치된 망루에서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잘 보이는 자리로…… 보통의 경우라면 거의 눈이 마주칠 자리로 투란이 옮겨갔다. 곧 한 손으로 나뭇가지를 잡고 몸을 대롱대롱 늘어뜨린 꼴로 투란은 경계병을 바라봤다.
‘음, 역시 못 보는군! 부딪힐 일도 없고!’
투란으로서는 눈이 마주쳤지만 경계병은 투란을 봤다는 시늉조차 안 하고 다른 곳으로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망루 한편에 화살통을 내려놓았지만, 활 한 자루와 화살 한 개비는 한 손에 든 채로 다른 손에 든 물통은 입에 대는 경계병의 자세가 굉장히 성실했다.
투란은 살짝 드라고의 형상인 손에 힘을 줬고, 잡고 있는 나뭇가지의 움직임을 줄인 채로 저편으로 쏘아진 화살처럼 날아갔다.
‘벡터 칼크, 잘했지?’
날아가며 몇 개의 나무를 더 잡고 밟고 움직이다가 투란이 으스대며 말했다.
―그래, 잘하고 있다.
기분 나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당기고 놓아버리는 반동, 그것을 적절히 조절해서 나뭇가지가 바람에 자연스럽게 흔들리는 자취만 남긴 채로 움직이는 까닭이 바로 드라고니아가 알려준 드라코눔의 벡터 칼크의 결과이니까.
그렇게 투란은 루곤 왕국의 숲, 도시를 가로질렀고 곧바로 그 성채에 이르렀다.
절벽처럼 높이 수십 미터를 치솟은 성채의 벽은 곳곳에 팬 홈 같은 구멍이 뚫려 있었고, 가끔 그 구멍으로 삐죽하게 발리스타에 장전된 화살…… 창끝이라 하는 편이 더 어울리는 촉을 내밀고 있었다.
―야, 손대지 마라.
‘뭐?’
갑작스런 드라고니아의 말에 투란은 몸을 멈췄다.
막 성벽에 손을 대고 튀어 오르려던 참이었다.
―알람이 걸려 있어. 누군지 모르지만, 수준 낮은 대신에 굉장히 부지런한 마법사가 있는 모양이다. 이 정도 성채 전부를 저런 수준의 마법으로 경계하려면 거의 매일 주문을 갱신해놔야 할 텐데…… 아무튼 아무 데나 막 손대면 바로 알람이 발동해서 널 침입자라고 칠해줄 거야.
‘칠을 해?’
―그래, 이 성벽에 보이지 않는 뭔가가 들러붙었다 싶으면 그 동작을 감지해서 눈에 보이도록 물감을 확 뿌린다는 말이야.
‘그건 보통 때 네가 말하는 원시적인 대응 아니냐?’
―맞아. 게다가 기게이아의 반지에는 먹히지 않는 대응이기도 하지. 칠해봐야 칠과 함께 투명해질 테니까. 하지만 알람의 경보음이 울릴 테고, 눈에 보이지도 않고 칠했는데도 알 수 없는 뭔가가 있다 하면 장난 아니게 시끄러울걸?
‘음, 그건 피해야지. 그래서, 손대도 되는 곳은?’
―십여 미터 간격으로 틈이 있다. 구멍의 위치로 봐서는, 최대한 주문의 범위를 넓히려고 애쓴 모양이다만…… 드라고의 도약력이라면 성벽 위까지 쉽게 갈 수 있어. 잘 딛고 잡고 하면 말이야.
‘그래, 잘 딛고 잡을 자리를 알려달라고!’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맨 눈에 보이는 시야의 뒤틀림과 프로브로부터 받는 시야의 멀쩡함을 교차시키면서 투란이 으르렁거렸다.
―표시했다.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시야 속에 반짝임을 투영했다.
성채 곳곳에 반짝거리는 자리가 보였고, 투란은 바로 뛰어올랐다.
드라고의 튼튼한 손발은 투란이 십여 미터 간격을 훌쩍훌쩍 건너뛰게 했고 어렵지 않게 루곤의 성채 위로 올라서게 했는데…….
‘아읏, 머리 박을 뻔했네!’
올라서자마자 떡하니 자신을 겨냥한 듯 놓인 발리스타를 보며 투란은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건 드라고니아가 미리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안 박았잖아. 그런데, 이거 시각적으로 은폐된 채네? 투란, 이 무기도 투명화된 것인데 보이냐?
‘뭐? 투명하다고? 그냥 보이는데?’
―프로브의 시각을 확인해봐. 정상적인 가시 범위에서는 벗어나 있잖아.
‘어, 그러네? 하지만 내 눈에는 보이잖아? 너도 보잖아?’
―그렇지, 기게이아 반지 때문인가? 달리 생각할 수가 없기는 하다만…… 그 반지가 남의 투명화까지 꿰뚫어보게 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어이없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중얼거렸다.
투란은 가만히 발리스타의 겨냥을 피해 서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보다 보니 문득 알 수 있었다.
성벽 위에 배치된 발리스타, 그 중 몇몇이 다른 것과 달리 보이고 있었다.
살짝 뒤틀린 투란의 시야 속에서 다른 것보다 선명함을 과시하는 듯한 모양.
프로브의 시각을 일상 기준으로 맞춰 보니, 그 선명한 것들이 놓인 자리는 비어있는 상태!
‘알람은 죽자고 힘들게 걸어놨다면서? 투명하게 하는 마법이 이렇게 유지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잖아?’
―까다롭지, 몬스터의 시각에서 숨길 목적이니 한층 더 어렵고 말이야. 흠, 아무래도 안쪽 지름길까지는 더 조심해야 할 것 같은데?
‘아, 그렇겠다. 프로브를 먼저 움직여봐. 이 성 안 어디에 절벽 오르는 지름길이 있는가 먼저 좀 알아내보자고. 들키지 않게 조심해. 갑자기 무슨 대마도사가 튀어나올지도 모르잖아?’
―안 들켜. 대마도사는 이 주변에 없어!
툴툴거리면서 드라고니아가 프로브를 여럿 구성하고 주변으로 퍼뜨렸다.
투란은 투명한 발리스타에서 조금 거리를 둔 채로 루곤 왕국의 성벽 아래를, 그저 산자락의 숲으로 보이는 도시와 성 안의 단정한 건축물들을 둘러봤다.
‘여차하면 밖의 사람들 안으로 숨길 수도 있는 건가?’
은근히 규모가 큰 성벽 안의 풍경은 투란에게 이런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