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97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93)
촤악!
하얀 촉수가 꼬이면서 황금빛 주먹과 뱀 떼를 비껴냈다.
번뜩거리는 황금빛은 멈추지 않은 채로 유렐리아의 몸통을 지나쳤고, 저편에서 막 솟아나는 망루를 휘감았다. 뱀 떼가 황금빛을 머금으며 망루를 완전히 덮는 순간, 시커먼 잉크로 돌변했고 연이어 붉은 줄기를 머금은 단단한 결정질로 변이되었다.
유렐리아의 하얀 촉수가 비켜낸 뱀 떼를 후려치면 끊어버리려 했다.
뱀 떼가 시커멓게 물들며 하얀 촉수의 틈새를 넘나들며 날줄에 얽힌 씨줄처럼 엮여 들어갔다.
이 와중에도 유렐리아의 눈과 투란이 들이댄 메듀시아의 눈은 마주한 그대로였다.
망루를 덮은 결정질로부터 실그물이 흘러나오며 투란과 유렐리아를, 그 주변까지 한꺼번에 휘감았고 당겼다.
쿵.
무거운 음향과 함께 한층 더 커진 결정질의 기둥과 유렐리아가 충돌했다.
투란이 망치가 되어 모루 노릇을 하는 기둥을 향해 유렐리아를 두들겨 밀어붙인 탓에 그냥 당겨진 것보다 몇 배는 더한 충격이 유렐리아를 두드린 셈이 되었고, 유렐리아로부터 곧바로 강력한 반발, 반격이 터져 나왔다.
캬악!
추악한 유렐리아의 얼굴에서 새파란 구멍이 뚫려버린 듯했다.
메듀시아의 보랏빛 눈동자가 순식간에 새파란 광휘의 파도에 휩쓸린 것처럼 오그라들며 흘려내던 휘광(輝光)이 오그라들었다.
유렐리아의 하얀 촉수에 얹힌 희미했던 깃털 무늬가 또렷해졌고 무늬를 이루는 선이 틈새가 되어 갈라졌다. 이런 깃털 무늬의 변화는 유렐리아의 온몸에서 일어났다.
폭풍이 유렐리아를 중심으로 퍼져 나왔다.
먼저 격렬한 돌풍이 되어 들러붙는 것을 모두 밀쳐내려 했고, 하나가 되어 새파랗게 그 얼굴에 열려버린 구멍은 더욱 거대한 광화(光華)를 피워 올리면서 주변을 물들여갔다.
메듀시아의 보랏빛 눈은 그 파란 광채 속에서 간신히 명멸하는 점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리고 폭발.
돌풍이 폭풍이 되는 순간, 유렐리아의 몸이 위로 살짝 솟구치는 동작을 하며 뭉쳐 있던 바람결이 단숨에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그 덕분에 몰려들던 포석과 벽, 거대하게 짓누르려 했던 성채 형태의 손아귀조차 단번에 티끌이 되어 날려가는 폭풍이 피어올랐다.
유렐리아는 하늘 높이 겨냥하고 쏘아진 화살처럼 치솟았다.
―이런…… 스쳐도 부서지나.
유렐리아의 바람에 프로브가 다시 으스러지는 것을 드라고니아가 한탄했다.
‘괜찮아, 잡았어!’
투란이 자랑하듯 속삭였다.
캬아아!
유렐리아는 분통이 터진 듯한 외침을 터뜨렸다.
강렬한 폭발, 주변의 기괴한 변화까지 날려버린 그 폭발에도 유렐리아의 등짝에 달라붙은 시커먼 기둥과 스톰라이더의 날개를 펼친 채로 뿜어낸 그물로 몸을 감아 유렐리아에게 바싹 붙은 투란은 떨어져 나가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이젠 유렐리아의 목, 얼굴, 몸통으로 실그물이 번져가며 그 깃털 무늬 속을 채우듯이 짙어질 뿐이었다.
콰릉!
허공을 울리는 사나운 폭음은 유렐리아의 촉수가 엮어낸 하얀 날개 끝에서 터져 나왔다. 그 순간은 유렐리아의 가슴을 관통한 별빛뿔이 돋아난 때였다. 마치 메듀시아의 얼굴을 향해 겨냥하고 나온 듯한 별빛뿔이었다.
투란은 별빛뿔을 손잡이처럼 쥐었고, 별빛뿔에 핏빛 고리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스톰라이더의 날개가 바쁘게 움직이면서 유렐리아가 쏟아내는 돌풍을 흘려내는 사이, 여전히 유렐리아의 등에 붙어있는 기둥에서는 여덟 가닥의 거미 다리가 뻗어 나와 유렐리아의 다리, 허리, 어깨와 목을 움켜쥐었다.
유렐리아의 머리를 대신하는 듯한 새파란 광화가 짙어졌지만, 투란이 형성한 몬스터의 형상은 모두 스테노아의 황금빛 파동을 머금은 채였다.
우르릉, 콰앙!
폭풍을 쏟아내는 유렐리아의 하얀 날개 위로 검은 실가닥이 붉은 금을 머금고 핏빛 고리를 인도하듯이 번져갔다. 곧 하얀 날개가 광채를 잃고 투명하게 흐트러지는 자취가 허공에 잠시 남았다가 서서히 사라져갔다.
유렐리아의 몸 곳곳이 날개처럼 새하얀 색채를 대신해서 투명한 물방울처럼 이지러졌고, 흩어졌다.
이미 쏟아낸 폭풍이 유렐리아를, 함께 엉킨 투란을 계속해서 걷어차듯이 허공을 가로지르게 했다.
눈보라의 높은 산이 점차 멀어졌다.
꿈틀거리던 성채의 거대한 형태가 아늑하게 멀어졌다.
흐트러져가는 유렐리아, 점차 자유롭게 날갯짓하는 투란은 누런빛으로 찰랑이는 융단의 파도 위를 한참 가로지르는 듯했다.
어느새 유렐리아의 추한 얼굴이 다시 드러나 있었고, 메듀시아의 낯은 사라진 채로 투란이 그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끝난 거?
유렐리아가 더 저항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몰골이 된 것을 확인하면서 드라고니아가 살짝 의아한 듯 물었다.
목 아래, 몸통이 거의 투명한 티끌로 으스러져 있었고 그나마 남은 것은 목과 가슴 언저리 위…… 그냥 머리만 남았다 하는 편이 옳은 듯한 몰골임에도 유렐리아의 눈동자는 여전히 새파랗게 뚫린 시퍼런 구슬처럼 번뜩이는 중이었다.
과연 유렐리아의 정수가 더 남은 것인가, 아니면 잔재로서 남은 것인가.
이에 대해 투란이 대꾸하기 전에 유렐리아의 입이 먼저 열렸다.
캬악!
말소리 대신에 사나운 포효, 가지런한 부분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기괴한 형태의 이빨이 가득 차 있는 입 안에서 혀가 날름거렸고 목 아래가 사라졌으니 오히려 자유로워졌다는 듯이 머리가 툭 튀어나오며 투란의 얼굴을 물어뜯으려 했다.
텅!
경쾌하게 움직인 스톰라이더의 날개가 그 입을 막았다.
그래도 유렐리아는 가차 없이 으깨겠다는 듯이 물었다.
‘엑?’
이빨이 스톰라이더의 날개에 박혔고, 순간적으로 날개가 경직(硬直)되며 등짝이 마비되는 감각이 투란을 덮쳤다.
곧바로 누런빛 융단 한 귀퉁이를 향해 투란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으스러져버린 유렐리아 몸으로 인해 느긋하게 허공을 휘젓던 거미 다리, 그 몸통 노릇을 하던 기둥 덩어리가 바로 투란을 감싸며 시커먼 가죽포대처럼 둘러쳤다.
―독……이냐?
드라고니아가 투란의 몸 상태를 엿보며 속삭였다.
‘썩으으을! 못생기고 더러운 이빨이 어떻게 날개를 뚫냐고오오오!’
칭얼대는 외침이었지만 투란은 한 손으로 유렐리아의 머리를 단단히 움켜쥔 채, 이빨을 박은 그대로 꼼짝 못하게 누르고 있었다. 손에서 흘러나가는 검은 잉크는 가시가 돋힌 듯했고, 핏빛 고리가 쉼 없이 맴돌고 있었다.
잠시 후 검게 물든 유렐리아의 머리는 이빨 한 조각 남김없이 사라졌다.
투우웅!
추락과 함께 자신을 감싼 포대가 출렁이는 것을 느끼며, 투란은 바로 다른 한 손을 포대에 얹고 스스로를 향해 속삭였다.
“임금님, 잠깐 부탁하자고. 아무래도 빨리 정리해야겠어.”
손이 닿은 부분에서 바로 맥동하는 시커먼 심장이 형성되었다.
심장 위로는 새까만 가죽이 뒤틀리며 사자의 머리를 형성했다.
포대 안쪽이 노골적으로 꿈틀거리며 아라크레온의 형체를 돋워내며 무늬처럼 꾸미기 시작했다. 빈틈없이 꾸며진 포대 속은 금방 가늘고 하얀 실가닥으로 채워졌다. 흐느적거리며 부드럽게, 소파나 침대라도 꾸미는 듯했지만 금방 투란의 몸을 감싸며 포대 중심에 띄우고 있었다.
투란은 포대 중심에 둥실 뜬 꼴로 가만히 눈을 감으며 독립적으로 활동시킨 포대, 아라크녹스 왕에게서 마음을 끊고 ‘천칭’에 몰입했다. 곧바로 투란의 온몸에서 몬스터의 형상이 사라지며 벌거숭이 사람의 모습이 되었다.
* * *
여느 때와 달랐다.
투란은 빛이 소용돌이부터 확인했다.
‘천칭’의 기둥을 타고 저 아래를 향해 내려가는 한 줄기, 그 한 줄기를 맞이하듯이 아래에서 치솟는 두 줄기의 빛이 서로를 휘감고 엉기며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다른 몬스터의 형상들이 빛의 소용돌이에서 비켜나며 매우 화난 듯, 불쾌한 듯한 소란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높이 저 멀리 있는 별빛무리조차 조금 흔들거리며 이 상황이 달갑지 않다고 드러내는 듯했다.
‘잠깐만 참고 기다려.’
모두를 향해 외치며, 그 모두에서 저절로 빠져나간 듯한 빛의 소용돌이를 향해 투란의 마음이 몰입하듯 뛰어들었다.
그리고 투란은 바로 한두 번 겪어본 듯한 문양(文樣), 어떻게 봐도 마법술식의 근간(根幹) 노릇을 할 듯한 아케인 패턴을 볼 수 있었다.
한복판이 텅 빈 듯했고, 외곽의 테두리를 따라서는 세 얼굴…… 머리라고 하는 편이 더 그럴 듯한 세 가지 형태가 빙빙 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투란이 마음을 쏟아부으니, 순식간에 세 머리는 꼭짓점이 되었다는 듯이 세모꼴의 한 점을 차지하면서 멈췄다.
빛이 소용돌이가 이 세모꼴을 휘감았고, 아케인 패턴의 형태가 보다 뚜렷하게 투란에게 느껴졌다.
‘비었다…… 이름이 필요한가?’
아르고누스와의 경험이 저절로 투란의 마음에 떠올랐다.
세 가지 머리가 동시에 투란을 향해, 중심에 찾아든 투란의 마음을 향해 긍정하는 듯한 기척을 뿌려냈다.
다른 무엇을 하기 전에 투란은 먼저 세 머리, 세 얼굴을 둘러봤다.
그냥 꿰매놓은 가면 같은 얼굴은 이 와중에도 ‘아무것도 몰라!’ 하는, 무책임과 나른함을 자랑하는 듯했다. 귀찮게 하면 단숨에 미간에서 반짝이는 빛으로 꿰뚫어버리겠다는 낌새는 어딘가 착각처럼 느껴졌고!
아름다운 반쪽과 그 아름다움을 단숨에 잊게 할 지경인 추악한 반쪽이 물결치며 오락가락하는 얼굴은 방긋 웃고 있었다. 여차하면 뭐든 잊게 해주겠노라고 속삭이기라도 하는 듯해서 굉장히 위험해 보였다!
그리고 남은 하나, 복잡한 일 따위는 알 바 아니란 듯이 오롯하게 추악함으로 가득한 얼굴은 엉망진창인 이를 드러내며 웃고 울고 찌푸린 채로 정확한 감정 따위는 없다는 듯이 혼란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런 세 얼굴, 세 머리 아래로 묘하게 새겨진 무늬는 투란이 바로 읽어낼 수 있었다. 문자가 아닌데 마치 문자처럼, 그 의미가 선명하게 투란에게 와 닿는 것!
‘유렐리아, 메듀시아, 스테노아.’
머리를 둘러본 순서와 반대로 차분히 그 무늬가 전하는 바를 되새기면서 투란은 다시 마음이 차지하고 눌러앉은 중심…… 텅 빈 아케인 패턴의 중앙 부분을 확인했다.
역시 세 방향을 기본으로 삼고 소용돌이로부터 흘러오는 빛의 무늬는 이곳에 어떤 형태를, 어떤 이름을 새겨넣을 것이냐고 투란에게 묻는 듯했다.
‘투란, 투란-고르고니아.’
투란은 속삭였다.
아르고누스와의 경험을 살린 대답이었다.
기다리던 빛이 곧바로 호응했다.
아케인 패턴의 중심으로 곧장 새로운 무늬가 새겨들었고, 투란은 그 문자 아닌 무늬 속에 새겨진 이름 ‘투란-고르고니아’를 알고 느낄 수 있었다. 그로부터 다시 흘러나간 빛의 흐름이 곧장 스테노아, 메듀시아, 유렐리아를 채워 넣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어느 틈엔가, 셋의 본능이 투란의 마음에 와 닿았다.
함께 있어도 독립된 셋, 셋이 각자 할 수 있는 것과 함께할 수 있는 것…….
이를 통한 다른 뭔가를 생각하려 한 순간, 투란은 금방 ‘천칭’의 정상을 느꼈고 마음이 옮겨진 것을 알아차렸다.
―괜찮으냐? 끝난 거야?
별빛무리가 일렁이면서 투란에게 물었다.
“아, 그런 것 같네…….”
조금 멍한 대답이 ‘천칭’의 풍경을 울렸다.
―그러면…… 이제 셋을 뭉쳐놔도 별일 없는 거야?
이어진 물음에 투란은 멈칫하다가 아래쪽을 봤다.
‘천칭’의 기둥을 한참 따라 내려가서 빛의 정원이 안개를 가득 머금고 맴돌고 있었다. 기둥을 중심으로, 그 높은 곳에 드레이크의 알을 매단 채로!
빛의 정원 속에서 고르고니아 세 자매가 두리번거리는 중이었다.
서로 가까이 있는데 어째서 보이지 않느냐고 찾는 모습.
투란은 쓴웃음과 함께 드라고니아에게 대답했다.
“아, 괜찮아. 별일 없을 거야. 저 녀석들…… 아르고누스처럼 내 이름을 새겨 가졌어. 그러니까…… 괜찮겠지?”
느낀 대로 대답하다가 끝에는 불쑥 묻는 말이 매달렸다.
별빛무리를 한층 더 밝게 일렁이는 채로 드라고니아가 말한다.
―그렇게 된 거라면, 아무 문제 없다. 고르고니아 세 자매는 완전히 정리된 셈이야. 그래도 투란, 마지막 확인은 제대로 해야겠지?
“확인? 무슨 확인?”
―몬스터를 낳는 몬스터, 세 자매가 함께 있으면 발휘되는 그 속성이 억제되는가 말이다.
“그게 무슨 이야기십니까?”
맹하니 듣던 투란이 흠칫해서, 알드바인 헌터 길드 창구에서 공식적으로 확인하겠노라 외치던 소리를 흉내 내듯이 물었다.
혀를 차는 말투로 드라고니아가 말한다.
―메듀시아에게서 라미아가 주렁주렁 맺힌 열매가 뚝뚝 떨궈지듯이 생겨나왔잖아. 타우루스 중에서도 세 자매를 근본으로 삼는 녀석들이 있었지. 아, 유렐리아와 메듀시아가 흘린 피가 섞이고 공명해서 비마종(飛馬種)이 생겼다는 이야기는 들어봤냐?
“전혀! 들은 적 없어!”
투란은 당황해서 절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