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95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91)
Chapter 179. 범람하는 날개, 유렐리아
하얀 줄기…… 거친 나무껍질과도 다르고 매끈하고 새하얗게 눈으로 이뤄진 줄기들이 가닥가닥 흩어졌다가 뭉치면서 눈송이를 휘날리는 채로 팔랑거리며 날아들고 있었다.
그 줄기의 중심이 되는 몸뚱이는 투란에게 하피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닮았을 뿐이었고, 일치하지는 않았다.
두 다리가 무릎 아래부터 새의 발로 꾸며져 있고, 허벅지부터 허리를 넘어 가슴에 이르기까지 온통 하얀 깃털 무늬를 지닌 짧은 줄기가 연이어 돋아난 채로 찰랑거리는 모양은 하피에게서 볼 수 없는 형태.
그나마 그 목 아래의 몸뚱이가 인간 여성의 형태와 비슷했기에 투란이 하피를 연상시킨 것뿐이었다. 그 목 위는…….
‘메듀시아?’
뱀의 형체가 아닌 여인의 아름다운 얼굴을 했을 때의 메듀시아랑 닮았다.
다만 메듀시아랑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으니.
‘뭐 이렇게 못생겼어!’
닮기는 했는데 아름다움은 티끌만큼도 느껴지지 않은 추물(醜物)!
뭐든 닮기만 해도 아름다웠을 것이라 느껴지는 것이 그 얼굴일 때 메듀시아인데, 이 녀석은 그런 예측 따위는 그냥 우스개로 만드는 낯짝을 하고 있다니!
이래서 세상 일은 겪을수록 알 수 없다 하는 것인가?
엉뚱하게 튀어 다니는 투란의 생각에 드라고니아가 불쑥 끼어들었다.
―지금 뭔 헛짓이야! 사고가속을 했으면 대책을 생각하라고, 대책을! 유렐리아의 촉수가 닿을 때까지 넋 놓고 구경할 참이냐!
‘어? 아!’
투란은 첫인상이 매우 이상했다는 것을 되새기면서 다시 유렐리아의 형상을 신속하게 관찰했다.
이렇게 다시 보니 새하얀 줄기, 흡사 눈송이를 뭉친 듯이 보이는 저 줄기에는 허튼 티끌 하나 붙어 있지 않았지만 깃털의 무늬가 섬세하고 희미하게 박혀 있다는 것부터 새롭게 느껴졌다.
더불어 엄청 못생긴, 때문에 ‘추물’이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존재는 세상에 없다 해도 좋은 그 얼굴에 이변(異變)처럼 박힌 시퍼런 눈구멍…… 들여다보면 깊이 파인 구멍 같지만 냉정하게 곁눈질하면 그냥 눈동자 없는 새파란 눈알이란 것이 명확해서 황당하고 기괴하며 신기했다.
그리고 가장 낯선 부분은…….
‘날개? 팔? 줄기?’
드라고니아가 촉수라고 지칭했던 부분이었다.
어깨와 등에서 줄기줄기 뻗어 나왔고, 목 아래 몸을 착실하게 덮고 있는 깃털 무늬가 돋아난 것처럼 또렷한 것과 다르게 너무 희미해서 스쳐보면 그저 새하얗고 밋밋하게 느껴지는 무늬가 얹혀 있는…… 촉수라고 할 수밖에 없는 지체(肢體)였다.
한데 그 지체, 촉수가 가득 머금고 있는 것은 눈송이가 아닌 바람!
가닥가닥 제멋대로의 바람을 움켜쥔 채로 지금 투란에게 쇄도(殺到)해 들어오고 있는 촉수는 당장 시야에 포착된 것만 해도 수십 가닥인데, 또 다른 수십 가닥은 아예 산봉우리를 감고 뒤도 돌아 투란의 등짝을 노리고 뻗어오는 중이었다.
그 움직임이 자아내는 압력을 가늠하면서 투란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하얀 촉수의 직격을 피해도 제각각 머금고 있는 풍압(風壓)의 파괴력은 그대로 처맞을 상황이란 것!
그야말로 사방을 휘감고 몰아쳐오는 촉수는 그대로 투란을 찌그러뜨리고 뭉개며 피 한 방울 새어 나가지 못하게 짓이겨 뭉쳐놓을 계획을 드러내는 셈이었다. 실상 그 촉수 하나도 위험한데, 떼로 들이닥치며 그 계획을 따르라 투란에게 강요한다!
상황파악은 자연스럽게 투란의 이맛살에 핏줄과 힘줄이 교차하며 불거지게 하고 있었다.
‘이년이……!’
―몸통이 여성형이라고 얘가 인간 여성인 것은 아니야! 물론 통칭으로는 세 자매라고 여성형으로 취급하기는 하지만.
‘뭔 헛소리야!’
―호오? 이제 제대로 내 말이 들리냐? 그럼, 빨리 맞서라고! 정령수가 이미 촉수에 저항하다가 마력이 분쇄당하면서 쫓겨나는 상황이란 말이다!
연이은 드라고니아의 말을 투란은 바로 납득할 수 있었다.
유렐리아의 새파란 눈알, 그 시퍼런 구멍 속으로 주변의 마력이 이지러지며 흩어진 채 소거(消去)당하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윌 라이트의 독특한 마력조차 새롭게 생성은 되지만, 생성되자마자 무엇인가를 구성하기 전에 강한 저항에 휩쓸려 흩어져 나가고 있었으니까.
마력뿐이 아니었다.
유렐리아의 기묘한 촉수의 움직임에 주변의 자연력, 특히나 바람이 강제로 뒤틀리고 웅크리며 주변의 다른 것에 그 압력을 마구 흘려 보내는 중이었다. 그 중심에 놓인 투란을 짓이기기 위해서 뭉쳐지는 힘이 새어 나가면서 주변을 으스러뜨리고 밀어내는 듯한 괴현상인 셈!
이 모든 것을 관찰하고 투란이 생각을 거듭하는 동안, 유렐리아는 투란에게 멈춰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렐리아뿐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이 투란에게는 지금 멈춰진 것처럼 느껴지고 있는 중이었다.
한 올, 한 올 흩날리며 흩어지는 눈송이는 허공에 박힌 하얀 점이었고, 유렐리아가 펼쳐놓은 수십 가닥의 촉수는 투란을 감싸는 엉성한 울타리처럼 보였다. 새파란 하늘은 지붕이었고, 산 정상의 허옇게 덮인 암석은 티끌로 다져지기 직전이었다.
그 한복판에서 투란은 문득 깨달았다.
스톰라이더의 날개가 미묘하지만 분명하게, 유렐리아가 뭉쳐서 밀어넣고 있는 바람의 압력을 가늠하고 거스르면서 탈출할 경로를 감지하고 있었다. 드레이크의 날개가 지니지 못한 기묘한 감각이었다. 어째서 유렐리아의 사냥에 스톰라이더의 날개가 필요한가를 분명히 알 수밖에 없었다.
―위로 가는 것 말고는 없다만?
드라고니아도 투란이 깨달은 것을 알아차리면서 그 결과가 그려내는 궤적을 추측하면서 말하고 있었다.
아래에서 눈더미 속에 숨어 있다가 튀어나온 탓에 유렐리아의 촉수는 위로 열린 구멍을, 새파란 하늘을 가리지는 못한 울타리를 치고 있었다. 스톰라이더의 날개가 본능적으로 날아오르며 찾아나갈 궤도는 당연히 위일 수밖에 없다.
‘아니, 그러면 공중에서 계속 시달리며 날아야 해. 그러면서 유렐리아를 때리면서 벌레를 들러붙게 해야 하는 거야. 하지만 천칭에는 그런 벌레가 없지!’
투란은 스톰라이더의 감각을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간 예측을 할 수 있었다.
더불어 그 방식이 지금 자신이 쓸 수 있다는 확신을 못한다는 것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럼 어쩔 거냐? 이대로 계속 사고가속을 유지할 수는 없어, 네 머리가 과열(過熱)로 익어버린다고!
‘자매의 힘은 자매들의 힘으로 막아야지!’
강한 결의를 품으면서 바로 투란은 최대한 더 사유(思惟)의 가속을 이어가면서 바로 ‘천칭’이 품은 몬스터의 정수를 배열하고 조합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고르고니아의 맏이, 스테노아의 황금모피를 가슴과 등에 피워내면서 샤머닉 트롤의 특성에 따라 두 개의 심장을 활성화시켰다. 두 심장 사이에 섀도우 하트를 뿌리내리게 하고 황금모피가 일으키는 힘의 파동으로 보호한 다음, 메듀시아의 위험한 능력 ‘메타모픽 서펜트’를 두 손으로 구현(具現)해냈다.
몬스터의 형상을 드러내기 시작하자마자, 투란은 유렐리아와 자신이 바로 격돌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고가속이 끝나버린 순간이었다.
콰드등, 콰앙!
쌓인 눈더미와 함께 산 정상이 터졌다.
큰 울림이 바로 산자락을 따라 쌓인 하얀 융단이 부들거렸고, 으깨지며 커다란 조각이 되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눈사태가 정상으로부터 산을 타고 미끄럼질치는 광경은 장관(壯觀)이라 할 만했다. 거기에 휩쓸리지 않고 멀리서 구경만 한다면, 감탄할 수밖에 없는!
거기에 휩쓸렸을 뿐 아니라 유렐리아랑 엉겨 붙기까지 한 투란에게는 이걸 구경하면서 박수 치려는 놈이 있으면 손가락을 하나씩 분질러버릴 거라고 격노(激怒)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구경꾼이 있다면 투란의 손이, 어깨부터 변한 팔이 수십에서 수백 가닥에 가까운 굵거나 가느다란 뱀이 되어 유렐리아에게 덮쳐드는 광경에 더욱 손뼉 치면서 감탄할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새하얀 줄기가닥과 온갖 색채가 범람하는 듯한 뱀의 군무(群舞).
눈사태의 한쪽으로 뒤엉켜 굴러떨어지는 채로 유렐리아와 투란이 엮어내는 모습이었다.
새하얀 촉수 사이에 머금어진 지독한 바람은 강하고 날카롭게 수많은 뱀을 짓이기고 베고 잘랐다. 잘려나간 뱀은 곧바로 새로 돋아난 뱀에게 물려 다시 이어졌고, 더욱 맹렬하게 유렐리아의 줄기를, 그 몸통을 향해 기어나가며 사납게 날뛰었다.
이어지지 못한 뱀조차도 잘린 부분을 꼬리로 재생성해내면서 유렐리아의 촉수에 감기면서 몸통을 향해 전진했다.
터엉.
둘이 뒤엉긴 채로 눈사태에 섞여 구르다가 돌출한 산자락에 격돌하며 공중으로 높이 치솟았다. 마치 굴린 공이 돌부리에 채여 튀어 오른 듯한 광경이었다.
그 광경 속에서 투란은 열심히 날갯짓을 했고, 유렐리아가 이에 호응하듯 줄기를 엮고 꼬아 날갯짓 시늉을 하는 것을 봤다.
‘뭐야, 촉수가 날개도 되나?’
어이없어 하는 사이, 투란과 유렐리아는 제각각의 날갯짓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아래에서는 더욱 커진 눈사태가 흘러내리는 중인데, 둘은 서로 물어뜯고 감으려 난투 중인 채로 비상(飛上)하는 것!
그 와중에 다른 생각을 오래 할 수는 없었다.
투란은 더욱 맹렬하게 황금모피의 파동을 일으키면서 두 손에서 흘러나가는 뱀 떼에게 그 힘을 얹으려 했다. 뱀의 형상 위에 더욱 힘을 실으려는 것인데, 유렐리아의 새파란 눈알이 더욱 깊은 구멍처럼 보이는가 싶더니 맥이 풀린 것처럼 파동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자매의 힘은 막상막하(莫上莫下)라더니…….
‘처음 듣는데? 장단점이 있다고 했지, 이런 식으로 서로 까댄다는 말은 안 했잖아!’
투덜거리면서도 투란의 눈가에는 여러 가지 눈동자가 돋아나고 있었다.
미간과 이마 위로 스테노아의 황금빛 눈알이 열심히 굴렀고, 목과 쇄골 사이에는 슬그머니 눈을 뜰까 말까 망설이는 메듀시아의 눈알이 얹혀 있었다. 그 외의 다양한 눈동자가 열심히 유렐리아와 주변의 상태를 살피는데, 심각한 압력 속에서 할퀴는 바람결에 계속 훼손되는 중이었다. 그나마 황금모피의 파동으로 보호받는다고 한 방에 날아가지는 않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메듀시아는 관둬라, 돌이 되는 대신에 지금보다 더 울화를 터뜨리고 짜증 낼 것 같거든.
유렐리아의 상태를 살피던 드라고니아가 살짝 당혹스러워하며 말했다.
투란도 그 당황에 기꺼이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잔뜩 일그러진 유렐리아의 낯짝, 그 추한 얼굴에 떠오르는 감정이 기묘하게 마음에 와 닿는데…… 유렐리아는 분명하게 투란이 드러내는 자매의 힘에 격분(激憤)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치 어디서 튀어나온 이상한 놈이 자매의 추억을 더럽히냐는 듯한 분위기였다.
투란에게 그 낯짝이 ‘이보다 더 못생긴 얼굴을 아느냐?’라고 놀리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러운 순간, 투란은 ‘안다!’라고 으르렁거리듯이 목 아래 가슴위로 메듀시아의 추한 얼굴을 슬쩍 형성했다.
그 순간 유렐리아는 더욱 격분했다.
―야, 하지 말라니까!
‘그, 그러게.’
드라고니아의 어이없어 하는 외침에 투란은 다시 공감했다.
아름다움과 추악함, 양쪽을 오가는 메듀시아의 얼굴 한쪽을 보는 유렐리아의 낯은 이전보다 더 일그러진 채였고 들어 올린 발에서 가시처럼 일어난 깃털 형상이 길게 뻗어 나오기까지 하는 중이었다!
그 분위기는 그래도 지금까지 좀 참는 면이 있었는데 이제는 더 못 참겠다는 강렬함이 가득했으니…….
파아앙!
스톰라이더의 날개가 세차게 움직였다.
허공이 터져 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투란은 두 팔로…… 수백 가닥의 뱀이 되어 있는 두 팔이 유렐리아를 포박하려 드는 채로 더 높이 치솟으려 했다.
쿠르르릉.
유렐리아의 날개, 촉수가 엮인 날개가 몇 조각으로 나뉘면서 새가 아닌 곤충의 날개형태처럼 펼쳐지면서 허공을 두드렸다. 그 결과 나온 음향은 흡사 뇌운(雷雲)이 품은 번개가 울어대는 듯한데, 그 날개 사이로 퍼릇한 광채가 흘러 다니는 꼴은 진짜 번개가 맺힌 몰골!
―야, 야! 벼락 친다!
다급한 드라고니아의 외침.
‘아, 진짜! 이건 아니지!’
황금모피의 파동을 더욱 세게 끌어모으면서도 투란은 이 상황을 부정하고 싶었다.
유렐리아가 폭풍을 몰고 다닌다고 했지만, 그게 번개폭풍이란 말은 없었잖냐고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폭풍 속에 천둥번개가 날뛰는 것이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기는 하다?
콰르릉! 번쩍!
황금의 파동을 머금었음에도, 새파란 눈알이 번뜩임과 번개를 함께 만난 뱀 떼가 터져 나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그 피와 살점이 까마득하게 먼 지상으로 흩뿌리는 대신에 시커먼 빛을 일렁이는 걸쭉한 잉크가 되어 그물처럼 엮이고는 있지만, 몰아치는 번개와 바람의 혹독함은 이 또한 찢어발기려 했다.
이 치열한 상황 속에서 투란은 어쩔 수 없이 다시 한 번 사고를 가속시켰고, 우선 투덜거림부터 한가득 토해냈다.
‘몬스터 만났다, 몬스터 잡았다! 왜 이렇게 안 되는 거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