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83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79)
가장 먼저 분명해진 것은 이 기묘한 제단 위에서 프로브가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여전히 둥실거리며 주변을 탐지하고 있지만, 놀랍게도 제단에서의 변화는 전혀 없다는 듯이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중이니까!
―이게 대체……!
드라고니아는 당황했다.
투란은 한층 더 언짢을 수밖에 없었다.
욱신거리며 몸을 조여 오는 느낌, 단순한 마법이 아니고 뭔가 보다 깊이 투란을 건드려 오는 것이 있었으니…….
‘이게 내 문장을 건드리는 건가?’
겨우 알 수 있는 부분이라고는 제단에서 확산되어 나오는 이상한 마법이 몬스터 엠블럼을 더듬는다는 것뿐이었다.
단순히 몸을 더듬고 침식해 들어온다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이는 보다 근원적으로 투란의 심기를 흔드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문장까지 파고드는 마법이라니, 이런 것은 지금까지…….
‘없지는 않았지?’
투란은 낯을 구기면서 숨을 골랐다.
황금매의 문장이 가슴에 처음 자리 잡았을 때를 떠올린 탓이었다.
뭐가 뭔지 몰라서 어리둥절해 하다가 한참을 헤맸다.
지금 상황이 그때와 다르겠지만, 그때처럼 영문도 모르는 채로 기괴한 봉변을 당할 수는 없잖은가!
그래서 투란이 ‘악마의 심장’을 보다 강화시키면서 온몸에 퍼뜨리고 고유마력을 바탕으로 오러를 일으키려고 하는데…….
‘어라? 으앗, 잘못한 건가!’
반원의 벽에 떠오른 형상은 어딘가 익숙했고, 그 낯익음을 이용이라도 하는 것처럼 ‘천칭’을 파고들며 덮어 누르려 하고 있었다.
그 기묘한 마법의 문양이 선명하게 투란의 눈동자에 새겨지듯 비춰지면서 드라고니아가 아까보다 더 당황하고 놀란 듯한 외침을 터뜨린다.
―뭐야, 이거! 몬스터 엠블럼이잖아! 어떻게 몬스터 엠블럼을!
이 끝맺지 못한 말에 투란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제단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가.
‘문장을 덮어씌워……?’
한 번 겪었던 일이기에 확신할 수 있는 투란이었다.
제단은 마치 스크롤이 저장한 마법을 시전하는 것처럼 몬스터 엠블럼을 투란에게 새겨 넣으려 하고 있었다. 이미 문장을 지닌 몬스터 로드이든 말든,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덧씌워버려 하는 것!
투란은 고유마력으로도 오러로도 이에 저항할 수 없는 상태였다.
제단의 마법이 투란의 ‘천칭’을 짓누르며 억압하고 있었으니까!
이대로라면 황금매의 문장이 전이될 때처럼 투란은 가슴팍에 새로운 문장을 새겨 넣는 꼴이 될 듯했다. 그러나.
‘심연의 각인까지 있어?’
세란드에게서 투란에게 전이되었던 황금매의 문장은 ‘심연의 각인’이 누락된 불완전한 문장이었다. 그 때문에 ‘천칭’이 간직한 ‘심연의 각인’을 받아들여 공유(公有)하는 형태로 완성되었다. 덕분에 투란은 문장 속의 심연을 건너 ‘천칭’과 황금매 사이를 오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데 제단이 새기려는 문장은 완전한 것이었다.
‘심연의 각인’조차 눌러 덮어씌워 완전한 새로운 문장을 투란에게 새기려 들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황금매와 같은 결과가 나온다고 단정 지을 수가 없었다.
두 가지 문장 사이를 건너는 통로가 되는 ‘심연’조차 새로운 것으로 갈아치워진다면, 과연 문장 사이를 건너는 일이 가능할까? ‘심연’ 하나를 공유하는 와중에도 완전히 별개로 두 문장이 작용하고 있는데?
생각이 여기에 이른 투란은 본능적으로 그 답을 느꼈다.
안 돼……라고.
마치 ‘천칭’ 속의 ‘심연’이 알려주는 듯한 기묘한 느낌이었다.
하나의 영혼(靈魂)에는 오직 하나의 심연(深淵)만이 존재한다고 본능에 호소하는 듯한 기괴한 기분…….
제단에서 흘러나오는 괴이한 힘이 쉬지 않고 심연 속으로 ‘천칭’을 구겨 넣으려는 듯한 압박…….
이제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한꺼번에 짓뭉개서 투란을 완전한 초보 몬스터 로드로 되돌리겠다는 듯한 그 ‘힘’의 흐름…….
‘정말 별 괴상한 꼴을 다 겪는구나!’
허탈하고 어이없어서 투란은 정신줄을 놔버릴까 하는 심정을 살짝 느낄 지경이었다.
그런데 투란이 이리 복잡한 심경에 곤혹스러운 것보다 더 혼란스러워하며 드라고니아가 외쳐대고 있었다.
―몬스터 엠블럼을 어떻게 스크롤에 담을 수가 있지? 그런 건 까마득한 고대에 완전히 잊혔다면서! 그림 투아란의 드래곤이나 문장에 손댈 수 있다면서!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내버려진 제단에다가 대체 누가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느냐고오오! 불가능하다면서어어!
‘뭐라는 거냐, 지금…….’
뭔가 관련이 있는 듯하면서도 전혀 도움이 될 부분이 없는 듯한 한탄하는 외침이었다. 하지만 투란은 이 외침을 통해 드라고니아가 마치 굉장히 한가해서 엉뚱한 소리를 한다는 기분을 느낄 수가 있었다.
너무나도 이 상황에서 멀어진 듯한 조그맣고 작은 기분…….
이 작고 작은 마음가짐이 자신의 ‘천칭’이 먹혀들어가는 것에 당황스러워하는 투란에게 작은 여유를 느끼게 해줬다. 이제까지 몬스터를 사냥하고 그 정수를 삼켜왔는데, 그 모든 것을 제단의 문장에게 짓밟히고 먹혀버리는 것으로 끝나는가 하는 한탄…… 드라고니아가 한탄하니 엉겁결에 함께 넋두리하는 꼴이나 마찬가지잖은가?
몬스터의 형상을 형성하는 것이 불가능해졌고, 오러조차 희미하게 사그라들면서 자신이 지닌 모든 저항력이 지워지는 듯한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투란은 이를 악물었다.
‘그냥 당해줄 것 같냐!’
자신을 향한 외침, ‘천칭’을 울리는 각오였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보겠다고 투란이 의지를 다지는 그 순간, 희미한 오러 한 가닥이 뱀처럼 일어나며 투란의 뒷목에 꽂혀들었다. 자신의 오러인데도 마치 전혀 다른 의지, 다른 마음을 지닌 것처럼 꽂혀온 꼬챙이처럼 머리를 관통하며 투란에게 묻는 듯했다.
잡아먹힐 것이냐, 잡아먹을 것이냐.
‘잡아먹겠어!’
각오를 스스로를 향해 외친 순간, 투란은 억눌린 문장 속에 쌓아온 모든 몬스터의 정수가 한꺼번에 자신을 향해 포효하는 소리를 들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제단이 흘려내는 문장을 억누르며 덧씌우려는 ‘힘’…… 새로운 심연을 향해 투란은 자신의 ‘심연’을 활짝 열었다.
다른 뱀을 잡아먹기 위해 더 크게 입을 열고 내닫는 뱀처럼!
‘심연’이 크게 열리며 ‘천칭’을 보석처럼 응축시키는 광경이 투란의 마음에 그려졌다. 보석인 ‘천칭’은 깊은 연못 위에 둥실거리며 ‘심연’을 떠다니고 제단에서 흘러나와 투란을 덮치려는 ‘힘’은 모두 ‘심연’ 안으로 구겨넣는다…… 투란은 이를 마음속에 그리고 또 그리며 자신의 문장을 ‘심연’ 위에 걸었다.
투란이 이렇게 집중한 사이, 제단의 반원형 벽은 수평으로 나눠지며 제단의 원형 테두리를 따라 움직였다. 토막 난 벽이 완전한 원이 되었고 양각, 음각된 무늬들이 새롭게 호응하며 제단 전체가 커다란 구형(球形)의 장막을 머금었다.
둥그런 거품 속에서 투란이 둥실거리며 떠올랐다.
몸 밖의 이런 변화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투란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있었다.
공처럼 팽팽하게 맺힌 거품은 투란을 그 중심에 띄운 채로 천장으로 솟아올랐다.
처음부터 천장에 새겨져 있던 문양(紋樣)이 투란을 머금은 거품, 장막의 구체(球體)를 삼켰다.
돌이 마찰하고 갈리는 소리가 울렸다.
투란을 담은 구체가 암벽을 관통하며 한없이 치솟고 있었다.
루곤 왕국의 성채가 박혀 있는 절벽의 정상까지, 거침없이!
쿠릉.
홀 바닥돌이 갈라지며 흐릿한 장막으로 이뤄진 구체가 솟구쳤다.
절벽 아래를 훤히 내려다보이는 귀퉁이였고, 성 안이었다.
하지만 절벽 정상의 성은 지붕이 없었고, 오직 넓은 홀 하나로 이뤄진 채 벽과 문의 형체를 겨우 갖췄을 뿐이었다. 그나마 홀 너머의 포석과 낮은 성벽이 성으로서의 자격이란 듯이 모양만 꾸민 모습, 그 위로 차가운 눈보라가 남긴 자취처럼 눈송이가 흩날리며 흐린 하늘의 풍경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 홀의 중심을 차지한 거품이 푹 꺼졌다.
품고 있는 존재가 고스란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어둠을 두른 듯한 사람의 모습이었으니, 그 머리는 짐승…… 귀가 뾰족하고 주둥이가 길며 시커먼 그림자로 이뤄진 듯한 늑대의 형체였다. 손발과 몸뚱이가 사람의 것인데 머리만 늑대인 기괴한 모습, 웨어울프라 칭하는 것이 그럴 듯한 용모였다.
늑대의 입이 열렸고, 검은 그림자가 송곳처럼 채워진 입안이 드러났다.
칵, 칵, 크르르…….
뭘 토해내는 소리를 잠시 내다가 옅은 목젖울림이 새어 나왔다.
늑대의 손이 움직였다.
분명히 사람이 것이기는 하나 늑대의 발이 겹쳐진 듯, 손톱이 길고 사나워 보이는 모양이 늑대의 목덜미와 볼을 거칠게 긁어댔다. 너무 세게 손에 힘을 준 탓인가, 자신이 머리를 미는 힘에 균형이라도 잃은 듯이 늑대의 몸이 휘청하며 걸음이 옮겨졌다.
턱, 터턱.
찬바람과 눈송이가 거뭇한 늑대의 형상 위로 점점이 뿌려졌다.
하아아…….
늑대의 입에서 나온 숨결이 하얗게 흩날렸다.
터벅, 터벅.
늑대의 발이 휘청거리는 와중에도 계속 걸음을 내디뎠고, 홀의 밖으로…… 성벽 너머로 이어진 포석을 밟으며 나아갔다.
성의 담장 노릇을 하는 얕은 벽은 두 발로 선 늑대의 허리춤에나 겨우 닿을 정도였지만, 그 벽 너머에 성문의 양쪽을 맡은 것처럼 박힌 바위는 늑대의 체격을 서너 배 가볍게 웃도는 크기였다.
길잡이처럼 두 발로 걷는 늑대를 인도하는 포석은 그 바위 사이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바위는 문지기처럼 꿈틀거리며 덩어리진 몸에서 팔다리, 머리를 끌어내며 일어서는 채로 늑대를 맞이했다.
쿠르륵, 쿠릉.
돌이 움직이는 소리가 늑대의 발을 멎게 했다.
초점이 흐린 눈동자로 늑대는 바위로 이뤄진 괴인 둘을 바라봤다.
늑대의 몸 주변으로 희미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바람과 티끌, 숨결 속의 이슬이 맺힌 듯한 아지랑이가 늑대의 몸 주변을 맴돌았다.
그 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일어선 바위 둘이 팔다리를 흔들면서 다가왔다. 그냥 몸이 부딪히거나 움직이는 바위 팔다리에 닿는 것만으로도 늑대를 으스러뜨릴 듯한 위세(威勢)를 뿜는 채로!
늑대 주변을 맴도는 아지랑이가 넓게 펼쳐지며 장벽을 쌓는 시늉을 했지만, 눈송이와 찬바람, 움직이는 바위 덩어리 둘은 아무것도 가로막지 않는 것이 없다고 확인해주듯이 아지랑이를 밀쳐내며 늑대를 밀치고 짓밟으려 했다.
늑대가 가볍게 포석을 밟았고 흔들거리는 몸짓으로 피해냈다.
검은 발톱이 단도처럼 늑대의 손가락 끝에서 치솟았다.
움직이는 바위를 향해 늑대의 손이 할퀴고 베는 궤적을 그려냈다.
카악, 카칵.
바위에 길게 손톱자국이 남겨졌다.
하지만 바위 덩어리 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이제는 아예 본격적으로 늑대를 후려치고 걷어차며 밟으려 들고 있었다.
쿵, 쾅, 쿵, 쾅.
캬아아앙!
돌이 돌을 찧는 소리, 본능적으로 터져 나온 늑대의 포효가 뒤엉겼다.
휘이잇, 휘잉.
찬바람이 더욱 거칠어졌고, 눈송이가 조금씩 짙어졌다.
늑대의 주변을 맴도는 바람, 티끌, 숨결속의 이슬이 움직이는 바위에 엉겨 붙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그저 바위 표면의 색채에 허연 무늬를 살짝 만든 것이 고작일 뿐이었다. 그보다 더 거칠게 파고든 손톱 또한 바위 둘의 움직임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때문에 두 발로 뛰는 늑대는 피하고, 움직이는 바위 둘은 그런 늑대를 찧고 빻고 밟아 짓이기려는 움직임이 춤사위처럼 이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늑대의 입에서 짐승이 낼 수 없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제에에에장! 이게 대체 뭐야아아아! 내가 지금 뭐 하는 거냐고오오오!”
흐릿했던 눈동자가 또렷하게 초점을 잡고 움직이는 바위 둘을 훑어보기도 했다.
그다음에 늑대가 내미는 손톱 끝에 바람, 티끌, 서리가 선뜻하게 맺히며 하얀 칼날을 이뤄냈다.
쩌억! 콰득.
바위 하나에 파고든 손톱이 하얀 칼날을 심었다.
하아아, 늑대의 입에서 뜨거운 숨결이 뿜어져 나왔다.
하얀 칼날이 진동했고, 숨결과 엮이며 시뻘건 화염이 되어 터졌다.
콰앙, 콰르륵.
바위 하나가 으스러졌다.
부웅, 다른 바위가 여전히 움직이며 늑대를 후려치려 했다.
새하얀 서리의 장막이 늑대와 바위 사이에 그어졌다.
“윌 라이트.”
늑대가 속삭였다.
―이런 빌어처먹으으을!
늑대의 뇌리를 울리는 외침, 투란은 확실하게 드라고니아가 마력 공명으로 포효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 흥분을 가라앉히려면 뭐라 해야 했기에 투란은 소리 없이 속삭여줬다.
‘새 문장이 생겼다,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