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90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86)
Chapter 178. 눈보라 폭풍 속에서
산이 하얗게 무너져 내린다고 느껴졌다.
위로 옆으로 튀어 나가봐야 무너져 내리는 하얀 산을 어찌할 수는 없어 보이는 상황, 바닥으로 꺼질 수 있다면 빨리 꺼져 숨어야 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할 수 있었기에 투란은 땅으로 숨어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프로브 두엇을 공중으로 높이 날려 보내는 것 역시 이뤄지고 있었다.
덕분에 일찌감치 땅 속으로 파고든 짓, 돌과 흙이 뭉친 곳을 골라 테라트의 힘과 흑요석 괴물의 형상을 모두 활용해서 파고든 일이 얼마나 잘한 짓인가를 투란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왜 유렐리아가!’
멀리 높은 하늘, 눈보라보다 더 높은 곳에서 눈보라를 무슨 빗자루처럼 휘둘러대는 희미한 형상이었다. 까마득하니 높은 곳이기에 그 움직임은 그저 하늘의 구름 한 점이 꿈틀거렸나 말았나를 따져야할 정도로 모호했지만, 그 희미한 형상을 중심으로 폭풍이 휘둘러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폭풍에 쥐어짜내진 허공이 쉼 없이 눈송이를 토해냈고, 그 눈송이가 하계(下界)를 향해 쏟아져 내리며 눈보라로 세상을 덮으려는 듯한 눈더미가 되는 중이었다.
높은 산의 풍경이 온통 새하얗게 변해갔다.
간간이 드러나 있던 바위, 흙, 숲의 잔영이 온통 백색(白色) 한 가지로 물들면서 지워지는 듯한 광경이었다.
심지어 마법의 구성체인 프로브조차도 쉴 새 없이 이리 떠밀리고 저리 떠밀리느라 시계(視界)가 빙빙 돌고 있어서 그냥 보려 하면 엉망진창으로 맴도는 세상이 위아래 따질 것 없이 하얗게 춤을 춘다고 착각할 지경이었다.
―더 깊이 들어가! 아니, 스톰라이더 골짜기 안으로 파고드는 것이 더 안전하겠다! 굴, 굴을 찾아 들어가! 거기라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거다.
‘땅이 파지겠냐고!’
난투 속에서 건재했던 지형을 떠올리며 투란은 드라고니아에게 세게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스톰라이더 할배가 있던 굴이라면 확실히 이 눈보라 폭풍 속에서도 거뜬하게 버틸 수 있을 듯하긴 했다. 하지만 그 주변을 파고 굴 안에 이르는 것은…….
―누가 파고 들어가랬냐! 찾아가라고! 골짜기 위가 눈에 덮인 만큼 그 아래는 계속 비어 있을 거다! 그리고 테라트가 아예 힘을 못 쓰는 것도 아니야! 전체 지형에 영향을 끼치는 파괴는 안 되더라고, 얄팍한 장막이나 벽 정도는 꾸밀 수 있어! 해봤잖아!
‘어? 아…….’
폭풍같은 잔소리에 투란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스톰라이더 할배를 처리할 때 투란이 굴 안팎을 차단하기 위해 테라트에게 시킨 짓이었잖은가.
이 상황에서 홀랑 잊기 딱 좋기도 한 일인데, 드라고니아는 잔소리를 위해서인가 놓치지 않고 짚는 듯했다. 때문에 투란이 살짝 입술을 삐죽거리는데.
―뭔 멍청한 생각이냐! 부주의한 버릇이나 고쳐! 빨리 가! 이 눈보라, 땅 속까지 깊이 얼릴 수도 있어! 아무리 땅 밑이라도 웬만큼 깊지 않으면 냉각(冷却)을 피할 수가 없단 말이다!
‘알았어, 알았다고!’
투란은 일단 움직여야 했다.
풍뎅이처럼, 끈질기게 땅을 찢고 나아가 스톰라이더와 난투를 벌였던 골짜기 가에 닿았고 차갑게 뭉쳐 메워야겠다는 듯이 뚜껑 노릇을 하는 눈더미와 만났다. 분명히 지면에서 몇 미터 아래까지 스며든 다음이었는데도, 이미 골짜기 위를 덮은 눈이 지붕처럼 이어지고 얼어붙은 채로 밀고 내려온 듯했다.
‘미치겠구만!’
불과 두어 시간도 지나지 않았을 터였다.
눈앞에서 얼어붙은 눈더미처럼 냉정하게 생각해도 겨우 한 시간을 넘기고 조금 더 지났을 뿐이지, 두 시간은 전혀 넘지 못했을 텐데 몇 분 사이에 쏟아져 내린 눈송이가 벌써 뭉쳐 얼음 뚜껑 겸 지붕이 되어 골짜기를 지우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 얼음을 아쿠아와 휘드라곤으로 열어 뚫고 내려가면서 투란은 온몸에 눅신하게 들러붙은 추위를 한번 더 실감할 수 있었다. 스톰라이더와 날개를 부딪치고 팔다리를 격돌하며 손발을 사납게 휘둘렀던 일이 마치 몇 년 전인 것처럼 흐릿하게 만드는 차가움…… 이젠 그저 하얀 얼음이라 불러야 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투란은 어떻게든 얼어붙지 않은 채로 눈더미 얼음을 뚫고 내려가 골짜기 벽을 만날 수 있었다. 그다음에는 재빠르게 다시 스톰라이더 할배의 굴을 찾아서, 로튼 웜이 눈송이에 덮여 얼음다리가 되어가는 풍경을 향해서 다가갈 수 있었다.
―정말 몇십 년은 지난 모양을 하고 있군.
드라고니아가 로튼 웜이 하얗게 덮여 바로 얼어붙은 몰골을 보며 어처구니없어 했다. 투란도 이놈과 함께 툭탁인 일만 아니었다면 이 얼음으로 된 구름다리가 아주 오래전부터 여기 이렇게 걸쳐진 채로 여기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터였다.
투툭, 고드름이 로튼 웜의 아래쪽에서 자라나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추워, 굴 안은 어떻지?’
―들어가! 따질 때가 아니잖아!
‘가는 중이라고! 기대할 수밖에 없잖아!’
―파이로를 불러내고 마력을 보태서 마법 움막을 지으라고!
굴에 닿으며, 바로 그 안으로 뛰어들면서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말대로 했다.
등골을 적셔오는 추위를 가능한 한 빠르게 물리치지 않으면 산 채로 얼어버릴 수도 있다고 여길 수밖에 없으니.
굴 안, 허공에 파이로가 꿈틀거리는 불꽃을 피워올렸다.
추위가 바로 투란의 등짝을 너머 찬바람을 불어넣으며 그 불꽃을 짓이기겠다는 듯이 몰려드는 듯했다. 흔들리는 파이로의 불꽃을 보며 투란은 바로 알 수 있었다. 불의 정령수는 지금 이 추위와 바람 속에서 태울 것이 있어도 훅 날려 지워질 수 있다는 것!
“워밍 헛.”
투란이 빠르게 속삭였고, 마력이 의지를 담아 요동쳤다.
불꽃이 흔들거리며 길게 불씨를 휘날리고 불씨가 늘어지며 씨줄날줄처럼 가늘게 엮이면서 굴의 입구를 가리고 굴 안쪽 벽을 칠하듯이 채워나갔다. 은은히 번져가는 여린 불길 속에서 따스함이 피어났고, 마력이 이뤄낸 장벽은 굴 안팎을 단절시키면서 불의 움막을 지켰다.
“후아, 대체 왜 이렇게 추운 거야? 유렐리아한테 얼어붙게 하는 능력이라도 있다는 거야?”
―아니, 그런 능력은 없다. 그저 주변 환경과 호응해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야. 높은 산, 눈보라가 어느 때든 불어내릴 수 있는 산악이란 지형에 그 바람이 얹히면서 저런 터무니없는 결과가 나오는 것뿐이다.
드라고니아의 설명에 투란도 문득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허공에 격렬한 바람이 거대하게 일어나면서 눈송이가 툭툭 떨어지던 것.
그야말로 허공을 쥐어짜내 눈보라를 뿜어냈다고 보였잖은가.
털썩, 여린 불길이 마력을 품고 자아낸 붉은 융단 위에 주저앉으면서 투란은 볼을 쓸어내리고 어깨를 문지르면서 중얼거린다.
“자아, 이제 어쩐다? 유렐리아를 찾으러 와서 만났으니 다행인가, 아니면…….”
―투란, 제단부터 여기에 이를 때까지 무슨 계획이었는가 이젠 명확해졌잖아. 어쩔 거냐, 그 계획을 따를…….
‘계획? 무슨 말이야?’
갑자기 멍해진 듯 투란이 말을 끊고 물었다.
―스톰라이더의 다음이 유렐리아잖아. 누가 제단을 만들어두고 이곳에 없어야 할 몬스터를, 무리로 연이어 들이닥치도록 해놨는가. 그 계획의 마지막 단계가 무엇인가, 유렐리아 다음에 뭐가 나온다고 생각하긴 어려우니 유렐리아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아직 모르겠냐? 아니면 인정하기 싫어?
드라고니아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차분히 이야기하다가 투란의 낯이 불룩거리면서 표정이 뒤틀리는 모양에 한숨처럼 묻고 있었다.
“이런 제에엔자아앙! 어떤 썩을 놈이이이!”
―왜 짜증을 내는데? 지금 상황으로 보자면 유렐리아를 잡을 방법을, 그 길을 열어주고 있는 거잖아?
진심으로 의아해 하며 묻는 말이었다.
때문에 투란은 넋 나간 듯한 쓴웃음과 함께 중얼거리는 말로 대답해야 했다.
“제단에서 여기까지…… 그러니까, 하늘을 날며 폭풍을 휘날리는 유렐리아를 잡기 위해 필요한 것은 스톰라이더의 날개, 그 날개를 전투에 활용하기 위한 경험. 하지만 스톰라이더의 힘만으로는 정작 유렐리아에게 타격을 입힐지 어떨지 알 수 없는데 떡하니 벌레 한 뭉텅이를 함께 삼키게 했고 스톰라이더 패거리랑 싸우면서 저절로 그 본능에 대해 익히게 했지. 그래, 네 말대로 확실한 수단을 심어주고 싸울 방법에 대해 철저히 길잡이를 해주고는 있어. 근데, 그건 늑대의 문장으로 유렐리아를 잡아 삼키란 이야기잖아. 내가 왜 고르고니아의 마지막 자매를 쫓아왔냐고…….”
―아…….
드라고니아가 입만 벙긋거리는 낌새와 함께 말문을 닫았다.
움막을 형성한 따스한 불꽃의 융단이 너울거렸고, 지붕 덮인 골짜기는 이제 높은 산의 폭풍에서 격리되었다고 알려주는 듯한 포근함이 맴돌았다. 하지만 투란은 말을 마치고 한숨을 쉬면서 머리를 벅벅 긁적이며 끙끙거리는 모습이었다.
원래라면 몬스터 로드는 하나의 문장을 지닐 뿐이고, 힘 닿는 대로 몬스터를 사냥하고 그 정수를 삼키면 끝이었다. 그러나 투란은 그런 처지에서 벗어나 있는 기괴한 상황에서 세 번째 몬스터 엠블럼이 새겨진 채!
다른 문장의 몬스터를 전혀 공유하지 못한 채로 독립되어 있는 상태이니 늑대의 문장으로 유렐리아를 사냥해 삼킨다면 고르고니아 세 자매의 본능, 한자리에 모인다는 그 본능은 전혀 충족할 방법이 없게 될 터였다. 때문에 투란은 두 가지 조건을 갖춘 채로 유렐리아를 사냥하고 삼켜야 했다.
―음, 결국은 투란 너의 문장과 그 안에 담겼다는 점은 동일하잖나? 세 자매에게는 어쨌든 한자리에 모인 셈이니까, 그럭저럭 너를 통해 서로를 인지하는 정도로 넘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딱히 위로라기보다는 가능성을 검토하고 신중하게 꺼낸 이야기였다.
투란은 한층 더 깊은 한숨과 씁쓸한 낯빛으로 소리 없이 답하고 말았다.
‘야, 절대로 둘이어서는 안 된다는 로드 오브 몬스터. 둘이 문장 하나씩 자리 잡고 서로 모르는 척하는 거 보라고. 지금 너랑 이렇게 떠들고, 정령수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천칭이나 황금매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어. 이건…… 황금매가 박혔을 때 천칭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느꼈을 때랑 똑같아. 게다가…… 계속 둘러보고 있는데, 이 늑대의 풍경 속에서 아직도 어디가 아래, 심연인가 모르겠다고.’
―뭐? 어째서? 천칭처럼 휑하니 아래로 열려 있지 않다는 거냐?
드라고니아의 되물음에 투란은 가만히 마력공명 속에 자신의 심상을 담아 보여줬다. 늑대의 문장, 그 풍경이 어떤가를.
* * *
잿빛하늘의 울타리, 굳건하게 발디딜 수 있는 황야, 시커먼 늑대.
황무지 한편에서 꿈틀거리는 형상은 분명히 몬스터의 정수가 이뤄낸 것.
몇 안 되는 몬스터가 늑대에게서 도망치려 움찔거리는 듯했고, 늑대는 그 사냥감을 한껏 즐기는 듯한 풍경이었다.
사방이 완전히 채워진 채로, 빠져나갈 곳은 전혀 없는…….
* * *
―묘하군, 황금매는 창공의 형태를 한 심연이었다고 했지?
‘그래, 그리고 어떻게 그리로 빠져들어서 심연을 건너는가도 분명했어.’
―당장은 모호하지만, 찾을 수 있을 거다. 윌 라이트를 통해 나랑 대화하고 있잖아. 천칭은 건재하다고.
‘그렇지, 멀쩡하겠지. 멀쩡한데 왜 못 써먹냐고! 으아앗!’
―징징거려서 될 일이 아니지. 한데 저 황야를 이리저리 둘러봤냐? 뭐 특이한 것은 없었어?
‘없어. 지평선까지 쫙 뻗은 채로 끝이야. 위도 아래도 단단하고 튼튼해서 완벽한 울타리 안의 사냥감 노릇을 하는 몬스터를 맛보는 늑대라고. 말 안 들으면 바로 으깨 물고 산산조각 냈다가 다시 뭉쳐들게 하니까, 일단 본능대로 어쩌구 할 틈도 안 주는 점이 대단하기는 한데 말이지.’
―그건 또 새롭고 흥미로운 처리방식이로군. 흐흠…….
‘야, 늑대 펜릴 쪽보다 여기 언제까지 있어도 되는가, 이 굴이 얼마나 튼튼한가부터 확인해보자고. 추워서 얼어붙다가 으깨지는 얼음처럼 골짜기가 단숨에 날려갈 수도 있다고.’
투란은 호기심 가득한 채로 마법의 근원이라도 파헤치겠다는 것처럼 늑대의 문장, 펜릴의 특성에 관심을 갖는 드라고니아에게 살짝 으르렁거렸다. 밖의 풍경이야 여전히 눈보라가 산더미를 옮기듯이 휘날리는 중이었고, 완전히 끝나기 전에는 저 새하얀 풍경이 어떻게 형태를 결정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궁금한 점이라면, 과연 루곤 왕국은 지금 무사할 것인가 하는 것뿐이다.
―암염층(巖鹽層)이 조금 약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여길 빠져나갈 지하통로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눈보라가 절벽 너머로 불어가기는 하지만, 절벽 아래에 도달할 때쯤이면 그냥 평범한 폭설에 불과할 거야. 루곤 성채의 구조라면 그런 폭설 따위는 그냥 며칠 지나면 흘려 내보낼 테지.
‘암염층이라니?’
마음에 품은 생각이 의지의 마력에 담기며 모조리 흘러나갔나 해서 한숨을 쉴까 하다가 투란은 문득 처음 한마디부터가 그냥 넘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되짚어 물었다.
부서지지 않았던 절벽, 거기 뚫린 굴 안쪽에 뭔 통로를 어찌 뚫을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