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89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85)
벌레 무리의 대전(大戰)은 조금 싱겁게, 하지만 매우 치열하게 치러졌고 끝맺음을 했다. 그 과정에서 투란이 겉으로 보인 모습은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몸을 가끔 살살 떠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투란의 몸과 마음 안쪽에서는 엄청나게 바쁘고 쉴 새 없는 격동이 거듭되었다.
외부에서 침입한 벌레, 아직 미약하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에 의해 어느 정도 오러의 특성을 지닌 채로 몸을 지키는 방어력을 뚫고 살갗 안으로 파고든 벌레 무리는 몸속에서 투란의 마음을 담고 생성된 벌레 무리와 격돌했다. 한쪽은 속살을 파먹고 깃들면서 영역을 넓히려 했고, 한쪽은 아예 속살이 변화하며 치고 나와 침입자를 통으로 잡아먹었다.
때문에 마지막에는 투란의 살갗 안으로 들어왔던 벌레 무리에서 남은 것들이 한꺼번에 대탈주하려는 듯이 다시 살갗을 째고 나가려 했을 지경이었는데, 투란의 살갗이 변화하며 잡아먹는 벌레 무리가 되어 몰살시켜버렸다.
실제로 그리 오래 걸린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투란은 벌레 무리 대전이 생각보다 길었다고 느꼈고, 그 생각이 맞다는 증거처럼 막아둔 굴의 입구가 여러 마리의 스톰라이더가 뿜어내는 괴성이 중첩되며 퍼진 파괴력에 다시 뚫려 있었다.
―노리고 뚫은 것은 아냐. 그냥 닥치는 대로 음향이 반사되면서 그나마 약한 부분을 뚫어버린 거지. 스톰라이더의 역량을 너무 얕본 셈이다.
드라고니아는 테라트가 조금 더 정교하고 두텁게 굴의 입구를 막지 않았노라고 투덜거리고 있었다. 한 마리의 괴성이었다면 넉넉히 막아냈을 것이 여러 마리가 합창하듯 울린 것에는 뚫린 것이 아쉬운 듯.
투란은 아무런 아쉬움도 없이 보다 간결하게 굴 안에 고개를 들이밀려고 서로 툭탁거리는 스톰라이더를 겨냥하며 속삭였다.
“휘드라곤, 갈아버리고 으깨버려라. 파이로, 에어로는 꿰뚫어라. 아쿠아, 휘드라곤을 돕고 테라트는 셰이아의 흐름에 힘을 보태서 방어를 강화해줘.”
스피릿 아티팩트와 징표로서 간직한 정령의 힘이 한꺼번에 발휘되었다.
굴 입구로부터 난동과 소란이 강렬하게 퍼져 나갔다.
그로부터 눈길을 뗀 투란은 할배라 부르는 것이 당연한 몰골인 스톰라이더에, 그 날개에 손을 내밀었다. 늑대의 형체가 바로 투란의 손에 깃들었고, 투란의 머리에 늑대가 씌워졌다.
‘스톰라이더랑 바다에 대해서 얘기 좀 해봐.’
으적으적, 날개의 한쪽을 으스러뜨려 씹는 채로 투란이 소리 없이 물었다.
굴 입구부터 바깥으로 번져가며 커지는 난동에 주의하던 드라고니아가 ‘어?’ 하다가 바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재난의 바다, 그렇게 불리는 해역이 있다. 소용돌이 군도 근처를 맴돈다고 말하는데, 그 말대로 폭풍이 바다를 휘젓는 채로 소용돌이 군도 주변을 쉴 새 없이 맴돌고 있어. 스톰라이더는 그 폭풍의 해역에서 유명한 몬스터야. 다른 곳에서는 보기 아주 힘들지. 무리지어 다니고, 무리가 뭉쳐서 둥지의 형태까지 만들어 폭풍 속을 유영하는 생태가 특별해서 관심을 끌기도 하고. 특히나 늙어 죽어가는 채로 날개만 강해진 개체가 둥지의 바탕이 되어간다는 점은 몬스터에게서는 꽤 드문 성질이라서 말이야. 이 정도가 드라코눔을 오가는 교역선을 통해 전해진 이야기다.
‘너네가 따로 확인한 이야기는?’
―음향을 이용한 파괴능력, 강철보다 수십 배 더 튼튼해지는 날개, 접촉한 대상에게서 도구의 사용법을 엿보고 흉내 내는 성질. 가능한 한 야생으로 두는 편이 낫지만, 충돌할 경우에는 싫든 좋든 반드시 둥지까지 파괴해야 하는 몬스터. 그게 드라코눔이 기록한 스톰라이더의 특성이다. 그러니까…….
‘밖에 있는 놈들 다 패잡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
슬쩍 한 걸음 물러서는 듯한, 하지만 이미 결정되었다는 듯한 드라고니아의 대답이었다. 부정할 수 없기에 투란은 한숨부터 쉬기는 했다. 하지만 동시에 투란은 느끼고 있었다.
막 삼킨 스톰라이더 할배의 날개, 거기에 몸속에서 승리를 자축하듯이 꿈틀거렸던 벌레 무리의 움직임…… 홀로 스톰라이더의 날개를 펼치고 그 무리를 모조리 사냥할 수 있는 ‘힘’은 충분히 갖출 수 있다!
때문에 투란은 이미 짙은 의문이 한층 더 짙어진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도 했다.
‘대체 누구일 것 같냐?’
―이번에는 카엘에게 누명을 씌우기도 힘들어.
‘응? 왜 안 돼?’
―카엘이 몬스터 엠블럼을 탐구는 했지만, 제작은 하지 않았으니까. 제단은 분명히 몬스터 엠블럼을 제작해서 너에게 부여했다.
‘그건 또 뭔…… 에잇, 나중에 얘기하자.’
우득, 꽈드득!
투란의 등이 조여들다가 팽창하면서 맹렬한 위세를 품은 스톰라이더의 날개가 뻗어나갔다.
퍼억!
투란이 펼친 날개 끝이 쭉 뻗으며 굴 안으로 쳐들어온 스톰라이더 한 마리의 머리통이 터져 나갔다.
날개로 뒷걸음질 치듯이 바닥을 찍으면서 투란은 굴 밖을 향해 움직였다.
‘여기 프로브 하나 남겨둬. 왜 벌레한테 먹힌 놈이 여기서 꼼짝 못했나 확인 좀 해야겠어.’
―그러지, 나도 궁금하군.
투란의 요청에 드라고니아가 흔쾌히 응했다.
뒷걸음질 치는 꼴로 굴 안에서 벗어난 투란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주변을 둘러봤다.
정령수가 날뛰는 탓에 불꽃, 서리, 돌풍에 돌멩이와 흙먼지가 난무하고 있었고 허공을 가르는 물방울의 소용돌이와 거뭇한 그림자가 뒤엉키며 어울리고 있었다.
이런 정령의 세력에 맞서는 수백의 스톰라이더.
수백의 합창이 일으키는 파괴력은 투란이 들어갔다 나온 굴 주변을 가득 채우며 퍼져 나가는 중이었다.
‘와, 이런데도 여기 안 무너지는 거야? 이건 또 무슨 신기한 일이냐.’
정령의 난폭한 위세에도, 몬스터의 파괴력이 가득한 합창에도 로튼 웜의 가죽이 구름다리처럼 걸쳐진 좁은 골짜기가 버티고 있었다!
살짝 쓴웃음을 짓는 듯한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새로운 의문에 바로 답한다.
―이건 카엘이 한 짓이라고 외쳐도 되겠군. 위상격리(位相隔離)를 이용한 차원차폐술(次元遮蔽術)로 원형을 보존시키는 짓은 대마도사 카엘이 꽤 좋아하거든.
‘네, 그렇군요.’
뚱하니 대꾸하면서 투란은 일단 두 쪽 날개를 움직이며 다시 로튼 웜의 구름다리 위로 올라갔다. 강렬한 괴성의 파괴력이 사방에서 울리며 밀려왔지만 스톰라이더 할배의 날개가 묘한 공명(共鳴)을 하니 투란의 몸에는 전혀 그 효과가 없었다. 로튼 웜의 가죽, 껍질에도 여전히 통하지 않는 듯 구름다리 역시 바람결에 흔들릴 뿐 멀쩡하게 버티고 있었다.
살살 불꽃과 서리에 긁히기는 하지만 튼튼한 로튼 웜의 남겨진 형체를 보며 투란이 잠깐 갸웃했다.
‘얘도 그 이상한 마법으로 지켜지는 건가?’
―애매하다, 이 틈새 골짜기를 지키는 마법이 이 녀석을 가두고 유도한 마법과 연동된 것이라면 그럴 수도 있거든.
‘미안,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본 거는 아니었어.’
너무 진지한 대답에 투란은 포기했다는 듯이 사과했다.
그리고 난투 중인 스톰라이더 수백 마리를 향해 투란이 포효하며 날아올랐다.
꺄아아아아아!
눈보라가 보다 거세고 보다 짙게 높은 산을 맴돌며 절벽 너머까지 눈송이를 밀어내듯이 퍼져 나갔다. 흘러가는 눈송이가 수 미터의 두께를 간단히 만들어낼 듯이 보이는 장엄한 풍경이었고, 세상으로부터 높은 산에서 벌어진 일을 모두 감춰버리는 듯한 눈보라의 농간처럼 보일 광경이었다.
덕분에 로튼 웜이 뛰어들었던 골짜기는 눈이 덮이고 이어지며 만든 장막에 가려진 듯했고, 그 한편에 앉은 투란은 그저 휑한 눈밭 위에서 허연 입김을 토해내려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입김은 눈보라가 남긴 잔영에 휩쓸리듯이 금세 사라져 버릴 뿐이라, 아무 소용없는 노력이었지만.
어느새 날개는 그 형상을 지운 채였고, 로튼 웜의 가죽이 투란이 살갗을 메운 채로 번져 있었다. 그 와중에 투란의 어깨와 팔뚝을 타고 흑요석의 광채가 흘렀다. 손까지 거뭇하고 광택 있는 바위로 된 듯 보이는데…….
‘이 벌레, 정체가 뭐지?’
손의 힘줄처럼 지나는 자리를 도드라지게 했다가 금세 자취를 감춘 채로 유유히 뼈의 근처를 맴도는 벌레 무리를 느끼면서 투란은 웅얼거려야 했다.
예상은 어느 정도 했지만, 스톰라이더 할배의 날개가 예상한 대로 강한 것과 다르게 이 벌레 무리가 투란의 몸속에 퍼지면서 한 짓은 그 예상을 훨씬 웃도는 활약을 보이며 힘이 돼주었다.
가진 능력을 모두 발휘하겠노라 투란이 마음먹으니, 기대에 응하겠다는 듯이 내장 언저리부터 벌레 무리가 생성되었고 그대로 투란의 몸속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온몸으로 이어지는 핏줄, 힘줄, 뼈대에 간섭하며 몇 배의 힘을 발휘하도록 부추겼다!
그에 따른 부작용, 반작용에 의한 손상조차도 벌레 무리가 처리했다.
손상된 부위에 스며들어 몸의 한 조직으로 의태(擬態)해서 메워버린 것!
그런 희생을 하면서 벌레 무리는 한층 더 튼튼하고 강한 둥지를 만들겠다는 듯이 투란의 몸속을 맴돌며 치유하고 강화하고…….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드라고니아가 조금 싫은 낌새로 말문을 열었다.
투란으로서는 귀가 번쩍 뜨일 이야기였다.
수백의 동족을 살해하고 파괴할 수 있는 괴력을 발휘하게 해준 원천, 그 근본이 된 벌레 무리랑 닮은 것이 또 있다니?
궁금증을 가득 품었지만 오히려 보채지 않고 투란이 가만히 기다리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드라고니아가 말을 잇는다.
―키린이 너랑 만난 곳으로 들어가기 전에…… 춤추는 산맥의 깊은 곳을 오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작은 도시에 들렀었지. 들어본 적 있을 거다, 그 도시가 어딘지 짐작하지?
‘벤담 시티?’
―그래, 거기 시장이라는 벤담이랑 키린이 만났었는데…… 그때 벤담의 몸에서 지금 네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비슷한 낌새가 있었어.
‘그림 존의 몬스터 로드잖아? 그럼 이게 그림 존이랑 관련이 있다는 거야?’
―아니, 그림 폴의 영역과는 아무 상관없고…… 그때 나는 정신이 온전하지 않았어. 키린은 그런 나랑 대화를 하려고 벤담의 힘을 빌리려 간 거였다. 그림 폴의 기묘한 힘 덕분에 그때 아주 잠깐 제 정신이 돌아온 적이 있었지. 그 무렵에 슬쩍 벤담에게서 느낀 기척이 배 속에 벌레덩어리가 꿈틀거리지 않는가 싶은 거였어. 뭐 짐작 가는 일 없냐?
‘음…… 없네. 벤담 시장은 그냥 강력한 그림 존의 몬스터 로드라고만 들었어. 어떤 몬스터를 간직했는가는 전혀…….’
―아무튼 그때 느낀 것이 기억나는 상황이다. 그런데 투란, 너 벌레 무리를 어떻게 통제하는 거냐? 한 마리마다 따로 노는 것처럼 보인다만…….
‘음? 아, 얘네는…… 따로 놀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협력하는 거야. 음, 그 한 마리, 한 마리에 내 마음을 담뿍 담아서 몸속에 형성시키니까 내 마음대로라고 하면…… 이상하려나?’
―아니, 대강 알겠다. 악마의 심장이나 나노미터의 벌레 몬스터를 다루던 너잖아.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겠지. 그러니까 벌레를 뿌려서 반 이상 주먹질 한번 닿지 않고 몰살시킨 거잖아, 스톰라이더의 둥지라도 그런 식으로 부술 수 있어 보였어.
‘둥지라…….’
투란은 조금 전의 격렬했던 싸움을 되새김질 해봤다.
처음에는 날개의 힘을 믿고, 돌덩이 몸뚱이를 믿고, 로튼 웜의 가죽을 믿고 마구잡이로 들이박고 무투술을 섞어가며 정령수의 도움을 업고 싸웠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배 속을, 내장을 채워가며 자연스럽게 벌레 무리가 형성되더니 슬금슬금 스톰라이더에게 전염되기 시작했다. 살갗을 살짝 열고 접촉부위로 실가닥처럼 흘러나가는 그 광경이 금방 바람을 타는 것으로 바뀌었으니, 전염의 원천인 투란이 보기에도 섬뜩하고 황당했다.
그 결과, 정말로 투란의 주먹이나 발끝에 닿지도 않은 채로 수백 마리 스톰라이더의 무리 절반이 몰살했다! 강력한 주먹과 발, 날개의 파괴적인 움직임을 흘러나간 벌레 무리 조각이 압도한 셈!
휘이잉.
세찬 눈보라에 밀려 이마에 부딪힌 눈송이가 꽤 시렸다.
투란은 문득 고개를 갸웃하며 주변을 다시 둘러봤다.
이미 프로브로 탐색 중이었고 별다른 것은 없다 알고 있지만…… 역시나 강화된 시각이나 청각이 없는 탓인가 그냥 눈보라가 심해진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때문에 투란의 의혹은 한층 더 깊어졌다.
‘다음이 없는 건가?’
스톰라이더의 뒤를 이어 늑대의 문장에 삼켜질 녀석이 오지 않는다고 여겨야 하는가? 여태 이 소란을 연이어 거치게 한 기묘한 의도가 이제 끝났다고 봐야 하는가?
투란에게는 애매한 상황이었다.
뭔가 스톰라이더의 오래된 날개만으로는 끝이 아닌 듯한데…….
―뭔가 있겠지. 혼자 힘으로 수백의 스톰라이더를 으깬 것이 대단하기는 하다만, 이게 겨우 그 정도로 끝내려고 시작한 짓일 리는 없어.
드라고니아는 투란보다 더 강하게 단정 짓고 있었다.
덕분에 투란은 그냥 생각하는 것을 떠넘길 수 있었다.
‘그럼, 뭐가 나올 것 같아? 뭐 짐작 가는 것 없어?’
넌지시 대충 잡담이라도 하자고 묻는 말이기도 했는데, 드라고니아가 투란을 놀라게 할 정도로 격한 대답을 한다.
―유렐리아!
‘뭐?’
너무 격해서 투란이 ‘그래, 여기 온 것이 유렐리아 찾으러 온 거였어.’라고 대꾸하려던 것도 잊어야 했다. 그리고 드라고니아는 한층 더 격렬하게 외친다.
―눈보라 너머에 유렐리아가…… 아니, 이 눈보라를 일으키는 것이 유렐리아야!
‘어, 뭐라고?’
투란은 잠시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