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96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92)
―허튼 생각 할 때냐!
드라고니아가 어이없어 핀잔했다.
번개가 팔다리를 두들기고 기왕이면 머리도 두들기며 굽고 튀기겠다고 덤벼드는 상황이었지만, 사고가속을 한 투란은 기꺼이 그 핀잔을 향해 투덜거릴 수 있었다.
‘억울하잖아! 얘는 눈보라 일으킬 줄 알면 눈보라만 일으킬 것이지! 자매를 봤으면 반갑다고 할 것이지! 번개는 뭐고 왜 울화를 터뜨리냐고!’
―그런 건 나중에 따지고! 스테노아나 메듀시아의 힘으로 버티기는 하지만 그냥 버틸 뿐이잖아, 어쩔 거야? 이 번개 무더기 속에서 마력까지 흩어지는 중이다. 자연력도 멋대로 꼬여서 가계약한 정령수나 마력을 근본으로 삼는 정령수는 들이대질 못하고 있어. 순수하게 몬스터 로드의 능력만으로 버텨야 한다고! 상성(相性)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위험한 거 알지?
‘알아! 그러니까 닥치고 있어봐, 생각 좀 하자고!’
멈춰진 세계, 그 속에서도 광란(狂亂)하듯이 몰려드는 번개의 가닥이 수백은 될 듯한 풍경을 보면서 투란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늠하며 사유(思惟)를 거듭했다.
일단 갑작스럽게 기습을 당한 상황에서 반사적이지만 필사적으로 끌어낸 몬스터의 형상은 유효했다. 하지만 그 형상을 유지하며 또 다른 몬스터를 형성하는 것은 위험했다. 생각하는 속도는 가속되지만, 변화의 속도는 저 쏟아지는 번개 다발보다 느리니까!
‘젠장, 빠르잖아! 번개가 밀려오는 게 아주 잘 보이네!’
―번개처럼 빠르다는 말이 괜히 있겠냐! 정신 차려!
생각하는 와중에 번쩍하고 지나가지는 못해도 느릿느릿한 채로 쑥쑥 자라나는 번개의 형체를 보면서 투란은 투덜거렸고 드라고니아는 집중하라고 타박했다.
어찌 되었든 투란은 지금 버틸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은 형성하고 있는 몬스터의 기량을 최고로 발휘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는데.
‘정말로 폭풍이면 뭐든지 헤쳐 나가면서 날 수 있는 거였냐?’
스톰라이더의 날개가 번개의 흐름을 감지하면서 기묘한 반응을 이미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니 황당한 기분이었다. 다만 그 와중에도 지금 형성한 스톰라이더의 날개가 예민한 감지는 해내고 있지만 이 번개폭풍, 바로 붙어서 쏟아내는 번개와 돌풍의 난무에 끝까지 버틸 정도로 튼튼하지 못하다는 것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감각이 알려준 결과, 투란은 선택할 수 있었다.
스톰라이더의 날개가 한층 더 튼튼하고 강인해진다면, 할배의 날개 정도만 된다면 지금 위기는 거뜬히 넘길 수 있다. 그렇다면 황금모피를, 그 힘의 파동을 날개에 조금만 더 실으면 되는 일!
몬스터 로드로서 가장 근원적이고 기초적인 대응이었다.
선택을 마치는 순간, 번개가 번쩍하며 투란의 몸과 주변을 휩쓸고 지나갔다.
황금의 광채가 그 번개를 밀어냈고, 스톰라이더의 날개가 뱀 떼와 협력해서 하얀 줄기 다발을 막고 두드리고 튕겨냈다.
그 와중에도 비상(飛上)은 멈추지 않았고 바람과 뱀과 하얀 촉수가 엉긴 기묘한 덩어리는 눈 덮인 산맥의 허공을 구르며 질주했다.
투란은 어디를 어떻게 막고, 어떻게 퉁겨내고, 어떻게 반격을 가하는가…… 스스로 하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납득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반사적으로 본능에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 망할! 그래서 할배 날개 다음에 떼로 몰아넣었구나!’
생각이 일어나자마자 투란은 다중사고를 시작했다.
―뭐? 무슨 말이야?
전투 상황에 몰입하는 ‘투란’, 한 걸음 물러서서 냉정하게 이 상황을 검토하는 투란이 나눠지자마자 드라고니아가 물었다.
‘스톰라이더 떼랑 싸우게 몰아붙인 거 말이야. 지금 꼴 보라고.’
―아…… 그렇군.
넋두리같은 말에 드라고니아도 금방 알아차렸다.
유렐리아와 엉겨 붙은 채로 싸운다는 것, 수많은 촉수와 무서운 바람 속에서 앞뒤 잴 수 없는 난투에 휩쓸린다는 이 상황은 스톰라이더 무리와 공중에서 홀로 싸우는 것과 닮아 있었다.
정령수의 도움 없이 오직 한 쌍의 날개만 믿고, 벌레 무리만 품은 채로 싸워 이겨냈다면 누가 되었든 늑대의 문장을 지닌 자는 유렐리아와 맞설 태세를 갖출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냥 차례대로 필요한 몬스터를 얻게 해둔 것이 아니라 그 사냥하는 과정조차도 유렐리아를 상대하기 위한 단련이었던 셈!
―몇 가지를 건너뛰었는지 모르겠다만, 그 대가를 치르는 꼴이 되었구만.
쓴웃음과 함께 씁쓸한 기분을 고스란히 담은 말이었다.
‘대가는 무슨! 애초에 그런 거 없이 찾아와서 잡으려 했잖아! 못 잡을 것 같냐!’
으르렁거리며 살짝 으스대는 대꾸였다.
―뭐, 그렇기도 하지.
피식 새는 웃음을 머금은 드라고니아의 말.
‘잡아서, 사이좋은 세 자매를 모두 모아 품겠다고!’
한 번 더 각오를 다지면서 투란은 ‘천칭’에 집중했다.
곧바로 투란의 마음이 여러 가닥으로 흩어지며 제각각 생각에 빠져들었다.
‘투란’이 공중 격투에 몰입하는 사이, 또 다른 ‘투란’이 빙빙 도는 하늘과 땅, 하얀 산맥과 녹음이 짙은 대삼림, 누런빛이 찰랑이는 대사막의 풍경을 관찰했고…… 또 다른 ‘투란’은 ‘천칭’ 속을 헤매며 이 상황에 그 본능을 꿈틀거리는 몬스터 에센스가 있는가를 더듬었다. 한편으로는 갈라진 마음에 서로를 알도록 중재하는 ‘투란’도 있었으니…… 흩어진 채로 생각에 잠긴 마음은 각각의 결론을 품은 채로 다시 하나의 의지로 통합되었다.
콰르릉, 콰앙!
천둥이 울려 퍼졌다.
번쩍거리는 번개가 천둥의 근거가 자신이란 것처럼 허공을 수놓았다.
벼락이 간혹 산자락의 하얀 융단을 두드리며 무너뜨렸다.
높은 산의 한편, 대사막을 향해 돌출된 탓에 눈이 흐트러지고 암벽과 엉킨 숲이 점점이 흩어진 곳이 거센 돌풍에 휩쓸리면서 흔들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강력한 자극에 깨어났다는 듯이 뭔가가 움직이듯이 암벽과 숲의 언저리에서 꿈틀거리며 일어섰다. 그 위로 내리꽂힌 벼락이 그 뭔가를 홀랑 굽고 태웠지만, 하나가 아니었기에 결국 여럿 중에 몇몇이 일어섰다.
넝마 같은 살갗 아래로 뼈까지 드러낸 기괴한 몰골, 살점이 아니라 썩다 만 끈처럼 엉긴 속을 꾸물거리면서 움직이는 것들은 흔히 데드워커라 부르는 마물(魔物)이었다. 어떤 것은 인간의 형체를, 어떤 것은 짐승의 형체를, 어떤 것은 몬스터의 형체까지 품은 채로 ‘죽지 못한’ 마물들이 뒤뚱거리면서 하늘의 재앙을 쫓겠다는 듯이 걷기 시작했다.
그 무리 위에서 벼락을 내리꽂고 뼈와 살을 베는 돌풍을 휘날리던 덩어리는 어디로 움직일지 모른다는 것처럼 좌충우돌과 전진후진, 상승하강을 거듭했다.
쿵, 쾅, 쿵, 퍼엉!
한층 더 괴기스러운 음향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란 듯이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다양한 품종의 데드워커를 향해 허공을 두드리던 덩어리가 떨어져 내렸다.
쿠우웅.
두터운 땅울림이 퍼져 나갔다.
직접 깔린 데드워커는 뼈와 살이 산산이 흩어져 사라져버린 듯했다.
반쯤 몸이 남은 데드워커 몇몇이 떨어져 내린 하얀 줄기 가닥을 향해 달려들었다.
가볍게 퉁 하는 소리가 울리는 듯싶은 순간, 뭉쳐 있던 하얀 줄기가 사방으로 튀면서 그 주변의 데드워커의 형체가 모두 지워졌다. 한순간에 티끌이 되고 먼지가 되어 바람결에 휘말려 날려가 버린 광경이었다.
하지만 그 무서운 위력의 하얀 줄기, 촉수 틈새에서 검고 파랗고 빨간…… 온갖 짙은 색채를 머금어 ‘나는 하얗지 않아!’라고 주장하는 듯한 뱀의 형체가 와글거리며 움직이며 데드워커 따위보다 훨씬 튼튼하다고 으스대는 듯이 날뛰고 있었다.
쿠르릉, 쿵, 텅!
허공의 난투가 숲과 암벽의 산자락을 두들기며 이어졌다.
땅이, 숲이…… 대사막을 향해 돌출되고 있는 암벽이 난투에 저항하겠다는 듯이 포석과 벽을 올리려 했다. 그 포석과 벽을 밟고 등지며 데드워커가 곳곳에서 일어서고 있기도 했다. 앞서 허망하게 부서져나간 것들과 질이 다르다고 외치듯, 새로 일어선 데드워커 중에는 방패를 들고, 갑주를 몸에 두른 형체도 있었다. 몇 미터의 거체를 뒤뚱거리면서 아예 몸통이 훨씬 튼튼하다고 주장하는 듯한 마물도 몇 마리, 그 틈새에 언제 죽어서 아직까지 썩고 있는지 의아한 모습의 기사 여럿이 엉긴 광경은 실로 괴상했다.
이런 난데없는 포석, 벽과 데드워커의 조합은 새파란 눈빛 아래 무시당했다.
포석이 흩어졌고, 벽이 으깨지고 데드워커가 활동력을 박탈당하면서 튕겨 나갔다.
모두 하얀 줄기 위로 새파란 눈빛이 얹힌 다음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덤으로 튀어나온 사나운 뱀…… 작은 뱀이 뭉쳐 커다란 구렁이가 된 듯한 형체가 연이어 포석과 벽, 데드워커를 스쳐가면서 하얀 줄기를 물어뜯고 짓이기려는 듯이 움직였다. 스쳐간 데드워커가 뱀의 곤두선 비늘에 썰려나간 것은 그저 부수적인 일인 것처럼 아무 관심도 없는 난동이었다.
터텅, 텅!
으스러진 돌더미를 한번 더 짓이기면서 뒤엉긴 덩어리가 굴렀다.
누런빛의 대사막을 향한 것처럼, 쌓인 눈이 지워진 채로 돌출된 산자락을 향해 사납게 날뛰는 모습을 과연 누가 말릴 수 있는가?
암벽이 스스로 나서겠다는 듯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데드워커를 받쳐주던 포석, 벽이 보다 또렷하게 형체를 갖추며 거대한 움직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형체는 이전처럼 막연한 벽, 포석과 달랐다.
웅장한 성채(城砦)의 기반(基盤)이었고, 망루(望樓)와 해자(垓字)의 형태까지 갖춘 채였다. 높은 곳에서 전경(全景)을 내려다본다면, 산자락에 파묻혀 있던 수백 미터의 체격을 지닌 거인이 성채처럼 꾸민 한 팔을 들어 올리는 것처럼 느낄 광경이었다.
그 성채의 벽을 부수고 포석을 짓이기며 망루를 부러뜨리고 해자를 뭉개며 질주하는 것이 하얀 바탕에 온갖 색채가 뒤엉킨 덩어리인 셈!
때문에 조금 더 화가 난 듯이 더 높은 첨탑 한 귀퉁이가 지반(地盤)을 가르며 치솟았고, 첨탑의 최상부 첨단(尖端)에서는 돌로 만든 듯한 깃발이 펼쳐지기까지 했다. 바람이든 뭐든 쉽게 나부끼게도 하지 못할 무거운 깃발 속에는 갈기와 뿔을 자랑하는 짐승의 두부(頭部)가 새겨진 채였는데…….
터어엉!
―유니콘……? 저런 기(旗)를 세우는 것은…… 뭐야, 왜 여기서 저런 게 튀어나와?
멀찍이 날려놓은 프로브를 통해 거리를 둔 채로 상황을 지켜보던 드라고니아가 당황해서 중얼거렸다. 전투에 집중하고 있는 투란이었지만 사고(思考)의 한 가닥을 끊어내서 바로 되묻는다.
‘왜? 뭐가 또 이상한데? 유렐리아에게 유리해?’
한참 싸워 겨우 우세(優勢)를 띤 참이었다.
여기서 뭐가 나와 유렐리아 편에 선다면, 이 피로한 싸움을 얼마나 더 이어나가야 할지…… 투란으로서는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격동하는 유렐리아의 몸은 엄청난 고집으로 청결(淸潔)을 유지하려 들었고, 덕분에 털끝만큼 닿은 부분도 잠깐 사이에 툭툭 튕겨 나왔다. 그나마 뱀의 형체가 휘감으면 어떻게 되려나 싶었지만, 유렐리아의 촉수는 자기가 감는 것은 좋아도 다른 뭔가가 자신을 감는 것은 딱 질색이란 듯이 언제나 빠져나가면서 청결한 격동으로 뱀의 이빨은 물론, 몸통까지 튕겨낼 뿐!
허공에서는 그런 유렐리아의 움직임이 너무 자유로웠기에 투란은 바닥으로 끌어 내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쉽지 않았기에 한참 걸렸다. 그래서 이제 투란 자신이 아닌 다른 것에 유렐리아가 청결해지려는 틈새를 노리려던 것인데, 대체 뭐가 나왔다는 것인가?
가까이 들러붙는 시늉이라도 할 듯한 것은 모두 분쇄(粉碎)되어 흩어지니 별 문제 없어 보였는데…….
―여기서 벗어나! 뭔 이유인가 전혀 모르겠다만, 고대의 기동요새가 금역을 펼치고 파묻혀 있던 모양이다! 잘못하면 금역에 휩쓸려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몰라! 데드워커를 가두는 중인 모양인데, 어쩌면 데드워커를 병사로 부리는 것일 수도 있어! 생각하지 말고, 닥치고 그냥 굴러! 차라리 모래 미궁이 낫다!
드라고니아의 긴 외침은 투란에게 어이없었다.
하지만 그 쪽으로 깊이 생각하기 전, 투란은 유렐리아를 압도할 틈을 먼저 보고 있었다. 되묻기 위해 흘려냈던 한 가닥의 생각, 그 여유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불쑥 솟아나기 시작한 망루가 유렐리아 뒤편인 것을 파악한 때문이었다.
‘기회다!’
다른 어떤 것보다 이 싸움부터 끝낸다는 의지로 투란은 바로 움직였다.
먼저 유렐리아의 새파란 눈앞에 낯짝을 들이박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이미 몇 차례 별빛 뿔을 머금고 박치기를 시도했지만 유렐리아는 그때마다 뿔 끄트머리만 피해내며 오히려 사납게 물어뜯으려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렐리아의 새파란 눈이 보랏빛을 뿜어내는 붉은 눈과 마주치며 멈춰야 했다. 가면처럼 치솟은 잉크의 막이 메듀시아의 안면(顔面)을 꾸미며 그 눈빛의 위력을 거침없이 뿜어낸 탓이었다.
다른 경우라면 ‘아깝지만 넌 돌!’ 이라고 승리를 자축했겠지만 유렐리아는 메듀시아의 석화를 무효로 만들기에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무효화의 과정, 그로 인해 생긴 길지 않은 틈을 투란이, 뱀 떼와 황금빛을 머금은 주먹이 파고들었다.
쉬이잇! 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