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92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88)
“이히, 하하핫! 돌아왔다아아아!”
“시꺼!”
호쾌한 투란의 외침에 드라고니아가 바로 으르렁거렸다.
“왜! 반갑잖아!”
“어디 먼데 갔다 왔냐! 자기 안에 있는데 오락가락하면서 홀랑 잊고 못 찾은 꼴이었으면서!”
잔소리가 별빛무리를 보다 격동적으로 반짝이게 하는 모양이었다.
투란은 ‘천칭’의 풍경을 빙그르 둘러보면서, 이전과 또 달라진 것처럼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몬스터의 형상을 느낄 수 있었다. 어딘가 이전보다 성장한 듯도 하고, 더 날렵하거나 강해진 것 같기도 하고…….
‘뭐지? 설마 내 기억이 또?’
살짝 움찔하는 기분이었기에 투란은 세심하게 메듀시아의 주변을 둘러보며 정황을 살폈다.
고르고니아 두 자매는 별빛의 정원을 느릿하니 산책하는 분위기로, 서로에 대해서 느끼면서도 얇은 빛 안개의 장막에 가려진 채라 교류하지 못하면서도 여유로운 품위를 드러내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 간격이 미묘하게 빈자리 하나를 만들어둔 듯한 낌새가 있는 것이 유렐리아가 채워주기를 간절하게, 한편으로는 노골적으로 투란에게 기원이라도 하는 묘한 분위기였다.
‘그럴 거니까, 또 짓궂은 짓 하지 말라고.’
슬그머니 메듀시아를 향해 다짐하는 듯한 생각을 흘려내면서 투란은 바로 ‘천칭’의 정상을 향해 마음을 옮겼다.
겹쳐진 원반이 고리가 되며 길을 열었다.
* * *
“읏, 따거!”
가슴이 짜릿한 느낌에 투란은 냅다 손으로 문지르면서 일어나 앉았다.
투둑거리는 소리가 가슴에서 울리는 듯한 기분이었고, 그와 함께 몸의 섬세한 부분들이 깨어나는 듯했다. 가슴속에서 움튼 ‘악마의 심장’이 핏줄과 힘줄 사이를 누비기 시작한 때문이었다.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면서, 투란은 황금매의 문장과 전환할 때랑은 또 다른 느낌이란 것을 새삼 느꼈다. 그래서 문득 떠오르는 호기심.
‘황금매는 천칭 안에 사슬 걸고 앉아 있잖아, 그럼 늑대는?’
이는 투란을 다시 한번 더 문장의 풍경으로 인도하게 했다.
* * *
진흙 혹은 검은 돌.
투란에게 늑대의 형상은 우선 그런 질감부터 과시하고 있었다.
어렴풋이 앞발을 세우고 뒷발은 접어 앉은 자세를 흉내 낸 듯 보였지만, 그 앞발을 ‘천칭’의 정상에 황금매처럼 올려놓고 나머지 몸뚱이는 아래로 툭 떨군 꼴이니 어딘가 살짝 민망하게 여겨야 할 모습인데…… 이놈의 늑대는 머리통이 시커먼 돌 혹은 진흙인 탓에 그런 기분 모른다는 듯이 뻔뻔하게 ‘천칭’의 정상 끝자락에 들러붙어 있을 뿐이었다!
잠시 어이없어 하면서도 투란은 늑대의 꼬리, 뒷다리와 허리어림부터 뭉텅뭉텅 불룩이며 부드러운 진흙처럼 흘러내려 ‘천칭’의 기둥 속으로 엮여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대로 기둥의 바탕, 저 아래까지 스며들며 심연 속으로 내려가는 흐름을 형성하는 모양이었다.
“기둥 속의 톱니바퀴에 기름칠하고 있는 것 같지 않냐?”
불쑥 별빛무리가 찰랑이며 소리 냈다.
이는 투란에게 잠깐 ‘엥?’ 하며 멀뚱한 기분을 일으키는 말이었지만, 어느 정도 일리가 있기는 했다.
늑대가…… 펜릴의 문장이 ‘천칭’ 속에 분명히 자신의 자리를 찾아냈고, 투란에게 협력하고 있다고 호소하는 셈이었다.
“좋아하면서 칭찬해야 하는 거냐?”
뚱하니 투란이 중얼거렸다.
드라고니아가 쓴웃음과 한숨을 섞어 말한다.
“좋아하냐 마냐는 네 기분인 거고…… 칭찬할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는 좀 따져봐야지. 투란, 너는 그 늑대를 황금매와 똑같이 여길 수 있는 거냐?”
“똑같이? 음, 다른 문장인데 똑같을 리야…….”
조금 더 뚱하고 맹하니 투란은 답했다.
별빛무리가 부드럽게 반짝이면서 왠지 한숨을 쉬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 느낌에 투란이 조금 볼멘소리로 덧붙인다.
“비슷한 부분도 있지, 이러고 걸쳐 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얘는 늑대고 쟤는 매라고! 어떻게 늑대랑 매를 똑같다고 하냐? 그건 말이 안 되지!”
“헛소리하지 말고. 내가 뭘 묻는가 알 텐데?”
드라고니아가 조금 더 세게 별빛무리를 일렁이며 묻고 있었다.
투란도 얼렁뚱땅 계속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번에는 조금 더 진지하게 늑대의 문장이 ‘천칭’ 속에 넘긴 형상을 둘러봤다. 그리고 금방 늑대의 문장이 지닌 특이점을 찾아냈다.
늑대의 턱 아래, 가슴 언저리…… 두 다리 사이에 놓인 그 부분이 그저 새카맣게 칠해진 것이 아니었다. 깊은 굴처럼 안으로 파고드는 형태였고, 그 굴에서 흘러나온 어둠이 가슴을 채우는 듯했다. 때문에 투란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려는 순간이었다.
“투란!”
드라고니아의 외침은 금방 어두운 굴로 뛰어들려던 투란의 마음에 자극을 줬고, 들어가지 않고 물러서게 했다.
“와, 이 안에 늑대 한 마리 살잖아!”
물러서면서 투란은 깨달았고, 외쳤다.
‘천칭’이 기둥을 꿈틀거렸고 몬스터의 형상들이 일제히 정상(頂上)을 바라봤다.
드라고니아의 침착한 물음이 ‘천칭’의 공허(空虛)를 채우듯이 울려나온다.
“늑대 한 마리?”
“하하하, 알았다! 이 녀석, 문장이 아예 늑대에게 박힌 채로 옮겨진 거랑 마찬가지야! 문장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문장을 새긴 늑대가 통으로 새겨지는 거? 그러니까 보이드 엠블럼이더라도, 그 빈 느낌을 배고픔으로 여기는 늑대가 문장인 거야! 어? 말이 이상한가? 아무튼 그런 거! 야, 알아듣겠어?”
떠들다가 투란은 문득 자신이 한 말이 납득이 가느냐고 드라고니아에게 물었다.
꽤나 두서없이 떠들었지만 어쨌든 느낀 그대로, 깨달은 그대로, 막 나오는 대로 한 이야기인데 드라고니아라면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드라고니아가 이런 투란의 기대에 호응하듯, 한편으로는 살짝 쓴웃음을 흘리는 듯한 분위기로 별빛무리를 찰랑찰랑 반짝거리면서 대답한다.
“알아들었다. 스펠가드, 그런 거잖아.”
“음? 어…… 에, 그게 뭐였지? 예비 주문이었나? 아니, 미리 깔아두는 마법술식의 보조? 야, 잠깐! 가드 스펠이라고 하지 않았어?”
뚱하니 투란이 웅얼거리다가 투덜거렸다.
혀를 차듯이 별빛무리가 일렁이는 채로 드라고니아의 대답이 울려나온다.
“가드 스펠은 예비 주문으로 쓰고자 하는 마법을 쓰기 전에 주변 환경을 탐색하고 조건에 맞는가 확인하는 거고, 본래 쓰려던 주문과는 별개라고 했잖아. 스펠가드는 본래 쓰려던 주문과 일체가 되어서 환경조건까지 뒤틀어 원하던 마법에 걸맞게 맞춰놓는 거고.”
“아, 그래. 굉장히 헷갈리는 거였지.”
투란은 깔끔하게 대꾸했다.
같은 낱말이 순서만 바꾼 채로 쓰였고 안에 담긴 내용도 뭔가 비슷했다.
그래서 처음 들을 때도 헷갈렸고, 나중에 회상할 때도 늘 버릇처럼 헷갈린다!
드라고니아의 수많은 마법 이야기가 늘 그렇듯이!
다시 이런 투란의 태도를 짚기보다 드라고니아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늑대의 문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몬스터 엠블럼에 스펠가드를 붙일 수 있을 줄은 몰랐다만, 어쨌든 확실해졌군. 이건 그림 투아란 시절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의 유물이야. 어쩌면 그 제단도 고대의 유산일 수 있겠어.”
바로 투란이 갸웃했다.
“루곤 왕국 사람들은 왜 그런 걸 그냥 둔 거지?”
“투란, 루곤 왕국 사람들보다 먼저 따져봐야 할 일은…… 대체 켈 데릭의 도감은 왜 거길 절벽 위로 올라가는 지름길이라고 써놨냐는 거다.”
“응? 어라?”
투란은 맹한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루곤 왕국에서 사람들과 엮이지 않고 바로 지름길로 스며들었던 까닭이 바로 도감의 정보였다. 오는 도중에 함께 한 쿤토르는 눈보라의 높은 산은 함부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고, 경고하듯이 말했었고.
“어째서일까?”
* * *
뒷목을 잡으면서 투란은 자신을 향해 되뇌었다.
“왜지?”
―켈 데릭은 모를 거야. 마법으로 저절로 내용이 추가보정되는 도감이니. 그리고 이 함정이 너에게 맞춰진 거라는 생각도 어렵다. 도감 가진 녀석이 너 하나뿐일 리가 없잖아. 툴로쉬라든가, 다른 엘더 헌터 혹은 그 가게를 들락거리는 다른 누군가. 어찌 보면 아무나 걸려라 하는 것 같기도 한데?
‘아무나……라고 하기는 어렵겠어. 툴로쉬 같은 사람을 노린 거라면 말이야.’
입술을 삐죽이면서 투란은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엘더 헌터, 혹은 도감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켈 데릭의 가게에 들락거리는 누군가 중에서도 어느 수준을 넘어섰다고 생각해야 했고…… 한편으로는 도감의 내용을 몸으로 부딪쳐 확인한다는 짓까지 해야 제단에 발 딛을 터이니.
―그렇다면…… 철저하게 제단에서 늑대의 문장을 얻고 나서 몬스터와 조우하고 이겨내고 끝내는 유렐리아까지 사냥해낼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자를 노렸다고 봐야겠군. 그러기 위해서 고대의 유산, 유물까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자라면…… 끄응.
추측을 이어나가다가 드라고니아가 신음하는 시늉을 하며 말을 멈췄다.
투란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럴 경우에 늘 그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전설적인 누군가에 닿은 것일 테니.
‘야, 카엘은 이런 문장에…… 만들지는 않지만 만질 수는 있는 건가?’
놀리려 하던 투란이었지만 하던 말을 바꾸면서 낯을 구겨야 했다.
드라고니아가 투란처럼 피식 웃는 시늉을 하려는 듯하다가 그럴 때가 아니란 것을 자각한 듯 한숨을 머금은 것처럼 말한다.
―그래, 바로 그 점이지. 대마도사 카엘이 늑대의 문장 같은 몬스터 엠블럼을 만들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고대의 유산인 제단을 옮겨서 문장을 새기게 하고 절벽 위로 올려서 네가 겪은 과정을 준비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자라고는 일단 대마도사의 영역에 한 발 걸쳤다고 생각해야 하니까. 유렐리아도 그렇지만 로튼 웜, 스톰라이더를 이런 높은 산에 올려놓는다는 것은 상위 마도사라 해도 역량이 모자라는 일이다. 그러니까…… 이제 어쩔 거냐?
‘유렐리아를 잡는다, 일단 그것부터.’
투란은 단호하게 말했다.
―흐흠? 이게 무슨 함정으로 연계될지도 모르는데?
슬쩍 떠보는 척하면서도 신중하게 짚는 드라고니아였다.
분명히 누군가의 의도가 가득한 상황이라면,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누군가의 목적일 테니까.
하지만 투란의 대답은 한층 더 단호할 뿐이었다.
‘함정이든 뭐든, 어차피 위험한 일이잖아. 몬스터 로드가 위험을 피해서 어쩌자고?’
―그렇기는 하다만, 피할 수 있는 위험에 일부러 들이박을 필요도 없다. 뭐, 이 경우에는 피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래, 피하면 안 돼. 유렐리아 사냥의 단서까지, 어쩌면 사냥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줬는데 재빨리 잡아줘야지. 다음 일은 다음에 생각하자고. 아무튼 바깥 폭풍은 어때?’
마음을 정한 투란은 문장을 놓고 이러쿵저러쿵하는 사이에 밖에 몰아치고 있는 폭풍에 대해, 눈보라를 가득 뿌리는 유렐리아의 움직임에 대해 확인하고자 했다. 그러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스톰라이더의 날개, 그 역할을 드레이크의 날개라든가 다른 것으로 얼마큼 대체할 수 있는가를 검토도 하는 중이었다.
드라고니아가 밖의 상황을 확인하고 말한다.
―유렐리아는 가까이에 없다. 하지만 눈보라는 여전하군. 폭풍이 멎질 않았어. 그리고…… 이건 뭐 지형이 그냥 새하얗게 물든 정도가 아니고, 바뀌었다고 해야할 지경인데?
‘흠? 위로 바로 올라가는 것이 좀 애매하단 이야기?’
―꽤 두꺼운 설빙(雪氷)을 뚫어야 한다는 거지. 이 골짜기는 완전히 눈이 얼어붙은 채로 덮여 있어서 없는 거나 마찬가지 꼴이 되었어. 그렇지 않다 해도 유렐리아의 행방이 애매한 지금 바로 위로 올라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스톰라이더의 다음이니까, 어쨌든 날 노리려는 행동은 할 거란 말이지?’
―그래. 어쩔 거냐?
‘암염이 채워진 미로를 지나가볼까?’
가만히 암염의 벽에 손을 짚으며 투란이 빙긋 웃었다.
벌레 무리가 없기에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는 듯했다.
이는 ‘천칭’ 속에 소금에 대해 반응하는 녀석이 전혀 없다는 상태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했다. 살짝 소금맛이 아쉽다는 듯한 낌새가 있기는 했지만, 그건 순전히 사냥감과 함께 핥아먹으면 맛있다는 희미한 기억일 뿐인 듯했고 투란 스스로도 그 비슷한 기분을 느끼니 의미 없는 일!
―테라트가 틈을 열 수 있어. 하지만 이 암염층, 생각보다 넓다. 나가기 전에 탐색을 먼저 하는 편이 좋아.
‘그야 당연한 거고!’
아무렇게나 나가더라도 대비만 잘하면 되겠거니 하던 투란이었지만, 대답은 철저하게 미리 파악하겠다는 것처럼 했다.
곧바로 이를 간파한 드라고니아가 으르렁거린다.
―방심하지 말라고!
‘물론이라니까.’
투란의 말은 매우 자연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