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ter×Monster: Nihilism King Arc RAW novel - Chapter 898
몬스터×몬스터: 허무왕 편 (894)
―페가서스, 그 녀석 이야기다.
“페가……? 야, 그건 불 뿜는 망아지 이야기 아냐? 여물통 여관에서 잠깐 들었던 것 같은데?”
―그래, 날개 달려 날아다니는 말의 품종. 그게 비마종이고, 페가서스는 그 비마종의 시조로서 신수로 꼽혔던 녀석이지. 여물통 여관에서는 그게 신의 축복으로 날개가 돋았네 어쩠네 했다만, 원래 날 때부터 날개를 갖고 있어, 다만 시조답게 형체변환 능력이 있어서 쓰지 않을 때는 감추고 그냥 말 흉내를 냈다더군. 그 녀석이 태어나는 과정이 바로 메듀시아가 흘린 핏덩이에 유렐리아의 날갯짓이 더해지면서……라는 거다. 알겠어?
“모르겠는뎁쇼.”
설명하는 드라고니아에게 투란은 매우 삐딱한 대꾸를 했다.
별빛무리가 조금 서늘하게 번뜩거렸다.
―아무 생각 없이 자매의 힘을 섞어 쓰면 부작용이 너도 모르게 세상에 남을 수도 있다고! 몬스터 로드이니 가능성이 적다고 마음 놓지 말란 말이다! 어쩌면 몬스터 로드인 네가 섞어버릴 경우에 더 끔찍한 뭔가 시조가 튀어나올 수도 있다고!
연이은 말은 투란이 할 말을 빼앗고 있었다.
설마 저런 것을 걱정하고 있을 줄이야!
몬스터 로드가 생성한 형상은 그 의지를 담은 고유마력이 없을 경우에 그대로 소실(消失)될 뿐이다. 아무리 고유마력을 짙고 크게 담아놓는다 해도 몬스터 로드의 의지가 없으면 바로 형상은 해체되며, 남은 고유마력은 유실(遺失)되거나 몬스터 엠블럼에 의해 회수될 뿐!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이들에게 확인된 일일 텐데…….
도대체 왜 저런 쓸데없는 일이 드라고니아가 주의를 주면서 잔소리를 하는가?
“너무 지나친 걱정 아냐?”
―아르고누스를 얻었을 때, 네가 흘려낸 것에 대해 홀랑 잊고 있는 거냐?
“음……? 으흠?”
“투란, 너 이 자식! 홀랑 잊고 있었구나!
별빛무리가 번쩍거리며 휘황하게 투란의 마음을 비추었다.
너무 밝아서 투란은 잠시 ‘천칭’의 풍경을 마음에서 잊을 정도였다.
* * *
‘아, 그건 악마의 심장 줄기까지 써서 억지로 내 의지를 유지시킨 거였지. 하지만 그러고도 정말 작게 만들 수밖에 없었잖아. 뭐, 내 의지가 남아있는 채라면 계속 작은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겠지. 아무튼 너무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가만히 눈을 뜨며, 귀를 후비적거리려다가 몸을 휘감은 실그물의 무더기에 한숨부터 내쉬면서 투란이 소리 없이 웅얼거렸다.
하지만 웅얼거림과 함께 투란은 드라고니아의 염려가 전혀 쓸모없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느낄 수 있었다. 애초에 고르고니아 세 자매는 흔히 볼 수 있는 몬스터와는 뭔가 격이 다른 존재였고 셋이 ‘천칭’ 안에 모여서 꾸며낸 마법의 문양은 그 점을 보다 분명하게 투란에게 깨닫게 해줬다.
어쩌면 정말로 투란은 세 자매의 새로운 몬스터의 시조를 탄생시킬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냉정하게 되새기면, 투란에게 그런 일이 처음도 아니었다. ‘작은 돌’을 이용해서 이미 저지른 짓이 몇 가지 있잖은가.
―허튼소리로 여기지 말고 좀 더 신중하게……!
“하아아…….”
‘알았어!’
깊이 숨을 몰아 내쉬면서 투란은 재빨리 대답했다.
홀로 되새기려던 기억은 그대로 마음 저 너머로 사라졌고, 투란은 현재 자신이 어떤 몰골인가를 차분하게 둘러보는 일에 집중했다.
가르르…….
가벼운 목울림처럼 소리 낸 것은 검은 사자의 머리였다.
투란은 바로 자신을 보호하는 외벽(外壁)을 이룬 검은 가죽 겸 결정에 손을 올렸다. ‘천칭’이 투란의 가슴에서 사라지고, 몬스터 로드의 고유마력이 곧바로 맥동하며 퍼져 나갔다.
금방 투란은 몸을 휘감았던 실그물을 해체했고, 따로 빼내 독립시켰던 몬스터의 형상을 고스란히 거둬들이면서 자신이 어디로 굴러떨어져 있는가를 확인했다.
‘여기는 대체……?’
희미한 빛, 어스름한 풍경은 꿰뚫어보기 어렵지 않았다.
깔고 앉은 부드러운 티끌, 그 티끌이 뭉쳐 벽을 이루고 천장을 이루고 통로가 되어 저편 아래로 펼쳐져 있었다. 위도 막혔고, 좌우도 막혔지만 저 앞으로는 비스듬히 내려가는 통로가 열린 셈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느낀 그대로 그냥 막혀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하늘이 없어?’
두텁게 쌓인 모래가 누런빛을 일렁이던 곳은 대체 어디 갔는가?
분명히 그 모래 들판 위로 떨어졌을 텐데?
―모래 미궁이야.
마지못한 듯한 낌새를 듬뿍 뿜어내며 드라고니아가 말했다.
‘잘 모르겠는데, 춤추는 산맥 어디쯤……이 아닌 거냐?’
―춤추는 산맥에서 산과 들, 강 몇 개를 지나면 나오는 지름길도 있겠지. 하지만 넌 그냥 북벽산맥의 귀퉁이에서 눈보라가 후려치는 높은 산을 건너 그냥 내리꽂힌 거야. 대사막 곳곳을 누비며…… 네가 봤던 누런빛의 들판 지하를 누비며 움직이는 미궁이라고. 보다시피, 벽이고 뭐고 주재료가 모두 모래라서 모래 미궁이라고 부르는 거고.
‘그래, 그러니까…… 여기가 그 금역인가 뭔가보다 낫다며?’
살짝 눈가 옆으로 핏줄이 서는 듯한 기분을 느끼면서 투란이 물었다.
드라고니아는 살짝 곤혹스럽다는 듯, 엉거주춤하니 묘한 말투로 답한다.
―어, 뭐…… 일단 그렇다. 고대의 비밀이 가득한 요새에 갇히는 것보다는 낫지, 그래 낫고말고. 어, 음…… 그런데 이 미궁이 고대의 저주로 이뤄진 곳이거든. 에, 그러니까…… 그래도 여기서는 가끔 탈주에 성공한 이야기도 있고…….
‘얀마아아!’
입을 꼭 다물고, 이를 꽉 아물며 입술이나 혀를 깨물지 않게 미리 대비한 다음 투란은 마음을 모아 힘껏…… 소리 없이 강력한 의지만을 담아 버럭 외쳤다!
―딱히 이 안에서 널 위협할 것은 없을 거라니까? 고대 기동요새의 금역보다 훨씬 벗어나기 쉽다고! 여긴 그냥 길만 잘 찾으면 되는 곳이야. 걱정 마, 뭐가 있어봐야 그냥 시커먼…… 사막 재규어 정도?
어딘가 허둥지둥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끝은 그냥 생각나는 대로 하나 떠올린 것이 아니었다.
투란 앞으로 펼쳐진 통로에 불쑥, 시커먼 털가죽 위에 누런 모래를 살짝 끼얹은 채로 어깨 높이가 대강 2미터는 되어 보이는 맹수가…… 분명히 그 이름이 사막 재규어일 터인 네 발 짐승이 떡하니 나타났으니!
‘몬스터……는 아닌가?’
―아냐. 대사막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맹수……이니 마수일 거다. 이 저주받은 미궁 안에 있다면, 마수가 아니고서는 적응도 못했을 테니까. 아무튼, 널 먹이로 여기는…….
캬하앙!
등짝에 붙은 누런빛을 역동적인 동작 속에서 털어내며 사막 재규어가 투란을 향해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며 돌격해 왔다. 어차피 막힌 구멍 안에 덩그러니 놓인 꼴이었던 투란으로서는 피할 곳도 없는 참인데 저러는 꼴을 보니 꽤나 굶주린 놈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피어날 지경.
투란은 복잡한 생각을 지우고 마주 내달렸다.
샤벨투쓰의 이빨이 1미터 길이로 확장된 형체를 투란의 두 손을 오가며 드러내는 순간, 투란은 사막 재규어의 앞발 사이에 끼어 그 가슴을 어깨로 들이박는 중이었다. 샤벨투쓰의 이빨이 허공을 누비듯이 사막 재규어의 가슴과 목을 쑤시고 빠졌다.
커흐응.
낮은 신음과 함께 사막 재규어가 그대로 투란에게 몸을 기댄 채로 엎어지듯이 늘어져버렸다.
―호오? 정확하게 심장과 목줄 급소를 노렸구나? 대단한데!
드라고니아가 낯선 칭찬을 했다.
‘허튼 수작하지 마!’
투란이 바로 으르렁거렸다.
우드득, 꼬륵!
샤벨투쓰의 이빨이 뚫어놓은 자리로 바로 투란의 손이 꽂혀들었다.
시커먼 잉크가 투란의 어깨부터 괄괄 흘러넘치면서 곧바로 사막 재규어의 몸 안팎을 범람하듯 덮어갔다.
눈알, 가죽, 뼈, 발톱…… 맹수의 몸은 그대로 해체되었고 소화되었으며 적당히 남겨졌다.
투란은 사막 재규어의 머리를 투구 삼아 뒤집어썼다.
펄렁거리는 가죽이 투란의 몸 뒤로 늘어졌고, 끈적끈적하게 번져가는 시커먼 잉크가 이 가죽을 조이고 갉아 없애면서 투란의 몸에 맞게 조절했다. 마치 투구를 쓰니 가죽외투가 저절로 입혀진 듯한 광경이었다.
‘어디 보자…….’
일단 송곳니 둘은 남겨서 눈가를 지키는 자리에 뒀고, 홀랑 비워진 눈구멍은 다시 눈알로 채워 넣었다. 채운 눈알의 뿌리는 시커먼 잉크에 닿아 있었고, 그대로 투란의 머릿속으로 그 시각을 이어놓는 중이었다.
사막 재규어의 눈알이 굴렀고, 투란의 눈알도 함께 굴렀다.
흐릿한 풍경이었지만 사막 재규어는 별 어려움 없이 사물을 선명하게 분별해내고 있었다. 마수의 시각이라 뭔가 다른 모양이라 대충 넘기면서 투란은 나머지 가죽을 정리했다.
꼬리를 허리띠로, 뒷다리 부분은 허벅지와 정강이를 덮는 보호대로 묶으면서 손등과 팔뚝 쪽으로는 발톱을 쟁여뒀다.
그럭저럭 맹수를 잡아 무장한 꼴이 된 다음, 투란이 묻는다.
‘모래 미궁에 대해서, 저주에 대해서 얘기 좀 해. 몬스터 로드에게 통하는 저주는 아니겠지?’
―모래 미궁이 저주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야. 지속적으로 누군가에게 저주를 건다는 말이 아니다. 아무튼, 이 대사막의 경계 근처는 미궁이 나타나기 쉬운 곳이라서 사막을 건너려 마음먹는다면 꽤 조심해야 하지. 그래도 예상 못한 모래 폭풍에 휩쓸려서 미궁에 빠져버린 경우도 많으니까, 결국 운이 나쁘면 빠지고 좋으면 피할 수도 있는 함정인 셈이야.
‘그니까, 떨어졌어도 안 빠질 수 있었다는 얘기?’
―이미 빠진 다음에 아쉬워할 일은 아니지. 그러니까…….
드라고니아의 말투가 바로 위로하려는 듯, 격려하려는 듯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은 길게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면, 금역을 피해서 도망치라 했던 말이 모래 미궁으로 뛰어들란 뜻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냥 금역보다 차라리 모래 미궁에 빠질 위험을 감수해보자는 이야기였는데, 투란은 곧바로 대사막의 함정에 푹 꽂혀서 그 지하에 있다는 미궁으로 툭 떨궈진 것!
‘아, 진짜 왜 이렇게 운이 없냐고!’
한탄하는 투란에게 드라고니아가 쓴웃음을 참는 듯이 말한다.
―그렇게 운이 없지는 않지. 고르고니아 세 자매를 모두 획득한 몬스터 로드라고 하면, 억세게 운 좋은 녀석이라고 하지 않겠어? 어쨌든 이 미궁이 험악해봐야 춤추는 산맥의 몬스터보다 험악하지는 않다니까 말이야. 그냥 길만 잘 찾으면 된다. 그게 어려운 처지도 아니잖아?
‘그래…… 조금 위로가 된다, 조오오오금!’
후욱, 한숨을 쉰 다음에 투란은 고개를 갸웃했다.
가만히 생각하니 이 미궁, 위아래가 분명하잖은가?
‘야, 여기 두께가 얼마나 되지? 위로, 얼마나 두꺼워? 나 얼마나 깊이 떨어진 거야? 여기 얼마나 넓어?’
―정확한 규모는 밝혀진 적이 없어. 기록에는 이 모래 미궁의 규모가 일정하지 않다는 말도 있었지. 대사막의 요동에 따라서 변화한다는 추측이 있었다.
‘기록 말고, 지금 당장 탐색해볼 수 있잖아? 프로브, 잔뜩 뿌려보면 넓든 높든, 아무리 두껍더라도 바로 알아낼 수 있는 거……?’
말하던 투란은 문득 드라고니아의 낌새가 살짝 수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른 때라면 의욕적으로 프로브부터 뿌려놓고 뒤지고 다닐 텐데, 어째서 주변에 뿌려둔 프로브의 감각이 전혀 없는가?
그러고 보니 사막 재규어도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투란과 공유한 감각으로 파악한 듯하다?
투란이 슬쩍 윌 라이트의 마력을 점검하니, 딱히 이상한 느낌이 없었다.
마력은 충실했고 프로브를 당장 몇십 기 구성해도 별 탈이 없는 상태.
‘야, 할 말 있지?’
―모래 미궁에 대한 정보는 모두 탈주에 성공한 이들의 체험담이다. 드라코눔에서 탐색한 경우는 없어. 아니, 드라코눔의 탐색자가 뛰어들었다가 살아나와 남긴 기록은 있으니까, 그걸 드라코눔의 탐색 정보라고 해도 되려나?
‘그게 도대체…….’
스멀스멀 떠오르는 생각이 투란의 마음을 간지럽혔다.
그 생각을 말로 하기가 굉장히 싫어지는 투란이었다.
―음, 뭐 간단히 말하자면…… 여기서는 프로브를 못 써. 구성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프로브가 그 기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는 곳이라 쓰지 않는 것이 옳다.
드라고니아가 나지막하니 속삭였다.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저절로 몸에 열이 치솟는 것을 느끼면서 투란이 이를 빠득빠득하면서도 소리 내지 않고 묻는다.
‘왜! 뭣 땜에! 구성되면 어디서라도 기능한다며! 왜 안 된다는 거야!’
―미궁을 배회하는 모래 망령이 마법 구성체를 잡아먹거든.
투란은 흠칫했다.
망령이라니…….