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8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83)
해답이 주어진 상태라고 해도, 그 해답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애초에 해답을 상정(想定)한 이가 실행할 자의 수준을 멋대로 높여 잡거나 자신이 준 해답에 대해 지나친 자신감을 지녔다면, 일은 더욱 까다롭고 까탈스러워진다!
쿠드드득, 쿠르륵!
“비이이러어어어머어어그을!”
욕을 하면서 투란은 돌무더기의 몸을 부지런히, 빠르게 움직였다.
어린 시절, 티아라 엄마가 넙적한 돌을 두엇 주어다가 구멍을 내고 나무 막대기로 꿰어 돌과 돌 틈새에 나무 열매를 넣고 으깨며 갈아버리던 모습이랑 지금 자신이 얼마나 닮았는가를 떠올리니 한층 더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투란은 멈추지 않고 빠르게 강하게 움직였다.
조금이라도 빨리 로튼 웜의 내장을 갈고 껍질을 뚫고 나아가야 이 썩은 냄새에서 해방될 수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3미터가 한계인 거냐?
하지만 드라고니아가 실망했다는 듯이 지껄이는 말이 투란을 한층 더 울컥하게 하잖는가!
‘어쩌라고! 이 문장은 완전 초보거든? 몬스터 흑요석의 크기만큼도 겨우 유지하는 중이라고! 잔소리하지 말란 말이야!’
늑대의 문장, 시조의 이름을 따서 펜릴의 문장이라고도 한다는 이 몬스터 엠블럼은 이제 겨우 흑요석 한 종류, 그나마도 셋인 척했지만 다 부숴놓고 보면 한 핏줄처럼 이어졌던 흑요석 괴물 한 가지만 품고 있을 뿐이었다.
애초에 셋이었던 까닭이 그 이상으로 크기를 키우면 스스로 부서져 내리니까 그렇게 나눠져 있던 것이니, 투란이 몬스터 로드로서 형성할 수 있는 것 또한 겨우 한 개체 분의 크기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나중에 고유마력이 잔뜩 커진 다음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이것이 한계!
그야말로 최선을 다하는 셈인데 왜 실망한 시늉을 하고 있는가!
―그냥 테라트에게 네 흉내 내서 갈아버리라고 하는 편이 더 빠르겠다.
‘그럼 그렇게 하란 말이야! 뭘 떠들고 있어!’
드라고니아가 하는 말에 투란은 바로 보챘다.
내 힘으로 이 상황을 극복하겠다는 생각 따위는 바보나 하는 것이라는 단호한 확신을 품은 투란의 재촉인 셈.
몬스터 상대하면서 내 힘, 네 힘 따지는 얼빠진 짓은 절대로 안 한다는 확고한 투란의 의지에 드라고니아가 응하면서도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야, 정령수도 네 힘이라고! 뭘 남의 힘 취급하는 거냐? 너의 의지, 윌 라이트는 투란 너의 힘이다. 스피릿 아티팩트 또한 그 의지의 마력으로 형성한 것인데 뭐가 남의 힘이야, 남의 힘은!
말과 함께 테라트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로튼 웜의 찢긴 가죽 틈새로, 활짝 열렸던 주둥이 틈새로 밀어넣어서 투란의 주변으로 모여들게 했던 흙과 돌이 뭉쳐들었고 투란이 꾸민 모습과 비슷한 모양을 만들며 투란이 하는 짓을 따라했다.
로튼 웜의 내장이 찢겨 나갔고, 부식액이 요동치며 로튼 웜의 가죽을 찢으며 터져 나갔다.
‘나보다 센데?’
자신이 돌리는 맷돌보다 테라트의 맷돌이 더 세다!
투란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테라트와 투란의 몬스터 형상이 엮인 상태는 티아라 엄마가 얼기설기 대충 만들었던 맷돌보다 훨씬 정교하고 거대하며 강력하게 몬스터를 찢어 뭉개며 갈아버리고 있었다.
이제 이대로 조금만 더하면 눈보라 치는 높은 산에 데드워커가 되어 심장이 멎었음에도 날뛰던 로튼 웜이 그대로 찢겨진 잔해로 남겨질 듯한데…….
―이놈, 어디로 가는 거지?
드라고니아가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왠지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으로 투란이 바로 묻는다.
‘가다니? 그냥 몸부림치는 중 아니었어?’
이런 커다란 놈이 버둥거리다보면 옆으로 사십 미터, 앞으로 육칠십 미터 꿍꽝거리며 굴러다니는 것이 보통. 그러니까 지금 느껴지는 요동 또한 그 범위 내가 아닌가 싶었는데 드라고니아는 꾸준히 로튼 웜이 어디론가 간다고 말하고 있다니, 대체 왜?
―그냥 로튼 웜이든 데드워커 로튼 웜이든 이건 좀 이상한데? 그러고 보니…… 이런 녀석을 어떻게 일정 구역 안에 가둬놓은 거지? 지금 움직임은 갇혀 있다가 널 향해 다가오던 때랑 비슷한데? 이거…… 뭔지 모르겠다만, 서둘러라. 빨리 부수고 이놈에게서 벗어나!
‘아오, 이 썩을…… 이미 썩은 놈이!’
성질부려봐야 소용없는 것을 알면서도 뇌리에 저절로 떠오르는 욕이 걸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기에 다른 색다른 욕설로 바꿔보려다가 실패하는 투란이었다. 하지만 그런 잡스러운 생각이 마음의 표면을 긁적이는 것과 별개로 투란의 정신은 한층 더 몬스터의 형상에 집중해 있었고, 보다 더 강력하게 돌더미 몸을 움직이는 일에 몰두하고 있기는 했다.
물론 이런 투란에게 로튼 웜의 몸 밖에 유지하는 프로브를 통해 파악한 상황을 드라고니아는 매우 얄밉게 전하고 있으니.
―떨어진다!
‘뭐? 어딜 떨어져? 설마 루곤 성채로!’
―아니, 산자락을 올라가다보니…… 아래로 깊이 뚫린 틈이 있어. 크레바스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비좁은 골짜기가 하나 숨어 있다. 어, 느껴지나?
갑작스럽게 짓밟고 있던 로튼 웜의 내장 바닥에서 붕 뜨는 느낌을 받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확인하듯 묻고 있었다.
‘바닥에 이대로 처박혀도 되는 거냐!’
투란은 그보다 더 상황을 깊이 파악하고 싶어 물었다.
부드럽게 썩은 채로 계속해서 부식액을 생성해내는 기괴한 내장, 그 부식액에 한편으로는 썩어 문드러지면서도 버티는 외피(外皮)…… 그 안에서 한창 갈아버린 썩은 살점과 내장에 파묻힌 돌더미가 바로 투란 자신이었다.
과연 이 커다란 수십 미터짜리 썩은 주머니 속에 담긴 채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진다면, 어느 정도나 몸 성하게 유지하고 버틸 수 있는가?
―바닥에는 처박히지 않겠는걸? 봐라.
‘엥?’
다음 순간, 투란은 아주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콰드드드!
좁은 골짜기,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하늘을 작은 틈새로 보이게 하는 골짜기의 폭은 십수 미터에 불과했다. 눈더미가 쌓이면 금방 덮여서 가려질 듯한 골짜기인 셈이었다. 거기에 뛰어든 로튼 웜은 너무 커서 골짜기의 양쪽 벽과 마찰하며 끼여 버리는 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마찰과 정지가 이뤄지는 동안, 로튼 웜의 너덜거리는 가죽 사이로 내장과 부식액이 괄괄 쏟아져 내렸고 몸통은 크게 뒤틀렸다. 그러니 안에 굵직하게 담겨 있던 돌더미 역시 불룩 튀어나오면서 그대로 좁은 채로 까마득하니 깊은 골짜기 바닥을 향해 쏟아져야 했지만…….
“떨어질까 보냐아아아!”
쩌렁거리는 돌더미의 괴성이 울려 퍼지면서 돌덩이 한쪽이 굵직하고 큰 손아귀가 되어 로튼 웜을 움켜쥐며 매달리고 있었다.
잠시 돌더미가 매달린 채로 로튼 웜의 끼인 몸통이 길쭉한 빨랫줄이라도 된 것처럼 출렁거렸다. 그 사이에 돌더미는 몸의 형상을 다시 짜맞추면서 냉큼 로튼 웜의 몸 윗쪽으로 기어올라갔다.
끄드득…….
로튼 웜이 힘을 다한 몸부림으로 꿈틀거렸지만 골짜기의 양쪽 벽을 이어주는 가죽 포대 꼴이란 것을 확실하게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쏟아져 내릴 부식액도, 내장도 없는 듯한 순간이 찾아오자 그 몸부림조차 멈췄다.
“이 썩은 놈이 대체 어떻게 데드워커가 된 거야? 뭐가 이놈을 움직인 거지?”
으드득, 이를 갈면서 투란이 으르렁거렸다.
돌더미인 몸을 추스르면서, 저 까마득한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슬쩍 로튼 웜의 찢긴 가죽 안에 반쯤 담그기도 하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벼락처럼 외친다.
―알 게 뭐냐, 그보다 엎드려! 몸을 낮춰!
‘엥? 왜 또오오!’
뭔지 알 수 없었지만 투란은 일단 로튼 웜의 가죽 사이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돌더미였기에 돌멩이가 모두 파르르 떨면서 드라고니아가 경고할 수밖에 없는 뭔가가 빠르게 닥쳐왔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파괴력이 금방 투란의 주변에서 위용을 드러냈다.
로튼 웜의 썩은 가죽이 뭔가에 맞은 듯이 푹 팬 형태로 오그라들었고, 아직 안에 담겨 있던 내장이 더욱 격렬하게 쏟아져 내리며 그 속에 맺혀 있던 부식액이 작은 분수처럼 곳곳에서 터져 나갔다.
―여기 저것들도 있었어! 스톰라이더!
‘박쥐잖아? 배트만(Bat-Man) 아냐?’
투란은 낯선 이름을 대는 드라고니아에게 살짝 반발해봤다.
멀리서 투란이 매달린 로튼 웜을 향해 파괴력을 발산하며 다가오는 것은 얼핏 보면 그림뱃을 닮았다. 커다랗고 적당히 길죽한 잔나비의 모양이 섞인 박쥐…… 하지만 그림뱃과 완연히 다른 부분이 있으니, 두 팔이 두 날개와 독립된 채로 따로 붙어 있다는 점이었다. 더불어 목 아래 몸은 날개를 제외하면 인간과 아주 많이 닮아 있었다. 잔나비와 닮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투란은 그 모습에서 수인종(獸人種)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었다.
멧돼지 머리통을 얹었다는 보어(Boar-Man)이라든가, 마냥 뚱뚱한 들돼지의 형상과 닮았다는 피그만(Pig-Man), 혹은 사나운 사자라든가 곰의 머리를 목 위에 얹었다는 레오만(Leo-Man)이라든가, 베어만(Bear-Man)…….
춤추는 산맥 안에서 그런 형상과 만났다면 그냥 몬스터라고 큰소리로 외치고 칼 들고 찔러도 좋지만, 산맥에서 벗어난 곳에서는 칼 든 채로 먼저 말을 걸라고 했었다. 심술궂고 사나운 오러클 아저씨가!
그러니 저기 날개를 파닥이며, 무시무시하게 골짜기 틈새를 가르며 날아오는 채로 목청을 열고 꽥꽥 소리 지르는 시늉을 할 때마다 투란 주변이 퍽퍽 패 나가게 하는 놈에게도 말부터 걸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장난할 때냐?
드라고니아가 냉소를 한가득, 거의 비웃음에 가깝게 담아서 으르렁거렸다.
‘아니, 조금 신중할 수도 있지 뭘…….’
툴툴거리기는 했지만 투란은 느낄 수 있었다.
오러클 아저씨는 앞뒤 가리지 않고 먼저 죽이려 들지 말라고 한 것이지, 자기 죽이려고 달려드는 것이 몬스터인가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인간인가 고민하라 한 것이 아니다.
“뭐? 그냥 대놓고 죽이려 한다고? 정당방위로 반격해야지!”
“정당방위! 파이로, 볼트 날려!”
그래서 투란은 당당하게 불의 정령수에게 명령하고 로튼 웜의 가죽을 끌어당기며 더욱 돌더미인 몸을 구겨넣었다.
―뭔 꼴사나운…….
불꽃 꼬리를 길게 흩날리는 불의 쇠뇌살이 수십 가닥, 저 편에서 몽둥이인가 창인가를 두 손에 꼭 쥐고 날아오는 박쥐-인간의 형체를 향해 호화롭게 날아갔다. 드라고니아의 투덜거림 따위는 몰라라 하는 화려한 불꽃의 춤사위 속에서 박쥐 날개가 요란하고 복잡하게 펄럭였고, 그 입에서 나오는 파괴력은 이제 골짜기를 울리는 강렬한 메아리를 귀에 들리게 했다.
불의 쇠뇌살이 모두 흩어지며 부서져 붉은 꽃잎처럼 스러져갔다.
‘음파 충격이었나?’
새삼 투란은 스톰라이더란 저 몬스터의 힘이 하피의 소릿살이랑 비슷한 것인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이리 쩌렁쩌렁 울리며 로튼 웜이 걸쳐져 있는 바위 부분을 부스러지게 하며 투란까지 한꺼번에 저 아래로 떨구려는 능력은 전혀 소릿살이라 할 수가 없다!
그 파괴력이 돌더미인 몸에 닿으면, 돌가루가 흩날리고 부서지는 수준.
‘근데 이 가죽은 괜찮네?’
문득 투란은 돌더미를 구겨넣은 가죽이 스톰라이더의 파괴적인 음향을 아주 간단하게 차단하고 퉁겨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부드러운 내장이 안감일 때는 파괴력이 남기는 여풍(餘風)에 밀려나기도 했는데, 안감이 돌더미이니 그조차도 무시한다! 이미 썩은 부분과 아직 멀쩡한 가죽이 꽤 다른 반응을 하는 것이다.
―어? 아…….
드라고니아도 깨달은 듯했다.
쓴웃음과 함께 투란은 즉각 테라트에게 여분의 돌더미를 맡기며 흑요석 괴물의 형상을 벗어던지고 늑대의 문장을 ‘입었다’.
날름날름, 으적으적, 찌이익.
테라트가 여분의 돌더미를 움직여 부서져나가는 돌방패의 역할을 맡는 사이, 투란은 로튼 웜의 내장 일부와 가죽을 맛보고 씹고, 찢어 삼켰다.
황야에 홀로 선 늑대, 그 풍경 속에 곧바로 로튼 웜의 거체(巨體)가 놓였다.
그 맛을 보고, 그 가죽과 내장이 전혀 다른 정수란 것을 파악하면서 투란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스톰라이더의 음향 파괴를 맞서기 위한 방패, 로튼 웜의 가죽은 그러기 위해 두 번째 먹잇감이 되었다는 것!
―네가 형성한 가죽이라면, 로튼 웜의 살아있는 상태를 구성했다면 부식액을 쏘아낼 수 있을 거야! 안개처럼, 허공에 그물처럼 말이다. 그게 아마 스톰라이더를 잡는 정답으로 준비된 걸 거야!
‘역시…….’
투란도 동의하고 동감했다.
동시에 투란은 루곤 왕국, 그 성채 안에 사는 이들과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 바로 돌파해 들어온 것을 살짝 후회했다.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절벽 깊은 곳에 제단이 갖춰져 있고 루곤의 누구도 닿지 않은 절벽의 정상에 이런 상황이 기다렸는가…… 루곤 왕국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떠도는 소문, 전설이 있을 터인데 전설적인 마법의 반지가 있다고 그냥 지나쳐 왔으니까. 덕분에 스톰라이더라는 인간과 박쥐가 섞인 저놈의 괴성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것을 느껴야 하니까!
꺄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