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94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90)
휘이잉, 파아앙!
바람을 가르고 덮쳐오는 단단한 설빙을 쳐부수며 투란은 거칠게 날아올랐다.
쏟아져 내리는 돌덩이를 헤치고 올라가는 거랑 똑같았다.
스톰라이더의 날개는 돌덩이 따위는 가볍게 찍고 부수고 퉁겨냈다.
날면서 할 수 없으리라 여긴 짓을 아주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었다.
투란에게는 어느 면에서 드레이크의 힘을 연상시키게도 하는 날개였다.
날갯짓을 거창하고 크게 하면 빠르고 강하게 비행했고, 가만히 펼치기만 해도 기묘한 부양력을 발휘하며 잠시 멈춘 것처럼 부유하게 해주는 특성이었으니…….
때문에 골짜기를 벗어나 아직 눈보라가 흩날리는 허공까지 도달하는 데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많이 약해졌는데?’
투란은 그래도 여전히 거센 바람을 날개로 느끼면서 주변을 빠르게 둘러봤다.
골짜기를 덮는 설빙을 만들었던 사납고 끔찍한 눈보라는 더 이상 없었다.
하지만 머뭇거리며 잠깐 멈추면 두텁게 눈을 덮어주기는 할 정도는 되었다.
그럼에도 하늘은 파란 빛을 구름 사이로 뚫린 넓은 구멍 여럿을 통해 노골적으로 쏟아붓는 광경은 기괴하다면 기괴했다. 퍼런 하늘빛을 보고 골짜기 위로 올라서면 그냥 바람결에 휘날리는 눈송이를 볼 줄 알았는데…….
―유렐리아가 없어. 어디로 갔는가…… 전혀 모르겠군.
‘천천히 찾아, 천천히. 그보다 저 아래에서 데드워커 끌고 간 그거, 흔적 없어?’
―없군. 역시 뭔지 모를 마법이다. 순수한 마력인 것 같기도 했지만 뚜렷하게 효과를 발휘하기도 했고, 데드워커를 그런 식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니. 도대체 뭐였던 걸까?
‘나중에. 지금 없고 모르면 더 생각하지 마. 아, 유렐리아는 찾아봐야지.’
투란은 날기 시작했다.
일단 유렐리아를 중시하자고 말은 했지만 투란의 눈빛은 뭐든 이 기묘한 곳에서 이상해 보인다면 바로 들쑤실 것처럼 번뜩이는 중이었다. 막상 뭐가 덤벼오면 ‘넌 나중에.’라고 미룰 일이 아닐 테니까.
투란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잦아드는 눈보라를 제외하고는 덤벼오는 것이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눈보라가 완전히 멎을 때까지 납작 엎어져 숨은 듯한 분위기만 높은 산봉우리와 산자락 사이에 가득할 뿐이었다.
덕분에 투란은 주변을 조금 더 자세히, 이 높은 산의 한편이 저 멀리 이어지면서 굽이치고 또 다른 봉우리를 연이어 올리며 꿈틀거리는 듯한 자태를 자랑하는 광경을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눈보라가 잦아들고 하늘의 흐릿함이 조금씩 옅어지면서 뚫려 있던 구멍 주변이 더욱 새파랗고 짙은 허공을 자아내는 풍경이었다. 기괴하지만 나름 맑은 하늘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다.
그 맑아지는 풍경 덕분에 투란은 이 눈보라의 높은 산이 꽤나 독특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절벽에 올라서서 바닥에 발을 붙이고 있을 때는 몰랐던 광경이 하늘 가까이 잔뜩 날아올라 둘러보니 확실해지는 상황.
곧바로 한쪽의 수수께끼 같은 풍경이 투란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대삼림은 그렇다 치고, 저긴 설마 황금이 깔려서 휘날리는 거는 아니겠지?’
높은 산을 기준삼아 투란이 보는 오른편은 쿤토르와 함께 옅게 스쳐온 대삼림의 녹음(綠陰)이 짙었다. 한데 왼편은 산자락이 하얗게 물들며 퍼져가는 지역이 뚝 끊어지듯 하면서 절벽을 이룬 듯한데, 그 너머로 누렇게 반짝이는 평야가 보이고 있었다. 그리 가깝지는 않지만 이 높은 산을 왼편으로 내려가면 바로 평야의 한편에 닿을 듯해 보였다.
―사막이잖아. 모래 미궁이 맴도는…….
‘응? 아, 그게 저기야?’
투란은 문득 도감에서 스쳐봤던 지명(地名)을 떠올렸다.
속칭 대사막, 별칭 불귀(不歸)의 사원(沙原).
그 아래 끊임없이 움직이는 미궁(迷宮)을 품은 곳.
투란이 상상했던 모래밭이랑은 꽤 달라 보였다.
‘그러고 보니 여기도 이상한 곳이네. 한쪽은 끝이 애매한 모래밭, 한쪽은 엄청 넓은 나무밭…… 정작 중간에 끼어서 눈보라로 채워진 곳이라니. 와, 저거 설마 물인가?’
툴툴거리면서 거대한 풍경을 정리하다가 문득 투란은 산봉우리가 불쑥거리며 굽이치는 산자락의 저편, 앞쪽의 풍경 끝 먼 곳에 아련하게 찰랑이듯이 그어지는 금을 보면서 갸웃했다.
―청해(靑海)야. 이 고산지대는 저기에 가까워지면서 낮아지고 대삼림과 어우러진다. 그리고 청해는 사막의 위로도 꽤 넓게 둘러쳐 있지.
아련한 기분인 듯이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투란은 그 기분이 아스라이 마음에 스며오는 것을 느꼈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드라고니아가 키린과 만나기 전, 아직 멀쩡한 드라코눔의 아칸이었을 시절 추억 같으니까.
‘지금 둘러볼 곳은 아니네, 자 그러면…… 어디 간 거지?’
날개를 움직이니 투란의 몸은 더 높이 치솟기 시작했다.
가장 높은 산봉우리와 거의 눈높이가 비슷할 정도로 치솟으니 숨쉬기부터 달라져야 하는 환경이었다. 적당히 몸의 상태를, 형상을 조절하면서 투란은 멀리 자세히 둘러봤다.
‘우와, 그냥 새하얗잖아!’
작은 숲도, 노골적이던 바위 덩어리도, 울퉁불퉁하며 하염없이 정상을 향해 치솟던 산자락의 형태도 모조리 새하얀 융단에 덮인 것처럼 보였다. 덕분에 루곤왕국 쪽으로 뻗어가며 끊어진 산자락, 절벽 쪽은 허공을 향해 툭 불거진 하얀 언덕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한데 막상 찾고 있는 유렐리아의 행방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늑대의 문장을 지닌 자가 아니면 아예 관심이 없다는 듯이 사라진 것처럼.
투란에게는 이모저모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어찌할까 잠깐 끙끙거리는데.
―그런데, 유렐리아를 어떻게 상대할 거냐?
갑작스럽게 드라고니아가 묻고 있었다.
‘응? 음…….’
너무 진지한 물음에 투란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드라고니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혀를 차면서 말을 잇는다.
―천칭의 몬스터로 적당히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늑대의 문장을 준비한 자가 연이어 맛보게 해준 몬스터의 능력을 말이야. 그거 착각이야, 투란. 흑요석의 경우에는 어떻게든 되기는 하겠지만…… 스톰라이더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로튼 웜의 가죽은 음파로부터의 피해를 완전히 차단한다, 단순히 스톰라이더의 충격음파에 대한 대응이 아니지. 그리고 벌레, 그건 전혀 대처할 방법이 없어. 그렇지?
‘아니, 뭐…….’
투란은 말꼬리를 흐리며 어정쩡하니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눈보라를 일으키는 유렐리아를 확인했기에 그 눈송이 휘날리는 폭풍 속에서 보다 확실하게 날기 위해서 스톰라이더의 날개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흑요석의 괴물 녀석의 경우에는 흙과 돌을 모아 두루는 능력이었지만 그냥 마그마 로드의 형상만으로도 넉넉했다. 굳이 흑요석의 흉내를 내고자 하면 마그마 로드의 결정에 테라트가 흙을 좀 끼얹으면 될 정도일 뿐이고…… 로튼 웜의 가죽은 보기 드문 특이한 성질이기는 해도 고르고니아 맏이인 스테노아의 황금모피가 그보다 못할 리가 없었다. 황금모피의 경우에는 오히려 음파충격 이외에도 효과를 발휘하니 훨씬 낫다!
결국 문제는 마지막 한 가지, 늑대의 문장에 품기는 했지만 당장 그 성질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던 둥지 꾸미는 벌레 무리였다. 스톰라이더 무리와의 공중전에서 그 특이한 전염, 감염의 특성을 파악하기는 했지만 소금과 맞닥뜨렸을 때의 경우를 떠올리면 또 어떤 기괴한 성질을 감추고 있는가 전혀 알 수 없다!
과연 늑대의 문장과 함께 남겨진 몬스터 여럿을 통해 암시된 사냥법을 따를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지만 투란은 확신할 수는 없었다.
아주 작은 요소로도 몬스터 사냥은 확 뒤집어지기 쉬우니까.
때문에 드라고니아도 계속해서 반복해 짚는 중이잖나.
몇 번을 되새김질 하더라도 확인해야 할 일이란 점은 분명했다.
‘메듀시아 때처럼 어떻게 되지 않겠어?’
짧은 동안 긴 생각 끝에 슬쩍 한발 빼는 말을 해보는 투란이었다.
드라고니아는 침묵하는 듯했다.
투란이 한 말을 아주 신중하게 검토하는 낌새가 또렷했다.
그사이에 투란은 가장 높은 산봉우리를 향해 날았다.
흐린 하늘에 파랗게 뚫렸던 구멍이 더욱 커져갔고, 파란 하늘이 흐린 얼룩을 지닌 듯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눈보라 폭풍의 잔영처럼 남겨진 거센 바람은 여전히 눈송이를 흩날리며 이 봉우리, 저 봉우리를 건너는 듯했다.
높은 산 정상에 내려서며 보는 투란에게 이 산자락, 멀리 이어지는 산맥은 마치 어딘가 누릇하고 거뭇한 바위 줄기에 얹힌 못생긴 꽃이 삐죽거리는 듯한 광경처럼 보였다.
한편은 대삼림으로 번져가고, 한편은 누런 모래더미를 향해 불룩거리고…….
‘하늘이 가꾸는 정원?’
문득 위를 올려다보면서 투란은 피식 웃고 말았다.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낮아지다가 청해를 만나기는 하지만, 이 눈보라의 높은 산맥 세 방향은 모두 깎아낸 듯한 절벽이었다. 대삼림으로도, 대사막으로도, 왕국을 향해서도.
―그 생각이 맞을지도 모르겠군.
느닷없이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투란에게는 갸웃하게 하는 말이었는데, 바로 드라고니아가 잇는다.
―유렐리아가 제대로 활동했다면 수많은 이들이 여전히 그 이름을 읊조리면서 경계했겠지. 하지만 이런 환경 속에 제한되어 있다면 그 이름이 잊혀질 만해. 이렇게 유렐리아에게 필요한 환경을 만들 수 있다면, 그러지 않을 이유 찾는 것이 오히려 어렵다.
‘여길, 이 요상하게 큰 산덩이들을 누가 꾸몄다고?’
―오르카 일족은 여기 오지 않는다고 쿤토르가 말했었지? 사막 쪽에서도 이리로는 오지 않는다. 청해를 건너는 이들에게도 이 산맥의 끝자락은 별 의미가 없는 곳이라 항구도 없어. 모두가 외면하지, 거의 수백 년……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이곳은 의도적으로 방치된 채라고 할 수 있어. 루곤왕국 깊은 곳에 있던 제단처럼 말이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노라고, 그러니까 딱히 볼 것이 없다고 여길 만해. 드라코눔에서도 그리 판단했어. 춤추는 산맥의 영향력 밖이니 심각하게 주목한 적도 없어. 한데 와보니 어떠냐?
‘엄청난 위업이라고 해야 하는 거냐?’
유렐리아를 묶어두겠다고 수백 킬로미터의 산맥을 꾸미다니, 투란에게는 전혀 와 닿지 않는 거대한 수작질이었다.
너무 거대해서 비꼴 생각도 들지 않을 지경!
하지만 의아함은 투란의 마음에 곧바로 솟구치고 있었다.
‘그냥 유렐리아를 없애는 쪽이 더 쉬운 거 아냐?’
일을 이 정도로 꾸밀 수 있다면, 게다가 사냥법까지 남겼다면…… 그런 능력으로 그냥 유렐리아를 때려잡는 쪽이 훨씬 쉽잖은가!
―가둔 쪽과 사냥법을 배치한 자가 한 시대에 함께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산맥을 움직이는 거대한 마법은 결국 마력이 그 핵심일 거다. 하지만 제단을 다루고 몬스터 엠블럼을 이용하고, 몬스터들을 배치하는 일은 마력만으로 될 일이 아니야. 꽤나 지혜로운 사유(思惟)가 필요하지. 쉽게 말해서, 다른 시기에 다른 자들이 따로 움직인 결과란 말이다.
‘누군가 가두고, 다른 누군가는 잡는 법을 알아내 꾸며놨다? 그래도 그냥 사냥하는 쪽이 쉽잖아?’
엎어 치나 메치나, 한 명의 대마도사이든 두 명의 대마도사이든 유렐리아를 제압하는 데는 넉넉해 보였다. 산맥을 뒤트는 마력이면 몬스터를 그냥 파묻을 수도 있으니까. 사냥법을 알아냈다면 굳이 지나가다 덜렁 제단에 걸릴 얼간이를 기다리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을 데려다가 밀어넣으면 될 일이었고.
풀썩, 정상이면서도 눈이 쌓인 곳에 투란은 주저앉았다.
숨쉬기가 조금 버거운 느낌이었지만 차갑고 선명한 바람이 몸속을 들락거리는 듯한 기분은 투란에게 신선하고 낯설었다.
찾고 있는 유렐리아는 보이지 않는데, 유렐리아가 여기 있는 까닭이나 다른 곳에 가지 않는 이유를 놓고 소리도 내지 않고 떠드는 것이 왠지 피곤한 투란이었다. 일단 만나서 낯짝 마주하고 눈알 마주치면 생각 없이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투란, 고대의 기록에 고르고니아에 대해서 아주 수상하고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너무 수상해서 기록을 남기고 건네는 이들도 가끔 지웠다 썼다 하는 부분이지.
‘뭔 얘기야? 그냥 말해.’
드라고니아가 밑바탕을 만들려는 낌새가 수상했기에 투란은 바로 보챘다.
드라고니아도 더 길게 뭐라 할 생각은 없다는 듯, 바로 말한다.
―고르고니아 세 자매가 불사신(不死身)이란 이야기다.
‘소울테이커?’
스톰라이더의 날개를 바람막이처럼, 몸을 감싼 작은 성채처럼 두르면서 배꼽 언저리를 손으로 문지르면서 투란은 문득 잊고 살던…… 하지만 죽음의 위기에 처하면 언제라도 발동할 준비가 끝난 몬스터를 떠올렸다.
―그 녀석이랑 전혀 다르다. 고르고니아는 아예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니까. 다만 변화는 받아들인다고…… 토막 내서 세상에 흩어놓아도 결국은 온전한 한 몸으로 복구된다는 이야기였다. 때문에 되돌려 보낼 방법을 잃은 순간부터, 고르고니아가 이 세상에 완전히 정착하게 되면서는 감금 말고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했지. 냉정하게 말해서, 너처럼 특이한 몬스터 로드가 아니라면 세 자매 앞에서 버티지도 못하잖아?
투란은 이야기에 뭐라 반응할 수가 없었다.
이야기가 끝난 듯한 순간, 길게 산을 내려가는 하얀 융단 속에서 새파란 눈구멍을 지닌 유렐리아가 벼락처럼 튀어나오는 탓이었다.
퍼어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